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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역단(高島易断) 이야기

역(易)의 종주국이 역수입한 책이 있다. 중국이 만든 주역(周易)을, 일본 사람이 정리한 책을 중국이 다시 번역해서 공부했다. 고도역단(高島易断). 이 이름을 들어본 사람도 있을 것이고, 처음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역학을 좀 한다는 사람 치고 이 책을 모르면 곤란하다.

이 이야기는 감옥에서 시작한다.

1860년, 에도(江戸) 시대 말기. 타카시마 카에몬(高島嘉右衛門)이라는 상인이 화폐 밀매죄로 감옥에 갇혔다. 스물여덟 살이었다. 감옥이라는 곳이 원래 할 일이 없다. 먹고 자고 벽을 보는 것이 전부다. 그런데 낡은 다다미 사이에서 책이 한 권 나왔다. 역경(易經)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펼쳐보다 덮었을 것이다. 역경이라는 책이 원래 쉬운 책이 아니다. 그런데 카에몬은 달랐다. 다른 할 일이 없었다는 것도 있겠지만, 이 사람은 이 책을 통째로 외울 때까지 읽었다. 감옥에서의 수년이 이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바꿨다.

출옥 후 카에몬은 사업가가 되었다. 그것도 보통 사업가가 아니었다. 요코하마(横浜) 항구 매립 사업, 일본 최초의 호텔 건설, 가스등 사업, 철도 부설. 메이지(明治) 시대 일본의 근대화를 상징하는 굵직한 사업마다 이 사람의 손이 닿았다. 요코하마에 지금도 타카시마(高島)라는 지명이 남아 있고, 지하철역 이름에도 그의 성이 붙어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의 사업 방식이 좀 독특했다. 모든 중요한 결정을 역(易)으로 점을 쳐서 판단했다. 투자할 때, 사업을 시작할 때, 계약을 맺을 때. 점을 치고 괘(卦)를 얻고, 그 괘에 따라 움직였다. 감이 아니라 점이었고, 점이 아니라 판단 체계였다.

카에몬의 점이 유명해진 데는 이유가 있다. 맞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나라의 운명이 걸린 일에서 맞았다.

스물두 살 때의 일이다. 점을 쳤더니 이위화(離為火)가 나왔다. 불에 관한 괘다. 카에몬은 곧 큰 불이 날 것이라고 보고, 목재를 대량으로 사들였다. 얼마 후 안세이(安政) 대지진이 터졌다. 에도가 불바다가 되었고, 목재 값이 하늘로 솟았다. 카에몬은 이것으로 첫 번째 큰돈을 벌었다.

청일전쟁(日清戦争)에서 일본이 이긴다고 점쳤다. 맞았다. 그 뒤에 삼국간섭이 온다고 점쳤다. 맞았다. 러일전쟁(日露戦争)에서도 일본이 이긴다고 점쳤다. 이것도 맞았다. 이 점괘들은 당시 일본 신문에 실렸다. 국민신문, 보지신문 같은 매체에 전쟁 전에 점 결과가 실리고, 전쟁이 끝난 뒤 결과가 맞았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가장 유명한 것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암살 예언이다. 이토가 만주로 출장을 간다고 했을 때, 카에몬이 점을 쳤다. 간위산(艮為山) 삼효변(三爻變). 대흉(大凶)이었다. 카에몬은 가지 말라고 만류했다. 이토는 듣지 않았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의사에게 저격당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소름 돋는 부분이 있다. 간위산(艮為山)에서 중간(重艮)이라는 글자가 나오는데, 암살자의 이름이 안중근(安重根)이었다. 重과 艮, 두 글자가 겹쳤다.

여기까지 읽으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주역은 중국 것이다. 삼천 년 넘는 역사를 가진 중국의 경전이다. 그런데 왜 일본 사람이 쓴 주역 해설서를 중국이 다시 번역해서 공부했을까.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중국이 자기 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역경이라는 책에는 두 가지 방향이 있다. 하나는 의리역(義理易)이다. 괘의 철학적 의미를 탐구하는 것이다. 우주의 이치, 도덕의 원리, 만물의 변화 법칙. 이런 것들을 역경에서 읽어내는 학문이다. 다른 하나는 상수역(象數易)이다. 괘의 상(象)과 수(數)를 가지고 실제로 점을 치고, 일의 길흉을 판단하는 것이다.

송(宋)나라 이후, 중국 역학의 주류는 의리역 쪽으로 기울었다. 주희(朱熹) 이후로 역경은 점점 철학 교과서가 되어갔다. 과거 시험에 나오는 경전이 되었고, 선비들의 교양이 되었다. 점을 치는 것은 하류의 일이 되었다. 민간에서야 점을 쳤지만, 학문의 영역에서 실점(實占)은 점점 자리를 잃었다.

그 사이 일본에서는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역경이 일본에 전래된 것은 오래전이지만, 일본인들은 이 책을 철학으로 읽는 것보다 실제로 써먹는 데 관심이 많았다. 점을 치고, 결과를 기록하고, 맞고 틀린 것을 분석하고, 다시 점을 쳤다.

카에몬이 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이 사람은 평생 수천 건의 점을 쳤고, 그 중 중요한 점사들을 하나하나를 기록으로 남겼다. (기록의 일본인 답다.)어떤 질문을 했고, 어떤 괘가 나왔고, 어떤 효(爻)가 동했고, 어떻게 판단했고,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이것을 64괘 전체에 걸쳐 정리한 것이 고도역단(高島易断)이다.

고도역단이 중국에서 주목받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에는 800건이 넘는 실제 점괘 기록이 들어 있다. 추상적인 철학 해설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이 무엇을 물었고, 괘가 무엇을 말했고, 현실에서 어떻게 되었는지가 적혀 있다.

중국의 역학자들이 이 책을 보고 충격을 받은 것은, 내용이 놀라워서가 아니었다. 자기들이 잃어버린 것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괘사(卦辭)와 효사(爻辭)를 가지고 실제 상황에 대입하는 법, 동효(動爻)를 읽는 법, 변괘(變卦)를 따라가는 법. 이런 것들이 중국에서는 이미 학문 밖으로 밀려나 있었는데, 일본 사람이 그것을 고스란히 살려서 체계적으로 정리해놓은 것이다.

카에몬은 이 책을 한문(漢文)으로도 번역했다. 청(清)나라의 원세개(袁世凱), 이홍장(李鴻章) 같은 거물들에게 직접 보냈다. 영어 번역본을 만들어 1893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종교대회에 출품하기도 했다. 이 사람은 역(易)이 동양의 종교이자 철학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을 세계에 알리고 싶어했다.

중국에서 고도역단의 번역본이 나온 것은 그 뒤의 일이다. 백화고도역단(白話高島易断)이라는 이름으로, 고전 한문이 아닌 현대 중국어로 풀어쓴 판본이 출판되었다. 중국의 역학을 공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 책은 필독서가 되었다. "점괘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으면 고도역단을 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생각해보면 묘한 일이다. 삼천 년 전 중국에서 태어난 책이,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갔고, 일본 감옥의 다다미 밑에서 한 상인의 손에 들어갔고, 그 상인이 평생을 걸어 800건의 실전 기록을 남겼고, 그 기록이 다시 바다를 건너 중국으로 돌아갔다.

돌아간 이유는 딱 하나다. 중국에는 이론이 있었지만 기록이 없었다. 일본에는 이론은 중국에서 빌려왔지만 기록을 남겼다. 이론과 실전 중에 어느 쪽이 살아남는가. 카에몬이 감옥에서 역경을 주운 것은 우연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뒤로 이 사람이 한 일은 우연이 아니었다.

점을 치는 것까지는 누구나 한다. 결과를 기록하는 사람은 드물다. 기록을 쌓아서 체계를 만드는 사람은 더 드물다. 카에몬은 역성(易聖)이라 불렸다. 역의 성인이라는 뜻이다. 중국에서도 이 호칭에 토를 달지 않았다.

펀역의 주역점에도 고도역단의 그림자가 있기는 합니다. 물론 자체 해석 체계가 있지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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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答 4
  • 참치·

    재밌게 읽었습니다!

  • 랩·

    신비롭네요

  • 키네시스·

    감사합니다

  • 익명.·

    재미있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