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가장 못 끊는 것
친구가 욕심을 좀 내려놓기로 했다.
짜식 이제 좀 철이 드려나?
“이제 남 눈치 안 보고 살려고.”
좋은 생각이다.
“명품도 의미 없고, 성공도 남이 정한 기준이잖아. 내가 편하면 되는 거지.”
지난달에는 다른 친구의 제네시스 G80을 보고 옵션까지 물어봤었다. 그 사이에 깨달음을 얻었나 보다.
그러더니 묻는다.
“나 좀 달라 보이지 않냐?”
남 눈치를 안 보기로 한 사람의 첫 질문이 내 눈치다.
"너 좀 못생겨진 것 같은데..."
좀 각박한것 같지만, 친하다는 증거는 이런 말로 증명하는 거다.
같이 백화점에 갔다. 나는 낡은 구두를 바꾸려고 했다.
친구가 가격표를 보더니 말한다.
“그 돈이면 다른 데서 두 켤레 사겠다.”
맞는 말일 수 있다. 그런데 나는 두 켤레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신어보고 마음에 드는 한 켤레를 찾고 있다.
내가 말이냐? 소냐? 개냐? 두 켤레는 왜?
“그런 데 돈 쓰는 것도 결국 남한테 보여주려는 거야.”
친구는 내 마음까지 계산했다. 발이 편한지는 아직 안 물어봤다.
난 편하게 좋아서, 젤 편한 브랜드를 고른거다. 내게는 편안함과 품질이 우선이다.
직원이 구두를 가져왔다.
친구는 다른 손님을 보며 조용히 말한다.
“저 사람은 로고가 엄청 크네. 저런 건 자존감이 낮아서 사는 거지.”
처음 보는 사람의 자존감이 구두보다 빨리 측정됐다.
나는 생각했다. 이 친구가 명품을 안 사기로 한 것은 알겠는데, 안 사는 동안 이렇게 많은 사람을 평가해야 하나?
그럼 니가 사모은 명품 나에게 넘기던가?
욕심을 버린 사람이 아니라, 욕심을 버린 사람으로 남보다 위에 서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내 마음도 깨끗하지 않다.
구두를 신어보며 거울 앞에 선다. 괜찮다. 바지를 조금 올린다.
내일 소개팅에서 상대방이 알아볼까?
로고가 좀 더 크게 박힌걸 살까?
방금 친구에게 발이 편한 것이 중요하다고 했지만,,,
남과 내가 같을리가 있나?
필요한 것을 사는 마음과,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한 사람 안에 같이 있을 수 있다.
돈을 더 벌고 싶은 것도 마찬가지다. 가족에게 여유를 주고 싶고, 불안한 날을 대비하고 싶다. 그러면서 나를 무시하던 사람의 표정도 한번 보고 싶을 수 있다.
앞의 이유가 진심이라고 뒤의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뒤의 마음이 있다고 가족을 생각한 마음까지 가짜가 되는 것도 아니다.
명리에서 재성의 현실적인 결과를 구하고 관성의 평가와 자리를 의식하는 작용이 함께 움직일 수 있다. 비겁의 비교까지 붙으면 필요한 만큼 얻고도 누구는 더 얻었는지 보게 된다.
돈이 얼마나 있느냐와, 그 돈으로 누구 앞에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냐는 다른 질문이다.
그래서 욕망을 전부 없애야 편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먹고살려고 일하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고, 이루고 싶은 일이 있어서 움직이기도 한다.
문제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었는데도 남이 인정하지 않으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때다.
좋은 하루를 보냈는데 아무도 몰라서 허전하고, 내 선택에 만족하다가 누가 별로라고 하면 다시 바꾸고 싶어진다.
이럴 때는 내 삶을 고치는 데 쓰는 힘과, 내 삶이 괜찮다는 승인을 받는 데 쓰는 힘을 구분해볼 필요가 있다.
남에게 잘 보이는 일을 그만두겠다면서, 그 결심을 잘 봐달라고 할 수도 있으니까.
친구는 직원이 잠깐 자리를 비우자 또 말한다.
“나는 이제 이런 데 안 흔들려. 진짜 부자는 티를 안 내거든.”
유투브 그만봐라, 넌 유투브 볼 때마다 뭐 한다고 하더라
자기 계발서 그렇게 보면, 니가 하나 쓰고, 강의팔이로 돈 벌겠다.
실제로 쓸데없는 소비를 줄였다면 좋은 일이다. 돈도 덜 쓰고 마음도 편해졌을 수 있다.
다만 옆에서 듣는 나는 왜 자꾸 이 친구가 얼마나 대단한지 말해줘야 할 것 같지?
물론 돈을 주면 말해줄 생각이다. 공짜로 양심을 버릴수는 없다.
직원이 돌아와 묻는다.
“고객님도 한번 신어보시겠어요?”
친구가 손을 젓는다.
“저는 이런 거 별로 관심 없어요.”
직원이 웃으며 내 쪽으로 돌아선다.
내 구두 색깔 이야기를 한다. 친구는 잠깐 조용하다.
그러더니 대화에 끼어든다.
“제가 못 사서 안 사는 건 아니고요.”
직원이 다시 고개를 돌린다.
“아, 네.”
친구가 말을 잇는다.
“마음에 들면 가격은 별로 신경 안 써요.”
누가 물어봤냐고 찌르고 싶지만,,, 삐질까봐 참았다.
남자가 좀 쪼잔하다.
나는 신발끈을 묶는다.
친구가 아까 비싸다고 했던 구두를 집어 든다.
“이거 제 사이즈도 있어요?”
좀있다가 점원에게 리베이트 있냐고 물어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