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남준 — 대표작·인기운
허남준, 왜 빌런도 로코도 다 되는가
2019년 영화 한 편으로 조용히 시작해 불과 몇 년 만에 시청률 두 자릿수 드라마의 주연 자리에 오른 배우. 허남준의 행보를 보면 묘하게 일관된 패턴이 보인다.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타고난 회로가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는 느낌이랄까.
허남준의 사주에서 가장 뚜렷하게 읽히는 기운은 비견과 정인이다. 비견은 한마디로 '나는 나'의 에너지다. 남의 시선보다 자기 기준이 먼저인 사람. 〈유어 아너〉에서 빌런 김상혁을 맡았을 때, 단순히 악역을 소화한 게 아니라 그 캐릭터를 자기 방식으로 완전히 장악해 백상예술대상 신인연기상 후보까지 올랐다. 비견이 뚜렷한 사람은 역할에 자신을 맞추기보다 자신 안에서 역할을 꺼내는 경향이 있다. 그게 빌런이든 첫사랑이든 재벌 3세든, 결국 '허남준표'로 읽히는 이유다.
여기에 정인이 매우 뚜렷하게 받쳐주고 있다. 정인은 배움과 내공의 기운이다. 2019년 데뷔 후 〈혼례대첩〉, 〈스위트홈 시즌2〉를 거치며 주목받기까지 꽤 긴 시간을 조용히 쌓았다. 화려하게 치고 나오기보다 차곡차곡 내실을 다진 그 과정이 정인의 전형적인 행보다. 서두르지 않고, 그렇다고 멈추지도 않는다.
칠살도 뚜렷하다. 칠살은 긴장감과 도전의 에너지인데, 이게 잘 쓰이면 강렬한 존재감으로 발현된다. 빌런 역할에서 압도적인 인상을 남긴 것, 〈멋진 신세계〉에서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이라는 무게감 있는 캐릭터를 로맨틱 코미디 안에 녹여낸 것, 이 모두가 칠살 특유의 날 선 에너지가 연기에 스며든 결과로 읽힌다.
식신도 뚜렷하게 있다. 식신은 표현의 기운이다. 자기가 가진 것을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는 능력. 〈멋진 신세계〉가 6회 연속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고, 넷플릭스 글로벌 톱 10 비영어권 쇼 2위까지 오른 데는 억지스럽지 않은 그의 표현력이 한몫했을 것이다. 식신이 뚜렷한 배우는 연기가 '힘을 준다'는 느낌보다 '그냥 그 사람이 거기 있다'는 느낌을 준다.
지금 허남준이 지나고 있는 시기는 정재의 기운이 흐르는 구간이다. 정재는 현실적인 성과와 안정적인 축적의 에너지. 〈멋진 신세계〉의 흥행이 딱 이 시기와 맞물린 건 우연이 아닐 수 있다. 다만 타고난 구조에서 정재는 거의 없는 편이라, 이 시기의 성과를 발판 삼아 무리하게 확장하기보다는 차분히 다음 작품의 내실을 다지는 쪽이 본인의 회로에 더 잘 맞는다.
비견과 정인이 뚜렷한 사람은 오래가는 배우가 되는 경우가 많다. 유행을 타지 않고, 자기 색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허남준이 앞으로 어떤 역할을 선택하든, 결국 그 선택의 기준은 '내가 이 캐릭터를 내 방식으로 할 수 있는가'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 방식이 통한다는 걸, 지금 시청자들이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