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신, 외우지 말고 한 줄기로 읽어라
십신(十神)을 자꾸 까먹는 데는 이유가 있다. 외우니까 그렇다.
비견 겁재 식신 상관 정재 편재 정관 칠살 정인 편인. 이걸 단어 열 개로 외우면 사흘이면 절반은 날아간다.
그런데 십신은 사실 한 줄기로 이어진 이야기다. 앞 글자에서 다음 글자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그 흐름만 잡으면 외울 게 없다.
같은 십신이라도 멀찍이서 보면 커다란 덩어리로 보이고, 바짝 다가가면 구체적인 사람이나 물건으로 보인다. 큰 모양은 그 십신의 성질이고, 작은 모양은 그 성질이 현실에서 걸친 옷이다. 둘을 같이 보면 십신이 입체로 살아난다.
이제 나부터 시작한다.
사주 한가운데에는 일간(日干), 곧 나 자신이 있다. 나와 같은 종류의 기운이 비겁(比劫)이다.
큰 모양으로 보면 비겁은 온 세상 사람이다. 나와 처지가 비슷한 모든 이. 그중에서 비견(比肩)은 나와 닮은 사람이다. 의리로 뭉친다. 겁재(劫財)는 나와 다른 사람이다. 이익으로 뭉친다.
작은 모양으로 좁히면 더 또렷해진다. 비견은 대체로 같은 편, 겁재는 묘하게 내 주머니를 노리는 쪽이다. 대놓고 빼앗든, 동업해서 나눠 갖든, 결과적으로 내 돈이 줄어드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좋자고 시작한 동업이 어쩐지 내 통장만 가벼워지더라는 이야기. 그 자리에 겁재가 앉아 있는 경우가 많다.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 식상(食傷)이다.
큰 모양은 나의 출력물 전부다. 재능, 말솜씨, 기획, 글, 손끝에서 나오는 제품, 투자 아이디어까지. 머릿속에 있던 게 바깥으로 나오면 그게 다 식상이다.
작은 모양으로 보면 내가 길러내고 부리는 것들이다. 내가 키운 부하 직원, 손이 닿는 반려동물, 시간을 쏟는 취미. 다 식상 자리에 든다.
명리학 공부 자체도 우리에겐 식상이다. 식상이 강한 사람이 사주에 빠져드는 데는 까닭이 있다. 식상은 사람을 골몰하게 만들되, 일간을 정면으로 치지는 않는다. 머리를 아프게 하는 정도지 사람을 부수지는 않는다. 그래서 식상이 무거운 사람이 명리를 파고들기 좋다.
식상이 바깥으로 나왔으면 어딘가에 결과물이 남아야 한다. 그 결과물이 바로 재(財)다.
식상이 재로 이어지면 쓸모가 생긴다. 재능이 돈으로 바뀐다는 뜻이다. 식상만 있고 재가 없으면 재미는 있는데 돈은 안 되는 사람이 된다.
상관(傷官)만 잔뜩 강하고 재성(財星)이 없는 사람을 보라. 매일 하늘에 시비 걸고 땅에 시비 걸고 옆 사람한테까지 시비를 건다. 그러다 재운(財運)이 들어오면 돈도 벌고 성격까지 둥글어진다. 출력할 데가 생겼기 때문이다.
재(財)는 세상의 공용 화폐다.
큰 모양으로 넓히면 돈만이 아니다. 값을 매길 수 있는 모든 것, 사회에서 흐르는 자원, 그 자원을 누가 얼마나 갖느냐 하는 배분 전체가 재다.
자원이 도는 곳에는 반드시 계급이 생긴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위와 아래가 갈린다.
위아래가 갈리면 누군가는 그 질서를 관리해야 한다. 여기서 관(官)이 나온다.
관에는 두 얼굴이 있다. 규칙을 정해 놓고 그대로 다스리는 쪽이 정관(正官)이다. 정해진 규칙을 멋대로 바꿔가며 힘으로 누르는 쪽이 칠살(七殺), 곧 편관(偏官)이다.
칠살은 폭력이다. 규칙대로 안 한다. 자기가 규칙을 만든다.
여기서 신강(身强)과 신약(身弱)이 갈린다.
일간이 약하면 칠살에 눌린다. 남이 정한 규칙 아래 끌려다닌다. 일간이 세면 칠살이 두렵지 않다. 규칙에 눌리기는커녕 내가 규칙을 정하고 마음대로 바꾼다.
그래서 신강한 사람은 칠살을 반기고, 신약한 사람은 칠살을 무서워한다. 아무리 형편없는 규칙이라도 수시로 바뀌는 것보다는 낫다. 룰이 그나마 있어야 사람이 산다.
이걸 현실로 옮기면 위험의 크기 이야기가 된다.
칠살은 고위험이다. 주식, 벤처, 보험, 영업, 창업, 작은 회사. 흔들리지만 한 번 잡으면 크게 먹는 자리다.
정관은 중저위험이다. 은행 우량주, 안정된 직장, 큰 조직, 이른바 철밥통. 크게 안 흔들리는 대신 크게 튀지도 않는다.
옛 명리에는 유살선론살(有殺先論殺)이라는 말이 있다. 사주에 칠살이 있으면 다른 것보다 칠살부터 본다는 뜻이다.
옛사람은 위험을 버틸 여력이 없었다. 파가현령(破家縣令)에 멸문지부(滅門知府)라 했다. 고을 원님 하나가 집안을 거덜 내고, 지부 하나가 가문을 멸할 수 있던 시절이다. 거기에 아무 데서나 약탈하는 병졸과 산적까지 있었다.
관아는 쥐어짜도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병졸과 산적은 진짜로 사람을 죽였다. 그러니 칠살, 곧 통제 불능의 위험부터 살피는 게 당연했다.
위험과 불확실성, 멋대로 휘두르는 힘이 있으면 사람은 그 반대편을 찾게 된다. 막아줄 무언가, 확실한 무언가. 그것이 인성(印星)이다.
인성의 큰 모양은 비호와 안전감이다.
비를 막아주는 지붕, 추위를 막아주는 옷, 머리 위의 우산. 다 인성이다. 부동산 문서, 자동차 등록증, 자격증과 졸업장처럼 나를 보증해주는 단단한 종이도 인성 자리에 든다.
다만 안전이 지나치면 속박이 된다. 지붕이 너무 두꺼우면 햇빛까지 막힌다.
인성은 오행에서 식상을 누른다. 나의 생각과 표현을 눌러버린다는 뜻이다. 그래서 인성이 너무 많으면 할 말이 있어도 입이 안 떨어지고, 하고 싶은 게 있어도 발이 안 떨어진다. 인다불자유(印多不自由), 인성이 많으면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이 여기서 나온다.
인성도 둘로 갈린다.
정인(正印)은 주류가 인정하는 쪽이다. 남도 알아주고 나도 인정한다. 편인(偏印)은 비주류다. 작은 동아리 안에서만 알아주고, 본인만 인정하는 경우도 흔하다. 알아주는 이가 드물다 보니 그 자부심이 단단한 자기 확신으로 굳기도 한다.
인성이 자리를 잘 잡은 사람은 타고나길 비호와 인정과 안전을 끼고 산다. 그래서 멈추지 않고 꾸준히 나아간다. 이름이 쌓이기 쉽고, 학창 시절에 공부로 이름을 얻거나 시험을 잘 보는 일도 많다.
이제 한 바퀴를 돌았으니 거꾸로도 보자.
재(財)는 인(印)을 누른다. 재극인(財剋印)이다.
현실의 이익이 들어오면 보수적인 안전감과 허울뿐인 명예가 깨진다. 그러면 눌려 있던 식상이 풀려난다. 사람이 자유로워지고 본래 성질을 되찾는다.
그래서 살인(殺印), 상재(傷財), 인비(印比) 같은 짝이 사주에 자주 보인다. 다 이 흐름 위에 놓인 자리들이다.
사람은 무리 지어 사는 동물이다. 약할수록 더 그렇다.
인성과 비겁이 함께 오면 곁에 동무가 있고 그 위를 인성이 감싸준다. 인성은 본디 누군가를 끌어안고 편드는 자리다.
여기까지 따라왔으면 이미 절반은 끝났다.
비겁에서 출발해 식상으로 나오고, 식상이 재로 맺히고, 재가 관을 부르고, 관이 인으로 이어지고, 인이 다시 비겁을 감싼다. 십신은 이렇게 한 줄기로 돌고 돈다.
외울 것은 없다. 어떤 글자든 그 성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느 쪽으로 변해가는지만 짚으면, 그 자리의 내력이 저절로 따라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