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를 물어보기 전에, 악연인지 보통의 마찰인지 가려내는 법
새로 만난 사람이 있다.
아니면 이미 꽤 오래 같이 지낸 사람이 있다.
어느 쪽이든 마음 한구석에서는 같은 질문이 돈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우리는 계속 가도 되는 관계인가.
그렇다고 만난 지 며칠 만에 "생년월일시 좀 알려줄래?" 하고 물을 수는 없다.
그건 좀 실례다. 대부분은 안 알려준다. 알려준다 해도, 그 순간부터 상대는 당신을 조금 다르게 본다.
그래서 사주를 손에 쥐기 전에, 살면서 몸으로 느끼는 것만으로 먼저 걸러볼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
오래 판을 보다 보면, 악연(惡緣)이라 부르는 관계에는 사주 이전에 이미 겉으로 드러나는 공통점이 있다. 그걸 순서대로 놓아본다.
첫째. 이 관계는 빛을 보지 못한다.
간단하다. 상대에게 이미 가정이 있거나, 둘이 나가서 놀 때 사람 눈을 피해야 하거나, 상대가 자기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당신을 소개하지 않는다.
연예인이나 정치인이라서 어쩔 수 없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루한(鹿晗) 이라는 연예인은 2017년 10월, 인기가 정점에 있을 때 자기 웨이보에 "여러분, 제 여자친구 관샤오퉁(關曉彤)을 소개합니다"라고 올렸다. 그날 웨이보 서버가 한동안 마비됐다. 팬들이 울고불고 난리가 났지만, 그는 그렇게 했다.
당신이 만나는 사람이 그 시절 루한보다 더 유명할 가능성은 낮다.
그러니 둘이서 아무리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도, 이 관계가 끝까지 떳떳하게 드러날 수 없다면 문제가 크다. 이유가 그럴듯할수록 더 크다.
둘째. 끌림은 유난히 강한데, 같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은 괴롭다.
분명히 이 사람이 좋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 다가가는 일이 곧 괴로움에 다가가는 일이 된다.
보통의 관계에도 괴로운 날은 있다. 차이는 비율이 아니라 방향이다. 같이 있을 때 편안함이 기본이고 괴로움이 예외인가, 아니면 괴로움이 기본이고 편안함이 예외인가.
후자라면, 좋아하는 감정의 크기는 판단 재료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 크기가 눈을 가린다.
셋째. 헤어지고 만나기를 반복한다.
싸우고 헤어지고, 헤어졌다가 다시 붙는다.
형식적으로는 연락을 끊고 갈라섰는데도, 꿈에서 그 사람이 자꾸 나온다.
한 번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그것이 패턴이 되었을 때다. 세 번째, 네 번째 재결합쯤 되면 둘 다 안다. 이번에도 끝이 아니라는 것을.
넷째. 서로의 어두운 면을 끌어낸다.
당신도 상대도 평소에는 멀쩡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 관계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예민해지고, 쉽게 폭발한다. 상대는 도망치거나 통제를 잃는다. 둘 다 사람이 바뀐 것처럼 군다.
주변 사람들이 "너 원래 그런 사람 아니잖아"라고 말하기 시작하면, 그 말을 흘려듣지 않는 편이 좋다.
다섯째. 한쪽이 오랫동안 낮은 자리에 있다.
늘 같은 쪽이 양보하고, 희생하고, 참는다.
그리고 그 사람의 마지노선이 조금씩 뒤로 밀린다. 예전에는 절대 안 된다고 했던 일이 이제는 그럴 수도 있는 일이 되어 있다.
이건 사랑이 깊어진 것이 아니라, 경계가 무너진 것이다. 둘은 겉으로 비슷해 보인다.
여섯째. 생활 전체가 서서히 비어 간다.
무슨 큰 사고가 터진 것은 아니다.
그런데 잠이 나빠지고, 기력이 떨어지고, 일과 돈과 사람 관계가 한 계단씩 내려간다.
악연은 대개 벼락처럼 오지 않는다. 물이 새듯이 온다. 그래서 알아채기 어렵고, 알아챘을 때는 이미 꽤 빠져 있다.
마지막으로, 마음속의 신호 하나.
"내가 전생에 이 사람한테 빚을 졌나."
이 생각이 저절로, 반복해서 떠오른다면 신호는 이미 충분히 켜진 것이다. 사람은 설명이 안 되는 괴로움 앞에서 전생을 찾는다. 이유를 현생에서 못 찾았다는 뜻이다.
여기서 많은 사람이 묻는다.
평생 매일같이 싸우면서 늙어가는 부부도 있는데, 그건 제 인연인가 악연인가.
싸움에는 두 종류가 있다.
진짜 문제를 놓고 싸우는 싸움이 있고, 감정과 집착을 놓고 싸우는 싸움이 있다.
구체적인 일 때문에 싸우고, 싸운 뒤에 이야기하고, 고치려 들고, 다만 말이 제대로 안 통했거나 처음 겪는 일이라 서툴렀던 것이라면, 이건 보통의 마찰이다. 문제를 풀고 나면 넘어간다.
악연의 싸움은 다르다. 같은 갈등이 영원히 돈다.
남자는 몇 번을 말해도 연락에 답을 안 한다. 여자는 몇 번을 다짐해도 같은 행동을 고치지 못한다. 싸우고 나서 바뀌는 것이 없고, 다음에 같은 일이 생기면 똑같이 싸운다.
그러니 싸우느냐 안 싸우느냐를 볼 것이 아니다. 오래 두고 결과를 보아야 한다. 싸운 뒤에 근본 문제가 풀렸는가. 이 관계 안에서 당신은 채워지고 있는가, 계속 깎이고 있는가.
또 하나의 현실이 있다.
평생 같은 문제로 싸우면서도 헤어지지 않는 중년 부부는 드물지 않다.
솔직히 말해 이것은 개인의 선택으로 분류할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이 함께 산다는 것, 심지어 반평생을 같이 보낸다는 것이 행복했다는 뜻은 아니다.
가장 많이 나오는 질문은 이것이다.
이미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있고, 아마 악연이 맞을 텐데, 그래도 놓기가 아깝다. 어떻게 해야 하나.
놓기 아까운 것은 사람의 기본값이다.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누가 쉽게 놓겠는가.
이유는 대개 둘 중 하나다.
하나는 이미 쏟아부은 시간과 감정이 너무 많다는 것. 다른 하나는 마음속에 풀리지 않은 매듭, 집착이 남아 있다는 것.
집착이 풀리지 않은 채로 무작정 차단하고 연락을 끊으면, 다시 연락하게 되기 쉽다. 끊었는데도 자꾸 되짚게 된다.
그러니 계속 쏟아부으라는 말은 아니다. 먼저 거리를 두고, 차분히 들여다볼 일이다. 내가 못 놓고 있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가. 그 사람인가, 그 사람과 있던 시절의 나인가, 아니면 내가 그 사람에게 걸었던 어떤 기대인가.
이 질문에 답이 나오면 그다음은 생각보다 간단해진다.
세 번째 질문.
악연인 줄 알면서도 기꺼이 겪겠다는 사람은 어떻게 봐야 하나.
그 선택은 존중한다. 높은 데 서서 훈계할 일이 아니다.
다만 한 가지는 스스로 분명히 해두어야 한다. 이 과정을 겪겠다고 내가 주도적으로 고른 것인가, 아니면 감정의 관성에 떠밀리면서 상대가 언젠가 변할 거라고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인가.
주도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런 뜻이다. 이 사람은 지금 이런 사람이고, 5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아마 이럴 것이며, 그 결과를 내가 감당할 수 있다.
그게 아니라 나중에는 좋아질 거라는 상상 위에 서 있다면, 거기서부터 조심해야 한다.
네 번째 질문.
악연의 끝은 헤어지거나 평생 얽히거나, 둘뿐인가.
현실에서는 대체로 두 갈래다.
하나는 마음의 매듭이 드러나고 풀려서, 이 관계가 가르쳐줄 것을 다 배우고 나면,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흩어지는 쪽. 조용히 막이 내린다.
다른 하나는 집착이 끝내 풀리지 않아서 끌어당기고 밀어내기를 반복하며 오래 소모되는 쪽.
인터넷에는 악연은 피할 수 없고 겪어내야만 한다는 말이 돈다. 그 말이 폭력이나 정신적 학대를 참으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다치게 하는 행동이 나오는 순간, 순서는 하나다. 자신을 지키고, 즉시 멀어진다.
여기까지가 사주 없이 몸으로 느끼는 부분이다. 이제 사주 쪽을 간단히 짚는다.
첫째, 두 사람의 사주를 나란히 놓았을 때.
일주(日柱)끼리 천간이 극(剋)하고 지지가 충(冲)하거나, 형(刑)이나 해(害)로 부딪히면 기운이 세게 맞부딪힌다. 그 충돌이 강한 끌림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꼭 짚어둘 것이 있다. 천극지충(天剋地冲)이 곧 악연은 아니다. 부딪혀서 날아가는 글자가 기신(忌神)이라면 오히려 서로를 살리는 짝이 된다. 풀리지 않은 채 계속 서로를 갉아먹는 경우만 얽힌 인연이다.
둘째, 각자의 원국(原局).
여명(女命)에서 칠살(七殺)이 기신일 때. 남명(男命)에서 재성(財星)이 섞여 있고 편재(偏財)가 기신일 때.
칠살과 편재는 오르내림이 큰 인연을 나타낸다. 이것이 기신이 되면 그 인연은 괴로움과 얽힘으로 온다. 같은 글자라도 희신이면 강렬하되 살리는 인연이고, 기신이면 강렬하되 깎아먹는 인연이다.
셋째, 대운(大運)과 유년(流年).
특정한 대운, 특정한 해에 들어서면 이런 종류의 인연이 건드려져 밖으로 나온다. 원국에 씨앗이 있어도 운이 건드리지 않으면 잠잠하고, 건드리는 해에 사람이 나타난다.
판단의 순서가 중요하다.
먼저 현실 속의 나를 느끼고, 그다음에 사주를 참고한다. 거꾸로 하면 안 된다.
사주가 이렇게 나왔다는 결론을 들고, 나를 계속 깎아먹는 현실을 억지로 버티는 일. 그것이 가장 흔한 실수다.
악연을 건넌다는 것은 무작정 참고 희생하는 일이 아니다. 이 관계를 거울 삼아, 아직 아물지 않은 내 매듭이 어디 있는지 보는 일이다. 집착이 끝나면 인연은 알아서 막을 내린다.
사주를 물어볼 수 있는 사이가 되기 전에, 위의 일곱 가지를 먼저 세어 볼 일이다. 몇 개나 겹치는지는 당신만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