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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함을 벗으면 누가 남나: 사주 속 '나'의 여러 겹

직함을 벗으면 누가 남나: 사주 속 '나'의 여러 겹

사주에서 '나'는 한 점이 아니다.

일간(日干)이 중심에 있지만, 여덟 글자 전체도 나다. 그리고 그 사이에 겹이 있다. 겪는 나, 안쪽의 나, 사회가 입힌 나, 시대가 빚은 나, 남들 눈에 보이는 나.

문제는 어느 쪽이 진짜 나냐가 아니다. 옷을 입은 사람과 옷을 헷갈리느냐다.


목차
  1. 겪는 자는 누구인가
  2. 네 기둥은 네 개의 무대
  3. 십신은 옷이다
  4. 옷이 벗겨지는 날 무너지는 판
  5. 퇴직은 월주의 시간이 끝나는 일
  6. 옷과 입은 사람을 가르는 자리

1. 겪는 자는 누구인가

명함에는 이름 옆에 직함이 붙는다. 부장, 원장, 대표, 교수.

일간은 그 직함을 단 사람이 아니다. 부장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쪽이다. 아버지 노릇을 하고, 남편 노릇을 하고, 회의에서 목소리를 깔고 있다는 것을 아는 쪽.

역할은 "무엇을 하느냐"이고, 일간은 "누가 하느냐"다.

역할은 바뀐다. 부장은 상무가 되거나 퇴직자가 된다. 아이는 자라서 집을 나간다. 겪는 자는 그대로다.

물론 일간만 나라고 하면 반쪽이다. 일간 혼자서는 아무것도 겪지 못한다. 겪을 거리를 주는 것이 나머지 일곱 글자다. 그래서 일간도 나고 여덟 글자도 나다. 다만 가리키는 자리가 다르다.


2. 네 기둥은 네 개의 무대

네 기둥은 각각 다른 무대다. 같은 사람이 무대마다 다른 얼굴로 선다.

자리무엇을 맡는가어떤 '나'인가
년주(年柱)나라, 시대, 조상, 뿌리어디서 왔고, 어떤 판에 태어났나
월주(月柱)사회, 직장, 부모, 형제, 또래세상이 나에게 무엇이 되라고 했나
일간(日干)겪는 주체이 모든 것을 겪는 자
일지(日支)속마음, 배우자궁(配偶宮)혼자 있을 때, 가장 가까운 사람 앞에서의 나
시주(時柱)미래, 자녀, 결과, 만년, 문(門)어디로 가고, 무엇을 남기나

년주: 내가 고르지 않은 판

같은 해에 태어난 사람은 같은 년주를 받는다. 전쟁 뒤에 태어난 세대, 고도성장기에 사회에 나온 세대, 외환위기 때 졸업한 세대. 개인의 실력과 상관없이 시대가 먼저 판을 깐다.

년주를 나로 착각하면 "우리 때는"이 입버릇이 된다.

월주: 세상이 시킨 나

월주는 사회가 요구한 얼굴이다. 월지(月支)는 격(格)을 정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 사람이 어느 무대에서 쓰이도록 태어났는지가 여기서 정해진다.

그래서 월주의 옷은 가장 두껍다. 인생의 가장 긴 시간을 이 옷을 입고 보낸다. 그리고 가장 먼저 벗겨진다.

일지: 문 닫고 들어온 뒤의 나

일지는 퇴근해서 넥타이를 푼 뒤의 얼굴이다. 배우자궁이라서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도 여기 담긴다.

일지가 충(沖)이나 형(刑)을 맞으면 안쪽이 자주 흔들린다. 일지가 배우자 쪽 글자에 통째로 기대어 있으면, 관계 속에서 자기를 잃기 쉽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내 전부가 되면, 그 사람이 내 기분의 날씨를 정한다.

시주: 남들이 보는 나

시주는 결과이고, 자식이고, 남기는 것이다. 그리고 문이다.

남들은 대개 시주로 사람을 판단한다. 무엇을 이뤘나, 자식은 어떻게 됐나, 말년이 어떤가. 사람들이 보는 것은 열매다.

그런데 열매를 보고 나무를 다 안다고 할 수는 없다. 남들이 시주를 보고 내린 판정은 내 결과에 대한 판정이지 나에 대한 판정이 아니다.


3. 십신은 옷이다

십신(十神)은 각자 다른 역할을 입힌다. 옷이 나쁜 것은 아니다. 옷 없이 사는 사람은 없다. 다만 옷이 열 벌이면 생기는 착각도 열 가지다.

십신입혀 주는 옷이 옷을 나로 알 때 나오는 말
비견(比肩)내 몫, 내 방식, 동료 사이의 한 자리"내 방식 아니면 안 한다"
겁재(劫財)이긴 사람, 판을 먹는 사람"지면 끝이다"
식신(食神)재주, 손맛, 남을 먹이는 사람"해 주는 게 없으면 아무도 나를 안 찾는다"
상관(傷官)똑똑한 사람, 고치는 사람, 말하는 사람"인정 못 받으면 나는 없는 사람이다"
편재(偏財)판을 굴리는 사람, 크게 쓰는 사람"통 크게 못 쓰면 내가 아니다"
정재(正財)꼬박꼬박 버는 사람, 살림 책임자"못 벌면 나는 짐이다"
칠살(七殺)버티는 사람, 위기에 불려 나가는 사람"쓸모없어지면 버려진다"
정관(正官)직함, 자리, 체면"나는 ○○부장이다"
편인(偏印)남들이 모르는 것을 아는 사람"이건 나만 안다"
정인(正印)학벌, 자격, 소속의 이름"나는 어느 학교, 어느 집안 사람이다"

정관과 칠살은 둘 다 일간을 누르지만 입히는 옷이 다르다. 정관은 이름표를 달아 주고, 칠살은 짐을 지운다. 정관을 나로 알던 사람은 이름표를 뗄 때 무너지고, 칠살을 나로 알던 사람은 짐을 내려놓을 때 무너진다.

정인과 편인도 거의 반대 방향으로 간다. 정인은 남이 준 이름으로 나를 감싸고, 편인은 남이 모르는 것으로 나를 감싼다. 하나는 소속에 기대고, 하나는 소속 바깥에 선다.

사람이 입혀 준 옷

십신 중에는 사람이 입혀 준 옷도 있다.

남명(男命)에게 정재는 아내, 칠살은 아들, 정관은 딸이다. 여명(女命)에게 정관은 남편, 상관은 아들, 식신은 딸이다.

"누구 엄마", "누구 남편", "누구네 아버지". 이 이름으로 이십 년을 산 사람은, 아이가 독립하는 날 옷 한 벌을 통째로 잃는다. 그 옷의 자리에 있던 글자가 무엇이었는지에 따라 허전함의 모양도 다르다.


4. 옷이 벗겨지는 날 무너지는 판

어떤 사람은 퇴직하고 여행을 다니고, 어떤 사람은 퇴직하고 거실 소파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같은 옷을 벗어도 무너지는 판이 따로 있다.

정관이 판의 중심인데 일간이 약한 판

평생 자리로 자기를 증명했다. 회식 자리에서도, 동창회에서도 직함이 먼저 들어갔다.

일간이 약하니 정관을 감당하려고 자기를 다 바쳤고, 바친 만큼 정관과 자기가 붙어 버렸다. 자리가 사라지면 남은 것이 없다고 느낀다.

칠살이 일간을 치는 판

이 판의 사람은 쉬는 법을 모른다. 버티는 것이 곧 자기 값이었기 때문이다.

제어하는 글자 없이 칠살이 일간을 치면, 그 사람은 늘 불려 나가는 사람으로 산다. 아무도 부르지 않는 날이 오면 할 일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없는 것처럼 느낀다.

정재와 편재가 넘치는데 일간이 약한 판

財多身弱,富屋貧人

돈이 되는 글자가 많은데 일간이 그것을 감당할 힘이 없으면, 큰 집에 살아도 그 집을 지킬 힘이 없다는 뜻이다.

이 판의 사람은 돈과 살림에 끌려다니면서 "벌지 못하면 나는 값이 없다"를 몸에 새긴다. 정재가 많으면 매달 들어오는 돈에, 편재가 많으면 굴리는 판에 매인다. 월급이 끊기는 날, 통장보다 자기 값이 먼저 떨어진다.

정인이 넘치는 판, 편인이 식신을 먹는 판

정인이 넘치면 학벌과 이름과 체면 속에 산다. 받은 이름이 많으니 제 목소리로 말할 일이 적었다. 소속이 사라지면 자기를 소개할 문장이 없다.

편인이 식신을 치는 효신탈식(梟神奪食)은 다르다. 할 말을 삼키고, 지난 일을 되감는다. 밥맛이 떨어지고 잠이 얕아진다. 역할을 잃은 뒤 우울이 길어지는 판에 이 모양이 자주 보인다.

비견과 겁재에 뿌리가 없고, 일지가 충을 맞는 판

일간을 받쳐 줄 글자가 없고, 안쪽 자리까지 흔들린다. 기댈 데가 없으니 역할에 매달린다. 역할이 유일한 지지대였기 때문이다.

흐름이 막힌 판

글자들이 서로 이어지지 않고 막혀 있으면, 역할끼리 싸운다. 회사에서의 나와 집에서의 나가 서로 다른 사람처럼 군다. 그 사이를 오가느라 기운이 다 빠진다.

이런 판의 공통점은 하나다. 역할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역할 하나를 유일한 나로 붙들었다.


5. 퇴직은 월주의 시간이 끝나는 일

네 기둥은 인생의 시기도 나눠 맡는다. 책마다 나이를 끊는 자리는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년주는 어린 시절, 월주는 청년과 장년, 일주는 중년, 시주는 만년이다.

퇴직은 월주의 무대가 막을 내리는 일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월주의 옷을 입은 채 시주의 문 앞에 선다. 정장 차림으로 동네 공원에 나가는 것과 비슷하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데 본인만 어색하다.

일본에는 1980년대 말부터 정년퇴직한 남편을 "젖은 낙엽(濡れ落ち葉)"이라 부르는 말이 있다. 쓸어도 신발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낙엽처럼, 아내가 외출하려 하면 "나도 간다"며 따라붙는다는 뜻이다. 유행어 대상에도 올랐던 말이다. 평생 회사가 자기였던 사람이 회사를 잃고, 다음으로 붙들 것을 찾아 일지 쪽, 그러니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통째로 기대는 모습이다.

원국, 대운, 류년

원국은 기초를 깐다. 그 사람이 어떤 높이에서 시작하고, 어떤 옷을 주로 입게 되는지.

대운(大運)은 안에서 그 기초를 흔든다. 십 년 동안 기초가 단단해지는지, 무너지는지, 잠시 다른 모양으로 바뀌는지가 대운에서 정해진다.

류년(流年)은 바깥에서 온다. 누구에게나 오고, 한 해 동안은 원국과 대운보다 세게 사건을 만든다. 퇴직 통보, 인사 발령, 구조조정은 대개 류년이 가져온다. 정관이 충을 맞는 해, 상관이 정관을 치는 해, 월지가 흔들리는 해.

같은 류년을 맞아도 원국과 대운이 받쳐 주면 옷만 갈아입고, 받쳐 주지 못하면 옷과 함께 사람이 주저앉는다.


6. 옷과 입은 사람을 가르는 자리

"나는 역할이 있다"와 "나는 역할이다"는 한 글자 차이다. 앞의 사람은 옷을 갈아입고, 뒤의 사람은 옷이 벗겨지면 알몸이 된다.

판에서 이 차이를 가르는 자리는 대략 다섯 군데다.

일간의 뿌리

일간이 지지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 어떤 글자가 와서 끌어당겨도 제 모양을 지킨다. 정관이 와도 직함에 먹히지 않고, 정재가 와도 돈에 끌려가지 않는다. 뿌리가 약한 판은 이 뿌리를 운에서 받거나, 몸과 생활로 채워야 한다. 혼자 있는 시간, 몸을 쓰는 시간이 일간 쪽에 쌓인다.

일지의 안정

가장 가까운 사람은 나누는 상대이지 구명조끼가 아니다. 일지가 편안한 판은 혼자 있어도 견딘다. 혼자 있는 것을 견디는 사람이 둘이 있을 때도 덜 무겁다.

월주의 옷

월주의 옷은 성실하게 입어야 한다. 격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옷에는 반납일이 찍혀 있다. 부장은 물러나고, 권한은 넘어가고, 사람들의 평가는 바뀐다.

시주의 집

시주는 남들이 나를 보는 창이기도 하다. 그 창 너머에 직함만 걸려 있으면, 직함이 떨어진 뒤에는 빈 벽이다. 일, 작품, 가르침, 남기는 것. 직함 말고 걸어 둘 것이 있는 사람은 퇴직 뒤에도 창이 비지 않는다.

글자가 이어지는 판

글자가 막히지 않고 이어지면 사람에게 생기가 돈다. 갑목(甲木) 일간으로 예를 들면 이렇다.

계수(癸水) 정인이 일간을 받치고, 일간의 힘이 병화(丙火) 식신으로 나가고, 병화가 기토(己土) 정재를 낳고, 기토가 신금(辛金) 정관을 받치고, 신금이 다시 계수 정인을 낳는다.

배우고, 서고, 내보내고, 거두고, 책임지고, 다시 배우는 쪽으로 돈다. 이렇게 도는 판은 한 고리가 끊겨도 다른 고리로 넘어간다. 직함 하나가 빠져도 판 전체가 멈추지 않는다.


남들은 시주를 보고 당신을 판단한다. 무엇을 남겼는지, 어디에 앉아 있는지.

당신은 일간으로 산다.

퇴직 다음 날 아침 아홉 시, 출근할 곳이 없는 그 시간에 식탁에 앉아 있는 사람은 여덟 글자 가운데 누구인가.

♡ 좋아요 5
이 주제, 내 사주로

글로 익힌 원리를 본인 명판에 직접 적용한 정밀 진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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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答 4
  • 키네시스·

    감사합니다

  • 염화소녀_(구)남궁현자·

    쓸모없어지면 버려지는..✋️

    • sean·

      늘 쓸모있게 사셔야

  • 익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