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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향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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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안 고팠는데, 치킨이 오는 중이다

저녁을 먹었다.
밥도 먹고 국도 먹었다. 전 부쳐 먹었다. 삼겹살 조금 남은것도 구워 먹었다.
배우자가 남긴 반찬까지 처리했다.
애가 먹다 남긴것도 먹었다.

소파에 누워 휴대폰을 켰다.
어떤 사람이 치킨을 먹고 있다.

소리가 좋다.
바삭하다. 저 식감 죽이네, 화면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모습, 내가 너무 비싼 휴대폰 샀나? 요즘 휴대폰은 입체도 지원되냐?

저렇게 가까이서 씹는 소리를 들을 필요가 있나 싶지만, 볼륨을 조금 올린다.

다음 영상에는 떡볶이가 나온다. 리브가 엽떡을 머리맡에 두고 잤다고 한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떡볶이가 땡긴다.
그다음에는 피자다. 도미노 피자네,,,
리센느 너무 하네, 생각한다.
어,,, 짜장 라면도 먹네
내 쇼츠를 점령한 것은 리센느일까? 음식일까? 잠시 고민한다.

알고리즘이 코스 요리를 준비했다.
나는 누워서 순서대로 대접받고 있다.

배우자가 묻는다.
“뭐 봐?”

“그냥.”
"배가 불러서, 쉬는 거야"

그냥을 24분 봤다.
이제 그냥으로 끝내기는 어렵다.
왜냐면, 입에서 침이 줄줄 흐르고 있다.
배는 부르다.
그런데 뇌로 가는 신경이 차단된것 같다.

배달 앱을 켠다.
먹겠다는 것은 아니다.
얼마인지 보려고, 진짜 품절 되었나 확인하려고 연 것이다.
요즘 치킨 값이 비싸서, 그냥 가격을 보면 포기가 되서 연것이라고 스스로를 세뇌해본다.

그러다가 할인 쿠폰이란 단어를 보고

장바구니에 담는다.
시키겠다는 것은 아니다.
쿠폰이 적용되는지 보려고 담은거다.

결제했다.
이것 손가락의 습관이다. 내가 한 것 아니다.
손가락을 지져야 할 것 같다.
뜨거운 치킨으로 손가락을 고문해야 겠다.
어쨌든
확인할 것은 다 확인했다.
배가 고픈지만 확인하지 않았다.

먹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것과, 지금 배가 고프다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닐 수 있다.

치킨이 도착한다.
첫 입은 맛있다.
두 번째도 좋다.
이제 배우자를 찾는다. 내가 2조각 안 먹은 척한다.
"요즘 치킨이 양이 줄었어" "요즘 치킨은 왜 다리가 1개만 오지?"
"너 요즘 좀 부실해진것 같아"

그런데 몇 조각 먹으니 아까 영상만큼 감동적이지 않다.
일단 배가 부르다.
저녁을 먹었으니까.

배우자가 묻는다.
“배부르다며, 왜 시켰어?”

말로는 이야기 한다. "너 먹으라고, 너 아까 저녁 깨작거리더라"

나도 궁금하다.
방금까지는 반드시 먹어야 할 것 같았는데.

영상 속 사람은 끝까지 행복했다.
나? 나도 행복하다. 배우자를 생각하는 좋은 사람이란 타이틀을 얻은것 같으니까

먹기 전에는 나는 잠시 빙의 당한 것이다.
1조각 먹은후, 나는 나를 되찾았다.

우리는 먹는 시간보다 무엇을 먹을지 생각하는 데 더 오래 쓰기도 한다.

점심을 먹으면서 저녁 메뉴를 검색한다. 저녁을 먹으면서는 내일 아침에 뭐 먹지를 생각하고, 생각이 완료되면
주말 맛집 순방 후보를 저장한다.
맛집에 다녀오면 같은 동네에서 놓친 맛집을 찾는다.

방금 먹은 집도 괜찮았다.
그런데 200m만 더 갔으면 더 맛있었을 것 같다.
그래서 또 기록해 놓는다.

배는 채웠다.
아쉬움은 별도로 주문했다.

물론 맛있는 것을 기다리는 즐거움이 나쁜 것은 아니다.
친구와 식당을 고르고.
가족이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하고.
휴일에 새로운 요리를 해보는 것도 생활의 재미다.
그리고,, 내 커져가는 배와 주기적으로 사게 되는 새로운 허리띠는 "식신"을 탓하면 된다. 신들린것,, 어쩔수 없다. 신의 명령이었어.
신의 개시였다고,,, 먹어라

다만 내가 즐기려고 보는 것인지, 보다 보니 계속 뭔가를 먹어야 할 것 같아지는지는 살펴볼 수 있다.

내가 음식을 고르는 줄 알았는데, 한참 전부터 음식 영상이 내 저녁 일정을 고르고 있었을 수도 있다.

명리에서 식신은 먹고 누리는 즐거움, 자기 리듬으로 생활을 채우는 모습과 연결해볼 수 있다.

잘 먹고.
맛을 느끼고.
편하게 쉬고.
“아, 잘 먹었다” 하고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즐거움을 누리는 것과 즐거울 장면을 계속 구경하는 것은 조금 다르다.

내 앞에 있는 음식은 식어간다.
휴대폰에서는 남의 음식이 계속 뜨겁다.

나는 김이 안 나는 밥을 먹으면서.
김이 나는 밥에 좋아요를 누른다.
그거 드라이 아이스일수도 있다. 그런데 어찌 저리 윤기가 나고 탱글탱글하고 ,,,

식신이 있다고 무조건 많이 먹는 것도 아니고, 야식을 시켰다고 식상이 문제라는 뜻도 아니다.
여기서는 내가 무엇을 어떻게 즐기고 있는지를 보자는 것이다.

누림이 필요한데 구경만 늘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맛을 느끼기 전에 다음 자극부터 찾는 것은 아닌지.

경쟁하는 비겁의 시선이 끼어드는 장면도 있다.

“너 아직 거기 안 가봤어?”
“그 빵은 먹어봐야지.”
“요즘 그거 모르면 대화가 안 돼.”

나는 빵 없이도 한국어를 잘해왔다.
그런데 갑자기 대화 능력을 유지하려고 줄을 서야 한다.

40분 기다려서 샀다.
사진을 찍는다.
단톡방에 올린다.

“드디어 먹어봤네ㅋㅋ.”

이제 먹어도 된다.
사회적 입학 절차가 끝났다.

문제는 2주에 한번씩 이런 사회적 활동이 ....
뭐 탕후루, 두쫀쿠, 버터떡, 황치즈칩 등등
나의 과거 기억은 다 먹는거지?
난 돼지인가?

맛있을 수도 있다.
내 취향이 아닐 수도 있다.
다만 남들이 먹었다는 사실이 내 입맛까지 정해주지는 않는다.

재성의 현실적인 판단으로 보면 다른 것도 보인다.
음식값뿐 아니라 기다리는 시간.
배달비.
먹지 못하고 남기는 양.
다음 날 냉장고에서 다시 만나는 선택의 결과까지.

어제는 나를 위한 선물이었다.
오늘은 빨리 먹어야 하는 업무다.

그런데 음식이 당기는 순간을 보면, 꼭 음식 이야기만 있는 것도 아니다.

회사에서 한소리 들었다.
하루 종일 남이 시킨 일만 했다.
집에 왔는데 또 할 일이 있다.

오늘 내가 직접 고른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배달 앱을 켠다.
여기서는 내가 결정한다.
양념도 고르고.
맵기도 고르고.
추가 토핑도 정한다.

회사에서는 의견을 안 물어보더니.
여기서는 단무지를 받을지까지 물어봐준다.

거기에 요구도 할 수 있다.
"덤으로 뭐 하나 주세요"

괜히 마음이 풀린다.

이런 날 음식이 위로가 될 수 있다.
그것까지 잘못이라고 할 필요는 없다.

다만 내가 필요한 것이 저녁인지.
잠깐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인지.
오늘 힘들었다는 말을 들어줄 사람인지.
한 번쯤 구분해볼 수는 있다.

음식으로 쉬는 기분을 얻을 수는 있어도, 음식이 밀린 휴식까지 전부 대신해주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내일부터 음식 생각을 완전히 끊겠다고 선언할 필요는 없다.
식사 계획을 세우는 것이 편한 사람도 있다.
미리 준비해두면 오히려 메뉴 검색을 덜 하게 될 수도 있다.

핵심은 먹는 일을 인생에서 지우는 것이 아니다.
먹지 않는 시간까지 계속 음식 구경으로 채우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배가 고프면 먹는다.
먹을 때는 내 앞의 음식도 좀 본다.
다 먹고 쉬고 싶다면, 쉬는 방법이 배달 앱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산책할 수도 있고.
누군가와 이야기할 수도 있고.
재미있는 일을 하다가 평소대로 식사할 수도 있다.

꼭 밥을 잊을 만큼 대단한 취미를 찾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쉬려고 시작했는데 취미에서도 성과를 내야 하면.
힘들어서 또 치킨을 시킬 수 있다.

다행히 유투브가 먹방 계열을 좀 제재한단다.

그래도

다음 날 저녁에도 휴대폰에 치킨 영상이 뜬다.
이번에는 잠깐 멈춘다.

배가 고픈가.
방금 밥을 먹었다.

치킨이 먹고 싶은가.
솔직히 조금 먹고 싶다.
바삭한 소리를 이미 들어버렸다.

그래도 오늘 당장 주문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냉장고를 연다.

어제 남은 치킨이 있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까지 챙겨놓았다.
이런 계획성은 또 있다.

에어프라이어를 돌릴 생각을 한다.

배우자가 묻는다.
“또 먹게?”

또? ,,, 내가 언제 먹었다고,,, 밥은 밥이고, 간식은 간식이고, 치킨은 치킨이지,,,

그러나 말하면, 혼날 것 같아서

“아니. 재고 확인.”

그때 휴대폰이 울린다.
배달 앱이다.

‘오랜만이에요! 오늘만 4천 원 할인.’

어제 만났잖아.
나보다 네가 더 배고픈 것 같다.

그런데, 4천원 할인이라고?
그럼 또 못 참지

안 사면 4천원 손해잖아.

♡ 좋아요 8
이 주제, 내 사주로

글로 익힌 원리를 본인 명판에 직접 적용한 정밀 진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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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答 6
  • 김주희·

    이런거.. 되게 많이 느낌.. 한입 먹자마자 아 뭔가 잘못됐따 이런거.

  • 익명.·

    식신도 없는데 나는 왜 이러는걸까..

  • 시니피에·

    ㅋㅋㅋㅋㅋㅋ 마지막 저에요 ㅋㅋㅋ 할인한다규 하면 갑자기 먹고 싶어지는 것같궄ㅋㅋㅋㅋ

    • sean·

      먹고 싶어지죠

  • 염화소녀_(구)남궁현자·

    할인쿠폰을 보고 "구매"이유를 찾으러...ㅋ

  • 키네시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