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주왕자: 가운데 한 획
북송 인종 때, 구양수(歐陽修)는 조정의 싸움에 밀려 저주(滁州) 태수로 내려가 있었다.
그는 낭야산 기슭 정자에서 손님들과 술을 마셨고, 조금만 마셔도 취한다며 스스로를 취옹이라 불렀다. 「취옹정기」가 그때 나온 글이다.
태수를 따라 산길을 오르던 무리 가운데 두빈(杜彬)이라는 관리가 있었다. 구양수 곁에서 고을 일을 거들던 사람이다.
임기가 끝나자 두빈은 서울 개봉으로 올라갔다. 다음 자리를 받으려면 서울에서 기다려야 했다.
개봉에는 경덕사라는 이름난 절이 있었다. 거기에 사람들이 법화(法華)라고 부르는 스님이 있었다.
말과 행동이 반쯤 정신이 나간 사람 같았다. 그런데 앞일을 잘 맞힌다는 소문이 서울에 돌았다.
기다리는 사람은 할 일이 없다. 두빈은 향을 올리러 절에 갔다가 그 스님과 마주쳤고, 내친김에 제 앞날을 물었다.
스님은 종이와 붓을 가져오라고 했다.
두빈이 종이를 내밀자, 스님은 네 글자를 썼다.
南州王子
그러고는 히죽거리며 달아나 버렸다.
남주의 왕자.
두빈은 한참을 들여다보았지만 뜻을 알 수 없었다. 미친 스님이 쓴 글이니 못 알아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버리지는 않았다. 미친 사람의 말에 뼈가 들어 있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는 종이를 접어 깊이 넣어 두었다.
몇 달 뒤 자리가 났다. 장주(漳州) 지주였다.
지금의 푸젠성 남쪽, 바다에 닿은 고을이다. 한 고을을 통째로 맡는 자리이니 승진이었다.
부임한 두빈은 고을의 옛 기록을 뒤적이다가 손을 멈췄다.
칠십 년쯤 전, 오대십국이 어지럽던 시절에 이 일대는 청원군(淸源軍)이라는 세력이 쥐고 있었다. 이름은 절도사였지만 실제로는 제 나라처럼 굴었다.
땅이라고 해 봐야 천주와 장주 두 고을, 푸젠 남쪽 한 귀퉁이였다. 그래도 뜻은 컸다. 장주를 남주(南州)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남쪽 하늘의 주인이라는 뜻을 담았다고 전한다.
마지막 주인 진홍진(陳洪進)이 978년 송 태종에게 땅을 바치면서, 그 이름도 함께 사라졌다.
남주.
스님이 쓴 바로 그 남주였다.
"내가 여기 올 팔자였구나."
문제는 뒤의 두 글자였다.
왕자라니. 진홍진처럼 남쪽 한 귀퉁이를 쥐고 왕 노릇을 한다는 말인가. 그런 생각은 품는 것만으로도 목이 달아날 일이었다.
두빈은 머리를 굴렸다.
왕이란 결국 땅을 가진 사람이다. 고을 하나 맡은 현령도 백 리 땅의 제후라 해서 백리후(百里侯)라고 부르지 않던가. 그렇다면 장주 한 고을을 통째로 맡은 지주를 장주의 왕이라 불러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스스로를 왕자 자리에 앉히면서도 역모의 냄새는 말끔히 지웠다. 이 정도면 풀이 솜씨도 벼슬 솜씨다.
네 글자가 한 줄로 꿰어졌다. 남주에 가서 왕이 된다. 곧 장주 지주가 된다.
예언은 맞았다. 적어도 두빈은 그렇게 믿었다.
한 해 남짓 지나 두빈은 병이 들었고, 임지에서 세상을 떠났다.
아들 두욱(杜煜)이 스님들을 불러 재를 올렸다.
재를 마치고 스님들에게 공양을 내는 자리에서, 두욱은 아버지가 서울에서 미친 스님을 만났던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그 종이를 펴서 돌려 보였다.
종이를 받아 든 스님 하나가 말했다.
"이건 왕(王) 자가 아닙니다. 임(壬) 자입니다."
왕과 임은 획이 거의 같다. 가로획 셋에 세로획 하나다.
한나라 동중서는 왕이라는 글자를 이렇게 풀었다.
古之造文者,三畫而連其中謂之王。三者,天、地、人也,而參通之者,王也。
옛날 글자를 만든 사람이 가로획 셋을 긋고 그 가운데를 꿰어 왕이라 했다. 셋은 하늘과 땅과 사람이고, 이 셋을 꿰뚫는 자가 왕이라는 말이다.
임 자는 거기서 획의 길이만 다르다. 왕은 가운데 가로획이 짧고, 임은 가운데 가로획이 길다.
스님이 짚은 글자는 위아래가 짧고, 가운데 한 획만 옆으로 길게 뻗어 있었다.
미친 스님이 붓을 대충 놀린 것인지, 처음부터 그렇게 쓴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두빈은 일 년 넘게 그 종이를 품고 다녔다. 가운데 획이 긴 것을 못 봤을 리는 없다.
왕으로 읽고 싶었으니, 왕으로 보였을 것이다.
두욱은 사람을 시켜 만년력을 찾아보게 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날은 임자(壬子)일이었다.
지금 사람에게 날짜는 숫자다. 옛사람에게 날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천간 열 글자와 지지 열두 글자를 하나씩 짝지으면 갑자에서 계해까지 예순 개의 이름이 나온다. 육십갑자(六十甲子)다.
이 이름은 해에도 붙고 달에도 붙지만, 가장 오래 쓰인 것은 날이다. 춘추 시대 노나라 은공 때의 기록부터 지금까지, 이 예순 개의 이름은 하루도 끊기지 않고 돌아가고 있다. 그날의 이름을 일진(日辰)이라고 한다.
사주의 네 기둥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날의 이름이다. 태어난 날의 일진이 일주(日柱)가 되고, 명리에서 '나'라고 부르는 일간(日干)이 그 위에 앉는다.
그렇게 보면 남주왕자는 처음부터 한 덩어리의 말이 아니었다.
| 글자 | 무엇인가 |
|---|---|
| 南州 | 땅, 어디서 |
| 壬子 | 날, 언제 |
사람의 끝을 말할 때 필요한 것은 이 두 가지뿐이다.
두빈은 네 글자를 하나의 벼슬로 읽었다. 스님은 장소 하나와 날짜 하나를 적었다.
임자는 예순 개의 이름 가운데 마흔아홉째다.
임수(壬水)는 천간의 양수(陽水)다. 강이고 바다고 큰물이다.
자수(子水)는 지지에서 한겨울, 한밤중, 북쪽이다. 수의 기운이 가장 꽉 차는 자리다. 임수에게 자는 제왕(帝旺)의 자리다. 큰물이 제가 가장 왕성한 곳에 올라앉은 날이다.
옛 명리서는 병오(丙午), 무오(戊午), 임자 세 날을 따로 묶어 일인(日刃)이라 불렀다. 일간이 제 양인(羊刃)을 깔고 앉은 날이라는 뜻이다.
양인은 기운이 넘쳐 칼날이 되는 자리다. 이런 날은 힘이 한쪽으로 쏠려 있어서, 그 힘을 받아내야 하는 판에는 버거운 날이 된다.
두빈의 생년월일은 전하지 않는다. 그날의 물이 그의 판에서 무엇을 쳤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네 글자만 놓고 보면 이런 모양이다.
남쪽은 오행으로 화(火)의 방위이고, 지지로는 오(午)의 자리다. 자와 오는 정면으로 마주 보며 부딪친다. 자오충(子午沖)이다.
남쪽 땅으로 간 사람이, 북쪽의 가장 깊은 물이 차오른 날에 멈췄다. 종이 한 장 위에서 남과 북이 처음부터 마주 서 있었던 셈이다.
스님은 네 글자를 쓰고 웃으며 달아났다.
그 자리에서 두빈이 가운데 획을 길게 읽었다면, 장주로 가는 길에 올랐을까.
올랐다면, 임자일마다 대문을 걸어 잠그고 지냈을까.
예순 날에 한 번 돌아오는 날이다. 한 해에 여섯 번쯤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