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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가 뽑아 준 장원: 시험운과 벼슬운은 따로 간다

원수가 뽑아 준 장원: 시험운과 벼슬운은 따로 간다

당나라 덕종(德宗) 건중(建中) 4년, 783년 진사 시험의 장원은 설전(薛展)이다.

그해 시험을 주관한 사람은 예부시랑 이서(李紓)였고, 급제자는 스물일곱 명이었다. 그 스물일곱 가운데 훗날 재상에 오르는 무원형(武元衡)이 있었다.

여기까지는 기록에 남은 사실이다.

그 사이를 채우는 이야기는 따로 전한다.


장원이 될 상

설전이 어릴 때, 관상 보는 사람이 그의 얼굴을 보고 말했다.

"이 아이는 장차 반드시 장원을 한다."

듣기 좋은 말이었다. 집안 사정은 그 말과 거리가 멀었다.

할아버지가 모반 사건에 얽힌 적이 있어서 설전은 죄인의 자손이었다. 게다가 설씨 집안은 대대로 무장을 낸 집이었다. 장원은커녕 글로 이름을 낸 사람이 없었다.

하나가 더 있었다. 설전은 이서라는 관리에게 밉보였다.

그 이서가 하필 과거를 주관하는 예부시랑이었다. 그는 기회가 될 때마다 주변에 손을 써서 설전을 뽑지 못하게 했다.


당나라 시험은 답안만 보지 않았다

오늘 시험은 이름을 가리고 채점한다. 당나라 과거는 그렇지 않았다.

응시자는 시험 전에 자기가 지은 시문을 두루마리로 엮어 고관들에게 돌렸다. 이것을 행권(行卷)이라 불렀다. 이름이 알려진 사람, 뒤에서 말을 넣어 주는 사람이 있는 쪽이 유리했다.

답안지의 이름을 풀칠해 가리는 호명(糊名)이 과거 전반에 자리를 잡은 것은 송나라 때 일이다.

그러니 당나라 진사과는 실력 반, 평판 반, 시험관의 마음 반이었다.

셋을 더하면 하나가 넘는다. 당나라 응시생들이 느낀 무게가 대략 그랬다.


올해는 그만두자

몇 번을 떨어지고 나니 설전도 지쳤다.

올해도 이서가 시험을 주관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사람이 시험관이면 볼 것도 없다. 집안에 장원 난 적도 없다. 고향으로 돌아가자.

짐을 싸던 그에게 예전의 그 관상가가 다시 찾아왔다.

"그만두지 마시오. 올해는 시험운이 좋소. 이번에 반드시 장원을 하오."

설전은 반신반의했다.

다만 시험이란 떨어져도 잃을 것이 없는 일이다. 떨어지는 데는 이미 이골이 나 있었다. 한 번 더 보기로 했다.


이서는 이번에도 설전을 떨어뜨렸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이서는 설전을 떨어뜨리고, 조일화(趙日華)라는 사람을 장원으로 올렸다.

조일화는 한림학사의 사위였다. 발표가 나자 관리들 사이에 말이 돌았다. 뒤에서 돈이 오갔다는 것이다.

소문은 황제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황제가 이서를 불렀다.

"너희가 무슨 거래를 했는지 짐도 들었다. 체면을 봐서 죄는 묻지 않겠다. 다만 장원을 바꿔서 일을 가라앉혀라. 이대로 밖에 알려져 다른 이들이 들고일어나면, 그때는 짐도 너를 감싸 줄 수 없다."

난처해진 것은 이서였다.

돈은 이미 받았고, 처음부터 머릿속에 넣어 둔 이름은 조일화 하나였다. 다른 응시자는 이름도 얼굴도 관심 밖이었다. 그런데 황제는 그 자리에서 다른 이름을 대라고 재촉했다.

머릿속에 들어 있는 이름은 둘뿐이었다.

하나는 돈을 받고 밀어 준 조일화.

다른 하나는 기를 쓰고 떨어뜨려 온 설전.

이서의 입에서 튀어나온 이름은 이랬다.

"설전이 장원을 할 만합니다."


자네는 내 문생이 아니네

설전은 그렇게 장원이 되었다. 그는 이서가 마음을 고쳐먹은 줄 알았다.

당나라에서는 급제자가 그해 시험관을 좌주(座主)로 모시고, 스스로를 그 문하의 문생(門生)이라 불렀다. 설전도 예를 갖추어 이서에게 인사를 갔다.

이서는 차갑게 말했다.

"나는 자네를 문생으로 여기지 않네. 자네 재주가 뛰어나서 된 것도 아니야. 순전히 하늘이 거든 것일 뿐이네."


그 뒤의 두 사람

설전의 빛나는 순간은 거기까지였다.

조정에 뿌리가 없었다. 집안은 죄인의 자손이었고, 시험을 주관한 좌주는 그를 제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당나라 관리 사회에서 좌주와 문생, 같은 해 급제한 동년(同年)은 서로를 끌어 주는 줄이었다. 설전에게는 그 첫 줄이 처음부터 끊겨 있었다.

그의 묘지(墓誌)에 남은 마지막 벼슬은 상서성 사부원외랑(祠部員外郞)이다. 예부 아래에서 제사를 맡는 부서의 실무 관직이다.

장원에 오르고 열다섯 해 뒤인 798년, 그는 세상을 떠났다.

같은 해 급제한 무원형은 다른 길을 걸었다.

헌종(憲宗) 때 재상에 올라 지방 번진을 누르는 조정의 한가운데에 섰다. 구당서와 신당서에 모두 그의 열전이 실렸고, 전당시에는 그가 지은 시가 두 권에 걸쳐 실렸다.

같은 시험장에서 같은 방(榜)에 이름을 올린 두 사람이다. 한 사람은 맨 앞에 이름이 걸렸고, 한 사람은 스물일곱 명 가운데 하나였다.


류년이 여는 문, 원국이 받치는 자리

명리로 옮기면 이 이야기에는 두 개의 시간이 겹쳐 있다.

하나는 류년(流年) 이다.

한 해 동안 들어왔다가 나가는 기운이다. 류년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오지만, 그해만큼은 원국(原局)과 대운(大運)보다 세게 작용한다. 바깥에서 밀고 들어오는 힘이기 때문이다.

시험 합격, 뜻밖의 발탁, 갑작스러운 사고처럼 한 해에 꽂히는 일은 대개 류년이 계기를 만든다.

다른 하나는 원국과 대운 이다.

원국은 태어날 때 정해진 판이다. 한 사람이 서 있을 수 있는 높이의 바탕을 만든다.

대운은 십 년씩 그 바탕 위를 지나가면서, 바탕이 단단해지는지, 무너지는지, 잠시 다른 모양으로 바뀌는지를 정한다.

류년이 바깥의 힘이라면, 원국과 대운은 안쪽의 힘이다.

류년원국과 대운
힘의 방향바깥에서 들어온다안쪽에서 받친다
머무는 시간한 해원국은 평생, 대운은 십 년
하는 일문을 연다문 안에서 버티게 한다
이 이야기에서장원 한 번그 뒤 열다섯 해

관상가가 짚은 것은 "올해의 시험운"이었다. 평생의 그릇을 말한 것이 아니라 한 해의 문을 말한 것이다.

관상가가 어린 설전을 처음 보고 한 말도 장원이었다. 재상이 아니었다.


들어온 정관, 뿌리 내린 정관

정관(正官)은 정해진 질서 안에서 자리를 얻는 기운이다. 벼슬, 직함, 시험 합격이 모두 이 글자와 닿아 있다.

원국에 정관이 없거나, 있어도 지지에 뿌리 없이 천간에 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런 사람에게도 류년으로 정관이 들어오는 해가 있다. 그해에는 자리가 생긴다. 시험에 붙고, 이름이 오른다.

그런데 류년은 해가 바뀌면 나간다.

원국에 그 정관을 받아 줄 뿌리가 없고, 대운도 그 자리를 이어 주지 않으면, 얻은 자리는 얻은 높이에서 멈춘다. 떨어지지는 않지만 더 오르지도 않는다.

반대쪽에 원국의 정관이 지지에 뿌리를 내리고, 그 정관이 정인(正印)을 낳고, 정인이 다시 일간을 받치는 판이 있다. 관인상생(官印相生)이다.

이런 판은 대운이 맞게 들어오면 자리가 자리를 부른다. 한 번 오른 계단에서 다음 계단으로 넘어간다. 시험에서 맨 앞에 서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

설전에게 그해가 문을 열어 주었다면, 문 안쪽에서 그를 받쳐 줄 것은 처음부터 많지 않았다.


막던 손이 문을 연 해

이 이야기에는 짚어 둘 대목이 하나 더 있다.

문을 연 손이 하필 이서였다.

류년이 움직이는 모양 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

원국에서 일간을 누르던 칠살(七殺)이 류년에 들어온 글자와 합(合)으로 묶이면, 누르던 힘이 그해만큼은 풀린다. 그리고 묶여 있던 합이 류년의 충(沖)을 맞아 깨지면, 묶였던 글자는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 나간다.

이서는 조일화와 돈으로 묶여 있었다.

그 묶음이 소문 하나에 깨졌다.

풀려난 손은 갈 곳을 찾다가, 늘 붙들고 있던 이름 하나에 닿았다. 떨어뜨리려고 외워 둔 이름이었다.

미워서 외운 이름이 장원 명단 맨 앞에 올라갔다.

이서가 "하늘이 거들었다"고 한 말은, 명리로 옮기면 류년이 했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서는 끝내 설전을 문생으로 부르지 않았다.

설전은 장원으로 기록에 남았고, 그 밖의 행적은 묘지 몇 줄로 남았다.

장원과 재상 가운데 하나를 고를 수 있다면 대부분은 재상을 고를 것이다.

재상 무원형은 815년 여름 새벽, 입궐하던 길에서 번진이 보낸 자객의 칼을 맞고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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