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리학은 어떻게 태어났나
이것은 검증된 이론이나 역사가 아님
내가 추측한 것임. 물론 완전히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고,
이런게 아닐까 싶은 것
명리학은 통계다 뭐다 다양한 이야기가 많아서 쓴 글
명리학은 하늘을 관측해서 세운 학문도 아니고, 오랜 세월 쌓은 통계도 아니다.
사람들은 이름이 붙은 달력 위에서, 같은 글자가 돌아올 때마다 비슷한 일이 생긴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 반복을 설명하려고 단순한 도리가 규칙을 대량으로 찍어 냈다. 그리고 오랜 관찰이 그 규칙들 가운데 남길 것과 버릴 것을 골랐다. 명리학은 이 세 겹이 포개져서 태어났다.
출발점은 질문 하나였다.
왜 이때마다 이런 일이 생기지?
차례
- 숫자였다면 아무도 몰랐다
- 날짜의 길흉이 먼저였다
- 도리가 규칙을 찍어 냈다
- 같은 원을 서양도 그렸다
- 한 사람 안에서 되풀이되는 일
- 흔한 반복과 드문 반복
- 명리를 몰랐던 사람의 일기
- 고르는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상나라 사람들은 날을 숫자로 세지 않았다.
갑자, 을축, 병인. 예순 개의 이름을 차례로 붙여 나갔다. 갑골에는 이 예순 이름을 줄지어 새긴 날짜표가 남아 있다.
숫자에는 얼굴이 없다. 서른일곱째 날과 서른여덟째 날은 아무것도 떠올리게 하지 않는다.
이름에는 얼굴이 있다. 얼굴이 있는 것은 다시 돌아왔을 때 알아볼 수 있다. 지난번 이 글자가 왔을 때도 그랬는데, 하는 생각은 이름이 붙은 눈금 위에서만 생긴다.
서양에도 같은 일이 있었다.
일주일의 요일은 행성의 이름을 달고 있다. 토요일(Saturday)은 토성, 일요일은 해, 월요일은 달이다. 이름이 붙은 순환이니 사람들은 거기에 성격을 붙였다. 월요일은 무겁고, 13일의 금요일은 불길하다.
날짜가 숫자뿐이었다면 이런 이야기는 붙을 자리가 없었다.
간지는 요일보다 훨씬 패턴을 찾기 좋은 눈금이었다.
열 개짜리 천간(天干)과 열두 개짜리 지지(地支)가 맞물려 돌기 때문에, 돌아오는 간격이 여러 겹으로 생긴다.
| 단위 | 돌아오는 간격 | 여든 해 사는 동안 돌아오는 횟수 |
|---|---|---|
| 천간 | 10년 | 여덟 번 |
| 지지 | 12년 | 예닐곱 번 |
| 육십갑자 한 짝 | 60년 | 한두 번 |
한 사람이 일생 동안 알아챌 수 있을 만큼 자주 돌아오고, 우연이라고 넘기기 어려울 만큼 드물게 돌아온다.
사람이 반복을 알아채기에 이보다 좋은 간격은 많지 않다.
사람들이 처음 찾은 반복은 사람의 것이 아니라 날짜의 것이었다.
진나라 무덤에서 나온 대나무 죽간 일서(日書)는 쉽게 말해 날짜별 길흉 달력이다. 어느 간지 날에 장가를 들면 안 되고, 어느 날에 길을 나서면 탈이 난다는 규칙이 빼곡하다.
같은 일서 안에 생자(生子) 편이 있다. 아이가 태어난 날의 간지로 그 아이의 앞날을 짚는 대목이다.
날짜의 반복이 사람의 반복으로 옮겨 가기 시작한 첫 흔적이다. 명리학이 생기기 천 년도 더 전의 일이다.
그 사이에 간지는 하늘에 묶였다.
달은 절기(節氣)와 북두칠성 자루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정했고, 연(年)은 목성으로 셌다. 목성이 하늘을 한 바퀴 도는 데 12년쯤 걸리니, 그 자리를 따라 열두 지지를 매겼다.
그런데 목성의 실제 주기는 약 11.86년이었다. 80여 년마다 한 칸씩 어긋났다.
그러자 사람들은 목성을 버리고 12년의 리듬을 지켰다. 후한 원화 2년(서기 85년) 이후로 연의 간지는 실제 목성과 상관없이 기계적으로 돌아간다.
하늘보다 사람이 겪어 온 리듬을 더 믿었다는 뜻이다.
열두 지지를 시계처럼 원 위에 놓으면, 지지끼리의 관계 대부분이 원 위의 간격으로 정리된다.
| 관계 | 원 위의 간격 | 예 |
|---|---|---|
| 충(沖) | 정반대 | 자오(子午), 묘유(卯酉) |
| 삼합(三合) | 정삼각형 | 신자진(申子辰), 인오술(寅午戌) |
| 방합(方合) | 붙어 있는 세 칸, 같은 계절 | 인묘진(寅卯辰)은 봄 |
| 파(破) | 직각 | 자유(子酉), 묘오(卯午), 축진(丑辰) |
| 형(刑) | 대부분 직각, 일부 정반대 | 인사(寅巳), 축술(丑戌), 자묘(子卯) |
| 해(害) | 간격이 일정하지 않음 | 자미(子未), 인사(寅巳), 묘진(卯辰) |
충은 원을 둘로, 삼합은 셋으로, 파는 넷으로 나눈 자리다. 원을 나누는 단순한 셈에서 규칙이 곧바로 나온다.
육합(六合)은 하늘에서 왔다.
수나라 소길(蕭吉)이 엮은 오행대의(五行大義)는 육합의 근거를 이렇게 적었다.
正月,日月會於諏訾之次。諏訾,亥也。一名豕韋。斗建在寅,故寅與亥合。
정월에는 해와 달이 추자(諏訾)라는 자리에서 만나는데, 그 자리가 해(亥)다. 그리고 정월에 북두칠성의 자루는 인(寅)을 가리킨다. 그래서 인과 해가 합한다는 말이다.
달마다 북두칠성 자루가 가리키는 방향과 해와 달이 만나는 자리를 짝지은 것이 육합이다. 관찰한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늘의 두 눈금을 맞춰 본 일이다.
형은 두 규칙을 포개서 나왔다.
같은 책은 형을 이렇게 설명한다.
水流向末,故申子辰,水之位,刑在東方。申刑在寅,子刑在卯,辰自刑。
물은 끝을 향해 흘러가니, 수(水)의 자리인 신자진의 형은 동방에 있다. 그래서 신은 인을, 자는 묘를 형하고, 진은 스스로를 형한다는 뜻이다.
동방은 인묘진, 곧 봄의 방합이다. 삼합 세 글자를 방합 세 글자 위에 하나씩 포개니 형이 나왔다. 누군가가 인년과 신년이 겹칠 때마다 다치는 사람을 세어서 찾아낸 규칙이 아니다.
해도 같은 방식이다. 자(子)는 축(丑)과 육합을 이루는데, 미(未)가 축을 충한다. 내 합의 짝을 깨뜨리는 글자이니 자와 미가 해가 된다. 육합과 충을 포갠 결과다.
납음오행(納音五行)도 같은 계열이다. 음률의 원리로 육십갑자 짝마다 오행을 매긴 것이니, 관찰보다 도리에서 찍어 낸 체계다. 당나라 무렵 태어난 해를 중심으로 사람을 보던 시절에는 이 납음이 주로 쓰였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도리는 규칙을 공짜로 만든다. 원을 한 번 더 나누거나 규칙 두 개를 한 번 더 포개면 새 규칙이 하나 생긴다.
관찰은 비싸다. 규칙 하나를 확인하려면 한 사람의 일생을 다 지켜봐야 한다.
그래서 명리학의 역사에서 규칙은 언제나 관찰보다 많았다.
서양 점성술도 열두 칸 원 위에서 각도로 관계를 읽는다. 각도마다 붙인 뜻을 지지의 관계와 나란히 놓으면 다음과 같다.
| 간격 | 지지 관계 | 서양 점성술 | 공통된 뜻 |
|---|---|---|---|
| 정반대 | 충 | 오포지션(opposition) | 정면 대립 |
| 정삼각형 | 삼합 | 트라인(trine) | 조화, 한 무리 |
| 직각 | 형, 파 | 스퀘어(square) | 긴장, 마찰 |
| 다섯 칸 | 원진(怨嗔) | 퀸컹스(quincunx) | 풀리지 않는 껄끄러움 |
맞물리는 쪽은 서로를 베낀 결과라기보다, 원을 나누는 같은 셈에서 같은 결론에 닿은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줄의 원진은 한국의 규칙이다.
자미(子未), 축오(丑午), 인유(寅酉), 묘신(卯申), 진해(辰亥), 사술(巳戌)의 여섯 쌍을 고정해 두고 궁합에서 쓴다. 한국에서는 띠 동물의 미움으로 풀어서 전한다. 쥐는 양의 뿔 난 머리를 꺼리고, 소는 말이 밭을 갈지 않는다고 미워하는 식이다. 그래서 원진이 든 부부는 까닭 없이 서로 미워한다고 본다.
중국 정통 명리에서 지지 관계로 다루는 것은 해다. 중국 쪽에도 원진(元辰)이라는 이름이 있지만, 그것은 태어난 해의 지지와 음양, 남녀에 따라 자리가 달라지는 신살(神煞)이라 짝이 고정된 관계가 아니다.
원진의 여섯 쌍은 모두 원 위에서 다섯 칸 떨어져 있다. 서양에서 이 간격을 퀸컹스라고 부르고, 이어지지 않은 관계라는 뜻으로 인컨정트(inconjunct)라고도 한다.
왜 하필 이 간격이 껄끄러운가. 열두 칸을 나누는 기준이 동서양 모두 세 가지이기 때문이다.
| 기준 | 지지 | 서양 점성술 |
|---|---|---|
| 음양 | 한 칸씩 번갈아 바뀜 | 남성궁과 여성궁 |
| 무리 | 삼합 네 무리 | 불, 흙, 공기, 물 네 원소 |
| 자리 | 생지(生地), 왕지(旺地), 고지(庫地) | 활동궁, 고정궁, 변통궁 |
옛 중국의 열두 자리(十二次)를 황도 열두 궁에 맞춰 보면, 인은 궁수자리, 오는 사자자리, 술은 양자리다. 셋 다 서양에서도 불의 별자리다. 인오술 화국(火局)과 원소까지 같다.
고정궁의 네 별자리는 정확히 자오묘유(子午卯酉)에 떨어진다. 기운이 가장 왕성하고 단단한 자리라는 뜻도 같다.
다만 나머지 두 자리는 뜻이 뒤집힌다. 서양의 활동궁은 계절의 시작인데 그 자리에 떨어지는 진술축미(辰戌丑未)는 계절의 끝이다. 서양의 변통궁은 계절의 끝인데 그 자리에 떨어지는 인신사해(寅申巳亥)는 계절의 시작이다.
이 세 기준을 놓고 보면 충과 원진의 차이가 드러난다.
자(子)와 오(午)는 정반대에 서 있지만 둘 다 양이고 둘 다 왕지다. 같은 종류가 마주 보고 서 있으니 정면으로 부딪친다.
자(子)와 미(未)는 음양이 다르고, 삼합 무리가 다르고, 왕지와 고지로 자리도 다르다. 마주 선 축 위에 있지도 않다.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는다.
합칠 고리도 없고, 정면으로 붙을 축도 없다. 그래서 터지지도 풀리지도 않는 껄끄러움이 된다. 한국의 원진과 서양의 퀸컹스는 각자 따로 생겼는데, 같은 원 위에서 같은 자리를 짚었다.
도리가 찍어 낸 규칙들 가운데 무엇이 힘을 얻었는가. 그것은 사람들이 실제로 겪은 반복이 정했다.
그 반복은 세 가지 모양으로 나타난다.
| 반복의 모양 | 흔히 듣는 말 | 거기서 자라난 이론 |
|---|---|---|
| 시간 속의 반복 | 축년(丑年)만 오면 일이 꼬인다, 어떤 글자의 날이면 꼭 싸운다 | 류년(流年)과 일진의 충합, 기신(忌神) |
| 사람 사이의 반복 | 사귄 사람이 모두 같은 일간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삼합이 생긴다 | 궁합 |
| 시간에 따라 바뀌는 사람 사이 | 어느 대운(大運)에는 이런 사람에게, 지금은 저런 사람에게 끌린다 | 대운에 따라 달라지는 궁합 |
이 관찰들은 모두 한 사람 안에서 되풀이되는 일을 본 것이다.
축년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온다. 그해에 무너지는 사람도 있고 일어서는 사람도 있다. 사람을 모아 평균을 내면 둘이 서로 지워져서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한 사람만 따라가면 다르다. 이 사람은 축년마다 일이 터진다는 것이 보인다. 옛사람이 볼 수 있었던 것을 평균은 놓친다.
그리고 한 사람의 일생에서 반복을 확인할 수 있는 단위는 낱글자뿐이다.
같은 지지는 예닐곱 번 돌아오지만, 같은 육십갑자 짝은 한두 번밖에 오지 않는다. 짝 단위의 반복은 한 사람의 일생으로는 확인할 수 없다.
충, 합, 형이 모두 글자 대 글자의 규칙인 까닭이 여기 있다. 관찰할 수 있는 범위가 곧 규칙의 크기가 되었다.
관찰을 이론으로 바꾸는 데는 한 걸음이 더 필요했다.
이 사람은 축년마다 나쁘다는 것은 관찰이다. 이 사람의 일지가 미(未)라서 축미충(丑未沖)이 일어난다, 또는 이 사람에게 토(土)가 기신이라서 그렇다는 것은 이론이다.
관찰은 그 사람 한 명에게만 해당한다. 다른 사람에게 옮겨 쓰려면 축이라는 글자 자체가 아니라, 축과 그 사람 원국의 관계로 바꿔 적어야 한다. 그 일을 해 준 것이 음양오행과 충합의 문법이었다.
세 번째 반복은 그 문법이 시간과 함께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 준다.
어떤 남자는 한 대운 동안 끌리고 사귄 여자가 모두 계수(癸水) 일주였는데, 대운이 바뀐 뒤로는 목화(木火)가 많은 사람에게 끌린다고 한다.
계수는 차고 젖은 쪽이고, 목화는 따뜻하고 마른 쪽이다. 끌림이 거의 정반대로 돌아섰다. 앞의 대운이 원국을 덥고 마르게 만들었다면 물이 필요했을 것이고, 지금의 대운이 원국을 차갑고 축축하게 만든다면 온기가 필요할 것이다. 조후(調候)의 필요가 대운에 따라 뒤집힌 것으로 읽을 수 있다.
이 반복이 나이 서른이나 마흔 같은 둥근 해가 아니라 그 사람의 대운이 바뀌는 해 근처에서 일어났다면, 나이가 들어 취향이 변했다는 말로는 설명이 모자란다.
반복을 찾았다고 다 같은 무게는 아니다.
온라인에서 한 20대 여성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지금까지 다섯 번 사귄 남자가 모두 을목(乙木) 일간이었다고. 고르고 사귄 것이 아니라 나중에 사주를 열어 보니 그랬다고 한다.
모르고 골랐다는 점이 중요하다. 알고 고르면 선택이 결과를 만들지만, 모르고 골랐다면 그런 문제가 빠진다.
일간은 열 가지이고 날마다 차례로 돌아가니 거의 고르게 나온다. 첫 번째 남자는 아무 일간이어도 되고, 나머지 네 명이 모두 같은 일간일 가능성은 만 번에 한 번꼴이다. 한 사람의 삶에서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반복이다.
다만 수백만 명이 자기 연애사를 사주로 열어 보면, 만 번에 한 번짜리 일을 겪은 사람도 수백 명 나온다. 그리고 그런 사람만 이야기를 꺼낸다. 아무 반복도 없었던 사람은 글을 쓰지 않는다.
삼합은 사정이 다르다.
지지 네 개씩 가진 두 사람의 사주를 무작위로 20만 쌍 만들어 세어 보면 결과가 이렇다.
| 두 사람 사이에 생기는 관계 | 무작위로 짝지었을 때 |
|---|---|
| 둘이 글자를 보태서 삼합을 완성 | 열 쌍 중 세 쌍 |
| 삼합 또는 반합(半合) | 열 쌍 중 여덟 쌍 |
| 삼합, 반합, 육합, 충 가운데 하나라도 | 백 쌍 중 아흔여덟 쌍 |
만나는 사람 넷이 모두 나와 삼합을 완성했다면 백사십 번에 한 번꼴이다. 드물긴 하지만 을목 다섯보다는 훨씬 흔하다.
반합까지 넣으면 넷이 모두 걸릴 가능성이 열 번에 네 번을 넘는다. 아무 뜻이 없다. 무엇이든 하나만 걸리면 된다고 하면 거의 모든 두 사람이 해당한다.
반복이 수없이 발견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지지 사이의 관계 규칙이 아주 촘촘하기 때문이다. 합, 충, 형, 파, 해에 암합(暗合)까지, 그물코가 이렇게 많으면 어떤 두 사주 사이에도 뭔가는 걸린다.
그래서 보는 눈이 갈리는 곳은 반복을 찾느냐가 아니다. 찾은 반복이 원래 흔한 것인지 드문 것인지를 가려내느냐다. 만 번에 한 번과 열 번에 여덟 번을 같은 무게로 놓으면 풀이가 무너진다.
반복을 가장 깨끗하게 볼 수 있는 기록은, 명리를 전혀 모르던 사람이 그날그날 적은 일기다. 나중에 기억을 짜 맞춘 것이 아니고, 무엇을 기대하며 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17세기 런던의 해군 관리 새뮤얼 피프스(Samuel Pepys)가 그런 기록을 남겼다. 1660년부터 1669년까지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쓴 일기에는, 아내 엘리자베스와 다툰 날도 꼬박꼬박 적혀 있다.
이 일기를 간지로 옮길 때 먼저 걸리는 것이 달력이다.
당시 영국은 율리우스력을 썼고, 그 무렵 율리우스력의 날짜는 지금 쓰는 그레고리력보다 열흘 늦다. 일기에 적힌 날짜를 그대로 넣으면 일진이 열흘 밀린다.
열흘이 밀려도 천간은 그대로다. 열흘이면 천간이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에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지는 엉뚱한 글자가 된다. 반드시 그레고리력으로 바꾼 뒤에 일진을 뽑아야 한다.
새해가 3월 25일에 시작하던 영국의 옛 관습도 걸린다. 1월에서 3월 사이의 날짜는 앞 해와 뒤 해 가운데 어디에 속하는지 가려서, 류년은 입춘에서 끊어야 한다.
피프스는 율리우스력 1633년 2월 23일, 그레고리력으로 3월 5일에 런던에서 태어났다.
| 년 | 월 | 일 | 시 |
|---|---|---|---|
| 계유(癸酉) | 갑인(甲寅) 또는 을묘(乙卯) | 무오(戊午) | 알려지지 않음 |
그날 오전에 경칩이 들어와서, 태어난 시각에 따라 월주가 갈린다. 태어난 시는 기록에 없다.
류년별로 부부싸움의 빈도를 세어 보면, 계묘년(1663년)이 가장 잦다. 네 날에 한 번꼴이다.
무토(戊土) 일간에게 계수는 정재(正財), 곧 아내의 별이다. 계묘년에는 그 계수가 류년 천간으로 들어와 일간과 무계합(戊癸合)을 이룬다. 류년 지지 묘(卯)는 년지 유(酉)를 충한다.
그해 4월 25일, 엘리자베스는 춤 선생 펨블턴(Pembleton)에게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5월과 6월 내내 피프스는 이 춤 선생을 두고 질투에 시달렸고, 일기에는 그 때문에 벌어진 다툼이 이어진다.
을사년(1665년)에는 런던에 큰 역병이 돌았다. 피프스는 그해 여름 아내를 템스강 하류의 울위치(Woolwich)로 피신시켰다. 다툼은 아홉 날에 한 번꼴로 줄었다.
병오년(1666년)에는 런던 대화재가 났고, 다툼은 열두 날에 한 번꼴이었다.
류년은 바깥에서 들어오는 힘이라 삶의 조건 자체를 바꾼다. 역병은 부부를 떼어 놓았고, 함께 있는 날이 줄면 싸울 날도 준다. 류년의 성질을 깨끗하게 보려면 아내와 함께 지낸 날만 놓고 세어야 한다.
날 단위로 내려가면 더 그럴듯한 숫자가 나온다.
계묘년의 축일(丑日)은 서른 날 가운데 열사흘이 싸운 날이었다. 그해 평균대로라면 여드레쯤이어야 한다. 축은 피프스의 일지 오(午)와 해를 이루는 글자다. 한국식으로 보면 원진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다.
한 해에는 천간 열 칸과 지지 열두 칸, 모두 스물두 칸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높은 칸을 골라 보면, 싸움을 아무렇게나 흩뿌려 놓아도 그만큼 높은 칸이 꽤 자주 나온다. 다섯 해 모두 우연만으로 열 번에 네 번에서 여덟 번은 그 정도 칸이 생긴다.
칸을 다 열어 놓고 가장 높은 것을 고르는 방식으로는 반복을 증명할 수 없다.
길은 하나다. 집계를 열어 보기 전에 원국에서 먼저 예측해 두는 것이다.
일지 오를 충하는 자일(子日), 해를 이루는 축일, 파를 이루는 묘일, 그리고 년지 유를 충하는 묘일. 이 몇 칸만 미리 정해 두고, 다섯 해를 합쳐서 나머지 날들과 한 번에 견준다.
한 칸에 서른 날이던 표본이 백오십 날 넘게 늘어나고, 여러 칸을 뒤지느라 생기는 착시도 사라진다. 여기서 차이가 남는다면, 그것은 우연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제대로 막아 낸 반복이 된다.
옛 관찰자들 가운데 뛰어난 사람들은 아마 이 일을 몸으로 했을 것이다. 축년인데도 이 사람은 왜 무사했는가를 물었을 것이고, 그 물음이 합으로 충을 푸는 해충(解沖)이나 통관(通關) 같은 예외 규칙을 낳았을 것이다. 명리 고전에 예외 규칙이 그렇게 많은 것도, 맞지 않은 사례를 버리지 않고 설명하려 한 흔적으로 읽힌다.
규칙이 쌓이는 속도와 골라내는 속도는 늘 달랐다.
| 단계 | 무엇이 일어났나 |
|---|---|
| 이름 붙은 눈금 | 상나라의 육십갑자 날짜 |
| 날짜의 길흉 | 진나라 일서, 태어난 날로 아이의 앞날을 짚음 |
| 하늘과 리듬 | 목성을 버리고 12년 리듬을 지킴 |
| 도리의 규칙 | 충, 삼합, 방합, 파, 육합, 형, 해, 납음 |
| 사람의 관찰 | 한 사람 안에서 되풀이되는 일 |
| 골라내기 | 자평의 전환, 신살 정리, 지역마다 다른 무게 |
송나라 서자평(徐子平) 무렵에 판이 한 번 크게 바뀐다. 태어난 해를 중심으로 보던 방식이 날의 천간, 곧 일간(日干)을 중심으로 보는 방식으로 넘어갔다. 납음 대신 정오행(正五行)과 십신(十神)이 들어섰다.
이 전환은 쌓인 사례가 시켜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이론의 전환이었다. 그런데 살아남은 것은 관찰을 더 잘 견딘 쪽이었다.
그 뒤로도 규칙은 계속 늘었다. 명나라 삼명통회(三命通會)에는 신살이 겹겹이 쌓였다. 청나라 자평진전(子平眞詮)은 신살은 격국(格局)과 상관이 없다는 편(論星辰無關格局)을 따로 두고 그것들을 쳐냈다.
같은 규칙이라도 땅에 따라 무게가 달라졌다. 원진은 한국 궁합에서 가장 무거운 규칙 가운데 하나가 되었고, 중국에서는 해가 그 자리를 맡았다.
지금 쓰는 규칙들 가운데 어느 것은 사람의 반복을 견뎌서 남았고, 어느 것은 도리가 찍어 낸 뒤 아무도 지우지 않아서 남았다. 둘은 겉모습만으로는 구별되지 않는다.
손에 든 규칙은 어느 쪽인가.
그 답은 아마 명리를 몰랐던 사람들이 그날그날 적어 둔 기록 속에 아직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