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바뀌는 사람은 대개 아는 사람부터 정리한다
운이 풀리기 시작한 사람에게는 이상한 공통점이 하나 있다.
어느 순간부터 아는 사람을 정리한다는 것이다. 인맥을 넓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걸러낸다. 모임에 덜 나가고, 연락처가 늘기는커녕 줄어든다.
보통은 반대로 생각한다. 아는 사람이 많을수록 든든하고, 익숙한 얼굴이 곁에 많을수록 안심이 된다고. 그런데 그 안심이 지나치면, 익숙한 무리는 어느새 사람을 가두는 울타리가 된다.
채근담에 이런 말이 있다. 시끌벅적한 자리에서 냉정한 눈 하나를 살려두면 쓸데없이 애태울 일이 훨씬 줄어든다고. 사람들 틈에 파묻혀 있을수록, 정작 봐야 할 것을 못 본다는 이야기다.
나이가 들며 배워야 할 것은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아니다. 어떤 사람을 남기고 어떤 사람을 흘려보낼 것이냐다. 그런데 이걸 못 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너무 편안한 무리는 사람을 먹여 살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주저앉힌다.
맹자에 이런 대목이 있다. 生於憂患 死於安樂. 근심과 걱정 속에서 살아나고, 편안함과 즐거움 속에서 죽는다는 말이다.
익숙한 사람들 사이는 편하다. 서로 속을 다 아니 굳이 꾸밀 것도 없고, 챙겨주는 맛도 있다. 문제는 이 편안함이 딱 미지근한 물이라는 데 있다. 개구리를 서서히 삶는다는 바로 그 물이다.
한 무리에 오래 있으면 사람은 습관처럼 안정을 찾는다. 다 같은 밥을 먹고, 다 같은 말을 하고, 다 비슷한 하루를 산다. 뭔가 남다른 걸 해보려 하면 곁에서 "다 너 위해서 하는 말인데" 하며 도로 제자리에 앉힌다. 세상에서 제일 반박하기 어려운 말이 이거다.
그 무리는 당신의 게으름은 키우고, 당신의 가능성은 가둔다.
옛날 산 밑에 대대로 농사만 짓던 마을이 있었다.
어느 해, 멀리서 커다란 매 한 마리가 날아와 마을 어귀 늙은 회화나무에 내려앉았다. 이렇게 큰 새를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누구는 곡식을 가져다 뿌려주고, 누구는 물을 떠다 놓았다.
매는 처음엔 입도 안 댔다. 그러다 배가 고파 견딜 수 없게 되자 몇 알 쪼아 먹었다. 하루하루 지나며 매는 사람이 먹여주는 삶에 익숙해졌고, 더는 날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도 매가 있는 게 당연해져서 돌아가며 먹이를 날랐다.
겨울이 왔다. 곡식 들고 오는 사람이 하나둘 줄었다. 배가 고파진 매는 먹이를 찾아 날아오르려 했다.
그런데 날개를 몇 번 퍼덕이고 나서야 알았다. 나는 법을 이미 잊어버렸다는 것을.
주파수가 맞는 사람들과 있으면 편하긴 하다. 다만 너무 편한 자리는 사람의 날개를 가장 빠르게 무디게 만든다.
인맥이라 믿었던 게 실은 발목을 잡는 끈이고, 기댈 언덕이라 믿었던 게 실은 짊어진 짐인 경우가 많다. 세월은 고요히 좋은데, 바깥세상은 이미 뒤집혔다는 걸 모른 채로.
사람 많은 곳일수록 소리가 뒤섞인다.
무리 속에 오래 있으면 맞춰주는 데 익숙해지고, 남이 붙여준 이름표에 익숙해지고, 어느새 원래 자기 모습을 잊는다. 내가 좋아한다고 믿었던 그 북적임은 실은 혼자 남는 게 두려운 마음일 수 있고, 내가 좇는다고 믿었던 성공은 실은 남의 눈에 맞춘 기준일 수 있다.
장자는 홀로 오가는 사람을 독유(獨有)라 했고, 그런 사람을 가장 귀하다고 보았다. 진짜 자기에게 가까워지는 일은 대개 스스로 택한 고독에서 시작된다.
철학자이자 미학자였던 리쩌허우가 그런 사람이었다. 여든의 청년들에게 사상의 창고라 불리던 미의 역정을 쓴 사람이다.
그는 스스로 네 가지 "고요히"를 지켰다. 고요히 쓰고, 고요히 읽고, 고요히 살고, 고요히 죽는다. 평생 무슨 계획이니 프로젝트니 과제니 하는 것을 신고한 적이 없고, 책을 내거나 글을 발표하기 전에 누구에게도 미리 말하지 않았다. 도와주는 조수 하나 두지 않고 혼자 썼다.
생일도 챙기지 않았다. 언론 인터뷰 요청은 피할 수 있으면 피했다. 자기 원칙도 정해두었다. 밥은 먹어도 회의는 안 하고, 앉아서 이야기는 나눠도 강연은 안 하고, 인터뷰와 사진은 되지만 텔레비전 출연은 안 한다.
성격이 외골수라느니 세상 물정 모른다느니 하는 말을 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사람 무리에서 비켜선 고독 속에서, 그는 몇 세대에 걸쳐 읽히는 책들을 써냈다.
사람은 혼자 있을 때에야 제 안의 소리를 듣는다. 무리에 어울리는 것도 능력이지만, 혼자 있는 것은 지혜다. 남들 틈에서 존재감을 찾을 필요가 없어질 때, 사람은 비로소 자기 삶을 산다.
물은 흘러야 썩지 않고, 문지도리는 자주 돌아야 좀이 슬지 않는다.
사람도 같다. 늘 익숙한 자리에서, 같은 사람을 만나, 같은 일을 하면, 하루하루가 고인 물이 된다. 한 마지기 밭만 지키면 늘 같은 작물만 거둔다. 땅을 넓혀 나가야 다른 풍경을 만난다.
당나라 시인 진자앙은 젊을 때 고향 젊은이들과 어울려 술 마시고 노는 게 일이었다. 동네 사람들 눈에는 배운 것 없이 노는 자제였다. 뒤늦게 정신을 차려 몇 해를 파고들어 경서와 역사를 두루 읽고 글솜씨가 늘었다.
그런데 자기 글을 들고 고향 어른들에게 보여주면 돌아오는 건 건성으로 끄덕이는 고갯짓과 입에 발린 칭찬뿐이었다. 진자앙은 알았다. 이 익숙한 눈길 속에 계속 머물면 결코 뒤집을 수 없다는 것을.
그는 고향을 떠나 장안으로 갔다. 처음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고, 글을 몇 번 올려도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러다 그 유명한 일을 벌인다. 어느 날 저잣거리에서 천만 전을 부르는 호금(胡琴)을 큰돈을 들여 덜컥 사버린다. 사람들이 몰려들자 내일 내 집에서 연주를 들려주겠다고 청한다.
이튿날 사람들이 모이자, 진자앙은 호금을 치켜들고 이렇게 말한다. 나는 글 백 축을 지고 촉 땅에서 장안까지 왔으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악기 따위나 다루는 일은 천한 악공의 몫인데 어찌 여기에 마음을 쓰겠는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천만 전짜리 악기를 그 자리에서 박살냈다. 그러고는 미리 준비한 자기 시문을 좌중에 나눠 주었다. 글이 사람들 손을 타고 도는 데 하루도 걸리지 않았고, 장안이 그의 이름으로 들썩였다.
그때 안락한 무리를 모질게 떠나지 않았다면, 훗날의 그 구절도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도 옛사람을 보지 못하고, 뒤로도 올 사람을 보지 못한다던 그 한 줄 말이다.
사람을 가두는 것은 때로 능력의 부족이 아니다. 익숙한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마음이다. 잃을까 두렵고, 비웃음당할까 두렵고, 가보지 않은 길이 두려워 발이 안 떨어진다.
다만 크게 벌린다는 게 과거를 부정하는 일은 아니다. 편한 자리에서 한 발 나와 낯선 것을 안아보는 일일 뿐이다. 작은 데서 시작해 겁 없이 시도하고, 실수도 감수하고, 얻고 잃음을 다 받아들인 뒤 계속 앞으로 가는 것. 용기를 내 한 걸음 내디디면, 세상이 알아서 길을 비켜준다.
옛말에 나무는 옮기면 죽고 사람은 옮기면 산다고 했다.
이 길에서 한 구간 함께 걸어주는 사람은 인연이고, 평생 곁을 지키는 사람은 복이다. 그러나 대다수는 한 구간만 같이 걷는다.
떠날 때가 되면 떠나고, 작별할 때가 되면 작별하면 된다. 익숙한 사람들을 잃을까 겁낼 것 없다. 진짜 당신 몫인 인연은 쫓아도 안 가고, 당신 몫이 아닌 무리는 붙잡아도 남지 않는다.
당신은 오늘, 누구의 눈치를 제일 많이 보며 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