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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의 명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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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사조에게서 이어진 사주: 책이 아니라 입으로 건너온 명리

눈먼 사조에게서 이어진 사주: 책이 아니라 입으로 건너온 명리

명리학의 실력은 어떤 책을 읽었느냐보다 누구에게서 무엇을 이어받았느냐에서 갈린다. 고전의 구결은 압축된 문장이고, 그 문장을 언제 어떻게 쓰는지에 대한 조건은 스승의 입에서 제자의 귀로 건너왔기 때문이다.

펀역에서 쓰는 명리 체계의 뿌리는 한 맹인 술사에게 닿아 있다. 사조(師祖) 팽강민, 사부 채석경, 그리고 사형 소화하와 김옥장 (사형들은 좀 많아서 )등등으로 이어지는 맥이다.

이 맥이 어디서 와서 무엇을 남겼는지, 바깥에 기록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들을 따라가 본다.


네 살에 눈을 잃은 아이

팽강민은 중국 호북성(湖北省) 동쪽 시골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네 살에 두 눈을 잃었다.

그 시절 시골에서 눈먼 아이가 먹고살 길은 좁았다. 아이는 사주 보는 일로 갔다.

그런데 재주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신동이라고 불렀다. 그 말에 힘을 얻은 아이는 명서(命書)를 파고들었고, 나중에는 풍수까지 손을 댔다.

스승을 모셔다 배우는 데는 돈이 들었다. 그는 훗날 스승을 청해 명리와 풍수를 배우느라 집안 살림을 다 털어 넣었다고 적었다.

가난한 집이 가진 것을 몽땅 걸고 눈먼 아이에게 공부를 시켰다. 오늘날로 치면 집을 팔아 유학을 보낸 셈인데, 그 유학지가 하필 사주팔자였다.


귀로 읽은 책

눈이 없으니 책은 남이 읽어 주는 것을 듣고 외웠다. 깨치는 일은 혼자 했다.

그렇게 쉰 해가 넘게 이 일을 했다. 노년에 그는 자기 공부를 이렇게 정리했다.

已得命理真知,風水八成。

명리는 참된 앎을 얻었고, 풍수는 팔 할쯤 왔다는 말이다.

평생을 판 사람이 자기 공부에 점수를 매기면서 풍수에서는 두 할을 비워 두었다. 요즘 같으면 유튜브 섬네일에 "풍수 완전 정복"이라고 썼을 자리다.

이 사람이 제자들에게 늘 하던 말이 있다. 어떤 책을 연구하려면 먼저 그 책의 글을 전부 외우라는 것이다. 외워 두면 평소에 천천히 그 속뜻을 깨칠 기회가 생기고, 나중에 손으로 풀어낼 때는 물이 흘러 도랑이 생기듯 저절로 된다고 했다.

사부는 이 말대로 적천수(滴天髓)를 통째로 외웠다.

눈먼 스승에게 책은 종이가 아니라 머릿속에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제자에게도 머릿속에 넣으라고 한 것이다.

그는 사주의 근원을 찾는 법도 맹인다운 방식으로 말했다.

我們盲人算命多是先數五行個數,再兼顧月令就不難找到源頭了。

우리 맹인들은 먼저 오행의 개수를 세고, 거기에 월령(月令)을 아울러 보면 근원을 찾기가 어렵지 않다는 말이다.

여기서 그는 곧바로 단서를 붙였다.

得令不旺,失時不衰。

월령을 얻었다고 다 센 것이 아니고, 때를 잃었다고 다 약한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개수를 세는 것은 출발이고, 판정은 그다음이다.


쏟아지는 명서 앞에서

노년에 그의 이름은 주변 수백 리에 퍼졌다. 무한(武漢)과 황주(黃州)의 시사(詩社) 사람들이 그에게 시와 대련을 지어 보냈다. 그는 이제 책을 남기기로 했다.

받아 적은 사람이 내 사부다. 생업이 따로 있던 제자(학교 수학선생님)가 틈나는 시간에 스승의 말을 글로 옮겼다. 그렇게 나온 책이 명리정화(命理精華)다. [이 책 굉장히 어렵다. 그냥 읽으면, 전혀 이해 못한다.]

제자가 요즘 서점에 깔린 명리책들을 읽어 주자, 스승은 이렇게 평했다. 명리책이 집채만큼 쌓여 있는데, 대부분 저속하고 재미가 없거나, 정신이 흩어지고 알맹이가 빠져 있다.

그는 고전에도 같은 잣대를 댔다. 월담부(月談賦), 과로성종(果老星宗), 자평진전(子平眞詮), 적천수, 궁통보감(窮通寶鑑) 같은 책들도 그 정수를 다 담지는 못했다고 했다. 책을 깨치되 저자의 뜻을 마음으로 알아듣고, 실제로 시험해 봐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게으른 젊은이들이 명서 고전 몇 권을 보고 이 일을 업으로 삼는 것도 그는 경계했다. 그런 사람은 남에게 복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즉 실력이 없이 사주를 봐주는것은 활인업이 아니라, 남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요즘 미친듯이 나오는 사주 앱들/사이트들도 이런 각도로 보면, 타인을 해치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돈에 눈이 멀어서 말이지

이 사람이 남긴 일화가 하나 있다.

같은 고향 출신의 상인이 호북 나전현(羅田縣) 읍내에서 사기를 당해 사만 위안 남짓을 날렸다. 한화로 칠백만 원이 조금 넘는 돈이지만, 그 시절 중국 시골의 물가로는 훨씬 무거운 돈이었다. (그 시절이면 집 여러채 샀다. 현재 한국이라고 치면, 수십억)

상인은 폭약을 넉넉히 마련했다. 사기꾼과 함께 죽을 작정이었다. 세무 관리 하나가 한참을 말려도 듣지 않았다.

관리(공무원)는 마지막 수를 썼다. 어차피 죽을 거면, 죽기 전에 그 노선생한테 팔자나 한번 보고 죽으라고.

상인은 정말로 팽강민의 집에 왔다. 팔자를 내밀었다.

"올해 큰돈을 깨는 건 팔자에 정해진 일이오. 삼 년 뒤에는 더 큰돈을 벌 사람인데, 지금 죽으면 목숨만 헛되이 버리는 거요."

상인은 마음을 고쳐먹었고, 나중에 정말로 돈을 벌었다.

죽음을 막은 것은 위로의 말이 아니었다. 삼 년이라는 숫자였다.


세 덩어리

사조가 제자들에게 늘 하던 말이 하나 더 있다.

最簡單最實用的是子平命法;最玄妙的是鬼谷子納音變化;最古老最神奇的是果老星宗。

가장 간단하고 실용적인 것은 자평(子平)의 법이고, 가장 오묘한 것은 귀곡자(鬼谷子)의 납음(納音) 변화이며, 가장 오래되고 깊은 것은 과로성종이라는 말이다.

갈래무엇으로 보나맥에서의 쓰임
자평법(子平法)일간(日干)을 중심으로 간지 정오행의 관계본체. 실제 풀이의 대부분
납음법(納音法)육십갑자의 납음 오행과 형상, 연주와 시주의 끌어당김큰 격의 성패를 가르는 보조
성종법(星宗法)별과 열두 궁, 신궁(身宮)과 명궁(命宮)같은 글자가 겹쳐 자평이 막힐 때

이것이 이 사이트의 삼반합참이란 형태로 나와 있는 것

자평 하나만 아는 사람에게는 풀리지 않는 사주가 있다.

사부가 실제로 겪은 예가 있다. 한 애호가가 아들의 팔자를 들고 왔는데, 계해(癸亥) 년, 계해 월, 계해 일, 임술(壬戌) 시였다. 같은 글자가 이렇게 겹치면 자평법으로는 글자끼리 부딪혀 봐야 불꽃이 튀지 않는다. 사부는 성종의 열두 궁으로 먼저 나눠 보고, 다시 자평으로 돌아와 길을 찾았다.

그 애호가는 그 길로 과로성종에 빠져 버렸다고 한다.

맹인 술사들이 하나같이 음력으로 사주를 세우는 까닭도 이 성종에 있다. 신궁을 세우려면 달이 어디에 있었는지 알아야 하고, 그것은 음력 날짜에서 나온다. 양력이 더 편한데도 그들이 음력을 고집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받아 적은 제자, 맹파가 아닌 맹사의 맥

사부는 호북 사람이다. 생업을 하며 스승의 말을 받아 적던 제자는 나중에 스스로 책을 쓰고 제자를 길렀다.

3권의 정식 출간물이 있고
3권의 내부 제자들만 보는 책이 있다. (여기에 사조의 적천수 해걸이라든지, 격국론이라든지, 납음 대격 보는 법등 )

팽씨주해 적천수는 정리에만 한 해 반이 걸렸고 , 매년 고쳐서 써서 10번은 고쳐 썼다. 사부는 이 책을 쓴 까닭을 스승을 깊이 그리워해서라고 적었다.

여기서 짚어 둘 것이 있다. 사부는 스승이 맹인이었기에 학생들 앞에서 맹사(盲師)라는 말을 자주 썼다. 그러면서 동시에 분명히 선을 그었다.

絕對不是現代市面上提到的盲派。

요즘 시중에서 말하는 맹파(盲派)는 절대 아니라는 말이다.

요즘 맹파라는 이름으로 책과 강의로 퍼진 체계는 글자의 상(象)과 작용으로 사건을 곧바로 짚는 데 무게를 둔다. 우리 문파의 맥은 다르다. 몸통은 자평이고, 자평진전과 적천수와 궁통보감이 그 뼈대다. 눈먼 스승이 가르쳤다는 사실과, 맹인들이 써 온 별도의 술법이 같은 말은 아니다.

우리 문파의 이론 체계는 굉장히 어렵고 복잡하다. 일반인이 쉽게 배울수 있는 체계도 아니고, 배울당시도 직업 역술인들이 배웠었다.
또 배웠다고 다 잘 하는 것도 아니다. 이게 역학은 재능이 중요하다. 사부의 아들들도 어릴때부터 배웠지만, 실력이 많이 부족하다. 아마 제자들에게 공개 안한 핵심 이론도 다 배웠겠지만, 실력이 좋지 못하다.

이게 명리학은 어쩔수 없다. 진정 고수가 되려면,,, 정말 쉽지 않다.

사부는 자기 문하를 문은 있되 파는 없다, 유문무파(有門無派)라고 불렀다.

그리고 사부가 남긴 중요한 기록이 하나 있다. 처음에는 스승에게서 십신 중심의 풀이를 그대로 배웠는데, 숱한 경험과 실패를 거친 뒤 스승과 제자가 동시에 같은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십신과 열 천간의 원래 모습, 곧 원상(原象) 사이에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原象是基礎,十神較抽象,具象重於抽象。

원상이 바탕이고 십신은 더 추상적이니, 구체적인 것이 추상적인 것보다 무겁다는 말이다.

같은 정관(正官)이라도 갑목(甲木)에게 붙은 신금(辛金)과 을목(乙木)에게 붙은 경금(庚金)은 다른 물건이다. 이름이 같다고 같은 일을 하지 않는다. 이 맥에서 십신은 버리지 않되, 열 천간의 체상 위에 얹어서 쓴다.

물론 쉽게 이야기한 것이다.


기세와 기수

이 맥이 사주를 읽는 두 손이 있다. 기세(氣勢)와 기수(氣數)다.

사부는 적천수를 풀면서 이렇게 나눴다. 천간은 그 사람이 타고난 몫을 보여 주는데, 이것을 기수라 한다. 지지는 그 사람이 사는 환경을 그리는데, 이것을 기세라 한다. 타고난 몫과 환경, 기수와 기세가 한 쌍의 음양이다.

기세(氣勢)기수(氣數)
무엇을 보나오행의 큰 흐름, 형상과 국(局)일간이 열두 달에 각각 반기는 것
사람에게서사회의 환경, 시대의 큰 물결타고난 바탕, 기질, 개인의 성향
주로 기대는 책적천수궁통보감

기수라는 말을 사부는 이렇게 정의했다. 기수란 어떤 천간을 지켜 주는 쓸모 있는 것이다.

갑목에게 경금(庚金)과 정화(丁火)가 그런 예다. 갑은 경을 떠나지 않고, 경은 정을 떠나지 않고, 정은 갑을 떠나지 않는다. 이 셋은 타고난 짝이다. 그리고 겨울과 이른 봄의 차가운 사주에는 병화(丙火)와 정화가 얼음을 녹여야 하고, 한여름의 뜨거운 사주에는 임수(壬水)와 계수(癸水)가 열을 식혀야 한다.

이 기수가 천간에 드러나 있는지, 지지에 숨어 있는지, 아예 없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층이 차례로 내려간다. 드러난 것, 숨은 것, 없는 것. 사부는 이것을 투(透), 장(藏), 무(無)라고 불렀다.

용신(用神)도 이 맥에서는 하나가 아니다.

용신어디서 나오나
통변용신(通變用神)일간을 몸통으로 놓고 왕쇠의 균형에서
기수용신(气数用神)일간의 기수, 계절의 차고 더움에서
격국용신(格局用神)월령으로 선 격의 성패에서

그리고 이것을 꿰는 줄이 있다. 몸통을 먼저 세우고 쓰임을 뒤에 본다, 선체후용(先體後用)이다. 일간이라는 정해진 몸통이 하나 있고, 격체(格體), 기세, 화상(化象)이라는 정해지지 않은 몸통이 셋 있다.


격은 월령이다

격(格)에 대해 사조는 이렇게 말했다.

格者,月令也。

격이란 월령이다. 월령은 왕한 기운이 머무는 자리이고, 그 기운을 내가 쓸 수 있거나 다스릴 수 있으면 그것이 귀한 기운이 된다는 것이다.

천간에 무엇이 드러났느냐로 격을 정하는 방식이 아니다. 월지 그 자체가 격이다. 즉 본문의 원래 체계인 것, 그래서 과거 앱버전과 현재 버전의 격이 차이가 나는 것이다.

그러면 격이 섰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제자가 물었고, 사조가 답했다. 격이 선다는 것은 그 왕한 기운이 끝내 나에게 쓰이는 것이라고.

격으로 사주를 논하는 것은 진짜 명당이 없을 때 할 수 없이 하는 일이라고 했다. 풍수꾼이 용맥을 찾아다니다 큰 땅을 못 만나면 차선을 고르듯이. 사주에 뚜렷한 형상이나 큰 기세가 서 있으면 그것을 먼저 봐야 한다.

그리고 비유를 들었다. 아이가 글씨를 쓸 때는 방향을 잃을까 봐 칸을 그어 놓고 쓴다. 그런데 서예의 대가 가운데 칸을 그어 놓고 쓰는 사람이 있더냐.

평생 글씨를 본 적 없는 사람이 한 말이다.

기세, 기수, 격국 그 어느 한 가지도 만능은 아니라는 단서와 함께.


한 권만 쓰는 선생, 다섯 권을 꿰는 선생

사부는 예순이 넘도록(이미 십여년전 이야기) 평생 사주를 봐 온 수많은 고수들을 많이 찾아다녔다. 그리고 이렇게 적었다.

궁통보감의 기수법 하나로 평생 보는 선생이 있었다. 찾는 손님이 적지 않았다. 자평진전의 격국 하나로 평생 보는 선생이 있었다. 이런 사람이 가장 많았고, 시장도 가장 컸다. 적천수의 기세법 하나로 보는 선생도 있었다.

연해자평(淵海子平), 자평진전, 궁통보감, 적천수, 삼명통회(三命通會)에 신봉통고(神峰通考)까지, 이 책들을 모두 깊이 꿰고 있는 사람은 자기가 아는 한 스승 한 사람뿐이었다고 했다. 게다가 납음법과 성종법까지 정확하게 쥐고 있어서, 사방에서 풀리지 않던 팔자들이 그를 찾아와 하나씩 풀렸다고 했다. 전국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역술인들에게 가도 답을 못 얻던 사람이 유일하게 사조에게서 답을 얻었다고 , 당시 북방을 대표하는 역술인이 중국 대륙에 역학을 다시 보급한 사람이고, 남방을 대표하는 역술인이 사조 였다.

일반적으로
책 한 권으로도 밥은 먹는다. 다만 그 책이 다루지 않는 사주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그 선생은 그 사주를 자기 책에 맞춰 구겨 넣는다. 사실 이런 현상은 현재도 마찬가지다. 모든 직업 역술인들은 본인이 가진 아주 작은 지식 체계에 모든 사주를 구겨넣어서 해석한다. 맞으면 좋고, 틀려도 어쩔수 없고


사형들

사부는 아무나 가르치지 않았다.

체계가 크고 복잡해서, 처음 사주를 배우는 사람이 들어와 버틸 수 있는 공부가 아니었다. 기초 과정만 백 강이 넘고, 다 듣는 데 한 해가 걸리며, 기초가 손에 익기까지는 적어도 삼 년에서 다섯 해를 잡아야 했다. 하루에 배우는 시간만 3시간, 복습이라도 하면 5-6시간은 금방 가는 형태였다. 일년이 365일인데, 백강이 넘는다는 이야기는 주 2-3회 정도 강의를 듣는 다는 이야기이다. (명절은 쉬니까) 사부 스스로 빨리 대가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는 맞지 않는 곳이라고 이야기 했다. 실제로도 그렇다. 전체 체계를 그냥 듣기만 하는것도 수년이 필요했고, 한 해 들어서는 이해도 제대로 하기 어렵다. 그만큼 이론 체계가 방대하고, 디테일하고 복잡하다.

그래서 이 문하에 들어온 사람은 대개 직업 술사들이었다. 그것도 손님을 받아 온 지 꽤 오래된 사람들. 이미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이 다시 학생이 되어 앉는 자리였다.

이 문하에서 바깥에 가장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 사형 소화하다.

그 시절 중국에는 이름난 역학 사이트들이 있었다. 술사들이 실명이나 필명을 걸고 실제 명조를 놓고 실력을 겨루는 대회가 그곳에서 열렸다. 소화하는 그 대회에서 거듭 1등을 차지하던, 고수로 이름난 사람이었다. 나중에 당국의 규제로 그런 역학 사이트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 그 무렵 그 사이트에 드나들던 사람이라면 그 이름을 알았다.

그런 사람이 사부의 이론을 보고 마음에 들어 했다. 그리고 혼자 오지 않았다. 여러 사람을 데리고 함께 입문했다.

대회에서 1등을 하던 사람이 동료들을 이끌고 남의 문하에 학생으로 앉았다. 이미 이긴 사람이 다시 배우러 간다는 것은, 그 이론이 자기가 쥔 것으로는 닿지 않는 데까지 닿는다는 판단이 섰다는 뜻이다.


한국 명리학은 어떻게 건너왔나

한국의 명리학은 대체로 책에서 책으로 건너왔다.

몇 권의 책이 교과서가 되었고, 교과서는 강의 노트가 되었고, 강의 노트는 요약본이 되었다. 요약은 조건부터 버린다. 이런 사주에서, 이런 운에, 이런 글자가 옆에 있을 때라는 단서가 떨어지고 결론 한 줄만 남는다.

구결이 압축된 문장이라면, 조건은 압축을 푸는 열쇠다. 열쇠는 대개 스승의 입에 있었다. 책만 건너오면 자물쇠만 건너온 셈이다.

이 맥에서한국에서 흔히 보는 방식
격월령 자체천간 투출로 정함, 또는 건너뜀
쓰는 책다섯 경전을 함께, 그리고 납음과 성종한두 권, 또는 그 요약
십신열 천간의 원상 위에 얹어 씀십신 이름에서 곧장 결론, 다섯 묶음으로 뭉침
조후와 격기초 공부의 한 축고급 과정으로 따로 팖
용신셋으로 나눠 각자의 자리하나를 두고 다툼

기초 데이터에서도 차이가 난다. 사주는 해의 시각, 진태양시(眞太陽時)로 세우는데, 시중 만세력 상당수는 30 분을 일괄로 빼고 끝낸다. 대운이 바뀌는 날의 셈법도, 지장간(地藏干)의 날수를 다루는 법도 제각각이다.

틀린 명식 위에서는 어떤 이론을 얹어도 빗나간다. 빗나가면 새 이론을 짓는다. 한국 명리학에 유독 독자적인 발명이 많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지금 이 자리

펀역의 체계는 이 맥에서 출발했다. 그대로 옮기지는 않았다. 많이 고치고 덧붙였다. 이론을 배운후, 수많은 실전을 통해서, 여러 나라 사람들 , 외국인들 명조들을 많이 보고, 유명한 사람들, 재벌들 실제 사주들을 보면서, 이론을 점검하고, 감으로 잡아야 했던 모든것을 데이터화해서, 계산을 하게 만들었다. 현대적 방법론으로 이론체계를 검증하고, 고쳐서 만든 것이 현재 펀역의 체계인 것이다. 격변화 이론들도 사문에 원래 있지만, 허술하고 부족한 것을 내가 체계화 시켜서 만든게 격변화 체계다. 수없이 많은 데이터로 검증을 해서 만든것. 그래서 결과론적으로는 원래 이론 체계보다 정확해졌다.

물론 완벽하다고는 절대 못말한다. 단지 계속 연구하고, 고쳐나가고, 개선하고 있다. 몇년뒤에 어떻게 변해있을지는 모른다.

나는 내가 고수라고 한번도 이야기한적이 없다.
아직도 부족한 부분들이 있기에, 그러나 늘 연구하고 있기는 하다.

사부의
통변용신, 조후용신, 격국용신의 세 갈래는 평형용신(平衡用神), 기수용신(氣數用神), 격용신(格用神)이라는 세 층으로 다시 짰다. 사부가 기수라 부른 것에서 기수용신의 이름이 나왔다. 월령으로 선 격이 대운을 지나며 어떻게 다져지고, 무너지고, 잠시 다른 모양으로 바뀌는지를 따로 다루는 격변화(格變化)를 세웠다. 생극과 합충과 합화와 뿌리의 힘이 왕쇠에 주는 변화를 하나하나 셈하는 계산 체계를 만들었고, 명식은 진태양시로 세운다.

옷은 바뀌었다. 뼈는 그대로다.

네 살에 눈을 잃은 아이가 집안 살림을 털어 배운 것이, 생업 틈틈이 받아 적은 제자를 거쳐, 지금 이 화면 위에 있다.

그 아이는 평생 글자를 본 적이 없다. 그가 남긴 것을 우리는 눈으로 읽고 있다. 어느 쪽이 더 잘 보고 있는지는, 아직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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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答 3
  • 제비·

    <사부는 이 책을 쓴 까닭을 스승을 깊이 그리워해서라고 적었다.> 가슴이 먹먹해지네요. 이렇게나마 사부님들의 이론을 알 수 있게되어 영광입니다.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블루베리파이·

    감사합니다

  • 라곰·

    이런 역사였군요.. 감사히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