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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바꾸는 가장 빠른 방법
개운(改命)이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대부분 바깥을 본다. 부적을 하나 지니거나, 이름을 고치거나, 좋은 방위로 책상을 돌리거나, 이사 날짜를 잘 잡으면 운이 따라 바뀔 거라고 여긴다.
혹은 빨간 바지를 입으면 된다고 생각하지.
그러나 명(命)을 가장 빠르게 움직이는 자리는 늘 안쪽에 있다. 그중에서도 행동의 영역에 있다.
행동력을 끌어올리는 가장 빠른 길은 의외로 단순하다. 새로운 정체성 안으로 먼저 들어가서, 그 안에서 실행을 거듭하는 것이다. 새 자리에서 행동을 반복하다 보면, 마음에 들지 않던 예전의 모습은 굳이 떼어내려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떨어져 나간다. 새 옷이 몸에 맞아 들어가는 동안 헌 옷이 어색해지는 것과 같다.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늘 시간이 없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인정의 문제다.
밥 지을 시간을 내지 못하는 사람은 사실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제 몸을 제대로 대접해야 한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받아들이지 않으니 게을러진다. 우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 곳은, 결국 우리가 가장 깊이 인정하고 있는 정체성 안이다. 진심으로 받아들여야 비로소 스스로 움직인다.
그렇다면 사람은 왜 좋은 자리를 그토록 간절히 향하지는 않으면서, 싫어하는 일과 마음에 들지 않는 생활은 오래도록 견디는가.
고통을 견디는 일이 행복을 만들어내는 일보다 쉽기 때문이다.
고통을 견딜 때는 익숙해진 행동을 그저 되풀이하기만 하면 된다. 같은 불평을 반복하고,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같은 자리에 다시 눕는다. 그 안에는 낯섦이 없다.
반대로 행복을 만들어내는 일에는 두려움이 있고, 낯섦이 있고, 선뜻 나서지 못하는 머뭇거림이 있다. 그래서 새로운 자리로 건너가려면 하나의 계기가 필요하다. 얕은 통증으로는 부족하다. 무뎌진 통증으로도 부족하다. 무언가에 한 번 깨어나야, 비로소 새 정체성이 가져다주는 변화로 발을 디딘다.
여기서 명리(命理)의 시선을 빌리면 그림이 한층 또렷해진다.
대운(大運)과 세운(歲運)은 때를 깔아주고 환경을 마련해 줄 뿐이다. 대운은 십 년 단위의 큰 배경이고, 세운은 그해의 일을 실제로 건드리는 자리다. 그러나 그 환경 안에서 무엇을 할지는 끝내 본인의 몫으로 남는다. 운이 트여도 움직이지 않으면 그 자리는 비어 있는 채로 지나가고, 운이 막혀 있어도 움직이는 사람에게는 좁게나마 길이 난다.
대운이 바뀌면 사주의 격(格)이 따라 변하듯, 사람도 환경이 갈라지는 길목마다 새 정체성을 입을 기회를 받는다. 그 기회를 행동으로 받느냐, 흘려보내느냐가 갈림길이다.
도교에서 오래전부터 전해온 한마디가 있다. 내 명은 나에게 달려 있지 하늘에 달려 있지 않다. 포박자(抱朴子)에 실린 이 말은 운명을 향한 항복이 아니라 선언이다. 개운은 바깥에서 가져오는 처방이 아니라, 주체가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세우는 일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한번 떠올려 보라. 앞으로 어떤 새로운 정체성에 물을 주고 싶은가. 지금의 생활에서 어떤 변화를 기다리고 있는가.
몹시 바꾸고 싶다는 그 마음, 미래를 향한 그 동경. 그것이 바로 당신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욕망을 억지로 눌러 끄지 말라. 못 본 척 밀어두지도 말라. 오히려 그것이 데려오는 들뜸과 충동을 빌려, 바로 오늘 작은 변화 하나를 시작하라. 몸 안에서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일어날 때마다, 그것은 명을 바꿀 기회가 한 번 찾아온 것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전환할 줄 알아야 한다.
지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불만을 행동력으로 바꾸면 된다. 어떤 일이 지긋지긋하고 벗어나고 싶다면, 그 권태도 행동력이 된다. 무언가에 절망했다면, 그 절망조차 행동력이 된다. 삶이 나아지느냐 그대로 멈추느냐는 바로 이 지점에서 갈린다.
누구에게나 불만이 있고 권태가 있다. 다만 그것을 한낱 부정적인 감정으로만 다루는 사람은, 그 힘을 불평으로만 흘려보내고 같은 자리를 또다시 반복한다. 결국 그 감정을 제자리에 눌러 담아두는 셈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전환할 줄 모르고, 풀어낼 줄도 모른 채 오래 지나면, 사람은 답답하고 메마른,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 간다. 반면 그 감정이 행동으로 바뀌면 흐름이 생긴다. 흐르기 시작하면 생명도 다시 생생해진다.
움직이게 하는 길을 한 번이라도 보아낸 사람은, 결국 스스로를 다른 자리로 옮겨놓을 수 있다.
다시 떠올려 보라. 살면서 행동력이 가장 거셌던 순간은 언제였는가. 그 힘은 어떻게 깨어났고, 당신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그 추진력은 지금도 몸 어딘가에 가만히 들어 있다. 다시 깨울 수 있고, 다시 건드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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