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진실
사람들은 대개 비슷한 기대를 품고 결혼한다. 비바람을 막아줄 사람을 한 명 만나서, 이제부터는 마음 편히 잘 살아보겠다는 기대다.
그런데 막상 결혼해 보면 알게 된다. 살면서 맞는 비바람 가운데 상당수가, 바로 그 결혼이 데려온 것이라는 사실을...
상대가 살뜰하지 못해서, 사는 게 너무 밋밋해서, 내가 준 만큼 돌아오지 않아서. 다투고, 속으로 끓이고, 실망하기를 되풀이한다.
이 모든 괴로움은 한 가지에서 나온다. 결혼이 무엇인지를 처음부터 잘못 봤다는 것. 결혼에 대한 기대치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
결혼은 사랑의 결실도 아니고, 인생의 피난처도 아니다.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수행이다. 닦는 것은 마음이고, 건너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먼저, 결혼이 가장 편안해지는 자리는 상대의 부족함을 그냥 두는 데 있다.
요즘 사람들이 부부 사이에서 힘들어하는 이유는 대개 욕심이 많아서이다. 상대를 뜯어고치려 든다. 더 다정하고, 더 부지런하고, 매번 나한테 맞춰주기를 바란다. 기대에 못 미치는 순간 서운함이 밀려오고, 그 뒤로 탓하는 말과 불평이 줄줄이 따라붙는다.
상대방이 소유물도 아닌데 말이지...
자기 스스로도 못 고치면서 말이지...
세상 모든 일은 인연 따라 일어나고 인연 따라 머문다. 두 사람이 부부가 된 것 자체가 흔치 않은 인연이다. 처음부터 딱 들어맞는 짝은 없다. 서로 부딪히며 깎여나가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세상 그 누구도 당신 취향에 맞춰 주문 제작된 사람은 없다.
있는것 같아도, 다 착각이다. 상대가 당신에게 맞춰주고 있는 것일 뿐이라는 것. 단지 좀 더 쉽게 맞출수 있냐? 맞추는게 난이도가 높냐? 그 차이인것...
장점으로 단점이 커버 될 것 같지만,
그럴리가 없다.
살다보면, 장점은 당연한게 되고,
단점은 점점 커보이기 마련이니까 ...
상대에게는 상대의 성격적 약점이 있고, 당신에게는 당신의 예민한 구석이 있다. 다 자란 나무를 분재로 만들겠다고 매일 가지를 비틀면, 나무도 사람도 같이 지친다.
정작 사이가 깊어지는 부부는 이 받아들임을 안다. 상대의 평범함을 받아들이고, 살림의 자질구레함을 받아들이고, 애정이 잔잔해지는 것까지 받아들인다. 흠을 붙들고 늘어지지 않고, 완벽을 고집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결혼의 진짜 중심은 바깥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닦는 데 있다.
많은 사람이 결혼을 구원으로 여긴다. 결혼만 하면 외로움이 풀리고, 지난날의 아쉬움이 메워지고, 인생의 빈자리가 채워질 거라 믿는다. 심지어는 인생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고, 재력이 업그레이드 되는 것을 기대한다.
그러면서, 더 나은 삶을 살지 못할 거면, 혼자 살지 왜 결혼하냐고 반문한다. 얼핏 들으면 합리적으로 보인다. 실제로 합리적이다.
이성적 합리적 판단을 하면, 결혼은 손해볼 가능성이 높기에 , 손익을 계산하기 시작한다면 말이지...
인간은 원래 바깥에서 구할수록 실망은 더 깊어지고, 계산을 할 수록 만족을 구하기 어렵다.
마음은 본래 스스로 넉넉하다. 살림의 고단함도, 마음의 불안도, 안에서 비어 있다는 느낌도, 사실은 상대가 가져다준 것이 아니다. 내 안의 집착과 조급함이 만들어낸 것이다.
도덕경에 이런 말이 있다.
知足者富.
만족을 아는 사람이 부유하다는 뜻이다.
하루하루가 괜찮은가 아닌가는 상대가 아니라 내 마음 상태가 정한다. 마음이 평온한 사람은 안으로 돌아볼 줄 안다. 들들 볶지 않고, 견주지 않고, 물고 늘어지지 않는다. 갈등이 생겨도 원망으로 가지 않고, 생각이 어긋나도 품을 줄 안다.
반대로 상대의 잘못과 사는 형편의 불만족만 노려보면, 애정도 닳고 자신도 닳는다. 부부 사이에서 가장 높은 지혜는 남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다. 내가 트이면 결혼도 저절로 순해지고, 내가 따뜻해지면 사는 날들도 저절로 부드러워진다.
오래가는 부부에 대해서도 옛사람들의 말이 있다.
남녀가 짝을 이뤄 음양이 서로 돕고 받쳐줘야 오래간다고 했다.
결혼은 한쪽이 일방적으로 바치고 희생하는 것이 아니다. 센 쪽이 누르고 약한 쪽이 굽히는 것도 아니다. 두 사람이 각자 제 몫을 하고, 서로 받쳐주고, 양쪽에서 마주 걸어오는 일이다.
흠 없는 결혼은 없다. 제 할 일을 아는 두 사람이 있을 뿐이다. 밖에서는 서로 부축해 비바람을 함께 막고, 집에서는 서로 품어 살림의 불씨를 함께 지킨다. 책임을 미루지 않고, 정을 아끼지 않는다. 당신은 내가 힘든 줄을 알아주고, 나는 당신의 모자람을 덮어준다.
무너지는 부부의 상당수는 상대를 바꾸려 들고 더 사랑받기만을 구하다가, 정작 제 노릇을 잊은 경우다.
물처럼 살라는 옛말이 있다.
上善若水.
가장 높은 선은 물과 같다는 뜻이다.
물은 다투지 않는다. 그릇이 둥글면 둥글게 담기고 모나면 모나게 담긴다. 그러면서도 끝내 제 성질을 잃지 않는다. 좋은 부부의 모습이 이와 멀지 않다. 서로를 묶어두는 것이 아니라 각자 제 빛을 내며 서로를 비춘다.
당신은 당신의 너그러움을 닦고, 상대는 상대의 책임감을 닦는다. 당신은 상대의 무뚝뚝함을 품고, 상대는 당신의 자질구레한 수고를 귀하게 여긴다. 억지로 비위를 맞출 것도, 우격다짐으로 바꿀 것도 없다. 서로 맞아 들어가고 서로 길러주면, 그것으로 해마다 함께 간다.
그러니 마지막에 남는 것은 이런 그림이다.
결혼은 인생의 정답이 아니다. 자기를 다듬어가는 한바탕의 수행이다. 그리고 누구나 다 수행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수행의 방향은 다 다르다.
결혼이 모든 고생을 막아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1개를 주면, 몇개의 고통을 안겨준다.
다만 품는 법을 배우게 하고, 책임을 알게 하고, 조급함을 내려놓게 한다. 늘 뜨겁지는 않아도, 쌀과 기름과 소금의 나날 속에서 마음을 단련시키고 모난 데를 메워준다.
완벽한 결혼에 매달릴 것 없고, 극진한 편애를 바라지 말아라. 마음을 가라앉히고, 안을 가꾸고, 평범함을 받아들이며 하루를 성실히 살때 행복한 결혼이 온다.
바깥을 향해 더 내놓으라고 다그치기를 멈추고 안으로 깊이 파고들 때, 품을 줄 알고 귀히 여길 줄 알며 여유롭게 하루를 보낼 때.
그때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 편안함이 곧 어떤 자리인지는, 이미 그 자리에 가본 사람만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