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한 글자를 고치자 과거에 급제한 선비 이야기
사주가 아무리 크게 타고났어도, 이름에 걸린 글자 하나 때문에 평생 그 그릇을 못 채우는 경우가 있다.
남송(南宋) 때 절강 태주(台州) 땅에 왕거경(王居敬)이라는 선비가 있었다. 어느 해 그가 구주(衢州)로 가서, 그 고장에서 이름난 유추간(劉樞干)이라는 사람에게 자기 운명을 물었다.
왕거경은 이름도 대지 않고 생년월일만 내밀었다. 그런데 유추간이 사주를 짚어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은 크게 귀해질 사주다. 다만 이름에 앞 왕조가 꺼리던 글자가 하나 들어 있어 안타깝다. 지금은 세상이 바뀌었다 해도, 끝내 그 이름이 위에까지 가 닿을 명은 아니다."
왕거경은 깜짝 놀랐다. 자기 이름은 밝히지도 않았는데, 이름에 문제가 있다고 콕 집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자기 이름을 곰곰이 뜯어보다가, 마침내 걸리는 대목을 찾아냈다.
송나라를 세운 태조 조광윤(趙匡胤)에게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그 이름이 조경(趙敬)이다. 나라를 세운 뒤 황실에서는 조상의 함자를 함부로 못 쓰게 했다. 그래서 북송 내내 敬이라는 글자는 피휘(避諱), 곧 꺼려서 피하는 글자였다.
이게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성씨까지 바꾼 집안이 있었다.
북송의 이름난 재상 문언박(文彦博)이 그 경우다. 이 집안은 본래 성이 敬이었다. 그런데 敬 자가 자꾸 황실의 금기에 걸리니, 그 글자를 아예 쪼개고 다듬어서 文으로 성을 갈았다. 재상을 낸 명문가조차 조상 대대로 이 한 글자를 피해 성을 바꿔 온 것이다.
왕거경의 이름 한가운데 박힌 敬이 바로 그 글자였다.
물론 그가 산 때는 남송이다. 조경은 이미 이백 년 전 사람이고, 민간에서 이 글자를 쓴다고 잡혀갈 세상은 아니었다.
문제는 과거(科擧)였다. 그것도 진사(進士) 시험이다.
진사는 마지막 관문을 황제가 친히 주관해 뽑는 자리다. 황제 앞에 답안이 올라가는 시험에서, 답안지 맨 위에 조상님 함자가 박힌 이름을 그대로 두면 어떻게 되겠는가. 문장이 아무리 빼어나도 그 이름은 거기서 걸린다. 뽑힐 리가 없다.
그래서 왕거경은 이름을 고쳤다. 敬을 빼고 安을 넣어, 왕거안(王居安)으로 바꾼 것이다.
그러고는 다시 유추간을 찾아갔다.
이번에는 유추간이 그를 보자마자 반색하며 맞았다.
"이름이 아주 좋아졌다. 거의 장원(狀元) 감이다. 다만 그대의 벼슬자리는 물가에 있을 것이고, 그 자리에서 십 년을 묵게 될 것이다."
왕거안은 속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거의 장원이라면 첫째 아니면 둘째, 셋째다. 이른바 삼정갑(三鼎甲), 곧 과거의 최상위 세 자리 안에 든다는 말인데, 그런 사람이 한자리에서 십 년을 파묻힌다는 게 앞뒤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험이 시작되자 예언은 하나씩 맞아떨어졌다.
먼저 성시(省試), 곧 수도에서 치르는 시험에서 그는 둘째로 붙었다.
전시(殿試)를 앞두고 준비하던 어느 날, 한 인부가 그를 찾아왔다. 인부는 대뜸 축하부터 건넸다.
"제가 꿈을 꿨는데, 나리께서 셋째 장원이 되시더군요."
왕거안이 무슨 소리냐고 묻자, 인부가 이렇게 답했다.
"꿈에 어떤 사람이 나리가 지금 계신 태학(太學) 문 앞에 서서, 올해 태학에서 장원이 난다고 하지 뭡니까. 누구냐고 물었더니, 성시에서 둘째로 붙은 사람이 전시에서 셋째가 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축하드리러 왔습니다."
셋째는 사실 장원이 아니라 탐화(探花)라 부른다. 첫째가 장원, 둘째가 방안(榜眼), 셋째가 탐화다. 하지만 배우지 못한 인부가 그 세밀한 이름을 알 리 없으니, 상위권이면 그저 다 장원이라 불렀다.
전시가 끝나고 방이 붙었다. 왕거안은 정말로 셋째, 탐화로 급제했다.
두 번의 시험에서 한 번은 둘째, 한 번은 셋째. 첫자리에 겨우 한 걸음 못 미쳤을 뿐, 사실상 꼭대기에 붙은 셈이다. 이름을 고치기 전, 敬 한 글자에 걸려 아예 뽑히지도 못할 뻔했던 사람의 성적표다.
여기까지가 이름 이야기다. 그런데 유추간의 예언에는 뒷부분이 더 있었다. 물가의 벼슬, 그리고 십 년이다.
급제한 왕거안은 휘주(徽州)로 발령이 났다. 신안강(新安江)이 흐르는 물가였다. 물가에 벼슬한다던 말이 그대로 맞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부임하자마자 부친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벼슬을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가 삼 년 상을 치러야 했다. 삼 년을 겨우 마치자, 이번에는 모친이 돌아가셨다. 다시 삼 년이다.
이렇게 집안에 연달아 초상이 겹치는 바람에, 본래 삼 년마다 자리를 옮겨 승진해야 할 사람이 꼬박 십 년을 물가에 묶여 있었다. 그러고서야 그는 겨우 절강으로 자리를 옮겨 왔다.
유추간이 처음에 짚었던 그대로였다. 이 이름은 시험을 아주 잘 보게 하되, 벼슬길은 십 년을 나아가지 못하고 묵는다.
이 이야기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두 가지다.
하나는 같은 사람, 같은 사주가 이름 한 글자로 낙방과 급제를 오갔다는 점이다. 타고난 그릇이 아무리 커도, 그 그릇이 세상에 닿는 길목에는 이름이 있고, 그 시대가 꺼리는 금기가 있다. 사주만으로 다 되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다른 하나는, 이름을 고쳐 얻은 급제조차 벼슬길의 십 년 묵음까지는 지우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름은 시험의 문을 열어 줬지만, 부모의 상을 연이어 치르는 세월까지 바꾸지는 못했다.
크게 타고난 명이 이름 두 글자를 사이에 두고 이렇게 갈렸다는 옛이야기를, 믿고 안 믿고는 읽는 사람의 몫이다. 다만 자기 이름 석 자를 한 번쯤 다시 들여다보게 만드는 이야기인 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