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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 이야기 — 오리삼진사, 형제가 함께 이름을 떨치다
명나라 가정 연간, 하북 청하현에 전(田)씨 성을 가진 노인이 살고 있었다. 슬하에 세 딸과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아들은 평범한 그릇이었지만 세 딸은 어려서부터 영민함이 남달랐다.
전씨 집안은 가난했다. 노인은 시장을 떠돌며 떡을 파는 것으로 생계를 이었다.
어느 날 그가 쌍성집(雙城集), 지금의 청하현 쌍성집촌 부근에 좌판을 펼쳤을 때, 한 젊은이가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떡 파는 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노인은 그가 너무 오래 서 있는 것을 보고, 시장기가 들어 그러는 것임을 알아챘다. 떡 한 덩이를 떼어 건네주니, 젊은이는 크게 기뻐하며 받아 단숨에 먹어 치웠다.
다 먹은 뒤 그가 자기를 소개했다. 사천(四川) 사람인데 길에서 병을 얻어 노자가 다 떨어졌고, 밥값도 없거니와 고향으로 돌아갈 차비도 없어 이 지경이 되었노라고.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다고 했다.
노인은 그를 위로하며 말했다.
“그게 무슨 부끄러운 일이오. 누가 집을 등에 지고 다닐 수 있겠소. 시장하면 점심에 또 오시오. 떡이야 더 드리리다.”
과연 점심때가 되자 젊은이가 다시 찾아왔다. 떡을 얻어먹은 뒤 그가 입을 열었다.
“선비된 자가 한 끼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갚는 법인데, 지금 어르신의 음식을 얻어먹고도 보답할 길이 없습니다. 보아하니 어르신도 넉넉하신 것 같지는 않으시고, 저는 풍수와 대육임(大六壬)에 평생 정통해 왔으니, 댁으로 따라가 선조의 묏자리 하나 잡아드리고 싶습니다. 그리하면 가난이 사라질 것입니다. 어떻겠습니까?”
노인은 흔쾌히 그를 집으로 데려갔다.
젊은이는 전씨 집에서 며칠 밥을 얻어먹으며 몸을 추슬렀다. 그러는 동안 마을 주변의 묘소들을 둘러보고는, 마치 오래전부터 그 자리들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좋고 나쁨을 일일이 짚어냈다.
노인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 한숨을 쉬며 말했다.
“선생이 풍수의 고수임은 분명하나, 우리 집은 가진 땅이라곤 두 마지기뿐이오. 그 안에서 좋은 자리가 나올 리가 있겠소?”
젊은이가 웃으며 답했다.
“어르신 댁 땅으로는 안 됩니다. 다만 제가 이미 봐둔 자리가 하나 있습니다. 마을 뒤 모씨의 밭이 바로 그 자리인데, 지금 형편으로는 사실 수 없는 땅이지요. 그래서 제가 한 가지 육임 택길(擇吉)의 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벽돌 한 장을 주십시오. 거기에 부적 하나를 그리고 어르신 부친의 함자를 적어, 한밤중에 그 밭에 몰래 묻으시면 됩니다. 그러면 삼 년 안에 가세가 일어나 마흔 마지기 땅과 마흔 마리 소를 갖게 되실 것입니다. 그때 가서 그 돈으로 모씨의 밭을 정식으로 사들여 이장하면 됩니다.”
말이 너무 신통하니, 노인은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벽돌 한 장 값이야 푼돈이라, 시키는 대로 해두었다.
과연 그날 이후 떡 장사가 유난히 잘 풀렸다. 매번 평소의 두 배가 팔렸다. 삼 년이 지나자 정말로 마흔 마지기 땅과 마흔 마리 소가 그의 손에 들어와 있었다.
그때 젊은이가 다시 찾아왔다. 모씨의 밭을 사서 이장하라는 것이었다. 가장 좋은 논 여섯 마지기를 내어주고서야 그 묘자리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장이 끝나자 젊은이가 노인에게 말했다.
“이 일이 마무리되었으니, 저도 이제 사천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노자로 구천 전(錢)이 필요합니다.”
노인의 얼굴빛이 바뀌었다.
옛 시골 노인이라는 사람들이 다 그러했다. 모든 거래는 물물교환이었다. 밥을 청하면 쌀이야 제 손으로 지은 것이니 아깝지 않고, 품을 청하면 제 몸뚱이 쓰는 것이니 아깝지 않다. 그러나 현금을 내놓으라 하면, 그것은 곧 살을 도려내는 일이었다.
구천 전이라니. 떡을 얼마를 팔아야 그 돈이 모이겠는가.
곁에 있던 세 딸이 얼른 말머리를 돌렸다. 잠시 후 노인이 자리를 비우자, 딸들은 조용히 풍수가에게 다가가 말했다.
“선생님, 부디 너무 언짢게 여기지 마십시오. 아버지는 본래 저런 성품이십니다. 평생 천한 장사로 살아오신 분이라, 돈을 무겁게 여기는 버릇이 몸에 배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드리지 못하신다면, 저희 자매 셋이 가지고 있는 귀고리며 비녀를 모아 노자를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결코 선생님을 곤란하게 해드리지 않겠습니다.”
세 자매가 각자의 사사로운 패물을 모두 꺼내놓으니, 그 값이 만 전 남짓 되었다.
풍수가는 크게 기뻐했다. 그리고 이장하는 그 시각에, 묏자리를 음방(陰方) 쪽으로 한 줄기 정도를 살짝 옮겨 잡았다.
훗날 세 딸은 모두 시집을 갔고, 각자 아들 하나씩을 낳았다. 그 세 외손자가 모두 진사(進士)가 되었다.
이태화장(李太和庄)의 이근가(李僅可), 사로집(謝爐集)의 위악(魏諤), 나가둔(羅家屯)의 종희안(鍾希顔). 이 세 사람이 바로 그들이다.
이 세 마을 사이의 거리를 다 합쳐도 오 리(里)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로 청하 일대에서는 “오리삼진사(五里三進士)”라는 말이 전해져 내려오게 되었다.
정작 전씨 노인과 그 아들은 평생 돈 걱정 없이 살았을 뿐, 후대에 이름을 남기지는 못했다.
이 이야기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노인의 한순간 인색함을 두고 비웃었다. 본래 제 집안에 들어와야 할 발복이, 그 한 생각 차이로 세 외손의 집안으로 옮겨가 버렸다고.
이 이야기 안에 풍수의 핵심 원리 하나가 들어 있다. 자리를 한 줄기 옮겼다는 그 대목이다. 풍수에서 음방(陰方)으로 살짝 옮긴다는 것은, 정혈(正穴)에서 비껴난 방향으로 좌향을 미세하게 조정한다는 뜻이다.
같은 묏자리라도 좌(坐)와 향(向)을 한 분(分) 단위로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발복의 흐름이 완전히 달라진다. 정혈을 그대로 짚으면 발복은 곧장 자손, 즉 아들 계통으로 흐른다. 그러나 좌향을 음방으로 비껴 잡으면 그 발복은 딸 쪽, 곧 외손으로 흐르게 된다.
풍수가가 처음 자리를 잡을 때는 분명 전씨 노인의 친자손이 일어나는 자리를 잡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노자를 둘러싼 그 한 장면에서 인색함을 본 순간, 그는 손목을 한 번 비틀어 좌향을 살짝 옮겼다. 그 한 줄기의 이동이 곧 발복의 물길을 외손가로 돌려놓은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이야기가 단순한 풍수담이 아니라는 데 있다. 풍수에서 자리를 잡는다는 행위에는 사람의 됨됨이가 함께 따라붙는다. 같은 자리, 같은 시각이라도, 그 자리를 쓰는 사람의 그릇에 따라 발복의 크기와 방향이 달라진다. 옛 풍수서에서 “지유덕재득(地有德在得)”, 곧 자리는 덕이 있는 자에게 머문다고 한 것이 바로 이 이치다.
여기서 명리학의 시각을 한 겹 더 얹어보면 이야기는 더 분명해진다.
전씨 노인은 평생 떡을 팔아 푼돈을 모은 사람이다. 명리학의 틀로 보면 정재(正財)에 집착하는 전형적인 사주의 모습이다. 정재에 집착하는 사람은 한 푼을 쥐고 놓지 못한다. 그것이 그의 그릇이자 한계다.
그러나 그의 세 딸은 달랐다. 자기 패물을 아낌없이 내어 풍수가의 노자를 마련했다. 명리학에서 여자가 자기 재물을 내어 남에게 베푸는 것은 식상생재(食傷生財)의 흐름이 살아 있다는 뜻이다. 식신과 상관이 재성으로 흘러갈 때, 그 재물은 자신에게 갇히지 않고 밖으로 흐르며, 그 흐름이 결국 자식으로 이어진다.
여자에게 식신(食神)은 딸이고, 상관(傷官)은 아들이다. 세 자매가 식상의 기운을 발휘하여 재물을 내어놓은 그 행위 자체가, 이미 후대의 자식이 일어날 토대를 만들어둔 셈이다.
풍수가는 그저 자리를 한 줄기 옮겼을 뿐이지만, 사실 그 한 줄기의 방향을 결정한 것은 세 자매의 식상생재였다. 풍수가는 결과를 집행한 사람일 뿐, 발복의 물길을 만든 것은 세 자매 자신이었다.
명리학의 삼용신(三用神) 체계로 보면 이 장면은 더욱 선명해진다.
격용신(格用神)은 사주의 격국을 운용하는 핵심 글자다. 전씨 노인의 격용신은 평생 정재 하나에 묶여 있었다. 그 격국 안에서 그의 그릇은 떡을 팔아 마흔 마지기 땅과 마흔 마리 소를 갖는 그 자리까지였다.
평형용신(平衡用神)은 사주 전체의 균형을 잡는 글자다. 전씨 노인에게는 재물이 들어왔으나 그 재물을 흘려보낼 식상의 통로가 막혀 있었다. 그래서 재물이 들어와도 더 큰 그릇으로 확장되지 못하고 정체된 것이다.
기수용신(氣數用神)은 사람의 타고난 감각과 정서의 결을 보여주는 글자다. 노인의 기수는 본래 푼돈에 반응하도록 짜여 있었다. 구천 전을 내놓으라는 한마디에 얼굴빛이 변한 그 순간이 바로 그의 기수가 작동한 장면이다.
세 딸의 사주에서는 정반대의 그림이 그려졌을 것이다. 식상이 재성으로 흘러가는 통로가 열려 있고, 그 흐름이 다시 관성(官星)을 생해주는 구조다. 여자에게 관성은 자식 중에서도 특히 딸(정관)과 직결되지만, 이 사주의 흐름은 외손, 곧 자기 자식의 진사(進士) 급제로 드러났다.
풍수가가 자리를 음방으로 옮긴 것은 곧 이 식상생재 → 재생관(財生官)의 흐름을 외손 쪽으로 정확히 꽂아준 행위였다.
이 이야기의 진짜 무게는
“본래 제 집안에 들어와야 할 발복이, 그 한 생각 차이로 세 외손의 집안으로 옮겨가 버렸다.”
발복이 사람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한 생각이 발복의 방향을 정한다는 것. 풍수가의 손이 자리를 옮긴 것이 아니라, 노인의 한 생각이 자리를 옮긴 것이다.
청하 땅에 지금까지 전해진다는 오리삼진사의 자취 앞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갔을까. 진사 셋이 나온 그 묏자리를 보고 갔을 수도 있고, 떡 팔던 노인의 굳은 얼굴을 보고 갔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