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은 나를 기억하셨다. 고기 잘 굽는 사람으로
업계 모임에 갔다.
평소 만나기 어려운 대표가 온다고 했다.
가기 전에 자기소개를 준비했다.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경험이 있는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거울 앞에서 해보니 4분이 걸렸다.
대표님이 나를 알아보시기 전에 주차 시간이 끝날 것 같았다.
40초로 줄였다.
그런데 막상 식당에 들어가니 자리가 애매하다.
대표님 옆에는 이미 사람이 있다.
맞은편에도 사람이 있다.
나는 불판 앞에 앉았다.
일단 여기서는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고기를 굽는다.
타기 전에 뒤집는다.
대표님 접시에 잘 익은 것을 올린다.
“손이 빠르시네.”
첫 번째 인정이다.
본업과는 조금 다른 분야지만, 시작은 좋다.
분위기가 풀렸을 때 준비한 말을 꺼냈다.
“저는 브랜드 기획 쪽 일을 하고 있습니다. 대표님 사업과도 시너지가 있을 것 같아서요.”
대표님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 그러세요?”
더 말해도 된다는 뜻인가.
예의상 대답인가.
일단 좋은 쪽으로 해석한다.
“제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 말씀 주세요.”
대표님이 웃으며 말한다.
“그럼 저쪽 고기도 좀 뒤집어주시겠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생겼다.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온다더니.
집게를 놓지 말았어야 했다.
나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급하면, 상대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는 놓칠 수 있다.
집에 와서 친구에게 이야기했다.
대표님과 대화도 하고, 연락처도 받았다고 했다.
친구가 묻는다.
“무슨 이야기 했는데?”
사업 이야기.
업계 이야기.
앞으로의 가능성.
구체적으로 떠올리니 대부분 내가 한 이야기다.
대표님은 고개를 끄덕였고, 몇 번 웃었다.
그래도 분위기는 좋았다.
고기는 한 번도 안 탔다.
며칠 뒤 모임 단체방에 사진이 올라왔다.
대표님이 댓글을 달았다.
“그날 고기 구워주신 분, 감사합니다.”
나를 기억하셨다.
기쁘다.
그런데 내가 기억되고 싶은 부분까지 전달됐는지는 모르겠다.
우리는 기회가 있는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바빠진다.
나를 알아봤으면 좋겠다.
내 가능성을 발견했으면 좋겠다.
한 번만 끌어주면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평소보다 자신을 크게 설명한다.
다양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인맥이 넓다고 한다.
실행력이 좋다고 한다.
상대가 “어떤 일을 해보셨어요?”라고 물으면.
갑자기 과거보다 미래 이야기가 길어진다.
아직 해보지는 않았는데.
하면 잘할 것 같다.
그걸 알아봐주실 분을 찾고 있다.
상대 입장에서는 사람을 만난 것인지, 가능성에 투자해달라는 설명회를 들은 것인지 헷갈릴 수 있다.
명리에서 식상은 내가 가진 생각과 재주를 밖으로 표현하고 만들어내는 작용으로 읽는다.
자기 일을 설명하는 것은 필요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으면 상대가 내가 무엇을 하는지 모를 수 있다.
잘한 일이 있어도 전달되지 않으면 기회와 연결되기 어렵다.
다만 나를 설명하는 말과, 상대가 확인할 수 있는 결과물은 다르다.
“저는 감각이 좋습니다.”
그럴 수 있다.
그런데 감각이 어떻게 쓰였는지 보여줄 것이 있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무엇을 만들었는지.
누구의 어떤 문제를 풀었는지.
어디까지 직접 맡았는지.
소개 문장에서 ‘탁월한’, ‘독보적인’, ‘차별화된’을 빼도 남는 것이 있는지 보는 것이다.
빼봤다.
이름과 연락처가 남았다.
일단 연락은 잘되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말을 줄이고 조용히 앉아 있으면 누군가 알아서 나를 발굴해준다는 뜻도 아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편하다.
진짜 실력자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큰사람은 조용한 인재를 알아본다.
그래서 다음 모임에서는 말을 아낀다.
차분하게 웃는다.
고개만 끄덕인다.
대표님이 나를 유심히 본다.
드디어 알아보셨나 싶다.
“많이 피곤하세요?”
조용함만으로 실력이 전달되지는 않는다.
신비로운 사람으로 보이려다가 컨디션 안 좋은 사람으로 끝날 수도 있다.
기회를 얻으려면 무조건 튀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가만히 기다려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하는 일을 상대가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관성의 역할과 책임을 생각하면 상대가 사람을 볼 때 궁금해할 내용도 달라진다.
말을 얼마나 멋있게 하는가보다.
이 일을 맡기면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
모르는 것은 물어보는가.
약속한 시간에 가져오는가.
잘못되면 숨기는가, 알려주는가.
인성으로 쌓은 지식과 경험도 이런 자리에서 드러날 수 있다.
질문의 뜻을 알아듣고.
필요한 내용을 정리하고.
자기가 모르는 부분을 구분하는 것이다.
큰 직함을 가진 사람이라고 이런 것을 항상 정확히 알아보는 것은 아니다.
말 잘하는 사람에게 끌릴 수도 있고.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과하게 좋게 볼 수도 있다.
그러니 상대의 안목을 믿고 내 인생을 통째로 맡길 필요는 없다.
나도 그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대하고 일을 나누는지 볼 수 있다.
어느 날 대표님에게 연락이 왔다.
“기획 일 하신다고 했죠? 이것 의견 좀 들을 수 있을까요?”
반갑다.
드디어 본업으로 연락이 왔다.
파일을 열었다.
자료가 꽤 많다.
이번 주말에 보면 될 것 같다.
그런데 ‘의견’이 무엇인지 조금 애매하다.
몇 가지 생각을 말해달라는 것인지.
전체 방향을 다시 잡아달라는 것인지.
물어보려다가 멈춘다.
이런 기회를 두고 범위부터 따지면 계산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머릿속에서 이미 다음 장면이 나온다.
“그 친구 괜찮던데. 다음 프로젝트도 맡겨봅시다.”
아직 첫 질문에도 답을 안 했다.
혼자 장기 계약을 했다.
재성의 현실적인 몫이 필요한 지점이다.
내가 쓰는 시간과 자원.
상대가 요청한 범위.
그 뒤에 실제로 약속된 것이 있는지.
상대가 나보다 경력이 많고 자원이 많다고 해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무례해지는 것은 아니다.
“어느 부분을 중심으로 봐드리면 될까요?”
“전체 기획이 필요하면 일정과 비용을 따로 정하면 좋겠습니다.”
말할 수 있다.
물론 처음에는 가볍게 의견을 나눌 수도 있다.
고마운 마음으로 돕고 싶은 일도 있다.
다만 내가 자발적으로 해주는 것인지.
상대가 약속하지 않은 미래의 보상을 기대하며 계속 내놓는 것인지는 알아야 한다.
인정을 받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면, 아직 받지 않은 기회를 대가로 이미 일을 하고 있을 수 있다.
친구가 말한다.
“처음에는 좀 보여줘야지. 큰사람 옆에 붙어 있으면 배울 게 있어.”
배울 것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도 봐야 한다.
판단하는 기준을 알려주는가.
내가 한 일에 구체적으로 의견을 주는가.
성과가 나면 내 역할을 밝혀주는가.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게 만드는가.
아니면 계속 급한 일만 오는가.
이번에는 급하니까.
다음에는 제대로 챙길 테니까.
이번 한 번만.
‘다음’이라는 단어가 내 업무를 잘 시킨다.
월급도 안 받으면서 인사 관리를 하고 있다.
누군가 나를 아껴주고 기회를 주는 관계는 소중하다.
처음부터 정확히 주고받은 양을 계산하기 어려운 도움도 있다.
하지만 아껴준다는 말이 내 선택을 대신하는 권한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널 키우려고 하는 거야.”
고마울 수 있다.
그런데 내가 다른 의견을 냈을 때도 그 말이 유지되는지 봐야 한다.
나를 키운다면서.
자기와 다른 방향으로 자라는 것은 싫어할 수도 있다.
사람은 화분과 다르다.
햇빛 드는 쪽을 스스로 고르고 싶을 때도 있다.
대표님에게 답장을 쓴다.
“우선 보내주신 자료에서 고객이 헷갈릴 만한 부분 두 군데를 짚어드릴게요. 전체 수정이 필요하면 따로 범위를 정하면 좋겠습니다.”
보내고 나니 조금 긴장된다.
괜히 선을 그었나.
그냥 다 해줄 것을 그랬나.
잠시 뒤 답이 온다.
“좋습니다. 두 군데만 먼저 볼게요.”
생각보다 별일이 없다.
나는 혼자 기회를 잃을 준비까지 하고 있었다.
주말에 자료를 보고 정리한다.
두 군데만 보려 했는데 다른 부분도 눈에 들어온다.
이왕 하는 김에.
조금만 더 하면.
여기까지 해주면 감동하지 않을까.
문서가 늘어난다.
수정안도 하나 만든다.
발표 자료도 붙인다.
보내기 전에 파일 이름을 바꾼다.
‘간단한 의견’
첨부 파일은 27쪽이다.
대표님에게 답이 온다.
“이렇게까지 해주실 줄은 몰랐네요. 감사합니다.”
기분이 좋다.
역시 나는 기회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다.
그때 메시지가 하나 더 온다.
“그럼 이것도 한번 봐주실 수 있을까요?”
파일이 3개 도착한다.
잠깐 화면을 본다.
주말이 또 사라질 것 같다.
그래도 친구에게는 이렇게 보낸다.
“대표님이 이제 나만 찾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