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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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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여자

“그 여자분은 비싼 데 데려가도 별로 반응이 없더라.”

아는 남자가 조금 억울한 표정으로 말한다.

예약하기 어려운 식당이었다.
자리도 좋은 곳으로 부탁했다.
계산할 때도 제법 나왔다.

맛있게 먹었다고는 했다.
고맙다고도 했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다음 날 갑자기 연락이 잦아지지도 않았고.
이번 주말에 만나자는 말에는 이미 약속이 있다고 했다.

남자는 이해가 안 된다.

그 정도 했으면 좀 달라져야 하는 것 아닌가.

밥을 산 줄 알았는데, 본인은 뭔가를 결제한 모양이다.

상대 마음에는 아직 입금이 안 됐고.

요즘 찾아보기 쉽지는 않지만, 돈이나 지위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가까워지기 어려운 여자가 있다.

좋은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니다.

좋은 호텔에 가면 좋아한다.
비싼 음식도 맛있게 먹는다.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가격도 찾아본다.

그리고 비싸면 창을 닫는다.

아쉽기는 하다.
그렇다고 하루가 망하지는 않는다.

그 물건이 없어도 할 일이 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보고 눈이 낮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한다.

그런데 어쩌면 살 수 없는 것 때문에, 이미 가지고 있는 하루까지 싫어하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다.

주변에서 묻는다.

“그 사람 조건 좋다며. 왜 더 안 만나?”

조건은 좋았다.

그런데 만나고 돌아오면 이상하게 피곤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든 결국 자기 자랑으로 돌아갔다.
어디에 갔다는 말을 하면 거기보다 더 좋은 곳을 알려줬다.
뭘 좋아한다고 하면 그 취향을 평가했다.

밥은 맛있었는데, 같이 먹는 동안 자꾸 자기 생활이 초라해지는 기분이었다.

“그 정도는 맞춰줄 수 있잖아.”

맞춰줄 수도 있다.

그런데 다음 주에도.
그다음 달에도.
계속 그래야 한다면.

그 사람이 가진 것을 구경하는 대가로, 자기 이야기를 줄이며 살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좋은 조건을 알아보는 것과, 그 조건 때문에 불편함을 계속 참는 것은 다른 일이다.

그렇다고 이런 여자를 세상 욕심이 하나도 없는 사람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산과 강을 사랑하고.
책 한 권이면 행복하고.
명품에는 눈길도 안 주고.

그렇게 설명하면 사람이 아니라 관광지 소개문이 된다.

실제로는 예쁜 가방을 좋아할 수도 있다.
월급이 오르면 기분이 좋을 수도 있다.
옆 사람이 좋은 집으로 이사했다는 말에 잠깐 부러울 수도 있다.

다만 부럽다는 이유로 자기 삶의 주인을 바꾸지는 않는 것이다.

그 가방이 갖고 싶다.
그렇다고 그 가방을 사주는 사람의 말이라면 다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 구분이 생각보다 중요하다.

선물을 주고 나서 말이 달라지는 사람이 있다.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분명 생일 선물이었다.

그런데 싸울 때마다 다시 나온다.

처음 받을 때는 없던 조건이 나중에 붙는다.
교환과 환불은 안 되는데, 의무는 계속 추가된다.

이런 것을 몇 번 겪고 나면 비싼 선물을 선뜻 받지 않게 될 수도 있다.

물욕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받은 뒤에 생기는 일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더 비싼 선물이 아닐 수 있다.

받지 않겠다고 했을 때 기분 나빠하지 않는 태도일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남자들이 또 이상한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아, 돈 안 드는 여자네.”

아니다.

돈으로 대신하기 어려운 부분을 보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다.

외식 한 번 안 하고.
기념일도 다 넘기고.
자기는 편한 대로 살면서.

“너는 그런 거 중요하게 생각 안 하잖아.”

상대의 가치관을 자기 편의에 맞게 사용하면 곤란하다.

비싼 것이 필요 없다는 말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다르다.

상대는 가격표를 덜 볼 수 있다.
대신 다른 것을 더 자세히 볼 수도 있다.

함께 쓰는 공간에서 자기 몫을 하는지.
돈 이야기를 불편하다고 미루지 않는지.
상대의 일정도 자기 일정만큼 중요하게 여기는지.

고급 식당 예약은 비서가 해줄 수도 있다.

그런데 함께 먹고 남은 것을 치울 때마다 갑자기 급한 전화가 오는 습관은, 누가 대신 고쳐주기 어렵다.

명리에서 재성(財星)은 내가 다루고 운용하는 자원이다.

돈도 그 안에 들어간다.

그런데 재가 있다고 해서 그 사람 전체의 값이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얼마를 가지고 있는가.
그것을 어떻게 쓰는가.
주고받는 관계에서 무엇을 요구하는가.

이것은 따로 봐야 한다.

인성(印星)을 배워서 받아들이고 자기 안에 남기는 쪽으로 읽을 때도, 책을 몇 권 읽었는지만 세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배운 것이 실제로 자기 기준이 되었는가.

남이 더 좋은 것을 보여주면, 어제까지 만족하던 것을 바로 부끄러워하게 되는가.

이런 데서 차이가 드러날 수 있다.

물론 재성이 어떻고 인성이 어떻다는 이유만으로 누가 속물이고 누가 고상하다고 정할 수는 없다.

책장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에도 과시는 들어갈 수 있고, 비싼 물건을 좋아하는 사람도 관계에서는 담백할 수 있다.

무엇을 좋아하느냐만큼, 그것 때문에 어떤 행동까지 하느냐를 봐야 한다.

자기 생활이 있는 사람은 누군가를 만났다고 모든 일정을 비우지 않는다.

연락이 오면 반갑다.

그런데 오늘 하던 일을 마저 할 수도 있다.
먼저 잡은 약속에 갈 수도 있다.
혼자 보내려고 비워둔 시간을 그대로 둘 수도 있다.

그것을 밀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일부러 답을 늦게 하나?”

정말 다른 일을 하고 있을 수 있다.

그 사람의 하루가 내 연락을 기다리는 시간으로만 구성되어 있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이런 사람과 가까워지려면, 자기가 들어갈 자리가 있다는 것과 모든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연인이 생겨서 좋아졌다.

그렇다고 원래 좋아하던 것들을 전부 그만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친구를 만나고.
혼자 걷고.
하던 일을 이어간다.

둘이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도, 각자가 오래 쌓아온 생활이 조금은 남아 있어야 한다.

그래야 만날 때 할 이야기도 있지 않나.

하루 종일 서로 뭐 하는지만 확인했는데, 저녁에 만나서 무슨 새로운 이야기를 하겠나.

“아까 먹었다던 김밥은 어땠어?”

취조는 성실하게 했는데 대화 소재가 부족하다.

물론 자기 생활이 있다는 이유로 상대에게 늘 맞추라고 하는 것도 별로다.

자기 시간은 소중하고.
상대 시간은 남는 시간이고.

그런 것은 독립적이라기보다 같이 지내기 어려운 쪽에 가깝다.

관계가 깊어지면 서로 조금씩 바뀐다.

혼자 하던 일에 한 사람을 들이기도 하고.
중요한 날에는 일정을 옮기기도 하고.
자기 방식만 고집하던 사람이 다른 방식을 배워보기도 한다.

이것을 꼭 자존심을 내려놓았다거나, 여자가 고개를 숙였다고 표현할 필요가 있나.

같이 있고 싶어서 자리를 내준 것이다.

정복한 것이 아니다.

깃발 꽂지 말자.

그리고 자기 기준이 있는 사람이라고 늘 좋은 사람만 만나는 것도 아니다.

속을 수도 있다.
좋아해서 판단을 늦출 수도 있다.
헤어지고 한동안 힘들 수도 있다.

내면이 단단하면 상처도 안 받는 줄 아는데, 그렇지는 않다.

다만 관계가 끝났을 때 돌아갈 자기 생활이 조금 남아 있을 수 있다.

오랫동안 하던 일.
다시 연락할 친구.
혼자서도 가던 장소.
중간에 멈춰둔 작은 계획.

그런 것들이 있다고 바로 괜찮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그 사람과 헤어졌다고 자기 삶 전체를 폐업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런 여자를 만나고 싶다고 말하는 남자도 많다.

돈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위보다 사람을 봤으면 좋겠다.
남의 시선을 덜 신경 썼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한 가지는 생각해볼 일이다.

상대가 정말 돈과 지위를 잠깐 옆에 놓고 바라봤을 때, 나는 어떤 사람으로 보일까.

직함을 말하지 않은 저녁에도 대화가 이어지는가.
돈을 쓰지 않는 시간에도 함께 있기가 편한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을 때도 상대를 존중하는가.

사람 자체를 봐달라고 했으니, 그쪽도 보게 된다.

그때 다시 차 키를 식탁 위에 올려놔도 이야기가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처음의 그 남자는 결국 묻는다.

“그럼 뭘 해줘야 마음에 드는데?”

뭘 더 해줄지부터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지난번에 그 여자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떠올려보면 된다.

요즘 무엇을 재미있어했는지.
어떤 일 때문에 고민했는지.
주말에는 왜 시간이 안 된다고 했는지.

식당 가격은 정확히 기억한다.

그런데 그 여자가 한 말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아직 그 사람에게 보여준 것은 많은데, 알아본 것은 별로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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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제, 내 사주로

글로 익힌 원리를 본인 명판에 직접 적용한 정밀 진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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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答 12
  • 潤潤 (윤윤)·

    우와. 정말로 100%, 100000% 공감하는 글이네요. 조건과 배경이 좋으면 다른것들은 감수하고 사귀어서 결혼하는 친구들도 있는데, 도저히 안되는 사람도 많거든요. 차가 뭔지, 돈이 얼마있는지 여자는 그런거 관심도 없는데 그것믿고 꺼드럭대는 남자. 부모님 돈 갖고 자기돈인 것 마냥 허세부리는 남자. 여자는 돈이 싫은게 아니라 그런 남자가 싫은 거거든요ㅋ 명품, 좋은 호텔, 미슐랭 레스토랑 싫어할 여자 있을까 싶은데 그런것도 그걸 해주는 사람이랑 통하는게 없다면 굳이 참아 가면서 만나느니, 내돈내산하겠다. 이게 딱 맞아요.

    • sean·

      짧아도 몇년, 길면 수십년을 함께 살건데, 참으면서 어케 살아요. 맘 편해야, 덜 늙지 ㅋㅋ

  • 키네시스·

    감사합니다

  • 찐빵맘·

    오 모든 남자들이 읽었으면 하는 글이네요…ㅎㅎ 공감 백만개 감사합니다

  • 랩·

    아니... 일단 비싼식당을 예약잡게하려면 어떻게해야하는건가요..

    • sean·

      이 여자 비싸다고 , 느껴야 ㅋ

  • 참치·

    감사합니다

  • 망고젤리·

    깊은 내용이 담긴 묵직한 글이네요. 한번 제 자신도 함께 돌아봅니다. 감사합니다.

  • 절제와행복·

    자기 중심이 선 사람은 연애도 잘하겠죠 관살혼잡은 다시 태어나야해 ㅋㅋ

  • 은율·

    완젼 공감됩니다 감사합니다

  • 사랑뽀·

    대학생 시절 친구 소개팅을 시켜준적이 있는데 남자가 친구한테 너무 자기 자랑만 했다고해서 민망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ㅋ 물론 뭐 스펙이 뛰어났던 남자라 자기 내세울만한거 충분히 이해는 하는데 아무리 잘났어도 그런 남자는 피곤하다는ㅜㅜ

  • 익명.·

    돈 많은 남자를 만나본 적이 없네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