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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사주, 다른 삶 (2) — 태어난 곳이 팔자를 가른다

가난과 부에 환경이 중요하다는 글을 자유 게시판에 올리긴 했는데, 왜 사주는 같은데, 환경에 따라서 달라지냐?

내가 현대 사회에서는 가장 강력한 개운중 하나가 이민이라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나에게 맞는 환경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런 환경에 가야만 성취가 가능할 수 있는 사주들이 많다.

청나라 강희(康熙) 연간에 사이직(史貽直)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아버지는 강희자전(康熙字典) 편찬에 참여한 사이기(史夔)다. 사이직은 열여덟에 거인(擧人)이 되고, 곧이어 진사(進士)에 올랐다. 강희, 옹정, 건륭 삼조(三朝)를 거치며 문연각대학사 겸 이부상서(文淵閣大學士兼吏部尙書)까지 올라간 사람이다. 조선으로 치면 영의정 겸 이조판서쯤 된다.

같은 해, 같은 날, 같은 시에 태어난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 대장장이의 아들이다. 이 사람은 이십 년 넘게 괭이를 들고 쇠를 두드렸다. 벼슬은커녕 글을 배운 적도 없다.

사주가 같은데 한 쪽은 삼조의 재상이고 한 쪽은 대장장이다. 누가 봐도 말이 안 된다.

중국 명리학 전통에서 이 차이를 설명하는 방식이 있다. 태어난 장소의 기운이다. 사이직은 배 위에서 태어났다. 물 위에서 태어났으니 수기(水氣)를 얻었다. 그의 사주에는 화기(火氣)가 과했는데, 수기가 이것을 눌러주면서 균형이 잡혔다. 대장장이의 아들은 풀무 옆에서 태어났다. 이미 과한 화기에 풀무의 열기까지 더해졌다. 불균형이 더 심해진 것이다.

이 해석이 맞느냐 틀리느냐는 검증할 길이 없다. 200년도 더 전의 일이고, 두 사람의 정확한 사주도 전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수백 년간 명리학계에서 인용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사주가 같아도 출생지의 풍토와 환경이 다르면 같은 오행(五行)이 다른 결과를 낳는다는 원리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비슷한 사례가 하나 더 있다.

청나라 학자 전대흔(錢大昕, 1728-1804)에게 가복(家樸)이라는 오랜 하인이 있었다. 누군가 가복의 사주를 봐줬더니 "무관으로 삼품에 오를 팔자"라는 결과가 나왔다. 삼품이면 수사(水師, 수군) 제독이나 부도통 정도의 자리다. 하인에게 나올 사주가 아니다.

그런데 가복은 평생 하인으로 살았다. 삼품은커녕 말단 관직 하나 한 적이 없다.

이 이야기가 궁중 천문관청인 흠천감(欽天監)에 들어갔다. 흠천감에서 내놓은 답이 흥미롭다. "같은 사주라도 북방에서 태어나면 성취하고, 남방에서 태어나면 관직에 가까이만 할 뿐 본인이 차지하지는 못한다." 가복은 남방 출신이었다. 관직에 가까이만 했다는 건 학자의 하인으로 평생 관료 사회 옆에 있었다는 뜻이다. 삼품 관원은 아니지만, 삼품급 인사와 날마다 마주치는 자리에 있었던 셈이다.

흠천감의 해석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 북방이면 성취하고 남방이면 못 한다는 건 너무 단순하다. 하지만 이 단순한 말 속에 하나의 원리가 있다.

오행에는 방위가 있다. 북방은 수(水), 남방은 화(火), 동방은 목(木), 서방은 금(金), 중앙은 토(土)다. 사주에 수(水)가 필요한 사람이 북방에서 태어나면 부족한 기운을 환경에서 보충받는다. 같은 사주를 가지고 남방에서 태어나면 필요한 기운이 아니라 필요 없는 기운을 더 받는 셈이다.

물론 이것은 고대의 논리다. 지금은 사람이 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 태어난 곳이 중요하긴 하지만, 자라고 교육받고 일하는 곳이 더 중요해진 시대다. 그래서 현대 명리학에서는 태어난 곳만이 아니라 성장 환경 전체를 함께 본다.

두 사례를 나란히 놓으면 하나의 패턴이 보인다. 사이직과 대장장이 아들은 태어난 곳의 물리적 환경(물 위냐 불 옆이냐)이 갈렸고, 가복은 태어난 곳의 지리적 방위(북방이냐 남방이냐)가 갈렸다. 어느 쪽이든 사주 바깥의 공간적 조건이 같은 팔자를 다른 삶으로 이끌었다.

명리학에서 사주는 시간의 기록이다. 태어난 해, 달, 날, 시. 네 개의 시간 좌표가 사주를 이룬다. 그런데 시간만으로는 사람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없다. 같은 시간에 태어났어도 어디에서 태어났느냐가 다르면, 같은 오행이 다르게 작동한다.

옛사람들이 천시(天時), 지리(地利), 인화(人和) 세 가지를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주는 천시다. 천시만으로 사람 하나를 온전히 읽을 수 있다면 지리와 인화가 왜 필요하겠는가. 세 가지가 있다는 것 자체가 사주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고백이다.

그렇다고 사주가 쓸모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이직과 대장장이의 아들이 아무리 다르게 살았어도, 둘 다 화(火)가 강한 사주였다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한 쪽은 그 화기를 수기로 다스려 큰 인물이 되었고, 다른 한 쪽은 다스리지 못해 쇠를 두드리며 살았다. 큰 방향은 사주가 정했다. 도달한 높이는 환경이 정했다.

사주팔자(四柱八字)에 담기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을 알아야 사주팔자에 담긴 것도 제대로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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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答 1
  • 키네시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