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리학 하수와 고수의 차이점?
명리를 배운 사람은 많다. 명리를 제대로 읽는 사람은 그만큼 많지 않다.
하수와 중수, 고수와 대가를 가르는 것이 아는 기법의 개수라면 이야기가 편하겠는데, 그렇지가 않다. 왕쇠(旺衰)도 격국(格局)도 신살(神煞)도 여덟 글자를 서로 다른 각도에서 찍어보는 도구다. 도구를 많이 가진 사람이 잘 읽는다면 공구상 주인이 명리 대가여야 한다. 어차피 명리학 3대 고전 "적천수" "궁통보감" "자평진전" , 여기에 "삼명통회", "연해자평", "명리정종" 이런것 몇개 읽으면, 사실 필요한 이론은 다 얻은 셈이다. 그런데,,,, 실력차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나온다.
읽기는 도구들이 서로 다른 답을 내놓을 때 시작된다. 그러니까 실력은 무엇을 아느냐가 아니라, 아는 것들끼리 싸울 때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느냐로 갈린다.
하수의 연장통은 대개 정해져 있다.
신살(神煞)과 십이운성(十二運星), 왕쇠, 십신(十神), 그리고 조후(調候). 이 다섯으로 명국(命局) 한 장을 다 읽는다.
읽는 방식도 정해져 있다. 신살 표를 펴서 도화(桃花)가 있으면 이성 문제, 역마(驛馬)가 있으면 이동, 공망(空亡)이 있으면 비었다고 한다. 십이운성을 보고 목욕이니 절이니 하는 자리를 짚어 인생의 굴곡을 붙인다. 왕쇠로 신강 신약을 가르고, 십신으로 육친(六親)과 성격을 붙이고, 조후로 여름이면 수(水), 겨울이면 화(火)를 얹는다.
다섯 개가 각각 따로 돈다는 것이 문제다. 서로 이어지지 않으니, 다섯이 우연히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명국은 그럭저럭 읽고, 엇갈리는 명국 앞에서는 멈춘다.
멈추면 섞는다. 왕쇠로는 힘이 넘치는데 조후로는 급한 데가 있다면, 힘은 좋은데 좀 차가운 편이라는 식으로 반씩 나눠 말한다. 이 말은 틀리지 않는다. 대신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어느 쪽으로도 안 갔으니 어느 쪽으로도 틀릴 수가 없다.
그런데 하수의 말이 제일 세다. 북쪽으로 가지 마라, 이 사람은 돈을 못 감당한다, 이 혼사는 안 된다. 확신은 아는 양을 따라 늘지 않는다. 무엇을 모르는지 아직 모르는 동안이 제일 겁이 없다.
이때는 자신감이 넘치고, 자기가 젤 사주 잘 본다는 이야기도 얼굴 붉어지지 않고 이야기하고, 내가 18년, 30년 연구했는데, 그렇게 이야기 한다. (사실 30년 연구하고도 하수인분들 많이 보인다.)
사실 그래서 하수인것이기도 하지만,
하수 자리에 오래 머무는 이유가 있는 거지
중수는 연장통에 두 가지를 더 넣는다.
격국(格局)과 상법(象法 물상론)이다.
격국이 들어오면서 처음으로 판이라는 개념이 생긴다. 이 명국이 어떤 짜임을 갖고 있고 그 짜임이 이루어졌는지 깨졌는지를 따지기 시작한다. 신살 몇 개를 나열하는 것과는 무게가 다르다.
상법이 들어오면서 말에 그림이 붙는다. 갑목(甲木)은 곧게 자라는 나무, 계수(癸水)는 이슬비, 이런 식으로 글자마다 모습이 생긴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때부터 재미있어진다. 표를 읽어주던 사람이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하니까. 뭐 이 사주는 어떤 모습을 가졌고, 그 상법으로 막 직업도 맞추고 뭐 이런 저런것을 맞추면, 절대 고수처럼 보인다.
때론 래정법도 많이 쓴다. 방문자가 왜 방문했나 이야기하기 전에, 이야기하는 것.
그래서 중수는 사주 한 장 놓고 한 시간을 채울 수 있다. 앞뒤가 붙고 사슬이 생긴다. 감탄도 여기서 제일 많이 나온다.
중수에게는 걱정이 하나 붙어 다닌다. 뭘 하나 빠뜨렸으면 어쩌나 하는 것이다. 뭐 하나 제대로 못보면, 판정이 통째로 어긋난다는 걸 이제 알기 때문에 생기는 걱정이다. 밤에 덮었던 노트를 다시 펴게 만드는 종류다.
그래서 계속 배운다. 책을 한 권 더 사고, 새로운 유파나 이론이 나왔다면 보고, 여기저기 유명한 사람에게 사주 보러도 가보고, 표를 하나 더 만든다. 연장통은 커지는데 판정은 그대로다. 빠짐없이 갖추면 답이 나온다고 믿는 동안에는 계속 그렇다.
중수의 상법에는 이(理)가 안 붙어 있다. 그림은 있는데 그 그림이 어디에 걸릴지가 없다. 그래서 올해 일에 변동이 있겠다까지는 가는데, 승진인지 좌천인지 옮기는 건지 밀려나는 건지는 자신있게 말하지만, 사실 속으론 찍는다.
중수는 병을 고치려 든다. 무거운 게 있으면 눌러야 하고 모자란 게 있으면 채워야 한다. 그런데 약에는 부작용이 따른다. 하나 막으려다 숨구멍까지 막는 일이 여기서 제일 자주 일어난다. 병명 붙이는 데는 익숙하고 뒷일에는 아직 익숙하지 않다.
또 하나. 판이 바뀐 다음에도 어제 잡은 답을 손에서 못 놓는다. 대운(大運)이 들어와 판의 주인이 바뀌면 반가운 글자와 껄끄러운 글자가 통째로 자리를 맞바꾼다. 바뀌었다는 계산까지는 한다. 쥐고 있던 걸 놓는 데서 걸린다.
고수는 연장을 더 넣지 않는다. 차례를 세운다.
무엇을 맨 앞에 두고 무엇을 뒤로 미룰지가 정해져 있다. 뒤로 밀린 것들은 아예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고수의 말은 짧다. 중수가 삼십 분 말할 것을 세 마디로 끝낸다. 듣는 쪽에서는 성의가 없다고 느끼기도 한다. 그 세 마디가 삼십 분보다 무거웠다는 건 대개 한참 뒤에 안다.
고수는 좋으냐 나쁘냐를 먼저 묻지 않는다. 이 판이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부터 본다. 기울기가 잡히면 좋고 나쁨은 그 안에서 알아서 자리를 찾는다. 차례를 거꾸로 세우면 성격은 맞는데 일이 안 맞는 말이 나온다. 흔히 보는 어긋남이 이것이다.
기법 하나를 더 배우는 일과 차례 하나를 바로잡는 일은 무게가 다르다. 막히는 이유가 배운 게 모자라서인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다.
대가는 감당을 묻는다.
고수까지는 이 운이 좋은가 나쁜가를 묻는다. 대가는 그 질문을 접는다. 이 사람이 이걸 버티는가를 묻는다.
버티는 사람에게는 큰물도 논에 물 대는 일이 되고, 못 버티는 사람은 도랑물에 발이 젖어 넘어진다. 같은 운이 같은 일을 만들지 않는다는 걸 여기서는 당연하게 여긴다.
대가는 모순을 풀려고 하지 않는다. 못 푼다고 말한다. 두 길이 같이 열려 있으면 하나를 잡고 나머지는 버리라고 한다. 둘 다 살리는 절충안을 궁리하지 않는다. 절충으로 해결되는 판은 애초에 대가를 찾아오지 않는다.
흉신(凶神)을 보는 눈도 다르다. 무조건 없앨 것으로 보지 않는다. 흠이 없는 판은 흠도 없고 높이도 없다. 물론 하수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긴 한다.
無殺不貴,無財不富
칠살(七殺) 없이는 귀하게 되지 못하고 재성(財星) 없이는 부유해지지 못한다는 말이다. 거친 글자가 좋다는 뜻이 아니라, 거친 글자를 눌러 부릴 수 있는 판만 크게 올라간다는 뜻이다.
이건 하수부터 고수까지 다 이야기한다. 단지 제대로 알고 이야기하는 거냐? 아니냐 차이가 있는 것
그리고 대가는 말수가 줄고 조심스러워진다. 실력이 늘수록 겁이 는다. 하수는 안 보여서 단정하고 대가는 보여서 망설인다.
대가 위에 한 자리가 더 있다.
여기 있는 사람은 아무 기법도 안 쓰는 것처럼 보인다. 실은 다 쓴다. 꺼내 보이지 않을 뿐이다.
용어가 한마디도 안 나올수도 있고, 뭔가 답답하다.
화끈한 맛도 없다.
이 단계가 되면, 사실 사주를 안봐주게 된다.
다 알기에
오히려 말할것이 없게 된다.
여기까지 오면서 각 자리에서 쓰는 기법을 자세히 늘어놓지 않았다. 일부러 그랬다.
기법을 나열하면 읽는 쪽이 그 목록을 답으로 가져간다. 목록은 예시일 뿐인데 예시가 원칙 자리에 앉는다. 그러면 목록을 다 외운 사람이 자기를 고수라고 믿게 된다. 연장통 채우는 일과 차례 세우는 일을 다시 섞는 것이다.
예시를 내놓는 순간 빈틈도 같이 생긴다. 예시에 없는 판이 오면 손이 멈춘다. 갈림은 목록의 길이가 아니라 목록끼리 싸울 때의 처신에서 생기니까, 목록을 보여주는 방식으로는 그 갈림을 보여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