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은 못 일어나는데, 한정판은 새벽에도 산다
아침 6시 알람이 울렸다.
오늘부터 운동하기로 했다.
알람을 끈다.
건강하려고 운동하는 것인데 잠을 줄이면 건강에 안 좋을 것 같다.
제법 말이 된다.
다시 잔다.
그날 밤에는 새벽 2시까지 안 잤다.
운동화 한정판 발매가 있었다.
카드 정보를 확인하고.
배송지를 확인하고.
노트북과 휴대폰을 동시에 켰다.
운동하러는 못 일어났는데, 운동화 사려고는 안 잤다.
건강보다 신발이 먼저 준비됐다.
의지가 전혀 없는 줄 알았는데, 내가 당장 원하는 일에는 꽤 성실할 때가 있다.
친구에게 말한다.
“나는 자기관리가 안 돼.”
친구가 묻는다.
“너 그 신발 사려고 해외 사이트까지 가입하지 않았어?”
그건 다르다.
그건 놓치면 안 되는 일이었다.
운동은 내일도 할 수 있다.
한정판은 내일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여기에는 원하는 마음뿐 아니라 차이 하나가 더 있다.
신발은 무엇을 하면 되는지 분명했다.
몇 시에 접속해서 어떤 버튼을 눌러야 하는지 알았다.
성공하면 구매 완료 화면도 떴다.
운동은 달랐다.
‘건강한 사람이 되자.’
크고 훌륭한 목표다.
그런데 내일 아침에 뭘 얼마나 해야 하는지는 안 정했다.
인생은 바꾸기로 했는데.
일단 양말이 어디 있는지부터 찾아야 한다.
명리에서 재성을 내가 얻고 싶은 현실의 결과와 연결해볼 수 있다.
목표가 구체적이면 움직일 이유도 선명해진다.
식상의 작용에서는 직접 해보고 즐기며 만들어내는 힘을 생각할 수 있다.
관성에서는 약속한 시간과 기준을 지키는 힘을 본다.
그러니 원하는 결과만 크게 붙인다고 행동이 저절로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하고 싶은 것.
실제로 할 수 있는 것.
계속할 방식이 연결돼야 한다.
“몸을 완전히 바꾸겠다.”
좋다.
그런데 퇴근하면 이미 지쳐 있는데 새벽 운동에 식단, 독서까지 넣었다.
하루를 바꾸겠다고 했지, 하루를 3개 받았다고 하지는 않았다.
큰 목표가 작은 행동을 이끌 수도 있지만, 너무 큰 계획이 시작을 막기도 한다.
SNS를 보면 더 급해진다.
누구는 출근 전에 운동했다.
누구는 책을 읽었다.
누구는 영어 공부까지 했다.
사진을 자세히 보니 셋은 다른 사람이었다.
나는 세 사람의 아침을 혼자 수행하려고 했다.
비겁의 비교와 경쟁이 이런 데 붙으면, 내게 필요한 일보다 남에게 뒤처지지 않는 일이 늘어난다.
원래는 허리가 덜 아프고 싶었다.
어느새 복근 사진을 찍어야 성공한 것 같다.
허리는 아직 아픈데 수영복부터 검색한다.
그렇다고 의지가 약한 것이 아니라 욕망이 작아서 그렇다고 몰아붙일 일도 아니다.
하고 싶은 마음이 커도 쓸 시간과 힘이 부족할 수 있다.
쉬어야 할 사람에게 목표를 더 크게 가지라고 하면, 피곤한 사람이 야망까지 부족한 사람이 된다.
먼저 작게 해볼 수 있다.
퇴근길에 15분 걷기.
책 5쪽 읽기.
미뤄둔 작업 한 부분 끝내기.
너무 소박해서 발표할 맛은 안 난다.
“여러분, 제가 오늘 걸었습니다.”
댓글이 달릴 것 같다.
“원래 걸으셨잖아요.”
그래도 직접 해보면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언제 하면 덜 힘든지.
어떤 부분은 재미있는지.
계획이 어디서 자꾸 끊기는지.
기록도 거창할 필요는 없다.
월요일. 야근해서 못 함.
화요일. 친구 만나서 못 함.
수요일. 계획표 다시 꾸미느라 못 함.
세 번째 줄에서 잠깐 멈춘다.
운동 계획표는 점점 건강해지고 있었다.
색깔도 밝고, 구성도 탄탄하다.
나는 의자에 앉아 그걸 감상했다.
이번에는 꾸미지 않고 적는다.
‘저녁 먹기 전에 나가면 할 만했음.’
이런 기록은 나를 혼내기보다 다음 행동을 조정하는 데 쓸 수 있다.
매번 인생 전체를 반성할 필요는 없다.
밥 먹고 소파에 앉으면 못 나간다는 정도를 알아도 도움이 된다.
며칠 뒤 새 운동화가 도착했다.
상자를 열고 사진을 찍는다.
친구에게 보낸다.
“이제 진짜 운동한다.”
답장이 온다.
“그래. 오늘 나가?”
잠깐 망설인다.
비가 조금 온다.
운동은 하고 싶다.
그런데 이 신발은 비 맞히기 싫다.
현관에서 예전 운동화를 꺼낸다.
건강은 일단 얘가 맡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