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친 인간관계론
커뮤니티
·

이번 달만 넘기면 된다는데, 내 돈은 다음 달에 돌아오나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사업 자금이 조금 부족하다고 한다.

“이번 달만 넘기면 돼.”

얼마가 필요하냐고 물었다.

“3천.”

3천 원은 아닐 것이다. 3천 원 꿔달라는 놈이 더 무섭지, 밥도 못먹는다는 이야기니까...

편의점 앞에서 전화한 목소리는 아니다.

잠깐 말이 없었더니 친구가 덧붙인다.
“너밖에 없다.”

지난번에 이사 도와줄 때도 나밖에 없었다.
픽업트럭 있는 친구가 드문 것은 이해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현금 있는 친구까지 내가 맡게 됐다.

저 놈 인간관계 어떻게 했길래, 나 밖에 없는거야?

“다음 달에 거래처에서 돈 들어오면 바로 줄게.”

다음 달에 들어올 돈으로 이번 달이 어려운 상황이다.
내 돈이 들어가면 다음 달에는 내가 기다리는 사람이 된다...
물론 돈이 없진 않다. 급하게 쓸 돈은 아니긴 하다.

조금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여자친구에게 이야기했다.

여자 친구가 묻는다.
“너 그돈 결혼 준비 자금으로 모아두는 돈이잖아?”

알고 있다.
다만 친구와 통화하는 동안 잠깐 잊었다.

친구의 이번 달은 급하다.
문제는 과연 이번 달만 급할까?

내게 남아 있는 돈처럼 보여도, 그 돈에 맡겨둔 일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며칠 뒤 친구가 다시 연락한다.
아직 어렵다고 했더니 목소리가 달라진다.

“우리가 알고 지낸 지 몇 년인데.”

15년이다.
나는 그동안을 안다.
같이 밤도 새웠고, 힘들 때 이야기도 많이 했다.

그런데 지금은 우정의 기간이 대출 심사 자료로 제출되고 있다.
같이 먹은 삼겹살 횟수도 필요하면 세어야 할 것 같다.

마음이 좀 불편하다.
내가 너무 계산적인가.
친구가 힘들다는데 돈부터 지키는 사람인가?
12초간 나 스스로를 의심해봤다.

친구에게도 나는 서운한 사람일 수 있다.
자기는 무너질 것 같은데, 내가 안전한 곳에서 고민만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같은 통화를 했다.
한쪽은 도움을 거절당했다고 느꼈다.
다른 쪽은 감당할 수 없는 부탁을 받았다고 느꼈다.
15년은 3천만원인가? 아니면 17년은 되어야 3천만원인가?
고민하고 있다.

내가 잃을 것이 크다는 사실만 보고 있으면, 나를 도와줄 사람도 무엇을 잃을 수 있는지는 잘 안 보일 때가 있다.

명리에서 비겁은 나와 나란히 서서 함께 버티는 힘으로 읽는다.

우리 사이.
같이 고생한 사람.
말하지 않아도 알아줄 것 같은 동료와 친구.

그 힘이 있어 혼자서는 넘기 어려운 일을 함께 넘기도 한다.
어려울 때 손을 내미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소중하다.

다만 같은 편이라는 마음이 서로의 부담까지 같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친구에게 3천만 원은 회사를 한 달 더 유지할 돈이다.
나에게는 내 인생 계획에서 중요한 돈일 수 있다. 게다가 미래 가족의 행복과 연계될 수 도 있다.

친구는 “잠깐 쓰고 돌려줄 돈”이라고 한다.
나는 “언제 돌아올지 아직 확인되지 않은 돈”으로 받아들인다.
친구의 인품을 못 믿는 것이 아니라,
사업이란 것, 현재 세계 경제, 국내 경제를 못 믿는 거다.
이렇게 생각하니 맘이 좀 편안하다.

액수는 같다.
돈에 붙은 시간이 다르다.
짊어져야 할 리스크, 감당 못할 수준은 아니지만,
만약 터지면, 내가 또 누군가에게 빌리러 다녀야 할 수 도 있다.
내 픽업 트럭을 팔아야 할 수 도 있고, 그러면 내 오프로드는?
내 외모가 아니라 내 픽업 트럭을 보고 날 사랑하는 여친이 도망가면?

여기서 재성의 현실적인 몫을 함께 볼 필요가 있다.
누가 무엇을 내놓는지.
그것을 내놓으면 무엇을 미뤄야 하는지.
계획대로 안 됐을 때 누가 어디까지 감당하는지.

“나를 못 믿어?”

그 질문에 답하려고 하면 갑자기 어려워진다.
사람을 믿는다고 하자니, 돈을 빌려줘야 할 것 같고.
돈을 빌려주지 않으면, 사람까지 못 믿는 것이 되는 죽음의 질문이다.

하지만 성실한 사람도 돈이 막힐 수 있다.
갚고 싶은 마음과 갚을 수 있는 조건이 늘 함께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친구가 잠수를 탈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전화는 잘 받으면서 돈은 계속 못 줄 수도 있다.
내가 무릎꿇고 돈을 돌려달라고 해야 할 수도 있다.
돈을 빌려준 순간, 빌려준 사람이 약자가 된다고 하지 않더냐

연락은 된다. 게다가 아주 친절하다.
심지어, 추가 변통은 안되냐고 한다. 다다음달을 이야기하면서
입금은 안 된다.
나중에 그 사업체를 나에게 넘기는 불상사가 생기면?

그 상태로 우정을 유지하는 것도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그렇다고 사람이 움직이는 이유를 전부 이익 하나로 설명할 필요는 없다.

돌려받을 생각 없이 돕는 사람도 있다.
자기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도 시간을 내주는 사람도 있다.
존경한다.
그러나 존경한다고, 내가 배워야 하는걸까?

돈을 못 빌려줘도 이야기를 듣고, 다른 방법을 함께 알아볼 수 있다.
도움을 거절했다고 지난 15년이 전부 거짓이 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을 없애고 계산만 하자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좋다는 이유로 실제 비용이 사라진 것처럼 생각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 차이는 회사에서도 자주 나온다.

팀장이 말한다.
“우리 다 같이 조금만 더 고생합시다.”

같이 고생한다.
그런데 고생 뒤에 돌아가는 것은 다를 수 있다.

팀장은 실적을 얻는다.
직원은 야근 시간과 골병을 얻는다.
팀장이 넌 왜 이리 허약한 체질이냐고 핀잔한다.

시간도 얻은 것이라고 할 수는 있다.
다만 내가 원래 갖고 있던 저녁을 반납하고 얻었다.

누군가 업무를 줄일 방법을 제안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검토가 자꾸 미뤄진다.
팀장이 라떼는 신공을 쓰기 시작한다.
전무가 전보 쓰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왜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하지.
다들 바보인가?
아니면, 다들 너무 똑똑해서 그런 걸까?
효율이 높으면, 더 높은 목표가 오니까,
놀면서 야근 많이 하면, 더 이상 일을 안시켜서???
이걸 알아내다니, 난 역시 똑똑해 ...

그럴 때는 이 방식 때문에 누가 불편한지뿐 아니라, 누가 편한지도 볼 수 있다.

직원이 매번 직접 처리하니.
새 도구를 검토할 사람도 필요 없고.
기존 방식을 바꿀 책임도 생기지 않는다.

회사 전체로 보면 낭비일 수 있다.
결정하는 사람의 오늘 일정은 편할 수 있다.
윗사람에게 내가 직원들 착취한다고 자랑할수도 있다.
직원들이 바뻐서 이직 준비할 시간이 없어요!!!

물론 모든 비효율 뒤에 숨은 음모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예산이 없거나, 바꾸는 과정이 더 복잡하거나, 그냥 익숙해서 계속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 혹은 윗사람이 단순히 바보라서 그럴수 있다.

그래도 “왜 저 사람은 저렇게 고집하지?”에서 멈추지 않고,
“바꾸면 저 사람이 무엇을 새로 맡게 되지?”라고 물으면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

관성의 역할과 책임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좋은 일을 하자는 말만으로 담당자가 정해지지는 않는다.
누가 결정하고, 누가 실행하고, 잘못되면 누가 수습하는지까지 봐야 한다.

회의에서는 모두 찬성했다.
끝나고 보니 담당자는 나다.

다른 사람들은 방향에 동의했다.
나는 일정까지 동의한 것으로 처리됐다.

박수 칠 때 손을 너무 높이 들었나 싶다.
앞으론 물개박수 치지 말아야 겠다.
그걸로 칭찬 받을때, 이 날이 올 줄 알았어야 하는데,
짬밥이 부족했다.

좋은 제안을 받았을 때도 이 질문이 필요하다.

아는 형이 말한다.
“이번에 괜찮은 일이 있는데 너한테 먼저 이야기하는 거야.”

고맙다.
나를 먼저 생각해줬다는 말은 언제 들어도 좋다.

그런데 설명을 들을수록 내가 맡을 일이 늘어난다.
현장은 내가 보고.
초기 비용도 내가 넣고.
문제가 생기면 내가 처리한다.
왜 내가 먼저 생각난지 알았다.
난 호구였구나.

형은 연결을 해준다.

연결도 일이다.
가치가 있을 수 있다.
다만 연결한 뒤 누가 현장에 남는지는 확인해야 한다.

처음에는 기회를 받은 기분이었다.
끝까지 듣고 나니 운영 담당자를 구하고 있었던 것 같다.

“너한테 딱 맞아.”

맞을 수도 있다.
내가 그 일을 잘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내게 잘 맞는다는 것과, 내가 좋은 조건으로 맡는다는 것은 별개다.

인성의 이해하는 마음이 앞서면 상대의 설명을 계속 받아줄 수 있다.
비겁의 친밀감이 움직이면 우리 사이에 굳이 따질 필요가 없다고 느낄 수 있다.
식상의 의욕이 앞서면 일단 해보고 싶어질 수도 있다.

그럴수록 재성의 실제 몫과 관성의 책임 범위를 함께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호칭이나 분위기만으로 조건을 대신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이것을 십신 하나씩 붙여서 사람을 분류하는 데 쓰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비겁이 있으니 돈을 빼앗는 사람이고, 재성이 있으니 계산하는 사람이라고 정해버리면 정작 확인할 일을 놓친다.

사람의 글자 이름보다, 이번 일에서 무엇을 맡고 무엇을 얻는지가 더 구체적인 질문이다.

이익을 본다는 것은 상대를 나쁜 사람으로 판정하는 일이 아니다. 서로 다른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다.

처음의 친구에게 다시 연락했다.

“3천만 원을 빌려주기는 어려워. 나도 써야 할 돈이 있어.”

친구가 잠깐 조용해진다.
괜히 설명을 더 하고 싶어진다.

예금도 있고.
곧 나갈 돈도 있다고,,
나 곧 결혼하려고 한다고 이야기 하고,,,
초호화 결혼식에 신혼여행도 이야기하고
여자친구가 그거 안하면 헤어지자고 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15년치 우정을 안 깨려면, 이 정도 쯔음이야

정신을 차려보니 내 가계부와 인생계획서를 구두로 제출하고 있다.
거절하려면 나도 충분히 어렵다는 것을 증명해야 할 것 같다.

말을 멈춘다.
전부 설명한다고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아니다.

친구가 한숨을 쉰다.
“알겠어. 나도 너무 급해서 그랬다.”

안심된다.
그래도 친구를 잃지는 않은 것 같다.

그때 친구가 묻는다.

“그럼 500만 원만 가능할까?”

갑자기 적게 느껴진다.
아까는 3천만 원이었다.
지금은 500만 원이다.

2,500만 원이 줄었다.
내가 아주 큰돈을 지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정도는 내가 한번…….”

말하다가 멈춘다.

지난번에도 비슷했다.
치킨을 안 사면 되는 상황에서 할인 쿠폰을 보고 돈을 아꼈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단위가 다르다.
그런데 머리는 익숙한 방식으로 움직인다.

여자친구에게 메시지를 쓴다.

“3천은 거절했어.”

잠깐 뒤 한 줄 더 보낸다.

“근데 500만 원이면 괜찮지 않을까?”

친구는 부탁을 줄였다.
나는 어느새 허락을 구하고 있었다.
결혼 전인데 허락을 구하다니, 난 좋은 남자야 ....

♡ 좋아요 7
이 주제, 내 사주로

글로 익힌 원리를 본인 명판에 직접 적용한 정밀 진단입니다.

비슷한 글 · 緣
댓글 쓰기 · 寫

로그인후 댓글을 달 수 있습니다.

댓글 · 答 7
  • 염화소녀_(구)남궁현자·

    그 500만원은 돌려받을 생각을 버려야.... (먼산)

    • sean·

      ㅎㅎㅎ

    • 퓨어뮤즈·

      ㅋㅋㅋㅋㅋ

  • 키네시스·

    감사합니다

  • Solara_발렌티노·

    인간관계론으로 책 한편 내셔야겠어유.. ㅋㅋㅋ 너무 재미나요

    • sean·

      이런게 명리학의 현실 응용이라서

    • Solara_발렌티노·

      글 내용이 너무 찰져요🤣 유식님표 유머 세스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