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얻어먹었는데, 왜 결정권까지 줘야 하지?
친구가 사업 설명회에 같이 가자고 했다.
“밥만 먹고 와도 돼. 호텔 뷔페야.”
무슨 사업인지는 아직 안 물었다.
호텔 이름부터 검색했다. 뷔페 사진이 좋다. 댓글도 좋다.
설명회가 갑자기 맘에 든다.
이것 꼭 가봐야 할 것 같다.
“가입 같은 건 안 할 거야.”
“당연하지. 내가 너한테 이상한 거 권하겠냐.”
이 친구가 누구랑 결혼해야 할지도 잘 모르면서 남에게 연애 조언은 잘한다. 사업 설명회를 소개했다고, 그 사업이 좋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가보니 담당자가 반갑게 맞는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좋은 분 모시고 오셨네요.”
내가 뭘 하는지는 모른다. 이름도 방금 명찰에서 봤다.
그래도 좋은 사람이라는 말은 듣기 좋다. 굳이 어떤 점이 좋냐고 따져서 칭찬을 취소시킬 필요는 없겠지. 칭찬을 구걸해서 받은 것도 아니니까,,,
밥을 먹으면서, 설명을 듣는다. 담당자가 커피도 가져다준다. 기념품도 챙겨준다. 머리 좋네, 밥을 먹어야 하니까, 계속 앉아서 들어줘야 한다.
“필요하신 것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세요.”
나를 제법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회사에서도 이 정도로 챙겨주면 출근할 맛이 날 텐데. 탕비실의 간식을 좀 더 좋은 것으로 바꿔주면, 회사에 충성할텐데, 그걸 모르나? 바보들 ,, 생각한다.
설명이 끝나자 신청서를 내민다.
“오늘 오신 분들께만 조건을 맞춰드립니다.”
돈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자료 좀 보고 생각해볼게요.”
“다들 그렇게 하다가 기회를 놓치세요.”
친구가 옆에서 거든다.
“내가 괜히 데려왔겠냐. 나도 하는 건데.”
갑자기 이놈이 다단계에 빠졌나?
아니면 나에게 사기치려는 건가?
의심이 순식간에 폭증한다.
친구가 하는 일이라고 모두 잘된 것은 아니다. 예전에 같이 산 운동기구도 지금은 빨래를 말리고 있다.
그런데 입으로는 다른 말이 나온다.
“그렇지. 네가 알아봤겠지.”
방금 뷔페를 몇 접시 비운줄 모른다. 돈도 안냈는데, 뽕을 뽑았다. 기념품도 내 가방에 있다. 이제 와서 못 믿겠다고 말하면 먹을 것만 챙긴 사람이 되는 기분이다.
사실 먹을 것을 챙기러 왔다. 그냥 그렇게 보여지는게 싫을 뿐
처음부터 밥만 먹고 가도 된다고 했다.
호의를 받은 사실과, 그 사람이 권하는 일에 동의해야 하는 것은 별개다.
담당자는 친절했을 수 있다. 친구도 정말 좋은 기회라고 믿을 수 있다. 내가 거절하면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나는 먹느라 설명 못 들었다.
문제는 그 아쉬움을 내가 결정할 시간을 줄이거나 질문을 막는 데 쓰느냐는 것이다.
“오늘 못 정하면 다음에 안 되는 건가요?”
“친구분 믿고 오셨는데 너무 어렵게 생각하시네요.”
내가 물은 것은 조건인데, 대답은 우정으로 온다. 나는 이 친구의 맛집 찾는 능력은 믿는다. 나는 이 친구가 근육 키우는 법을 잘아는 것은 믿는다. 그러나 그걸 믿는다고, 다른 능력까지 믿는건 아니다.
이제 돈을 낼지 말지가 아니라 친구를 믿는지 아닌지를 시험받는다.
명리에서 비겁의 친밀함과 협력은 힘이 되지만, “우리 사이에”가 서로 확인할 것을 생략하게 만들 수도 있다. 소개한 사람을 잘 안다는 것과 소개받은 일을 잘 안다는 것은 다르다.
재성의 현실적인 계산도 작은 선물에만 붙이면 엉뚱한 곳에서 정확해진다. 기념품 가격은 찾아보고 좋아하면서, 내가 앞으로 낼 돈과 해야 할 일은 대충 듣는 것이다.
뷔페값은 바로 계산했다. 내 시간은 아직 계산 안 했다.
“밥은 잘 먹었어요. 신청은 자료 보고 따로 결정할게요.”
기념품을 받은 손으로 말하니 조금 민망하다. 민망하다고 서명까지 할 일은 아니다.
나오는 길에 친구가 말한다.
“나도 너 잘되라고 데려온 거야.”
그러다가 하나를 더 알려준다. 소개한 사람이 가입하면 친구에게도 수당이 나온단다.
“그럼 나 가입하면 너도 돈 받아?”
“받기는 하지. 근데 돈 때문에 너 데려왔겠냐.”
돈 때문에만 데려온 것은 아닐 수 있다. 내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과 자기도 돈을 받고 싶은 마음이 같이 있을 수도 있다.
그걸 처음부터 말했으면 좋았을 텐데.
나도 조금 기분이 나쁘다. 내 몫 없이 저놈만 받는다고 생각하니까 더 나쁘다.
친구에게 얼마인지 물어본다.
액수를 듣고 잠깐 조용해진다.
생각보다 크다.
“그럼 그걸 나랑 나누면 되는 거 아니야?”
친구가 나를 본다.
나는 어느새 가입 비용에서 내 몫을 빼고 있다. 조금 전까지 궁금했던 사업 내용은 다시 뒤로 밀린다.
"50:50 콜"
어째 이득본 기분이면서, 아닌것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