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프게 아는 것의 폐해
사주를 몇 번 보고 나면 사람마다 자기 문장이 하나씩 생긴다.
물론 공부를 해도 ,,, 이런 일이 생기긴 한다. 어느 수준에 도달하기 전에 말이다.
나는 목이 부족하대. 나는 물이 많대. 현침살이 있대. 서른둘에 풀린대.
이 문장들은 자기가 만든 게 아니다. 다 누군가 해 준 말이다. 그리고 하나같이 짧다. 몇 시간을 앉아 있었어도, 며칠 뒤 기억에 남는 건 이렇게 한 줄이다.
여기서부터 시작하자. 왜 하필 짧은 한 줄만 남는가.
짧은 말이 나오는 경로는 두 개다
하나는 정말로 그것밖에 안 봤기 때문이다.
목이 없다는 걸 보고 목이 없어서 그렇다고 말한다. 근거가 하나다. 그 하나로 판정이 끝난다. 본 것도 하나, 말한 것도 하나다.
다른 하나는 정반대다.
스무 개, 서른 개를 겹쳐 놓고 결론을 낸 다음, 그중 한두 개만 꺼내 준다. 나머지 스물여덟 개는 입 밖에 안 나온다.
이유는 단순하다. 다 설명하려면 시간이 몇 배로 든다. 설명해도 앞의 열 개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열한 번째가 안 들어간다. 그래서 가장 눈에 잘 띄고 알아듣기 쉬운 근거 하나를 골라서 준다. 나머지는 이미 계산에 들어가 있지만, 말로는 나오지 않는다.
문제는 여기다.
밖으로 나온 문장은 두 경우가 똑같이 생겼다. 둘 다 짧은 한 줄이다. 앉아 있는 손님 입장에서는 이 한 줄이 하나만 보고 나온 것인지, 서른 개를 겹치고 나서 골라 나온 것인지 구분할 방법이 없다.
같은 문장인데 뒤에 붙은 무게가 완전히 다르다. 그리고 그 무게는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부분은 결국 떨어져 나간다
한 줄만 들고 나온 사람은 그 한 줄을 저장한다.
원래 그 말은 그 사람 한 명에게, 나머지 스물아홉 개 조건 위에서만 성립하던 말이었다. 그런데 조건은 말해 주지 않았으니 따라 나오지 않는다. 문장만 나온다.
문장만 남으면 그건 규칙이 된다.
물이 많으면 생각이 많다. 목이 없으면 어떻다. 현침살이 있으면 무슨 일이 맞다. 이렇게 생긴 문장들이 이 판에 굴러다니는 이유가 이거다. 누군가에게는 정확했던 말이, 조건이 떨어진 채 굴러다니다가 규칙 행세를 한다.
그러니 이 판에서 유통되는 문장 대부분은 거짓말이 아니다. 조건이 빠진 참말이다. 이게 거짓말보다 다루기 어렵다. 거짓말은 뒤집으면 되는데, 조건 빠진 참말은 뒤집을 수도 없고 쓸 수도 없다.
조건이 떨어져 나간 문장들의 실제 모습
목이 부족하다는 말을 보자.
오행을 세는 건 출발점이지 도착점이 아니다. 하나가 비어서 오히려 깔끔하게 굴러가는 명조가 있고, 가득 차 있어서 서로 밀어내느라 아무것도 못 쓰는 명조가 있다. 따져야 할 건 없다는 사실이 아니라,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쓸 게 있느냐다.
금이다, 라는 말도 그렇다. 태어난 날의 천간이 금(金)이라는 뜻일 텐데, 그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는다. 여름에 난 경금(庚金)과 겨울에 난 경금은 다른 사람이다. 무엇으로 태어났느냐보다 언제 태어났느냐가 먼저다. 월지(月支)를 빼고 일간만 말하는 건 배우 이름만 알려 주고 무슨 영화인지는 말 안 하는 것과 같다.
서른둘에 풀린다는 말은 대운(大運)이 바뀌는 시점을 가리킨 것이다. 그런데 대운이 바뀌는 건 무대가 갈리는 일이지 조명이 자동으로 켜지는 일이 아니다. 무대가 바뀌면 그동안 통하던 방식이 안 먹히기도 한다. 풀린다는 건 결론이고, 무엇이 어떻게 바뀌어서 어디가 열리는지가 빠져 있다. 결론만 받아 오면 서른둘까지 기다리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다.
뱀띠는 올해 좋다는 말은 조건이 가장 많이 떨어져 나간 경우다. 띠는 태어난 해의 지지(地支) 한 글자다. 여덟 글자 중 하나다. 나머지 일곱 글자도 안 봤고, 지금 돌고 있는 대운도 안 봤다. 그러니 나는 왜 뱀띠인데 이렇게 힘드냐는 질문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잘못된 건 그 사람이 아니라 한 글자로 사람을 묶은 쪽이다.
조건이 다시 붙는 순간은 이렇게 생겼다
물이 많다는 말을 듣고 왔더니 생각이 많은 게 그래서라는 답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 밑에 다른 사람이 이렇게 달았다.
물이 많아도 어떤 월지와 어떤 대운이냐에 따라, 사람을 살리는 물인지 불을 끄는 물인지 달라진다고.
이 한 줄이 앞의 규칙에 조건을 되붙인 것이다.
수(水)가 많다는 건 상태를 말한 것이지 판정이 아니다. 그 물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태어난 달과 지금 지나는 운이 정한다. 겨울에 난 사람의 물은 이미 얼어 있어서 나무를 못 키운다. 그 자리에 필요한 건 물이 아니라 온기다. 여름에 난 사람의 물은 가뭄에 내리는 비다. 같은 글자가 정반대 일을 한다. 이걸 조후(調候)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물이 많다는 문장 뒤에는 원래 이런 것들이 줄줄이 붙어 있었다. 그게 떨어져 나가면 남는 건 물 많으면 생각 많다는 인상 비평뿐이다. 그 정도 말은 얼굴만 봐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조각으로 채점을 시작한다
여기까지 오면 다음 단계는 정해져 있다.
한 줄짜리 규칙을 여러 개 모은 사람은 그걸로 남을 본다. 그리고 맞다 틀리다를 말하기 시작한다.
이 판에서 가장 자주 오가는 말이 맞다 틀리다인 이유가 여기 있다. 자기가 받은 규칙에 안 맞는 사례를 만나면 둘 중 하나로 정리한다. 사주가 안 맞거나, 저 사람이 엉터리이거나.
실제로는 조건이 다를 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규칙이 틀린 게 아니라, 그 규칙이 서 있던 스물아홉 개의 받침이 이 사람에게는 다르게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받침은 애초에 전달되지 않았으니 비교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이 판에서는 초보일수록 판정이 빠르고 단호하다. 근거가 하나뿐이면 망설일 이유도 없다. 겹쳐 볼 게 많은 사람은 오히려 말이 느려진다.
근거가 많아 보이면 다 나은 것인가
반대 극단도 있다.
한 문단 안에 귀문관살, 원진, 수토교전, 화개살, 편인의 망상까지 늘어놓고, 그걸로 사람의 성향과 정신 상태를 판정해 버리는 글이 돌아다닌다. 근거가 열 개쯤 되니 앞의 한 줄짜리보다 나아 보인다.
그런데 겹쳐 본다는 건 근거를 쌓아 올리는 일이 아니다.
겹쳐 본다는 건 서로 상쇄되고 뒤집히는 걸 계산하는 일이다. 이 글자가 저 글자를 누르고, 그 누름이 다른 자리에서 풀리고, 운이 들어오면 순서가 바뀐다. 그 계산 끝에 남는 것으로 판정한다.
같은 방향 근거만 열 개 쌓아 올리는 건 한 개로 판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아니, 더 나쁘다. 열 개가 한목소리를 내면 반대 근거를 찾을 생각 자체를 안 하게 된다.
게다가 이런 글은 확인할 수 없는 자리에 결론을 내려놓는 경우가 많다. 사람의 성적 지향이라든가, 신기가 아니라 불안증이라든가. 명리(命理)가 원래 다루던 항목이 아닌 곳에 결론을 세워 놓고, 용어만 진짜 것을 갖다 쓴다. 그런 판정을 받은 사람은 그 문장을 몇 년씩 안고 산다. 조각 하나 받아 나오는 것보다 이쪽이 훨씬 오래 남는다.
기준 자체가 갈리는 영역도 있다
둘째 이름을 지으러 갔다가 첫째 이름이 안 좋다는 말을 들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첫째를 지어 준 곳에서는 아주 좋은 이름이라고 했었다.
이건 실력 차이도 아니고 조각의 문제도 아니다. 기준이 갈리는 영역이다.
한글 이름의 발음오행에서 자음을 오행에 배속하는 방식은 유파마다 다르다. 특히 ㅇ과 ㅎ이 갈린다. 훈민정음 해례본 쪽 배속으로 가면 이 소리들은 목구멍에서 나는 소리라 수(水)에 놓이고, 운해본 계열과 술가에서 쓰는 배속으로 가면 토(土)로 본다. ㅁ, ㅂ, ㅍ을 어디에 붙이느냐에도 이견이 있다.
배속이 달라지면 상생과 상극 판정이 통째로 뒤집힌다. 같은 이름이 이 집에서는 물 흐르듯 이어지는 이름이고, 저 집에서는 서로 부딪치는 이름이 된다. 두 집 다 자기 기준으로는 틀린 말을 하지 않았다.
애초에 훈민정음에서 자음을 오행에 나눈 것은 문자를 만든 원리를 당시의 우주관으로 설명한 것이지, 이름 지을 때 상생을 따지라고 만든 규칙이 아니라는 지적도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러니 앞집 이름이 어떠냐고 물으면 대개 안 좋다는 답이 온다. 기준이 다르니 당연하고, 같더라도 앞집 작품을 칭찬할 이유는 별로 없다. 그리고 그렇게 조각이 하나 더 늘어난다.
그럼 무엇을 물어야 하나
왜 그렇게 보시냐고 물으면 근거 하나가 나온다. 그건 이미 받은 것이다.
물어야 할 건 다른 쪽이다. 그 근거 말고 무엇이 더 있느냐. 그리고 어떤 조건이 달라지면 이 판정이 뒤집히느냐.
하나만 보고 말한 사람은 이 지점에서 막힌다. 더 꺼낼 게 없으니까. 겹쳐 보고 말한 사람은 여기서 두 번째, 세 번째를 꺼낸다. 원래 스물아홉 개가 뒤에 있었으니까.
자기 판정이 뒤집히는 조건을 말할 수 있느냐. 이게 사실상 유일하게 밖에서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다.
다만 이 질문의 부작용도 알아두는 게 좋다. 제대로 된 답이 나오기 시작하면 대개 재미가 없어진다. 조건이 줄줄이 붙고, 되묻는 게 많아지고, 여기까지는 모른다는 말이 섞인다. 듣고 나서 개운하지가 않다.
반대로 술술 읽히고 딱 떨어지고 기분까지 좋았다면, 잘 본 게 아니라 잘 고른 한 줄이었을 수도 있다. 그 한 줄이 서른 개를 겹쳐서 나온 것인지 하나만 보고 나온 것인지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이 글도 마찬가지다
여기까지 읽고 문장 하나만 챙겨 가면, 방금 말한 그 조각이 하나 더 늘어난 셈이 된다.
이를테면 근거를 한 개만 대면 하수다, 같은 문장. 이 글에서 그것만 떼어 가면 그것도 조건이 빠진 참말이 된다. 그 문장으로 다음에 만난 사람을 채점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처음 자리로 돌아온다.
받아 온 종이들을 펼쳐 놓고 세어 볼 것은 그래서 하나다.
내가 물어본 질문에 대한 답이 그 안에 몇 줄이나 있는가.
대개 한 줄도 없다. 그리고 그 종이들은 대부분 아주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