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줄 알았는데, 다시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친구가 주말 내내 집에만 있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쉬는 날만 되면 어디를 가자고 하던 놈이다. 요즘은 연락해도 대답이 짧다.
“귀찮아. 나도 이제 늙었나 봐.”
너만 늙냐? 넌 혼자 늙는 타임트랙을 탄것이냐?
안다. 사실
나이보다 먼저 여러 일이 잘 안됐다. 준비하던 일이 엎어졌고, 수습하느라 한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처음에는 화를 냈다. 그다음에는 하소연을 했다. 불운을 이야기하고, 부정적 에너지 전달하고, 그러다가 요즘은 물어봐도 “뭐, 그렇지” 하고 끝난다. 해탈했다고 한다.
글쎄? 진짜일까?
내가 말했다.
“나가서 바람이라도 좀 쐬어.”
친구도 그 말은 안다. 알고 있다고 현관문이 저절로 열리는 것은 아니다.
신발을 신으려다가도 어디를 가야 할지 모르겠다. 사람 만나면 잘 지내냐고 물을 텐데, 잘 지내는 표정을 준비하는 것도 귀찮다.
배는 고프다.
배달 앱을 열었다가 닫는다. 최소 주문 금액을 맞추려면 혼자 먹을 것을 둘이 먹을 만큼 시켜야 한다. 게다가 배달비까지... 배보다 배꼽이 늘 크다. 그놈이 배꼽은 왜 이리 잘도 자라는 지 ?
혼자 조용히 있고 싶었는데 식비는 두 사람 몫이다.
결국 편의점에 갔다. 삼각김밥과 우유를 샀다.
대단한 외출은 아니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새로 생긴 빵집을 봤다. 언제 생겼지?
집에서 휴대폰으로 세상 돌아가는 일은 다 봤다. 집 앞에 빵집 생긴 것은 몰랐다.
다음 날에는 빵집에 가봤다.
맛이 괜찮았다.
알바하는 점원이 이뻤다. 자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돌아올 때는 다른 길로 왔다. 생각보다 날씨가 좋았다.
엎어진 일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밀린 걱정도 그대로다.
다만 오늘 하루를 전부 같은 걱정으로 채우지는 않았다.
쉬고 있다는 것과, 다시 움직일 이유가 생겼다는 것은 다를 수 있다.
오래 버티고 나면 기회가 보여도 기대보다 수습할 일이 먼저 떠오를 수 있다. 또 실패하면 어쩌나. 또 설명하고, 또 돈 쓰고, 또 버텨야 하나.
그런 사람에게 “마음만 먹으면 되지”라고 하면, 이제 마음도 못 먹는 사람이 된 기분이다.
처음부터 인생을 다시 세울 필요는 없겠다. 오늘 감당할 수 있는 일을 하나 해보고, 그다음은 다시 보는 것이다.
명리에서 식상의 움직이고 만들어내는 즐거움은 큰 성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손으로 밥을 차리고, 방 한쪽을 정리하고,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보는 작은 행동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인성으로 지난 일을 되짚는 것도 필요하지만, 생각할 때마다 실패했던 나만 다시 확인한다면 움직일 자리가 좁아진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실제로 확인할 작은 일도 필요하다.
그것이 누구에게나 같은 방식으로 통하는 해결책이라는 뜻은 아니다. 사정도 다르고 필요한 도움도 다르다. 친구에게 걷는다고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며칠 뒤 친구가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4천 보 걸었다.”
“잘했네.”
“너는 몇 보야?”
휴대폰을 확인했다. 나는 천 보도 안 됐다.
“오늘은 집에 있었어.”
“사람이 좀 움직여야지.”
며칠 전까지 내가 하던 말을 돌려받는다.
너는 빵집 알바 보러 간거잖아!!!
나도 근처에 빵집생기고, 알바가 이쁘면, 하루에 만보도 걸을수 있어 .
친구는 이제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들어왔다. 어떤 날은 더 걸었고, 어떤 날은 빵집만 다녀왔다.
그러다가 알바생이 다른 남자와 즐겁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그 다음 하루를 못 나갔다.
“역시 나는 오래 못 해.”
하루 쉬었는데 스스로의 인생 전체에 평가가 내려졌다.
“어제 걸었잖아. 내일 나가면 되지.”
말하면서 나도 좀 조심스러웠다. 다시 작은 일을 시험으로 만들고 있는 것 같아서.
어제보다 조금 움직였다는 기쁨이, 매일 어제를 이겨야 한다는 의무가 될 수도 있다.
그래도 친구의 말은 전보다 늘었다. 빵집은 어느 시간에 가야 종류가 많은지, 빵집 알바가 자기 보고 11번 웃었다던지,,, 빵집 알바가 남친이 없는 것 같다든지
나도 한번 같이 걸었다.
빵집에 가서 보니까, 이쁘긴 한데, 내 취향이기도 하더라
나도 이사갈까 생각을 했다.
오늘은 내가 훨씬 많이 걸었다.
친구에게 화면을 보냈다.
“오늘은 내가 이겼네.”
친구가 답하지 않는다.
밤 11시 40분에 메시지가 왔다.
친구의 걸음 수가 나보다 많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냐?”
걱정하는 답장을 보냈다.
짜식 무리하지 말라고,,,
그리고 휴대폰을 내려놓고 현관으로 갔다.
쓰레기봉투가 아직 다 차지는 않았다.
그래도 오늘 버리는 게 좋겠다.
버리고, 공원을 산책하면 좋겠다.
이길때 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