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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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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해줄 때는 진심이었다. 그래서 더 헷갈린다

처음에는 퇴근 시간에 맞춰 전화가 왔다.

밥은 먹었는지.
오늘 힘든 일은 없었는지.
주말에는 어디에 가고 싶은지.

요즘은 메시지를 보내도 한참 뒤에 답한다.

“바빴어.”

그런데 단톡방에서는 방금 웃고 있었다.
나한테 답할 시간은 없는데, 친구가 올린 고양이에게는 할 말이 많다.
"화장실도 안갔어?"
"물은 안 마셨어?"
이런 질문을 더 이상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였다.
돌아오는 것은 냉대나 화내기 뿐이니까

이런 일이 반복되면 지난 대화를 다시 읽는다.

분명 좋아한다고 했다.
먼저 만나자고도 했다.
그때 그 표정까지 연기였을까.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좋아했던 마음이 진짜였다는 것과, 지금도 관계를 성실하게 이어간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여기서 남자는 원래 계산하고 여자는 원래 희생한다고 나누면 설명은 편해진다.
대신 계산하는 여자와 희생하는 남자가 갈 곳이 없어진다.

십신의 시선으로 보면 다른 차이가 보인다.
같은 연락 문제에서도 무엇을 확인하려는지가 다르다.

식신의 시선은 함께 있을 때의 즐거움을 본다.

“만나면 좋고 편한데, 왜 자꾸 확인하려고 해?”

거창한 약속보다 같이 먹고 웃는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
다만 자기만 편하면 상대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게다가 식신은 규정을 싫어해서, 우리 오늘부터 1일 ,,,
남자 여자친구 그런것 싫어한다. 그냥 자연스럽게 같이 있다.
확인하고 싶어하는 여자라면, 꽤나 초기에 힘들 수 있다.
행동은 애인인데, 왜 확정을 안하지? 그런 고통

나는 느긋하게 연애하고 있다.
상대는 금요일 밤까지 주말 약속이 있는지 기다리고 있다.

상관의 시선은 말과 행동의 차이를 짚는다.

“바쁘다면서 단체방에서는 왜 그렇게 말이 많아?”

그냥 넘기던 모순을 정확히 꺼낸다.
그런데 답을 듣기 전에 증거부터 늘어놓으면 대화는 금방 심문이 된다.

지난주 화요일.
어제 저녁.
오늘 오후 3시.

연애를 했는데 기록 관리 능력이 늘었다.

정재의 시선은 실제로 쓰는 시간과 수고를 본다.

“항상 내가 먼저 연락하고, 내가 그쪽으로 가잖아.”

관계를 유지하는 비용이 한쪽에 몰리는지 확인한다.
필요한 계산이다.

다만 매번 같은 양으로 돌려받아야 한다면, 다정함에도 정산 기한이 생긴다.
커피를 받았는데 마음보다 다음 차례가 먼저 떠오른다.

편재의 시선은 여러 사람과 기회를 향해 열려 있다.

함께 있으면 재미있다.
새로운 곳도 알고, 사람을 즐겁게 해준다.

문제는 그 친절이 나에게만 오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특별 대우인 줄 알았는데 기본 서비스였다.
본인은 모두에게 친절했을 뿐이라고 한다.
그래야 인간관계가 유지되고, 새로운 인맥이 기회를 준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관리되는 인맥인가? 궁금해진다.

연인에게 필요한 구분까지 생략했다면, 친화력이라는 말로 끝낼 수는 없다. 게다가 왜 이리 기회를 줄지 모르는 이성들이 많은지?

정인은 상대의 사정을 이해하려 한다.

“요즘 일이 힘들다잖아.”

한 번의 무심함으로 관계 전체를 판단하지 않는 힘이다.
하지만 상대가 설명하지 않은 사정까지 대신 만들어주기도 한다.

피곤해서 그랬겠지.
표현을 잘 못 하는 사람이겠지.
마음은 있을 거야.
친구에게 예의 지키느라고 "고양이"이 이야기를 한거지 나를 무시한게 아닐거야.

상대는 두 글자 보냈는데, 이쪽에서는 해설을 세 문단 썼다.

편인은 그 설명부터 의심한다.

“정말 바쁜 게 맞아?”

달라진 말투와 연락 시간을 기억한다.
놓치기 쉬운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다.

반면 의심이 커지면 답이 빨라도 이상하고 늦어도 이상하다.
갑자기 잘해주면 더 수상하다.

잘못한 것이 있어서 이러나?

관계가 불안한 것인지, 모든 행동을 불안의 근거로 읽고 있는지도 봐야 한다.

비견의 시선은 자기 방식을 지키려 한다.

“나는 원래 연락을 자주 안 해.”

자기 생활이 분명한 것은 좋다.
그런데 처음에는 그렇게 자주 하더니, 이제 와서 원래 그렇다고 하면 상대는 묻고 싶어진다.

그때는 체험판이었나?

겁재의 경쟁심은 상대가 멀어질 때 자극될 수 있다.

곁에 있을 때는 무심하다가 다른 사람이 관심을 보이면 갑자기 적극적이다.

다시 소중해진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빼앗기기 싫어진 것일 가능성이 꽤 높게 있다.

붙잡는 힘이 강하다고, 함께 지내는 정성까지 깊은 것은 아니다.

정관의 시선은 약속을 본다.

매일 똑같이 설렐 수는 없어도, 못 만나면 알려주고 정한 약속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책임만 남으면 이런 말도 나온다.

“내가 바람을 피웠어, 뭘 했어?”

잘못하지 않았다는 설명은 들었다.
함께 있고 싶다는 말은 아직 못 들었다.

칠살의 시선은 불확실한 상황을 빨리 정리하려 한다.

“계속 만날 건지 아닌지 확실히 해.”

질질 끌리는 관계를 끝낼 결단이 된다.
그러나 자기 불안을 상대를 제압해서 해결하려 들면 통제가 된다.

어디에 있는지.
누구와 있는지.
왜 바로 답하지 않았는지.

답장은 빨라졌는데, 애정이 깊어진 것인지 무서워진 것인지 구분해야 한다.

한 사람 안에서도 이런 작용은 섞인다.
중요한 것은 연락 횟수 하나로 사랑을 판정하는 일이 아니다.

달라진 상황을 설명하는가.
불편하다는 말을 들으면 조정하는가.
아니면 예민하다는 말로 상대에게 전부 돌리는가.

일부러 차갑게 굴어서 다시 매달리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야만 관심을 받는다면, 앞으로도 계속 도망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

좋아하는데 안 좋아하는 척하느라 연애가 바빠진다. 머리 굴리는게 싫거나 그런 사람들은 지치기 쉽다.

예전에 잘해줬다는 사실을 지울 필요는 없다.
그때는 정말 좋았을 수 있다.

다만 지금의 관계를 판단할 때마다, 처음 한 달을 증인으로 부르지는 말자.

그 사람이 한때 나를 좋아했다는 증거와, 앞으로도 내가 이 관계에 머물 이유는 같은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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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제, 내 사주로

글로 익힌 원리를 본인 명판에 직접 적용한 정밀 진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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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答 3
  • 키네시스·

    감사합니다

  • 익명.·

    ㅋㅋㅋㅋ편인 설명 넘 정확해서 소름돋는다.

  • Petros Nox·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