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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40분생의 일주는 어느 날인가: 야자시와 조자시

밤 11시 40분에 태어난 사람이 있다고 하자. 만세력 두 개에 생년월일시를 넣으면 사주가 두 개 나온다.

시주(時柱)는 같다. 년주도 월주도 같다. 다른 것은 단 하나, 일주(日柱)다. 한쪽은 태어난 날의 일주를 쓰고, 다른 쪽은 다음 날의 일주를 쓴다.

일주가 바뀌면 일간(日干)이 바뀐다. 일간은 사주의 주인이다. 주인이 바뀌면 나머지 일곱 글자가 맡는 십신(十神)이 모두 다시 짜인다. 격(格)의 이름도, 배우자의 별도, 자녀의 별도 바뀐다. 같은 사람을 놓고 남의 사주를 읽게 되는 것이다.

이 갈림의 이름이 야자시(夜子時) 와 조자시(朝子時) 다. 중국에서는 야자시를 晚子時, 조자시를 早子時라고 부른다.


1. 두 갈래의 주장

자시(子時)는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 두 시간이다. 이 두 시간을 어떻게 다루느냐를 두고 명리가들이 두 패로 나뉜다.

구분나누는 쪽나누지 않는 쪽
날이 바뀌는 시각자정 (밤 12시)자시가 시작하는 밤 11시
밤 11시~12시 출생야자시. 일주는 태어난 날자시. 일주는 다음 날
밤 12시~새벽 1시 출생조자시. 일주는 그날자시. 일주는 그날
밤 11시~12시 출생의 시주다음 날 자시의 간지다음 날 자시의 간지

표의 마지막 줄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지금 야자시를 쓰는 쪽의 주류는 일주만 태어난 날로 두고, 시주는 다음 날 자시의 간지를 가져다 쓴다. 그러니 두 패가 실제로 다투는 것은 시주가 아니라 일주 하나다.

하루 스물네 시간 가운데 한 시간이 이 다툼에 걸린다. 그 한 시간에 태어난 사람은 어느 만세력을 쓰느냐에 따라 주인이 바뀐다.


2. 같은 사람, 다른 주인

진태양시로 보정한 시각이 1990년 5월 14일 밤 11시 40분인 사람을 놓고 두 판을 나란히 세워 본다.

년주월주일주시주
야자시로 세운 판경오(庚午)신사(辛巳)기묘(己卯)병자(丙子)
자시를 통째로 다음 날로 본 판경오(庚午)신사(辛巳)경진(庚辰)병자(丙子)

여섯 글자가 같고 두 글자가 다르다. 그런데 그 두 글자가 주인의 자리다.

글자기토(己土) 일간에게경금(庚金) 일간에게
년간 경금상관(傷官)비견(比肩)
년지 오화(午火)편인(偏印)정관(正官)
월간 신금(辛金)식신(食神)겁재(劫財)
월지 사화(巳火)정인(正印)칠살(七殺)
일지묘목(卯木), 칠살진토(辰土), 편인
시간 병화(丙火)정인칠살
시지 자수(子水)편재(偏財)상관

월지는 사화 그대로다. 그런데 기토에게 사화는 정인이고 경금에게 사화는 칠살이다. 한쪽은 정인격(正印格), 다른 쪽은 칠살격(七殺格) 이다. 정인격은 받쳐 주는 판이고 칠살격은 눌러 오는 판이다. 한 사람이 평생 서 있는 무대의 모양이 통째로 바뀐다.

육친도 마찬가지다.

이 사람이 여자라면, 기토 일간에게 남편의 별인 정관은 갑목(甲木)인데 판에 없다. 대신 일지에 칠살 묘목이 앉아 있다. 경금 일간으로 보면 남편의 별 정관 정화(丁火)가 년지 오화 안에 뚜렷하게 들어 있다.

남자라면, 기토 일간에게 아내의 별 정재(正財)는 임수(壬水)이고, 경금 일간에게는 을목(乙木)이다. 아내를 찾는 자리부터 달라진다.

대운은 같은 방향으로 같은 나이에 바뀐다. 년주와 생일이 같으니 당연하다. 그런데 같은 대운이 한쪽 판에서는 반가운 글자이고 다른 쪽 판에서는 꺼리는 글자가 된다. 같은 길을 걷는데 한 사람은 오르막이라 하고 한 사람은 내리막이라 하는 셈이다.

이 다툼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둘 중 하나는 틀린 사람의 사주를 읽고 있다.


3. 자시를 반으로 가른 글들은 무엇을 말했나

야자시를 쓰는 쪽은 옛 글을 근거로 든다. 하나씩 놓고 보면, 그 글들이 무엇을 이야기하던 자리였는지가 드러난다.

먼저 당나라 역법가 이순풍(李淳風)의 말로 전하는 한 줄이다.

古曆分日,起於子半。

옛 역법은 날을 나눌 때 자시의 한가운데에서 시작한다는 뜻이다. 자시의 한가운데가 곧 자정이다.

이 말이 나온 자리는 당나라 정관(貞觀) 연간의 역법 논쟁이다. 동짓달 초하루, 해와 달이 겹치는 합삭(合朔)이 어느 날에 떨어지느냐를 두고 이순풍이 부인균(傅仁均)의 계산을 반박하면서 꺼낸 말이다. 천문 계산에서 날짜를 세는 기준을 이야기한 것이지, 사람의 명을 보는 법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다.

원나라 조우흠(趙友欽)의 『혁상신서(革象新書)』에도 비슷한 대목이 있다. 자시의 앞 절반은 한밤중 이전이라 어제에 속하고, 뒤 절반은 한밤중 이후라 오늘에 속한다는 말이다. 이 책은 천문과 역법을 다룬 책이다.

야자시 쪽이 가장 즐겨 드는 것은 쥐 이야기다. 『연해자평(淵海子平)』의 열두 띠를 다룬 대목에 이렇게 나온다.

子雖屬陽,上四刻乃昨夜之陰,下四刻今日之陽。鼠前足四爪象陰,後足五爪象陽故也。

자는 양에 속하지만 앞의 네 각(刻)은 어젯밤의 음이고 뒤의 네 각은 오늘의 양이다. 쥐는 앞발 발톱이 넷이라 음을 닮았고 뒷발 발톱이 다섯이라 양을 닮았으니, 그래서 자에 쥐를 붙였다는 말이다. 명나라 낭영(郎瑛)의 『칠수유고(七修類稿)』에도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 대목이 하는 일은 하나다. 자에 왜 하필 쥐가 붙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띠 동물의 내력을 푸는 자리이지, 시주를 세우는 법을 정하는 자리가 아니다.

더 짚어 둘 것이 있다. 쥐 이야기가 실린 바로 그 『연해자평』이 시주를 세우는 법으로 내놓은 것은 오서둔(五鼠遁)이다. 갑일과 기일은 갑자시로 시작하고, 을일과 경일은 병자시로 시작한다는 그 노래다. 이 노래 어디에도 자시를 둘로 쪼개 앞 절반은 전날로 돌리라는 말은 없다. 같은 책 안에서 띠 이야기는 띠 이야기로, 시주 세우는 법은 시주 세우는 법으로 따로 놓여 있다.

정리하면, 자시를 반으로 가른 옛 글은 모두 역법과 시각과 띠의 언어다. 천문가는 날짜를 세려고 한밤중에 선을 그었고, 명리가는 그 선을 가져다 일주를 바꾸는 데 쓰지 않았다.


4. 명리가들은 언제부터 갈렸나

이 문제를 명리 안으로 끌고 들어온 것은 근대의 일이다. 하루를 스물네 시간으로 쪼개고 밤 12시를 날의 경계로 삼는 서양식 시계가 생활 깊숙이 들어온 뒤다.

민국 시기 명리의 세 대가로 꼽히는 원수산(袁樹珊), 위천리(韋千里), 서락오(徐樂吾) 가운데 둘이 이 문제에서 정면으로 갈렸다.

원수산은 『명리탐원(命理探原)』에서 자정 이전의 자시와 자정 이후의 자시를 구분해 다루었다. 그가 남긴 말이 지금 야자시 쪽의 출발점으로 인용된다.

所謂夜子時,乃今日之夜,非明日之早也。

이른바 야자시는 오늘의 밤이지 내일의 새벽이 아니라는 뜻이다.

위천리는 『천리명고(千里命稿)』에서 반대편에 섰다. 널리 인용되는 그의 말은 짧고 단호하다.

俗有所謂早子時夜子時之分別者……此論曆法則或可,論命則萬萬不可。

세간에서 조자시와 야자시를 나누는데, 역법을 논할 때라면 몰라도 명을 논할 때는 절대 안 된다는 말이다. 위천리의 이 한 줄이 앞 장에서 본 옛 글들의 성격을 정확하게 짚는다. 역법의 일은 역법의 일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같은 갈림이 있었다. 이석영(李錫暎)의 『사주첩경(四柱捷徑)』은 밤 11시에서 12시 사이를 야자시로 구분해 썼다. 이 책이 한국 명리 교재로 널리 읽히면서 야자시가 한국에 깊이 퍼졌다. 반대로 박재완(朴在玩)은 『명리요강(命理要綱)』에서 밤 12시를 경계로 날을 가르는 것은 사람이 만든 기준이라 사주에는 맞지 않는다고 보았다.

지금 한국의 많은 만세력 앱이 야자시 선택 칸을 따로 두는 것은 이 흐름의 흔적이다. 대만에는 야자시를 분명하게 주장하는 책이 있고, 홍콩도 의견이 갈린다. 중국 본토의 실무는 대체로 자시를 통째로 다음 날로 본다.


5. 명리의 경계는 언제나 한 칸의 시작에 선다

옛 글의 출처를 따지는 것보다 더 단단한 근거가 있다. 명리라는 체계가 다른 기둥들의 경계를 어디에 긋는지를 보면 된다.

기둥명리가 긋는 경계천문이 긋는 경계
년주입춘(立春). 인월(寅月)이 시작하는 순간동지(冬至). 자월(子月)의 한가운데
월주절(節). 그 달 지지가 시작하는 순간중기(中氣). 그 달의 한가운데
시주각 시진(時辰)이 시작하는 순간같음
일주?자정. 자시의 한가운데

명리는 해를 동지에서 바꾸지 않는다. 동지는 자월의 한가운데다. 명리는 인월이 시작하는 입춘에서 해를 바꾼다.

명리는 달을 중기에서 바꾸지 않는다. 경칩(驚蟄)에 묘월(卯月)이 시작하지, 춘분(春分)에 시작하지 않는다.

경계는 언제나 한 칸의 한가운데가 아니라 한 칸의 시작에 선다.

그런데 동지와 자월의 관계는 자정과 자시의 관계와 똑같다. 동지는 자월의 한가운데이고, 자정은 자시의 한가운데다. 야자시는 해와 달과 시에는 명리의 잣대를 쓰면서, 날 하나에만 천문의 잣대를 들이대는 셈이다. 동지에 해가 바뀐다고 하면 받아들이지 않을 사람이, 자정에 날이 바뀐다는 말은 쉽게 받아들인다. 그 자정이 매일 밤 시계 위에서 보이기 때문이다.

기둥끼리 포개지는 모양으로 봐도 같은 답이 나온다.

년과 월은 해가 한 해 동안 도는 바퀴를 크게 나누고 잘게 나눈 것이다. 그래서 년의 경계인 입춘은 곧 인월의 첫 순간이다. 큰 칸의 경계가 작은 칸의 경계와 겹친다. 해가 바뀌는데 인월이 중간에서 잘리는 일은 없다.

일과 시는 해가 하루 동안 도는 바퀴를 크게 나누고 잘게 나눈 것이다. 같은 바퀴이니 날의 경계도 시진의 경계와 겹쳐야 짝이 맞는다. 자시를 통째로 다음 날로 보면 밤 11시라는 시진의 경계와 날의 경계가 정확히 포개진다. 야자시로 보면 병자시라는 한 칸이 두 날에 걸쳐 잘린다. 년과 월에서는 하지 않는 일을 일과 시에서만 하는 것이다.


6. 쪼개는 순간 생기는 두 가지 모순

자시를 둘로 쪼개면 시주를 어떻게 세우느냐에서 막힌다. 길은 두 가지뿐인데, 어느 쪽으로 가도 모순이 나온다.

첫째 길: 태어난 날의 일주에 태어난 날의 자시를 붙인다

기묘일이라면 오서둔으로 기일의 자시는 갑자시(甲子時)다. 그러면 기묘일 0시 20분에 태어난 사람도 갑자시, 같은 기묘일 밤 11시 40분에 태어난 사람도 갑자시다.

하루 가까이 떨어져 태어난 두 사람이 여덟 글자가 똑같아진다. 그 사이에 열한 개의 시진이 지나갔는데도 그렇다. 한 날 안에 갑자시가 두 번 있는 날이 생긴다.

둘째 길: 태어난 날의 일주에 다음 날의 자시를 붙인다

지금 야자시를 쓰는 쪽의 주류다. 앞의 명조가 이 방식이다. 기묘일에 병자시를 붙였다.

그런데 오서둔은 이렇게 시작한다.

甲己還加甲,乙庚丙作初。

갑일과 기일은 갑자에서 시작하고, 을일과 경일은 병자에서 시작한다는 뜻이다. 병자시는 을일이나 경일의 자시다. 기일에는 병자시가 나올 수 없다. 기묘일에 병자시를 붙인 판은 오서둔이라는 규칙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는 조합이다. 시간(時干)이 일간에서 나온다는 명리의 기본 규칙 바깥에 놓인 판을 들고 명을 읽는 셈이다.

시주의 흐름이 이미 답을 말한다

시주의 간지는 60갑자 순서대로 한 번도 끊기지 않고 흐른다. 기묘일의 시주를 차례로 늘어놓으면 갑자, 을축, 병인을 지나 열두 번째가 을해(乙亥)다. 그다음이 병자다.

병자는 오서둔에서 경일의 첫 칸이다. 시주의 흐름은 밤 11시에 이미 경진일로 넘어가 있다. 일주만 한 시간 늦게 따라오라는 것이 야자시다.

두 패가 시주에서는 같은 병자를 쓴다는 점을 다시 떠올리면 문제가 선명해진다. 야자시를 쓰는 쪽도 시주를 세울 때는 이미 다음 날로 넘어갔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7. 한국 시계의 자정은 자정이 아니다

야자시의 근거는 자시의 한가운데, 곧 해가 땅 반대편 가장 깊은 곳에 내려간 순간이다. 이 순간을 자정(子正)이라고 한다. 시계의 자정과 소리는 같지만, 가리키는 것은 시계 바늘이 아니라 해의 자리다.

그런데 한국 시계의 밤 12시는 이 순간이 아니다.

한국 표준시는 동경 135도 기준이다. 서울은 동경 127도 부근이라 해가 시계보다 32분쯤 늦게 온다. 여기에 지구 공전 궤도와 자전축 기울기 때문에 생기는 균시차(均時差) 가 날짜에 따라 앞뒤로 붙는다. 2월 중순에는 해가 14분쯤 더 늦고, 11월 초에는 16분쯤 빠르다.

이것을 다 셈하면 서울 하늘의 진짜 자정은 시계로 0시 16분에서 0시 46분 사이 어딘가에 온다. 반대로 시계의 밤 12시는 서울의 해로 치면 밤 11시 14분에서 11시 44분 사이다.

날짜 (서울)시계 밤 12시의 진태양시해의 진짜 자정이 오는 시계 시각
2월 중순밤 11시 14분 무렵0시 46분 무렵
11월 초밤 11시 44분 무렵0시 16분 무렵

야자시를 시계의 밤 12시로 가르는 만세력은 자기 이론으로 봐도 엉뚱한 곳에 선을 긋고 있다. 자시의 한가운데에서 날을 바꾸자고 해 놓고, 실제로는 자시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지점에서 날을 바꾸는 것이다.

시계를 일괄로 30분 미는 만세력도 있다. 그래서 야자시를 밤 11시 30분에서 0시 30분, 조자시를 0시 30분에서 1시 30분으로 고정한 표가 널리 돈다. 이 표는 출생지의 경도도, 균시차도 빼놓은 채 동경 127.5도 위의 가상의 해를 따른다. 경계가 하나 더 어긋나고, 그 어긋난 경계 위에서 일주가 갈린다.

자시 판정은 진태양시 위에서만 의미가 있다. 진태양시 없이 야자시를 따지는 것은 저울 눈금이 틀린 채로 한 돈 두 돈을 다투는 일이다.


8. 우리 문파의 결론

이론은 체계 안에서 앞뒤가 맞아야 하고, 실제 삶 앞에서 맞아야 한다. 앞의 이야기는 체계 쪽의 근거다.

실제 삶 쪽은 이렇다. 우리 문파에서는 사부를 비롯해 수많은 고수가 자시생의 명조를 놓고 두 판을 나란히 세워 실제로 살아온 삶과 맞춰 보는 실험을 오래 해 왔다. 사부도 이 실험을 많이 했다.

결론은 하나로 모였다. 자시는 통째로 다음 날이다.

진태양시로 밤 11시가 넘으면 그 사람의 일주는 다음 날이고, 시주는 다음 날의 자시다. 밤 11시 40분에 태어났든 0시 40분에 태어났든 같은 날, 같은 자시의 사람이다.

이것은 위천리가 말로 잘라 낸 것을 명조로 확인한 결과다. 역법을 논할 때라면 자정에 선을 그을 수 있다. 명을 논할 때는 아니다.


9. 자시 부근에 태어났다면 확인할 순서

자시 판정은 시계 시각을 진태양시로 옮기는 것에서 시작한다. 순서를 지키지 않으면 맨 마지막 판정이 의미를 잃는다.

순서확인할 것내용
1서머타임1948~1951년, 1955~1960년, 1987~1988년 여름 출생이면 한 시간을 뺀다
2표준시 기준1954년~1961년에는 동경 127.5도 기준이었다. 이 시기는 경도 보정 값이 다르다
3경도출생지 경도와 표준시 기준선의 차이 1도마다 4분
4균시차출생 날짜에 따라 대략 −14분에서 +16분
5판정진태양시로 밤 11시가 넘었으면 다음 날 일주, 다음 날 자시

이 순서를 다 거치고 나면 야자시냐 조자시냐는 물음은 남지 않는다. 진태양시 밤 11시, 선은 그 하나뿐이다.

밤 11시와 새벽 1시 사이에 태어난 사람이 지금 들고 있는 사주의 일주는 해가 정한 것인가, 시계가 정한 것인가. 그 판의 주인은 정말 그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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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答 4
  • Petros Nox·

    감사합니다

  • 익명.·

    감사해요. 다른 것도 어려운데 야자시 조자시는 전체가 다바뀔지도 모르니.. ㅎㅎ

  • 라곰·· (수정됨)

    진태양시 11시가 기준. 감사합니다.

  • 키네시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