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 앞에서는, 내가 값비싼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
사람은 값을 매기는 동물이다.
시장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람을 만날 때도 그렇다. 상대가 나를 어느 자리에 놓을지는 첫 몇 번의 만남에서 거의 정해진다. 그리고 한번 매겨진 값은 잘 안 오른다. 내려가기는 쉽다.
그래서 이성과 만날 때 가장 먼저 챙길 것은 잘 보이는 것이 아니다. 비싸 보이는 것이다.
이 말이 불편하게 들릴 수 있다. 사람을 물건처럼 값 매기느냐고. 그런데 상대가 나를 어떻게 대하느냐는 상대의 인품보다 상대가 나에게 매긴 값에 더 많이 좌우된다. 이것은 냉혹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사람 사이에서 늘 벌어지는 일이다.
먹는 사람 봐서 반찬을 내놓는다는 옛말이 있다. 사람은 상대를 보고 대접의 수준을 정한다. 인심이 좋은 사람도 그렇게 한다. 인심이 나쁜 사람은 더 노골적으로 그렇게 한다.
집안이 넉넉하지 않은 사람에게 이 이야기는 더 중요하다. 돈으로 값을 올릴 수 없다면 태도로 올려야 한다. 차분하고 흔들리지 않는 태도는 상대에게 한 가지 신호를 보낸다. 이 사람은 쉽게 다룰 수 없겠다는 신호다.
반대의 경우를 보자.
내가 나를 낮게 매기면, 그 값이 상대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이 사람은 그리 귀하지 않다는 신호가 나간다. 그러면 상대는 이 관계에 진지하게 투자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나중에 사귀게 되더라도, 처음에 매겨진 낮은 값이 관계 전체를 따라다닌다.
남녀는 감정의 시간표가 다르다.
남자는 대개 만나기 시작한 무렵을 감정의 꼭대기로 여긴다. 여자는 대개 감정이 갈수록 깊어져야 한다고 여긴다. 한쪽은 정점에서 시작해 내려오고, 다른 쪽은 밑에서 시작해 올라가려 한다. 두 선이 어긋나는 지점에서 대부분의 다툼이 생긴다.
이 시간표 차이를 알고 있으면, 처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보인다. 서두르지 않는 것이다.
상대의 품성을 확인하기 전에는 나를 다 보여주지 않는다. 상대의 조건이 아무리 좋아 보여도, 생김새가 내 취향에 딱 맞아도, 빨리 관계를 묶으려 하지 않는다. 내가 얼마나 마음이 있는지를 일찍 드러내지 않는다. 친구 사이의 거리를 유지하면 된다.
원하는 것이 없으면 굳어진다. 이 태도가 오히려 상대에게 이렇게 읽힌다. 이 사람은 세상을 좀 아는 사람이다. 사람으로서 무게가 있다. 그러면 상대는 나를 가볍게 대하지 못한다.
여기서 한 가지 실험을 소개한다.
1973년 사회심리학자 일레인 월스터(Elaine Walster)와 동료들은 사람들이 정말로 얻기 어려운 상대에게 더 끌리는지를 여러 차례 실험했다. 논문 제목이 그대로 밀당(Playing Hard to Get)이었다. 결과가 분명했다. 누구에게나 차가운 사람은 매력이 없었다. 누구에게나 쉽게 마음을 주는 사람도 매력이 낮았다.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데 나에게만은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었다.
즉 무조건 튕기는 것이 답은 아니다. 아무에게나 열려 있는 것도 답은 아니다. 나는 쉬운 사람이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문이 살짝 열려 있다. 이 조합이 가장 비싼 값을 받았다.
남자의 감정은 정복하고 싶은 마음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정복하고 싶은 마음은 상대가 마음속으로 매긴 값에 따라 오르고 내린다. 내가 명확한 기준점과 진행 상황을 보여주지 않으면, 상대는 이 관계를 확실하게 얻기 위해 투입을 늘린다.
이것은 감정 속의 작은 겨루기다. 관계의 방향을 해치지 않는다. 오히려 처음부터 상대의 마음속에 내가 더 값진 사람이라는 인상을 만들어 준다.
감정에서 가장 피해야 할 것은 조급함이다.
어떤 이성도 신처럼 여기지 말아야 한다. 이 사람을 놓치면 어쩌나 하는 긴장감은 나의 기운을 크게 흔든다. 그때 밖으로 드러나는 상태는 붕 떠 있다. 붕 뜬 느낌은 그대로 싼 느낌으로 이어진다.
오히려 가까운 듯 먼 듯한 상태가 상대의 정복욕을 건드린다. 이 사람에게는 다가오는 사람이 적지 않은가 보다 하는 짐작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꾸미는 것이든 실제로 속이 단단한 것이든, 밖으로 보이는 느낌이 안정되어 있고 담담하면, 남자는 오히려 더 빠져든다.
절제는 남녀 관계에서 가장 강한 무기다.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 오히려 긴장감을 만든다. 특히 여자에게 절제는 감정의 주도권과 같은 말이다.
물론 절제하려면 속에서 자기와 싸워야 한다. 이성을 많이 만나본 적이 없다면, 이 싸움은 의식적으로 훈련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단단한 느낌이 나오지 않는다.
명리학의 눈으로 보면 이 절제는 인성(印星)의 몫이다.
마음이 밖으로 쏟아져 나가는 기운은 식상(食傷)이다. 좋아하는 감정을 말로, 표정으로, 행동으로 곧바로 내보내는 것이 식상의 일이다. 인성은 그 식상을 붙잡는다. 인성이 식상을 다스리는 사람은 마음이 있어도 한 박자 늦게 꺼낸다. 인성이 없고 식상만 왕한 사람은 마음이 생기는 순간 이미 상대가 다 알고 있다.
어느 쪽이 더 값비싸 보이는지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다행히 이 절제는 타고난 인성이 약해도 훈련으로 어느 정도 만들어진다. 팔자가 안 도와주면 습관이 도와주는 수밖에 없다.
관계가 정해지기 전의 남녀는 사실 겨루기를 하고 있다. 누구의 수양이 더 깊은가를 가리는 겨루기다. 수양이 깊다는 것은 상대를 더 잘 애태우는 것이 아니다. 자기의 가치를 더 잘 세우는 것이다.
감정에서 가장 높은 등급의 마음가짐은 결국 이 세 가지다. 나를 계속 쌓아 나가는 것, 높은 격을 갖추는 것, 그리고 바라는 것이 없는 것.
나를 쌓는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니다. 생활을 건강하고 질서 있게 꾸리면 자기에 대한 인정이 올라간다. 깨끗한 밥을 먹는 것, 시간이 나면 여행을 가는 것, 몸을 움직이는 것, 피부를 돌보는 것, 나만의 사람들을 만드는 것. 모두 나를 기르는 구체적인 방법이다.
높은 격은 인식에 대한 투자에서 나온다. 태어난 집이 어떠했든, 사회에 나와 첫 월급을 받고 스스로 벌어 스스로 쓰게 된 그 순간부터 첫 번째로 할 일은 부모와 마음의 선을 긋는 것이다. 더 이상 결핍과 과거 속에 갇혀 있지 않는 것이다. 그 순간부터 나는 나만을 대표한다.
이 과정을 마치면 자연히 안으로 구하게 된다. 그때 바라는 것 없는 상태가 겉으로 드러난다. 내 기운이 밖으로 퍼져 나가고, 사람들이 저절로 다가온다.
도덕경 스물두 장에는 이런 말이 있다. 夫唯不爭 故天下莫能與之爭. 다투지 않기에 세상 누구도 그와 다툴 수 없다는 뜻이다. 얻으려고 달려드는 사람은 늘 다투는 자리에 서 있다. 달려들지 않는 사람은 다툴 상대가 없으니 이길 사람도 없다.
감정에서 고생하지 않고 눌리지 않으려면 사실 간단하다. 누구를 만나든 먼저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마음의 바탕을 만든다. 감정을 인생의 한 부분으로 두고, 큰 줄기는 일과 생활에 둔다.
더 많은 시간을 나의 가치를 세우는 데 쓴다. 보기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수입을 안정시킨다. 그러면 남녀의 시장에 나갔을 때 누구에게 잘 보이려 애쓸 필요가 없다. 가치를 내보이기만 하면 된다.
기억해 둘 것이 있다. 연애에 머리가 뜨거워지는 순간일수록 한 걸음 물러나야 한다. 그리고 그 순간은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신호다. 내가 만나본 사람이 너무 적어서 이렇게 매달리는 것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면 머리가 식는다. 연애에 머리가 뜨거워지는 것은 결국 정(情)의 관문을 아직 넘지 못했다는 뜻이다. 감정을 곁가지로 두고, 큰 줄기는 나를 잘 달래는 일에 둔다. 감정이 찾아오면 밀어내지 않되, 담담하게 둔다. 그런 상태로 이성을 알아가고 나를 알아간다.
감정은 끝까지 가 보면 결국 나를 비추어 보는 거울이다.
마지막으로, 값비싼 느낌을 만드는 구체적인 방법 세 가지를 적어 둔다. 사실 식상을 강화하는 것이긴 한데 , 무료글 답게 명리학적 설명을 안했다.
첫째, 겉모습에 투자한다.
옷차림, 화장, 피부, 자세. 여기에 돈과 시간을 쓴다. 남자든 여자든 사람은 눈으로 먼저 판단한다. 지금 스스로 보기에 못났다고 생각되면 첫 번째로 살을 뺀다. 그다음이 피부 관리와 자외선 차단, 머리 손질, 각질 정리다.
둘째, 보이는 공간을 가꾼다.
사진 찍는 습관이 없는 사람이라면, 몇 십만 원을 들여 사진가에게 사진 한 세트를 맡긴다. 자세를 못 잡아도 된다. 요즘은 대부분 화장과 자세 지도가 함께 들어 있다. 소셜 미디어의 프로필은 현대인의 두 번째 신분증이다. 이 자리를 잘 써야 한다. 잘 꾸려진 프로필과 나 사이의 거리는 촬영 경험 한 번과 적은 돈일 뿐이다.
셋째, 떳떳한 일이나 기술을 갖는다.
사람이 값져 보이는 것은 자기에게 만족하기 때문이다. 안정된 수입은 그 만족의 밑바닥을 받쳐 준다. 어느 때라도 경쟁에서 빠지지 않는다. 내가 먹고살 자리가 있으면 인생이 흔들리지 않는다.
다이아몬드가 왜 비싼지 아는가. 돌 자체가 귀해서가 아니다. 시장에 얼마나 내놓을지를 누군가가 조절했기 때문이다. 1947년 드비어스(De Beers)의 광고 문구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A Diamond is Forever)가 나온 뒤, 사람들은 그 돌을 다시는 팔지 않게 되었다. 공급이 묶이니 값이 유지되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아무 데나 다 내놓으면 아무리 좋은 것도 값이 내려간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나를 어느 시장에, 얼마의 값으로 내놓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