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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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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이라는데, 왜 만나고 오면 기분이 이상할까

처음 만난 사람인데 자꾸 어깨에 손을 올린다.

웃으면서 한 발 물러난다.
상대가 한 발 다가온다.

친화력이 좋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영역 탐지 기능이 고장 꺼져있나? 왜 침범하지?

말도 친근하게 한다.

“우리 이제 편하게 지내요.”
"우리 말 놓을까요?"

아직 안 편한데.
편하게 지내자는 결정은 누가 한 것인가.
지금 당신 무례한것 아나?

주변에서는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

능력도 있고.
아는 사람도 많고.
원래 사람을 좋아해서 그런다고.

그래서 불편한 쪽이 자기 상태를 점검한다.

내가 너무 낯을 가리나?
사회성이 부족한가?
이 정도도 못 받아주면 누구를 만나겠나.

상대는 계속 가까워지고, 이쪽은 자꾸 자기를 고친다.

사람을 만나다 보면 이런 순간이 있다.

딱히 큰 잘못을 한 것은 아니다.
욕을 한 것도 아니고.
돈을 빌려달라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같이 있으면 어깨가 굳는다.
말을 고르게 된다.
빨리 집에 갔으면 좋겠다.

이럴 때 그 불편함을 바로 지워버릴 필요는 없다.

아직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고, 불편하지 않은 것은 아니니까.

그렇다고 “몸이 알아봤다.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까지 가면 ,,,
당신은 신끼 있는 사람으로 분류될 수 있다.

몸이 불편하다는 것과 상대의 인품을 알아냈다는 것은 다르다.

낯선 자리라 긴장했을 수도 있다.
예전에 불편했던 사람과 말투가 비슷할 수도 있다.
그날 유난히 지쳤을 수도 있다.

표정이 무뚝뚝해서 어려웠는데, 알고 보니 자기보다 더 낯을 가리는 사람일 때도 있다.

둘 다 집에 가서 생각한다.

저 사람은 나를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더라.

서로 조심하느라 관계가 시작도 못 했다.

그러니 첫 느낌은 참고할 수 있지만, 사람에 대한 최종 판결문으로 쓰기는 어렵다. 물론 과학적으로 보면, 대부분은 첫 느낌으로 사형 선고까지 끝낸다.

그러나 , 첫느낌이 좀 거슬린다
명리학 공부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가까워지는 속도를 늦출 이유로는 충분하다.

오늘 처음 만났는데 굳이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다 할 필요는 없다.
다음 주 약속을 그 자리에서 잡지 않아도 된다.
연락처를 주었다고 매일 답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상대가 나쁜 사람이라는 증거를 다 모아야만 거리를 둘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아직 편하지 않을 수도 있다.

친해지는 데도 시간이 필요한데, 가끔 그 과정을 생략하려는 사람이 있다.

“우리가 남이에요?”

오늘 처음 봤으면 아직 남이긴 하다.
함께 살아도 남이고
가족이 되고나면, 가족도 남인걸 알게 된다.
왜 남의편 줄임말 남편이란 단어가 있나?

왜 벌써 가족회의 분위기인가.

이럴 때는 막연히 기분이 나쁘다는 것에서 한 걸음만 더 가보면 좋다.

어떤 순간에 불편했는가.

대답하기 곤란해서 웃고 넘겼는데 같은 질문을 다시 했는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자기 경험으로 덮었는가.
자리를 옮기면 따라와서 계속 붙어 있었는가.

이렇게 보면 조금 구체적이 된다.

처음에는 그 사람의 분위기가 싫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내가 피하는 신호를 계속 무시한 것이 불편했을 수도 있다.

그때는 짧게 말할 수 있다.

“그 이야기는 안 하고 싶어요.”
“저는 여기 앉아 있을게요.”
“오늘은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다음 반응을 보면 된다.

“아, 제가 너무 물었네요.”

이렇게 물러나는 사람이 있다.

반대로,

“왜 그렇게 벽을 쳐요?”
“사람이 좀 편하게 살아야지.”

이렇게 나오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보통은 좀 비겁이 강한 경우가 많다.

본인은 편하다.
불편한 쪽만 계속 노력하면 되는 구조다.

처음의 느낌보다, 이렇게 작은 선을 그었을 때 보이는 반응이 더 많은 것을 알려줄 수 있다.

명리에서 합(合)을 이야기하면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붙는다.
통한다.
관계가 이어진다.

그러니 합이 많으면 좋은 관계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붙는다는 것과, 붙어서 나에게 이롭다는 것은 다르다.

명식에서도 합이 필요한 작용을 살릴 때가 있고, 써야 할 글자를 묶어 제 역할을 못 하게 할 때가 있다.

무엇과 무엇이 합하는지.
그 결과 어떤 작용이 남고 어떤 작용이 줄어드는지를 봐야 한다.

관계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있다.

처음부터 말이 잘 통한다.
밤새 연락해도 재미있다.
하루만 연락이 없어도 허전하다.

그런데 가까워진 뒤부터 자기 일정이 계속 밀린다.
거절하기 어려워진다.
상대 기분에 따라 하루가 달라진다.

분명 잘 붙었다.

그래서 잘 지내고 있는가 하면, 그건 또 봐야 한다.

반대로 충(沖)이 있다고 무조건 나쁜 관계로만 읽을 수도 없다.

명식에서는 충이 어떤 자리를 움직이고 무엇을 흔드는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생활의 관계로 비유하면, 내 방식과 달라서 처음에는 불편한 사람이 오히려 필요한 구분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건 제가 할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처음 들으면 좀 차갑다.

그런데 그 사람은 자기 일도 남에게 슬쩍 넘기지 않는다.
퇴근 후에는 연락하지 않고.
약속한 범위는 정확하게 지킨다.

처음에는 정이 없다고 생각했다.

몇 달 지나고 보니 같이 일하기 편하다.

내 기분을 계속 맞춰주는 사람은 아닌데, 내 생활을 함부로 건드리지도 않는다.

이런 편안함은 첫 만남에서 바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궁합을 볼 때도 “합이니 좋다, 충이니 나쁘다”로 끝내면 부족하다.
충이 있다고 안좋다.
형이 있다고 안좋다.
그렇게 쉽게 궁합 볼 수 있으면,,,,,,

서로 끌리는가.
함께 있을 때 각자의 역할이 살아나는가.
오래 지낼 때 어떤 부담이 생기는가.

이것은 나누어 봐야 한다.

만나고 싶은 사람과, 만나고 나서 생활이 괜찮은 사람이 항상 같은 것은 아니니까.

현실에서는 반대의 착각도 많다.

너무 편한 사람을 만났다.

말을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내가 누군가를 욕하면 바로 알아듣는다.
거기에 자기가 아는 이야기까지 보태준다.

둘이 만나면 시간이 잘 간다.

그런데 헤어지고 나면 세상에 괜찮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

세 시간 동안 호흡은 완벽했다.
주변 사람들은 전부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이 관계가 편한 것은 맞다.

그런데 그 편안함이 내 판단을 더 낫게 만드는지는 다른 문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도 되는 관계와,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맞다고 해주는 관계는 조금 다르다.

사람이 익숙해서 편할 수도 있고.
상대가 나를 존중해서 편할 수도 있고.
서로 불편한 이야기는 전혀 안 해서 편할 수도 있다.

편안하다는 느낌 안에도 내용이 여러 가지다.

그러니 몸이 편하면 무조건 좋은 사람, 긴장하면 무조건 나쁜 사람으로 나누면 또 다른 단순한 관인술이 된다.

관상책은 안 봤는데 자기 어깨의 긴장도로 인품을 판단한다.

어깨도 그렇게 큰 책임까지 맡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불편한 사람 곁에서 계속 버티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판단을 보류하는 것과 관계를 계속 깊게 만드는 것은 다르다.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지금보다 가까워지고 싶지는 않다.

이 두 문장은 같이 있을 수 있다. 그런게 성숙한 어른이다.

회사에서 만나야 한다면 업무만 이야기할 수 있다.
모임에서 마주친다면 인사만 할 수도 있다.
친구의 친구라고 반드시 내 친구가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관계에 결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좋은 사람이다.
나쁜 사람이다.
나와 맞는다.
안 맞는다.

아직 그 정도로 정리할 만큼 아는 사이가 아닐 수도 있다.
결론을 미룬다고, 누가 게으르다고 하지 않는다.
또 관계에서 효율을 찾을 필요도 없다. 누가 돈주냐?

그냥 몇 번 본 사람.

그 자리에 두면 된다.

반대로 함께 있을 때 편안한 사람이 있다면, 굳이 관심 없는 척할 필요도 없다.

다음에 또 보자고 할 수 있다.
먼저 연락할 수도 있다.
같이 있으면 편하다고 말해도 된다.

그렇다고 처음의 편안함에 관계 전체를 맡기지는 말자.

말이 잘 통하는 것은 만나볼 이유가 된다.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
돈과 약속을 어떻게 다루는지.
서로 원하는 것이 다를 때 어떻게 조정하는지는 만나면서 알아갈 일이다.

처음부터 경계심을 가득 채울 필요도 없고, 첫날 전부 내려놓을 필요도 없다.

조금씩 알아가는 것이다.

사람이 좋은지 나쁜지 단번에 알아보는 능력보다, 가까워지는 속도를 스스로 조절하는 능력이 더 쓸모 있을 때가 많다.

처음의 모임으로 돌아가보자.

그 사람이 또 어깨에 손을 올린다.

이번에는 웃으면서 몸만 피하지 않고 말한다.

“저는 어깨에 손 올리는 건 좀 불편해요.”

상대가 손을 내린다.

어쩌면 정말 몰랐을 수도 있다.
그러면 다음에 달라지는지 보면 된다.

그런데 그 말을 했다고 유난이라며 핀잔을 준다면...

적어도 한 가지는 알게 된다.

이 사람과 편하게 지내려면, 내 불편함을 없는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구나.

거기까지 할 필요는 없다.

어깨 하나 편하게 두는 데, 그렇게 많은 설명이 필요한 사이면 아직 가까운 사이는 아닌 것이다.

아니 가까워질 필요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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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제, 내 사주로

글로 익힌 원리를 본인 명판에 직접 적용한 정밀 진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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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答 5
  • 익명.·

    감사합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보는 눈과 가드가 올라간다는 것.

  • 참치·

    감사합니다

  • 염화소녀_(구)남궁현자·

    어깨 자꾸 만지면, 각차할때 화염이 줄어들수...(?)응?

  • 퓨어뮤즈·

    처음 사람 볼 때 감으로 판단 하는데 ㅋㅋㅋ 좋은건지 나쁜건지는 모르겠습니다.

  • 키네시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