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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학이라는 말은 어디서 왔나: 검을 현 한 글자

현학이라는 말은 어디서 왔나: 검을 현 한 글자

천자문을 펴면 첫 줄이 이렇다.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를 황.

天地玄黃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는 말이다.

낮에 올려다본 하늘은 파랗다. 그런데 옛사람들은 하늘을 검다고 했다. 그들이 말한 검정은 먹물의 검정이 아니다.

후한의 허신이 지은 글자 사전 설문해자(說文解字)는 현(玄)을 이렇게 풀었다. 그윽하고 멀다. 그리고 한 줄을 더 붙였다. 검은데 붉은 기운이 도는 빛이다.

해가 지고 한참 지난 뒤의 하늘, 끝이 어디인지 보이지 않는 밤하늘의 빛이 현이다. 너무 깊어서 바닥이 안 보이는 것. 현학(玄學)은 이 글자에서 시작한다.


먼저 짚어 둘 것: 한국의 현학은 두 개다

한국어로 "현학적이다"라고 하면 칭찬이 아니다. 어려운 말을 늘어놓고 아는 척한다는 뜻이다.

이때의 현은 검을 현이 아니라 자랑할 현(衒)이다. 지식을 내다 팔듯 뽐내는 공부라는 뜻의 현학(衒學)이다.

소리는 같고 글자는 다르다. 그래서 명리 하는 사람이 "저는 현학을 합니다"라고 소개하면, 듣는 사람 머릿속에서는 아는 척 전문가가 먼저 떠오를 수 있다. 억울하지만 사전이 그렇게 되어 있다.

이 글에서 말하는 현학은 검을 현 쪽이다.


노자의 한 줄

현이라는 글자에 철학의 무게를 처음 실은 사람은 노자다. 도덕경 첫 장은 이렇게 끝난다.

玄之又玄 衆妙之門

깊고 또 깊으니, 온갖 묘한 것이 다 이 문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노자는 도(道)를 설명하려다가 설명할 말이 없어서 현이라는 글자를 꺼냈다. 바닥이 안 보이는 것, 그런데 모든 것이 거기서 흘러나오는 것. 그것을 한 번 깊다고 해서는 모자라 두 번 깊다고 했다.

도덕경에는 이 글자가 계속 나온다. 만물을 낳는 근원을 현빈(玄牝)이라 했고, 낳되 갖지 않고 키우되 부리지 않는 덕을 현덕(玄德)이라 했고, 날카로움을 꺾고 먼지와 섞여 하나가 되는 경지를 현동(玄同)이라 했다.

노자에게 현은 무엇을 꾸미는 말이 아니었다. 도가 앉아 있는 자리의 빛깔이었다.


이름이 붙은 때: 위진

현학이 학문의 이름이 된 것은 노자로부터 수백 년이 지난 위진(魏晉) 시대다.

후한이 무너지고 천하가 셋으로 갈라졌다가, 다시 사마씨의 진나라로 넘어가던 때다. 정권이 몇 번씩 뒤집히고, 바른 말 하던 선비가 하루아침에 목이 달아나던 시절이다.

그 시절 지식인들은 경전 글자 하나하나에 주석을 다는 한나라식 유학에 지쳐 있었다. 그들은 모여 앉아 맑은 이야기, 곧 청담(淸談)을 나눴다. 나랏일이 아니라 세상의 뿌리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들이 붙잡은 질문은 대략 이런 것이었다.

질문다룬 내용
유무(有無)있는 것이 먼저인가, 없는 것이 먼저인가
본말(本末)무엇이 뿌리이고 무엇이 가지인가
명교(名敎)와 자연(自然)예법과 이름의 질서를 따를 것인가, 타고난 그대로를 따를 것인가

이 흐름의 앞자리에 하안(何晏)과 왕필(王弼)이 있다. 위나라 정시(正始) 연간의 일이다.

왕필은 노자에 주를 달고, 주역에 주를 달았다. 그가 내놓은 생각의 요지는 없음을 근본으로 삼는다는 것이었다. 눈에 보이는 온갖 것은 가지이고, 그 뿌리에는 이름 붙일 수 없는 없음이 있다는 것이다.

이 사람이 세상을 떠난 것이 249년, 스물넷의 나이였다. 같은 해 하안은 사마의가 일으킨 정변에 휘말려 죽었다. 현학의 두 기둥이 한 해에 같이 무너졌다.

그 뒤를 이은 것이 죽림칠현이다. 혜강(嵇康)은 명교를 넘어 자연에 맡긴다고 했다. 대나무 숲에서 술을 마시고 거문고를 뜯으며 권력과 거리를 두었다. 혜강도 결국 사마씨에게 죽었다. 깊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수명이 대체로 짧던 시대였다.

진나라에 들어서는 곽상(郭象)이 장자에 주를 달아, 지금까지 읽히는 장자 주석의 기본이 되었다.


삼현이라는 이름

현학이 주로 읽은 책은 셋이다. 주역(周易), 노자(老子), 장자(莊子). 이 셋을 묶어 삼현(三玄)이라 부른다.

그런데 삼현이라는 묶음 이름을 글로 남긴 사람은 위진의 청담가들이 아니다. 6세기 북제(北齊)의 안지추(顔之推)가 자손에게 남긴 안씨가훈(顔氏家訓)에 이런 대목이 있다.

洎於梁世 茲風復闡 莊老周易 總謂三玄

양나라에 이르러 이 바람이 다시 일어나니, 장자와 노자와 주역을 통틀어 삼현이라 불렀다는 말이다.

안지추는 이어서 양 무제와 간문제가 몸소 강론에 나섰다고 적었다. 임금이 직접 강단에 섰으니, 이 무렵 현학은 한때의 유행을 넘어 시대의 교양이 되어 있었다.

안지추 본인은 이 풍조를 곱게 보지 않았다. 자손에게 이 이야기를 남긴 것도, 이런 공부가 세상 일에 별 쓸모가 없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삼현이라는 이름은 그 공부를 못마땅해하던 사람의 손으로 남았다.


나라가 세운 현학

현학은 국가 기관의 이름이 되기도 했다.

남조 송나라의 문제(文帝)는 원가(元嘉) 16년, 서기 439년에 학문 기관 넷을 나란히 세웠다. 뇌차종(雷次宗)이 맡은 유학(儒學), 하승천(何承天)이 맡은 사학(史學), 사원(謝元)이 맡은 문학(文學), 그리고 하상지(何尙之)가 맡은 현학(玄學)이다.

오늘날로 치면 국립대학 안에 유학과, 사학과, 문학과, 현학과를 두고 학과장을 따로 임명한 셈이다. 현학이 경전 공부와 역사 공부와 같은 줄에 선 것이다.

20세기에 들어 중국 철학사가 펑유란(馮友蘭)은 이 위진 현학을 신도가(新道家)라고 불렀다. 노장을 다시 읽어 새로 세운 도가라는 뜻이다. 서양에서도 이 사조를 네오타오이즘(Neo-Taoism)이라 부르는 일이 많다.


근대: 서양 말을 옮기다

청나라 말, 서양 학문이 밀려들면서 낯선 말을 한자로 옮기는 일이 큰일이 되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메타피직스(metaphysics)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원고를 후대가 정리하면서, 자연학 다음 자리에 놓인 책을 자연학 다음 책이라고 부른 데서 생긴 이름이다. 눈에 보이는 세계 너머의 근본을 묻는 공부다.

옌푸(嚴復)는 이 말을 현학으로 옮겼다. 보이지 않는 근원을 따진다는 점에서, 위진의 현학과 멀지 않은 말을 고른 것이다.

그런데 자리를 잡은 것은 일본 쪽 번역어였다. 철학자 이노우에 데쓰지로(井上哲次郎)가 주역 계사전의 형이상자위지도(形而上者謂之道), 곧 형체 위의 것을 도라 한다는 구절에서 따온 형이상학(形而上學)이 동아시아 공용어가 되었다.

번역 경쟁에서는 졌지만, 현학이라는 말은 이 무렵 한 번 더 이름을 날린다.

1923년 중국에서 과학과 현학의 논쟁, 이른바 과현논쟁(科玄論戰)이 벌어졌다. 철학자 장쥔마이(張君勱)가 칭화대학 강연에서 사람의 인생관은 과학으로 풀 수 없다고 말하자, 지질학자 딩원장(丁文江)이 반박 글을 냈다. 딩원장은 상대편을 현학 귀신(玄學鬼)이라고 불렀다.

이 논쟁 뒤로 현학이라는 말에는 과학의 맞은편이라는 그림자가 함께 따라다녔다. 노자의 그윽한 문이 근대 신문 지면에서는 귀신 소리를 들은 것이다.


지금 중국의 현학

요즘 중국 사람이 현학이라고 하면 대개 위진 철학을 떠올리지 않는다.

명리, 풍수, 관상, 육효, 기문둔갑, 자미두수 같은 것을 통틀어 부르는 말로 쓴다. 옛날에는 이것들을 술수(術數)라고 불렀다. 지금은 현학이라는 큰 지붕 아래로 옮겨 와 있다.

인터넷에서는 범위가 더 넓다. 게임 뽑기 운을 추카 현학(抽卡玄學)이라 하고, 시험 운을 시험 현학이라 한다. 뽑기 전에 손을 씻는다거나, 특정한 시간에만 뽑는다는 사람들이 자기 방법을 현학이라 부른다.

결과를 미리 알 수 없고, 노력과 결과가 정직하게 비례하지 않는 일. 그런 일이면 무엇이든 현학이 된다. 노자가 깊고 또 깊다고 했던 글자가, 지금은 왜 안 되는지 모르겠는 일 전반을 가리킨다.


검은빛의 자리

명리를 하는 사람에게 현이라는 글자는 따로 익숙하다.

오행에서 검은빛은 수(水)의 빛이다. 방위로는 북쪽이고, 사방을 지키는 네 짐승 가운데 북쪽을 맡은 것이 현무(玄武)다. 거북과 뱀이 한 몸으로 엉킨 모습이다.

수는 아래로 스며들고, 안으로 감추고,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사람의 덕목으로는 지(智)에 짝지어진다. 보이지 않는 것을 헤아리는 힘이다.

팔자를 펴 놓고 드러나지 않은 흐름을 읽는 일, 아직 오지 않은 운의 방향을 짚는 일이 수의 일과 닮았다. 술수가 현학이라는 이름 아래로 들어간 데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는 셈이다.


같은 글자, 다른 얼굴

노자에게는 도의 빛깔이었고, 왕필에게는 없음의 철학이었고, 송 문제에게는 학과 간판이었고, 딩원장에게는 욕이었고, 지금 중국 젊은이에게는 가챠 확률이다.

글자는 이천오백 년 동안 그대로인데, 그 글자가 가리키는 것은 계속 바뀌었다.

어느 쪽이 진짜 현학이냐고 묻는다면, 노자는 이미 같은 첫 장 첫머리에 답을 적어 두었다.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라고.

그러니 이 글은 제목부터 노자에게 한 소리 들을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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