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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친 인간관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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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이 너무 오래 조용할 때: 남의 사주 속 내 자리

휴대폰이 너무 오래 조용할 때

휴대폰이 조용한 지 꽤 됐다.

쉬고 싶어서 꺼 둔 조용함이 아니다. 어딘가 이상한데, 따져 보면 하나도 이상할 게 없는 조용함이다.

아무도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손이 저절로 움직인다. 배터리를 본다. 요금이 밀렸나 본다. 와이파이 신호를 본다.

그래도 미심쩍어서 남들 SNS를 열어 본다. 세상이 멀쩡히 돌아가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세상은 멀쩡하다. 다들 밥 먹고, 여행 가고, 모여서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에 내가 없을 뿐이다.

통신사는 잘못이 없다.

그쯤 되면 의심이 방향을 바꾼다. 기계에서 나에게로.

나, 이제 별로 안 중요한가.


1. 착한 건 입장권이다

어릴 때 들은 말이 있다. 착하게 살면 사람들이 알아준다. 진심은 통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착하면 사람들이 나를 좋게 본다. 거기까지는 맞다. 그런데 좋게 보는 것과 전화를 거는 것은 다른 일이다.

1958년, 미국 사회학자 조지 호먼스(George Homans)가 「교환으로서의 사회적 행동(Social Behavior as Exchange)」이라는 논문을 냈다. 사람 사이에 오가는 것을 주고받기, 곧 교환(exchange)으로 본 시각이다. 뒤에 피터 블라우(Peter Blau)가 이어받아 사회 교환 이론(social exchange theory)으로 키웠다.

듣기 좋은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데 반박하기도 어렵다.

주고받는 것이 꼭 돈일 필요는 없다. 정보일 수도, 기회일 수도 있다. 같이 있으면 마음이 풀리는 느낌일 수도, 대화 끝에 머리가 맑아지는 경험일 수도 있다.

노골적인 것부터 품위 있는 것까지 종류는 많다. 그래도 무언가는 오간다.

아무것도 오가지 않는 사람은 좋은 사람으로 기억된다. 장례식 조사에는 실리는데, 통화 목록에는 안 실린다.

그래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

말수는 적은데 손에 쥔 게 있으니, 술자리가 늘 그를 기다린다.

성질은 고약한데 문제를 해결하니, 다들 뒤에서 욕하면서도 전화를 건다.

무리에 잘 섞이지 못하는데 재주가 있으니, 초대 명단에서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지각 한 번 안 하고, 메시지에 바로 답하고, 언제 양보하고 언제 박수 쳐야 하는지 아는 사람. 다 갖췄는데, 남이 놓기 싫어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

이 사람이 조용히 순번에서 밀린다. 한 칸, 또 한 칸.

착한 건 입장권이다. 입장권은 문을 통과시켜 줄 뿐, 자리를 맡아 주지는 않는다.


2. 스스로에게 처방하는 문장들

이 사실은 자존심을 긁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신 들려줄 문장을 미리 만들어 둔다.

"나는 먼저 연락하는 사람이 아니야. 맞는 사람을 기다리는 거지."

"다들 바쁘잖아. 연락이 뜸하다고 정이 얕은 건 아니야."

"진짜 친구는 자주 연락 안 해도 돼."

"날 안 찾는 건 그 사람들 그릇이 작아서야."

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약효가 진통제 수준이다. 아픈 걸 잠깐 잊게 해 줄 뿐, 아픈 자리는 그대로 있다.

사실은 단순하다.

필요하면 연락한다. 좋아하면 연락한다. 존경하면 연락한다. 같이 일하고 싶으면 연락한다. 물어볼 게 있으면 연락한다.

연락은 뜸한데 정은 깊다는 말, 듣기는 좋다. 증명할 길이 없을 뿐이다.


3. 연락은 저절로 일어나야 한다

관계가 살아 있는지 보는 잣대는 하나면 된다. 저절로 일어나는가.

내가 계속 먼저 연락하고, 계속 기념일을 챙기고, 계속 약속을 잡아야 겨우 이어지는 관계가 있다.

그건 관계라기보다 인공호흡이다. 숨은 내가 불어 넣고, 상대 가슴은 내 손이 누를 때만 오르내린다.

나는 관계를 지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실은 관계가 나를 갉아먹고 있다.

그리고 먼저 연락할 때마다 도장을 하나씩 찍는다. 나는 저쪽에 그다지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는 확인 도장.

그렇다고 연락을 아예 놓아 버리면 어떻게 되는가. 식는다.

옥스퍼드의 로빈 던바(Robin Dunbar)는 한 사람이 안정적으로 꾸릴 수 있는 관계가 150명 안팎이라는 '던바의 수'로 알려진 학자다.

그가 샘 로버츠(Sam Roberts)와 함께 2011년에 낸 연구가 있다. 영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으로 떠나는 학생들의 인간관계를 열여덟 달 동안 따라간 연구다.

친구 사이는 만나고 연락하는 횟수가 줄자 마음의 거리도 같이 벌어졌다. 가족 사이는 연락이 줄어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피는 연락 없이도 버틴다. 친구는 안 버틴다. 연구까지 갈 것 없이 다들 짐작하던 일이지만, 숫자로 확인하니 김이 샌다.

그러니 친구 사이의 연락은 누군가 계속 들이는 품이다. 문제는 그 품을 한쪽만 들일 때다.


4. 장군이 쫓겨나자 손님이 사라졌다

기원전 260년, 조나라와 진나라가 장평에서 맞붙었다.

조나라 장수 염파는 성벽을 높이 쌓고 나가 싸우지 않았다. 진나라는 이 버티기가 껄끄러웠다. 그래서 소문을 퍼뜨렸다. 진나라가 정말 두려워하는 건 늙은 염파가 아니라 젊은 조괄이라고.

조나라 왕은 이 말에 넘어가 염파를 내리고 조괄을 앉혔다. 결과는 역사에 남은 대로다. 조나라 군사 수십만이 땅에 묻혔다.

장수 자리에서 밀려나 집으로 돌아온 염파 곁에는, 그 많던 식객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몇 해 뒤 연나라가 쳐들어오자 조나라는 다시 염파를 장수로 썼다. 그러자 식객들이 돌아왔다.

염파가 말했다. 다들 물러가시오.

식객 하나가 대답했다.

吁 君何見之晚也 夫天下以市道交 君有勢 我則從君 君無勢則去 此固其理也 有何怨乎

허허, 장군께서는 어찌 이리 늦게 깨치십니까. 세상은 장사하는 법으로 사귑니다. 장군께 힘이 있으면 저희가 따르고, 힘이 없으면 떠납니다. 원래 이치가 그런 것인데 원망할 게 뭐 있습니까.

사마천의 『사기』 「염파인상여열전」에 나오는 장면이다.

뻔뻔하다. 그런데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더 얄밉다.

시장의 방식으로 하는 사귐. 이천삼백 년 가까이 지나는 동안 바뀐 건, 장터가 손바닥만 한 휴대폰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 정도다.


5. 남의 사주 속에서 나는 어떤 글자인가

명리에서 십신(十神)은 일간(日干)을 기준으로 다른 글자가 나에게 무엇인지를 따진다. 나를 낳는 글자, 내가 낳는 글자, 내가 치는 글자, 나를 치는 글자, 나와 같은 글자.

이 셈을 거꾸로 돌려 볼 수 있다. 남의 판에서 나는 무슨 노릇을 하고 있는가.

두 사람 일간의 오행 관계로 실제로 따지는 방법도 있다. 여기서는 노릇으로만 본다. 상대가 나를 찾을 때 무엇을 들고 가려 하는지, 그게 곧 내가 그 사람 판에서 맡은 글자다.

편재(偏財) 노릇: 기회와 줄을 쥔 사람

편재는 크게 돌고 빠르게 움직이는 재물이다. 거래, 정보, 소개, 기회.

이 노릇을 하는 사람 주위에는 사람이 많이 모이고 전화도 빨리 온다.

염파의 식객들이 본 염파가 이 자리였다. 줄이 마르면 전화도 마른다. 줄이 다시 이어지면 전화도 다시 온다.

식객 말대로 원망할 일이 아니다. 원래 그런 자리다.

정관(正官) 노릇: 명함 앞으로 오는 전화

정관은 질서와 이름이다. 직함, 소속, 공식 관계.

이 자리로 걸려 오는 전화는 사람 앞이 아니라 명함 앞으로 온다.

본인은 그걸 잘 모른다. 받는 전화가 다 자기 앞으로 오는 줄 안다.

물러나는 날 알게 된다. 명함을 반납하면서 전화번호부의 상당 부분도 같이 반납한다는 걸.

정인(正印) 노릇: 기대고 배우는 자리

정인은 일간을 낳고 먹이는 글자다. 누가 나를 찾아와 배우고, 기대고, 마음을 추스른다면, 나는 그 사람 판에서 정인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리는 오래간다.

다만 정인이 하는 일은 키우는 것이고, 잘 자란 것은 언젠가 혼자 선다. 자식이 독립하면 전화가 줄듯이, 잘 키울수록 덜 찾는다.

졸업식에서 서운한 쪽은 대개 선생이다.

식신(食神) 노릇: 같이 있으면 편한 사람

식신은 일간이 기운을 부드럽게 내보내는 글자다. 먹고, 놀고, 웃고, 쉬는 자리.

어떤 사람은 들어오기만 해도 방 안 공기가 풀린다. 비위를 맞추는 재주와는 다르다. 자기가 흔들리지 않으니, 옆 사람도 흔들림이 멎는다. 맞장구 기술로는 흉내가 안 된다.

이 노릇을 하는 사람에게 오는 연락에는 이유가 없다. "그냥 생각나서."

이유가 없으니 이유가 사라질 일도 없다. 가장 오래가는 전화가 이 자리로 온다.

비견(比肩) 노릇: 같은 처지라서

비견은 나와 오행도 같고 음양도 같은 글자다. 같은 학교, 같은 회사, 같은 육아 전쟁터. 처지가 같아서 말이 통한다.

처지가 갈리면 연락도 갈린다. 한 사람이 이직하고, 한 사람이 결혼하고, 한 사람이 이민을 간다.

누가 배신한 것도 아니다. 같은 자리에 서 있던 사람이 다른 자리로 옮겼을 뿐이다.

겁재(劫財) 노릇: 가장 확실하게 울리는 전화

겁재는 나와 오행은 같은데 음양이 다른 글자다. 같은 편 같은데, 내 몫을 나눠 가져간다.

전화가 가장 확실하게 오는 자리가 여기다.

몇 년 소식 없던 동창이 반갑게 안부를 묻는다. 세 번째 문장쯤에서 본론이 나온다. 돈 얘기다.

휴대폰이 조용해서 서운한 사람은 한 번쯤 셈해 볼 만하다. 지금의 이 조용함 속에 겁재 전화가 몇 통 빠져 있는지.

한눈에 보면

내가 맡은 노릇상대가 들고 가는 것연락이 끊기는 때
편재기회, 정보, 줄줄이 마를 때
정관직함, 소속명함을 내려놓을 때
정인배움, 기댈 곳상대가 혼자 설 때
식신편안함, 웃음잘 끊기지 않는다
비견같은 처지처지가 갈릴 때
겁재내 몫빌려줄 게 바닥날 때

6. 내 판이 먼저 조용해지는 때

전화가 안 오는 이유가 늘 바깥에만 있는 건 아니다. 내 판이 먼저 조용해지는 때가 있다.

편인(偏印)이 들어올 때

편인은 일간을 낳는 글자이긴 한데, 정인처럼 따뜻하게 먹이지 않는다. 혼자 파고들고, 의심하고, 문을 닫는다.

명리에서는 편인을 도식(倒食)이라고도 부른다. 밥그릇을 엎는 글자라는 뜻이다. 편인이 식신을 치기 때문이다.

먹고 놀고 웃던 식신의 자리가 편인에게 눌리면, 사람이 재미가 없어진다. 본인도 모임이 귀찮고, 남도 그 사람을 부를 이유가 줄어든다.

휴대폰이 조용해지는 건 그다음 일이다. 순서가 반대인 줄 알고 서운해하는 사람이 많다.

정관이 다칠 때

운에서 상관(傷官)이 정관을 치는 때가 있다. 상관견관(傷官見官)이다.

자리가 흔들리고, 윗사람과 부딪히고, 명함이 바뀐다. 명함 앞으로 오던 전화가 그때 같이 빠져나간다.

원국, 대운, 류년

원국(原局)은 판의 바탕을 정한다. 대운(大運)은 십 년 단위로 그 바탕을 굳히기도 하고, 흔들기도 하고, 잠시 다른 모양으로 바꿔 놓기도 한다. 류년(流年)은 해마다 바깥에서 세게 밀고 들어온다.

한 해가 조용했다면 류년이 지나가며 생긴 일일 수 있다. 바깥에서 온 힘은 세지만, 지나간다.

대운이 바뀌면서 조용해졌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안쪽 판이 바뀌는 중이다.

명리 공부하는 사람들 사이에 오래된 말이 있다. 대운이 바뀌면 곁에 있는 사람이 바뀐다.


7. 계속 쓰이는 사람, 계속 자라는 사람

여기서 하나 걸리는 게 있다.

쓸모로 전화를 받는 사람은 쓸모를 계속 증명해야 한다. 공구는 녹이 슬면 바뀐다. 이런 관계에서 불려 다니는 건 사람이 아니라 기능이다. 오래 하면 지친다.

그래서 다른 길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쓰이려고 애쓰지 말고 자라라.

읽고, 생각하고, 일을 하고, 무언가를 만들다 보면, 비슷한 사람은 붙고 나를 갉아먹던 사람은 알아서 떨어진다고. 그런 사람의 휴대폰은 늘 시끄럽지는 않지만, 울릴 때는 깨끗하게 울린다고.

맞춰 주며 사는 사람은 늘 계산한다. 이 말 해도 되나. 이 부탁 거절해도 되나. 관계가 끊길까 봐 늘 조심한다.

당장은 통한다. 길게 가면 바닥이 난다.

조용한 휴대폰을 앞에 두고 물어볼 만한 것이 셋 있다.

첫째, 지난 한 해 동안 나는 연락받을 만한 쪽으로 움직였나, 제자리를 돌았나.

실력, 보는 눈, 몸과 마음의 상태. 올라갔는지, 그대로인지.

둘째, 친구라고 믿은 사람들은 관계였나, 착각이었나.

관계는 침묵을 견딘다. 착각은 침묵하면 흩어진다.

셋째, 내가 오늘 감쪽같이 사라진다면, 진짜로 알아챌 사람은 누구인가.

그 사람들이 내 실제 반경이다. 생각보다 좁다. 대신 진짜다.


염파 이야기에는 뒷부분이 있다.

세월이 흘러 조나라 왕이 바뀌었고, 새 왕은 다시 염파를 장수 자리에서 내렸다. 화가 난 염파는 위나라로 떠났다. 위나라는 그를 받아 주기만 하고 쓰지는 않았다.

그사이 조나라는 진나라에 거듭 밀렸다. 조나라 왕이 염파를 떠올렸다. 아직 쓸 만한지 보고 오라며 사신을 보냈다.

염파의 원수 곽개가 그 사신에게 금을 두둑이 쥐여 주었다.

사신 앞에서 염파는 밥 한 말과 고기 열 근을 먹어 치웠다. 그러고는 갑옷을 입고 말에 올랐다. 아직 쓸 만하다는 걸 보여 주려고.

돌아간 사신은 이렇게 아뢰었다.

廉將軍雖老 尚善飯 然與臣坐 頃之三遺矢矣

염 장군은 늙었어도 아직 진지를 잘 드십니다. 다만 소신과 마주 앉아 있는 잠깐 사이에 세 번이나 뒤를 보셨습니다.

조나라 왕은 염파가 늙었다고 여기고, 부르지 않았다.

염파는 끝내 초나라로 건너가 장수가 되었지만 공을 세우지 못했다. "나는 조나라 사람들을 데리고 싸우고 싶다." 그 말을 남기고 수춘에서 죽었다.

밥 한 말을 다 먹었는데, 전화는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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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제, 내 사주로

글로 익힌 원리를 본인 명판에 직접 적용한 정밀 진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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