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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봐줘”를 받았는데, 담당자가 됐다

퇴근하려는데 동료가 파일을 보낸다.
“이것 좀 잠깐 봐줄 수 있어?”

숫자 하나가 안 맞는다고 한다.
열어보니 수식이 잘못됐다.
고쳐서 보내줬다.

다음 날 또 온다.
“어제 네가 봤던 파일 있잖아.”

어제는 동료의 파일이었다.
오늘은 내가 봤던 파일이다.
소유권이 조금씩 이동하고 있다.

며칠 뒤 회의에서 팀장이 묻는다.
“이 자료는 누가 마무리하고 있어요?”

동료가 나를 본다.
“같이 보고 있습니다.”

같이 본 적은 없다.
나는 엑셀을 봤고.
동료는 내가 엑셀 보는 것을 봤다.

도움을 한 번 줬을 뿐인데, 어느새 그 일의 진행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처음부터 일을 넘기려고 했는지는 모른다.
정말 급했을 수도 있다.
방법을 몰랐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다음 행동은 볼 수 있다.
알려준 방법을 다음에 써보는가.
자기가 마무리해서 가져오는가.
아니면 파일 이름만 바꿔서 다시 보내는가.

이번에는 ‘최종’이다.
다음에는 ‘진짜최종’이다.
내 퇴근만 최종이 안 난다.

이런 부탁을 잘 받는 사람은 대개 일을 못하는 사람이 아니다.
문제가 보이면 해결 방법도 보인다.
설명하느니 내가 하는 게 빠르다.

맞다.
오늘은 내가 하는 게 빠르다.
그래서 내일도 나한테 온다.

그러다 부탁을 거절하려고 하면 이상하게 죄책감이 든다.
할 줄 알면서 안 해주는 것 같아서.
조금만 더 하면 끝날 것 같아서.

내가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내가 계속 해야 한다는 약속은 아니다.

명리에서 인성은 배우고 받아들이며 보호하는 작용으로 읽는다.
모르는 사람의 사정을 이해하고 한 번 더 알려주는 힘이다.

그런데 상대의 어려움을 받아들이는 동안, 그 사람의 일까지 통째로 받아올 수 있다.
이때는 관성의 역할과 책임 구분도 필요하다.
무엇을 도울 것인지.
누가 끝낼 것인지.
결과는 누가 설명할 것인지.

인성이 있으니 떠맡는다는 뜻이 아니다.
이해하는 마음이 실제 책임으로 넘어가는 순간을 보자는 것이다.

동료에게 말한다.
“수식은 알려줄게. 나머지 항목은 직접 적용해서 마무리해줘.”

대답이 온다.
“네가 하면 10분이면 되잖아.”

그 10분이 오늘만 다섯 번째다.
이 회사에서는 내 10분이 공용 비품인 모양이다.
회의실은 예약이라도 하는데.

여기서 다시 직접 고쳐주면 대화는 빨리 끝난다.
대신 다음 부탁은 더 빨리 온다.

“내 업무가 있어서 대신 마무리할 수는 없어. 적용하다 막히는 부분을 모아서 알려줘.”

상대가 서운해할 수 있다.
“요즘 좀 달라졌네”라고 할 수도 있다.

달라진 것은 맞다.
전에는 부탁을 받으면 작업부터 열었다.
이번에는 내가 맡을 일인지 먼저 확인했다.

그렇다고 함께 처리해야 할 일까지 전부 남의 문제라고 밀어낼 수는 없다.
내가 맡은 업무도 있고, 서로 메워야 하는 상황도 있다.
내 실수로 생긴 문제라면 내가 수습해야 한다.

다만 누군가 계속 일을 덜 끝내도 다른 사람이 끝내주는 구조라면, 덜 끝내는 쪽은 바꿀 이유가 없다.
한 사람은 요령이 늘고.
다른 사람은 야근이 는다.

며칠 뒤 동료가 다시 파일을 보냈다.
이번에는 자기가 수정한 부분과 막힌 곳을 표시해뒀다.

그 부분만 함께 봤다.
제출은 동료가 했다.
팀장의 질문에도 동료가 답했다.

도와주고도 담당자가 되지 않을 수 있었다.

물론 계속 떠넘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때는 답장을 더 친절하게 쓰는 연습보다, 더 이상 받아주지 않는 행동이 필요하다.

퇴근 시간이 됐다.
메신저에 또 알림이 뜬다.

“잠깐만.”

예전에는 그 두 글자를 보면 가방부터 내려놨다.
오늘은 먼저 묻는다.

“무슨 일인데?”

아직 내용도 모르는데, 내 저녁부터 반납할 필요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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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제, 내 사주로

글로 익힌 원리를 본인 명판에 직접 적용한 정밀 진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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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答 1
  • 키네시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