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
명리학의 역사
명리학을 공부한다면, 역사는 알아야
일반적으로 녹명법(사주팔자라기에는 그렇고,, 운명을 논하는 기법)의 시점은
“동한”을 기점으로 봅니다. [순제에서 헌제 사이]
동한 말년에 나온것이 생일로 운명을 풀이하는 것이죠.
동한 전에 존재하던 기법은 점, 택일, 관상, 풍수 [이 시점에는 이기학이 없었음]
왜? 동한전에 없었다고 단정적으로 이야기 되느냐?
한순제 이전에는 달력이.. 간지가 아니었거든요. “목성”을 기준으로 역법이 정해졌다가
간지학이 나오면서 기제가 되었고요.
그러니.. 간지술이 있기전에 생년월일 간지법으로 운명을 논하는게 존재하지 않겠죠.
그전에는 개인의 운명을 논하는 방법은 “관상”밖에 없었어요.
간지는 전설로 보면 4천6백년전에 황제시대 부터 내려왔다고 하는데
간지는 원래 나무 가지에서 나온이름
ㅋㅋ
원래는 “간”으로 날을 정했음
해가 뜨면 시작, 해가 지면 끝 ㅋㅋ
간을 천간이라고 하는데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이렇게 10개, 그래서 10천간
일을 기록하는 기준이었다는 것
지는 뭐냐?
지는 월래 월을 기록하는 방법
달이 보름달에서 초승달 되는거 ㅋㅋ 그 과정을 가지고 정한건데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12개임
그래서 12지지라고도 함
1년 12개월 그래서 그런거
정월은 인월
2월은 묘월
3월은 진월
4월은 사월
5월 오월
6월 미월
7월 신월
8월 유월
9월 술월
10월 해월
11월 자월
12월 축월
이런식
그런데,,, 우리 암기할때 자축인묘진사오미 이렇게
“자”수에서 시작하는데, 왜?
1월은 인월인거야? 다들 의문을
원래 고대(주나라)때에는 일년의 시작이 자월이었다는 것 ㅋㅋ
그렇기에 자수가 첫번째 맞음. 한무제때 (기원전 104년)부터 정월을 한해의 시작으로 본거
그런데 10개 가지고 돌려쓰다 보니까
한달에 같은 날이 3개야 그래서 헷갈리잖아
그래서 간과 지를 합해서 간지라고 만들어서
나온게 간지기일법이고, 최소공배수가 60이잖아. 갑자에서 계해까지
60갑자를 가지고 날을 기록한거
간지는 갑골문 출토된걸 기준으로 보면, 상나라 중엽때 보편적으로 이미 사용되었다고 하고
문헌에 제대로 기록되어 있는것도 기원전 722년에 기록되어 있으니까..
봐.. 하루의 시작은 자시잖아
ㅋㅋ
하나라때는 해가 뜰때가 하루 시작이었고
은나라 상나라때는 닭이 울면 하루가 시작
주나라때서야 밤 자시부터 ㅋㅋ
그리고 하루를 나눈것도
은나라 상나라때는 시간이 하루에 8개
상나라 후기에 10개로
주나라때서야 12개로 나뉨
한나라때부터 12시진이 완벽하게 나뉨
년은 과거에는 태세기년법이라는게 있었고, 그 후에 간지 기년법이 나온것
목성을 세성이라고 해서, 목성의 위치를 가지고 년을 기재한것
목성이 한바퀴 도는것 12년 (정확히 11.86)
그래서 오차가 나올때 마다 조정을 해줬는데, (윤달처럼)
나중에는 그냥 60갑자를 순서대로 돌리는 간지기년법 사용
간지는 역법으로 시작했고,
고대인은 당시 유행하던 음양오행의 사상을 간지에 대입했습니다.
음양오행은 만물의 이해 체계였으니까. (당시로 치면 과학)
당연히 이런 형태가
이미 좌전에서 점성술사가 발생한 대형 화재의 원인을 오행으로 설명을 했고, (기원전 510년) 이걸로 보면 그 시대에 이미 이런 이론이 있었다는
전국시기 “관자”에도 “여씨춘추”에도 간지를 오행을 의미하는 부호로 이미 사용하기 시작했고
한나라 초기 회남자에서는 북두칠성의 위치로 월을 보게 되었죠.
즉, 이런 역법과 오행의 결합은 우주를 이해할려고 했던 당시 이론 체계
우주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
기(무) 가 음양으로 나뉘고 그것이 다시 나뉘는 것
그런걸 의미했죠.
한나라때 간지가 완전히 음양오행의 체계에 들어왔고,
이런 내용은 사기:율서, 한서 역율지 등에 자세히 기재
그리고 이것이 자연스럽게 사주가 나오게 된 계기
우선 간단하게 알아야 할께
명리학 /사주에서 쓰는 달력은 태양력입니다.
태양력은 태양이 중심이 되는
음력은 달의 주기가 중심이 되는 달력이죠.
중국 전통 역법은 음양합력 (음력, 태양력 다 쓰는) 입니다.
그렇지만 명리학 체계는 양력입니다. 그래서 사주 달라고 할때, 양력 생일 달라고 하는 것 ㅋㅋ 음력을 달라고 하는 분은 사주 체계를 모르는 거죠 ㅋ
왜냐면 입춘은 매년 양력 2월4일 이죠. 즉 절기는 양력이 기준이라는 것
간지와 음양오행이 대입이 된 이후에
간지는 의미가 생기게 된것
어쨌던 역사적으로 문헌상 기록들을 보면,
삼국시대의 관로
관로는 술에 정통했다고 하는데
삼국지 위서에 기록은
본인이 자신의 명에 대해서 이야기 한 부분이 나오는데
나는 인년에 태어나서 월식에 밤에 태어났으니, 하늘에는 정해진 법이 있어 어길수 없다.
사람이 모를뿐
백명이 넘는 사람이 죽는것을 예측했는데, 틀리는 법이 없었다.
내년 2월에 내가 죽고, 나이는 48이다 라고 했다고 하고
이 사람은 210년 경인년 생이죠. 본인이 태어난 년월 + 시간으로
죽을 시기를 예측한건데 (죽기 전년)
과연 진짜로 그 해에 죽었죠.
즉, 삼국시대에 이미 이런 술법이 존재 했다는 것
또 진서 대양전에 보면
당시 진수 유윤이 대양을 만나서, 내 질병이 나을수 있겠냐 했더니?
대양이 니 병이 걱정이 아니라, 너 올해 큰 재난이 있어
너 47살인데, 곧 경인에 들어간다.
12월 22일 경인에 절대로 손님 만나지 마
그랬다는 것… 즉 당시에 일단위로 위험을 이야기 할 수준?
그런데,,, 유윤 말 제대로 안듣고 12월 24일 곽묵을 만나서, 살해 당함…..
진서에서는 대양이 풍각술이 능했다고 하는데, (풍각은 풍수)
보면, 년월의 관계로 풀이한 느낌이죠.
역사에서 기록된 건 “북제서”에서 상류층이 운명을 논했다. [서기 550년] 이런 이야기가 있으니..
1500년 정도의 역사를 지니고 있겠죠.
그럼 그 시절에 나온 고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보면
운명을 논하는 방식은
현재랑 많이 다른데.. 어쨌던 알 수 있는 정보는
년주 납음오행위주로 감명
정월은 “인”부터 시작
재관인이라는 개념이 있음
“공망”이란 개념이 있음. “형””충”이 논이 됨. “신살” 존재. “입묘”개념 존재
그러다가
당나라에 접어들면서
이허중… 시점에 신살을 보고, 년을 주로 보고, 일을 체로 보는 방식 [정오행 위주가 아님]
또 당시에는 “과로성종”으로 명을 논하는 것도 크게 유행합니다. [양귀비]
그 뒤에 발전되는게 식신상관, 정인편인, 정재편재, 정관칠살, 비견겁재의 개념들이 나오고
압음을 사용하는게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한나라때는 왕상휴수사 였는데,, 수나라의 오행대의 이후에 십이장생궁으로 강약을 나누게 되죠.
송나라의 중대 발전은 일주를 중심으로 보는 개념이고요.
서자평의 출현으로 ….
그리고 그 뒤에 발전해서 나온게 격국에 관한 내용인데
초기에는 “재 관 인” 3가지만 있었고, 명나라에 들어서면서 많이 늘어나죠.
그리고 대부분의 이론적 기초는 명나라때 거의 잡힙니다.
청나라때는 명리학상 중대한 발전은 없죠.
삼명통회에서는 격을 6격, 정관, 칠살, 재, 인, 식신, 상관.. 즉 초기에는 이정도…
당시 문헌을 보면…
18팔격중 6격이 중요하다고 나와요.. ㅎㅎ
그리고 최초의 시점쯔음에 격을 취할때는 월지만을 가지고 논했습니다.
월지를 고정적으로 봐서 격을 정하고
“용신”이라는 개념도 사실 격국에서 나온겁니다.
일주의 희기를 가지고 논하는게 용신은 아니었습니다.
당시의 개념은 “용신” = “격국”
그리고 초기에는 “자오묘유”만을 그 격을 잡는 범주로 봤습니다. ㅎㅎㅎ
그러다가 … 명나라때 발전해서 나온게,, 천간과 지지를 동시에 보고, 12지지를 모두 사용하는 형태가 된거죠.
어쨌던,,, 명리학 이론이 거의 완성된 “명나라”시대 작품들이 사실 사주의 가장 원시적인 내용이죠
연해자평, 삼명통회, 난강망, 난대묘선
자평술 [사주술]이 완전히 보급되기전에는
“신살[성숙]” 위주로 운명을 논하는 방식이 주류였는데,,,
자평술이 나오면서, 밀리게 되죠.
밀리게 되는 이유는 “약점”
신살이 너무 많고, 사용법이 있는데, 사용법들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여기저기에 막 사용하다 보니, 정확도가 많이 떨어짐.
이런 약점… 어느해에 태어나 어느시에 태어나면 어떻다.. 이런건 정확도가 떨어지죠.
[사주에 천을귀인이 있다고 좋은 사주다가 아닌것처럼]
특히 사주를 연구하는 사람들 중에는 어느정도 지위와 신분이 있는 계층이 많았는데, 그들의 눈에는 이 이론들이 “논리적” 혹은
“도리”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은것이죠.
특히 유가의 유명인사들중에 역학을 연구한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술사가 될려고 한게 아니라. 수양의 방식]
그렇기에 “중용”이라는 유가의 개념이 “중화”라는 사주 개념으로 들어오죠.
사마광, 소강절, 주희 등등 모두 역학을 연구했고, 관련 분야 글을 남긴 유명인사들이죠.
문제는 이런 대가들이 실제 강호의 술사는 아니니, 쓴 글도 통속적인 문장이 아니죠.
그리고, 이런 문인들끼리 서로 깨달은 바를 교환하는 등 하면서 발전이 오게 됩니다.
“용신희기”라는 단어는 “청나라”에 와서야, 현대적 의미로 사용되죠.
즉 그 전시대. 송나라, 원나라, 명나라때까지 사용되던 단어는 청나라때 사용되던 단어랑 뜻이 다르다는 것.
초기 자평술이 나오면서, 가장 크게 변한것이
“납음오행”의 포기. 그전까지는 운명을 논하는데 주로 사용된것이 “납음오행”인데,
자평술의 시대에 들어오면서, 현재 이야기하는 하도오행을 쓰게 됩니다.
동시에 천간에 10개의 오행을 맞추고, 지지에는 “지장간”이란것을 집어넣게 되죠.
지장간이라는것은 천간을 지지에 집어넣은것.
그리고 십이장생이라는 것도 같은 이론적 근거입니다.
즉 초기 자평술의 원형이죠
그 다음에 나오게 된것이 격국
정격/외격 등으로 나오고,,, 엄청나게 많은 격이 있지요… 사실 어느게 정격, 어느게 외격이라는 명확한 이론은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재관인이라는 단어는 이허중 시절에 이미 있었습니다.
그전에 명을 논하던 옥조신응경에는 “재관인”이라는 단어가 없죠. [현재 저희가 사용하는 십신의 개념이 없어도 얼마든지, 길흉화복을 논할 수 있다는 것]
즉,,,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을 필요는 없다는 것.
격국을 꼭 논해야 한다… 그런 개념도 버려야 합니다. 격국으로 봐도 틀리거나 볼 수 없는 사주도 많습니다. ㅎㅎㅎ
왜냐, 옥조신응진경도 제대로 쓸 수 있으면, 그 정확도가 어떤 이론 못지 않기에 …
삼명통회를 보면, 재관인식을 위주로 격국을 이야기하죠.
연해자평에서도 6격이 중요하다라고 이야기 되었습니다.
즉, 초기에는 6격 (관,인,재,살,식,상)이었다는 것.
연해자평의 이론을 보면,
격 과 국은 또 다른 개념.
거기서 나오는 단어가 간격인데, 간격은 바로 지장간이 천간에 투출한것을 이야기하는 것. “이 시점에 있던 이론”
국은 “삼합” “삼회”등을 이야기하죠.
갑일주 지지에 인오술 삼합국이 있으니면, 상관격으로 봐도 된다. (상관국)
가장 최초로 격을 취하는 방식은 “월지”만을 논했습니다.
그렇지만, 점진적으로 변화하게 되죠.
사실 월령으로 격을 취하게 된 이유는 “년”이 16세까지 “월”이 32세까지 [15,30] 이런 이론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월령으로 격을 취하면 30세정도 전에 공명을 이룬다. 즉 당시 시대상으로는 그 시점에 어느정도 위치에
올라서야지만, 높은 관이 되기 쉽죠.
그렇지만, 점점… 뭐 나중에 관운이 와도 좋고,,, 늙어서 관운이 좋으면,,, 좋을수도 있기에.. 월령만이 유일한 참고조건이
되지 않은 것.
게다가 초기 이론으로 보면, 상당수의 사람은 “격”이 없었죠.
그럼 대부분의 사람이 격이 없고, 그럼 듣기에 안좋죠… 넌 격없는 놈이야 ㅎㅎㅎ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람이 격을 갖게 하기 위해서 이론의 발전이 온것.[발전인지 확장인지…]
과거에는
용신 = 격국
격국을 용신이라고 불렀어요. 신은 = 비견, 겁재, 식신, 상관, 정관, 칠살, 정재, 편재, 정인, 편인입니다.
그리고, 그 용신은 쓸모가 있고 힘이 있는 글자를 의미합니다.
그러다가 용신이 격국과 관련이 멀어진후에 용신은 일주와 격국 사이에 평형을 이루는 글자라는 의미로 변해가죠.
그렇기에 “고서”를 읽을때, 같은 단어라도 다른 의미로 이해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는거죠.
그러면서, 용신의 의미가 새롭게 나오게 되는데
일주는 반드시 강해야만 “관” “재”의 복을 누린다.
격국도 강해야 한다. 격국은 약하고 나만 강해도, 힘쓸곳이 없다.
그렇지만, 격국도 강하고, 일주도 강한 사주는 극소수… 결국 그런 조건을 만들어주는 글자가 필요함.
이게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 이론이죠.
이론적으로도 그럴듯 해보이고, 철학적으로도 그럴듯 하기에 받아들여진 것.
그런데, 실제로 사주를 보게 되면,,, 문제들이 막 나오죠.
서로 비슷한 세력을 이뤘다고 봅시다. 그럼 원래 사주는 좋은거? 그럼 운에서는 반드시 균형이 깨질텐데… 그럼 어떤 건지
또 신약인지 신강인지 애매한 수준… 그럼 약간만 도와줘도 과도하게 강하거나 과도하게 약해지지 않나?
또 상당히 엄청나게 약한데… 종하지는 않는 경우에는… 도와줘도.. 균형이 안잡히는데…
또 무슨 근거로 강약을 논하는지?
같은편이 많으면, 강? 비,겁, 녹,인,인, 장생, 묘고
또… 용신이 있다고 쳐도,,, 용신이 충이나 합을 당하고 있다면 어떤건지?
명나라때는 아주 다양한 이론들이 존재했습니다.
또 명나라 시절에는 자평술이 안맞는 경우가 많아서, 납음, 신살 등을 많이 섞어서 사용했습니다.
청나라에 들어오면서는 납음이나 신살을 사용하는데 거부감이 커지면서, 안맞는 부분에 대해서 다양한 이론들이 나옵니다.
청나라에 들어오면서,,,, 사주를 보는 방법은 일주의 조후 및 격국이 위주로 발전되었습니다.
사실 새롭게 늘어난것은 없고, 명나라에 거의 완성된것이 규범화 되었다고나 할까요?
명나라 시절의 격국은 이랬습니다.
정관격
좋은 경우는 신왕한 경우 좋다. 정인을 얻어서, 관생인, 인생신이 좋다고 봤습니다. 만약 이미 신왕한 경우에는 중화로 논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관이 재,인이 없으면 별로라고 봤습니다. 또 하나 좋게 작용하는게, 정관격인데,, 식신을 쓰는 경우인데, 이 경우도 월지의 지장간에 식신이 하나 있으면 된다고 봤습니다.
또, 신강한데, 관성이 약한 경우, 재로 관을 생하는 걸 좋다고 봤고
그리고,,, 관자체가 왕성한것 보다는 재생관이 더 좋다고 봤습니다.
정관격에서 안좋게 본게
신약한것, 칠살이 나오게 되는 경우를 안좋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칠살이 있다고 안좋은게 아닙니다. 일주가 왕성하면, 관살이 다 있다고 안좋지 않습니다.
상관이 정관을 극하는 것을 안좋다고 봤고, 정관이 형충을 당하는 것을 안좋다고 봤고, 관이 약한데, 인성이 많아서 설기하는것도 안좋다고 봤습니다. 또 정관이 식신과 합하거나, 비견과 합하는것을 꺼려했습니다. 또, 정관이 입묘하는 것도 안좋다고 봤습니다.
ㅎㅎ 관심이 많으면,, 다 소개하겠지만,,,,
이건 역사와는 관계가 적으니 우선 생략하고 ㅎㅎ
청나라는 명대에 정리가 완료된 격국을 기초로, 그에 대한 해설정도를 달았죠.
특히 명나라 시점과 청나라 시점의 저서들은 차이가 많은데,
명대의 저작자들은 상당한 학술적 능력을 지녔고, 박학다식하면서도 겸허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명나라의 서적은 상당히 다양한 이론들이 동시에 소개가 되게 됩니다. 그리고 실제 사례들도 많이 들게 되죠.
[후대의 해설가로 서락오, 임철초 같은 사람이 있죠 ㅎㅎㅎ: 당연히 원저작가 대단한 분들이고, 해설 부분에 틀린부분(원작의 의도파악에 실패한)것도 많다는 것]
명나라 시절의 저작자들은 기법으로 100% 정확하게 예측이 안된다고 이야기하고, 겸허하게 학습하는 학인의 마음을 가지고 있던 경우가 많습니다.
청나라 시절에는 다양한 고전과 이론을 받아들인다기 보다는.. 내 이론이 맞다. 혹은 남들은 틀리고, 내것이 대단해…
사실 많은 고대 기법을 가져다 썼는데, 근거를 적지 않았고, 선현의 이론에 대한 곡해가 많았습니다.
청나라의 또 다른 특징은 “납음”을 포기한것.
현재까지 내려오는 중요한 문언은 궁통보감, 자평진전
이 개죠.. 궁통은 조후론 위주, 자평진전은 격국 위주의 작품이죠.
그렇지만, 모든 이론을 통합하는 작업은 청나라 시점에 이뤄지지 않았고… [어느정도 만든게 “어정자평” 정도]
완성도나 학술적 가치도 명대의 작품보다는 떨어지는 경우가 보입니다.
이론을 새롭게 제기한건 좋은데,,,음 기존이론과의 차이점 및 강점에 대한 논술이 부족. [심효첨의 대운론, 궁통보감의 용신으로 처, 자 논하는 법]
혹은,,, 임철초의 경우에는 비판은 많이 했죠… 엄청 이런 저런 비판… [물론 공헌도 엄청나지만], 현대에도 이런 글은 넘치죠… 과거의 이론을 부정하는 부분…
혹은… 자신의 이론은 하나도 없는 경우
그래도 뭐 자기 이론은 공개했고, 그 몇개가 받아들여진 경우도 많죠. [장신봉 : 중화가 좋은게 아니다. 병약법을 강조하죠]
명대가 왜 더 좋았다고 하냐면, 당송원 3대의 내용을 정리하고, 지장간에 대한 연구를 공개하고, 격국이론을 정리하고, 일부 신살을 도태시키는 등.
대부분의 명리학의 이론을 정립하였기에…
그 당시에 해결 안된 내용은 청나라때도 해결이 안된 상황입니다.
현대 명리학은 그럼 큰 진보가 있었냐? 그닥 아직은…
명나라때 자평술은
납음오행을 사용했습니다. (1/3정도의 이론은 납음 오행)
신살을 상당히 중요하게 사용했습니다. [명나라때 신살은 년이 기준, 청나라때는 일이 기준]
신살의 사용법이 상당히 자세하게 분류가 되어 있습니다. 신살이 길한것, 흉한것 이렇게 구별 된게 아니라.
하나의 신살이 10-20여종 사용상황에 따라서 길하고, 흉하고가 달라지는 것을 논했던 것. [청나라때 신살을 무시하면서, 많이 실전되었죠]
용신이 격국이었고요… 청나라때의 극설, 부억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당시의 희기는 격을 깨냐 마냐로 정해졌죠. 현대의 이론과는 차이가 있죠.
그리고 격을 취하는 방법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명나라의 또 하나의 특징은 여명과 수명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뤄졌고, 청나라 시절에는 새롭게 연구된것없이, 명나라때 연구 성과를 그대로 가져다 썼습니다.
또 명나라 시절에 유명한 술사들이 있었는데…
여러분은 이름 들어본 사람이 거의 없을 겁니다. ㅎㅎㅎ
유일신, 곽경하, 계동, 정희성, 진파산 …. 등….
십여명이 있고요… 대부분은 이상하게도 남방 사람입니다. [상해일대]
이 명가들 중 작품이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사람은 장신봉 정도
청나라 시대에 들어서면서
지장간의 법칙이 완성이 되면서, 격국을 취하는 방식이 통일되고, 그렇게 되면서… 격국이 사주를 감명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게 되고,
용신이란 단어와 격국이라는 단어가 나뉘게 됩니다.
그리고 용신은 사주의 중화 혹은 조정을 하는 유용한 글자를 의미하게 변하게 되죠.
또, 신살이 약화되고, 무슨 귀인 무슨 귀인등은 덜 중요한 요소로 봤습니다.
즉, 격국이 깨지지 않고, 사주가 중화에 가까우면 큰 문제 없다는 식으로 단순화 발전을 하게 됩니다.
그 외의 이론 정확도가 낮은 저급이론 취급했죠.
그러면서 청나라 시대의 자평법은 2가지 시스템을 위주로 발전하는데
첫째가 일주의 강약
둘째가 격국의 성격 및 일주와 격국과의 관계
사실… 뭐 이런 시스템은 현대 한국 역학 시스템하고 비슷하죠.
문제는 사실 시스템 별로 유용한 글자가 다르기에, 시스템별 용신이 다를수 있는데, 그걸 통일하려는 시도를 하죠.
즉, 희신, 한신, 구신, 기신, 용신 등 개념들이 나오죠.
시스템 통합으로
모든 시스템을 관통하는 유용한 글자가 있다는 가정을 하고 그걸 찾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문제가 생긴것…
우리가 용신이 사람마다 다르게 잡아서 힘들어요… 이야기가 나오게 되는 이유중 하나죠.
어떤, 대운, 어떤 세운, 어떤 상황에도 동일한 작용을 하는 만능 용신이 존재한다는 착각을 하게 만들 었으니까요.
게다가.. 또 문제들은 지장간이 과연 다 맞나?
격을 파괴하는 조건들
게다가 젤 큰 것, “강약” 판단 표준이 없다는 것.
대략은 있지만, 절대적으로 모든 사주에 사용할 수 있는 공식이 없다는 것…
물론 득지, 득령, 득세 등으로 대략 강약 판단은 가능하지만 말이죠.
왜 복잡하냐면, 지지에서 세력을 얻은거 이외에 생극이 그 강약에 영향을 준다는 것.
문제는 강약만으로 용신을 찾을수 있냐, 그게 아니라는 것.
특히 일주의 강약과 희기는 다른 개념
주목해 볼만한 청나라 시대의 글은 난강망 (서락오 주석 버전이 아닌 원문)
조후만 이야기한게 아니라, 육친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내놓죠.
재를 부인, 관살을 남편으로 보는게 아니라, 격, 생월에 따라 다른 육친을 잡는 법을 이야기했죠.
특히 난강망 원문은 명나라 시대의 시스템이 많이 내려오고 있다는 것.
더 중요한것은 오행의 생극만으로 희기를 보지 않는다는 것.
“상”으로 희기를 보기도 한다는 것..
명대의 명리학과 청대의 명리학은 어느 정도 차이가 납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명나라 때 이론보다 청나라때 이론이 선진적이냐? 꼭 그런건 아닙니다.
청나라때 이론이 좀더 배우기 쉬워졌다는게 오히려 세상을 정복한 계기?
그렇지만 고전을 연구해보면, 연해자평에서 하는 이야기, 삼명통회에서 하는 이야기,,, 현재 일반적으로 이야기 되는 이야기가 조금씩 다르다는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