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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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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관녀의 애정

“이상형이 뭐예요?”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요.”

조건이 소박해 보인다.

키를 물은 것도 아니고.
연봉을 물은 것도 아니고.
집이 어디 있는지 물은 것도 아니다.

그냥 말이 통하면 된다.

그런데 그 ‘그냥’ 안에 들어 있는 것이 꽤 많다.

내 농담을 이해해야 한다.
게다가 내가 웃기다는것이 아주 중요한 포인트다.
그걸 인정 안하면 긁힌다.
설명 안 해도 맥락을 알아야 한다.
자기 생각은 있지만 고집은 세지 않아야 한다.
내가 모르는 것을 알려주되 가르치려 들면 안 된다.

가끔은 내 말에 반대해도 좋다.

단, 납득되게.

면접이 쉽지 않다.
합격자가 아직 없는 이유가 조금 보인다.

명리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저 상관이 있어서 연애가 어려운가요?”라고 묻는 경우가 있다.

상관(傷官)은 내가 생해서 밖으로 내놓는 기운이다. 생각, 표현, 기존 방식에 대한 질문 같은 쪽으로 풀어볼 수 있다.

전통적인 여명 해석에서 관성을 배우자와 연결하고, 상관이 정관을 극하는 관계를 보니 연애나 결혼 이야기에도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이것을 “상관 있는 여자는 남편 잡는다”로 끝내면 너무 간단하다. 뭐 대도지간 , 아는 자는 심플하게 이야기한다고 하는데, 한마디 했다고 심플한게 아니다. 폼잡지 말자.

그래서 상관녀
아직 남편도 없는데 벌써 잡았다고 한다.

반대로 “너무 똑똑해서 아무나 못 만나는 거예요”라고 하면 듣기는 좋다. 우쭈쭈 싫어하는 사람 있나?

그 말이 맞는지는 또 봐야 한다. 물론 그걸 대놓고 이야기하는 무모한 인간은 머리를 냉동고에 두고 왔나 잘 생각해보기 바란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과, 내가 모든 사람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어 본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니까.

소개팅에서 상대가 말한다.

“저는 계획 없이 훌쩍 떠나는 여행을 좋아해요.”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 영상이 재생된다.

숙소 예약 안 함.
식당 문 닫음.
배고픈데 어디 갈지 모름.
결국 내가 휴대폰 들고 검색함.

이 사람과는 안 되겠다.

상대는 아직 여행을 한 번도 같이 가자고 안 했다.

본인은 지난주에 근처 바다 다녀온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 이쪽에서는 신혼여행 사흘째 싸우고 있다.

물론 저 말에서 실제로 안 맞는 생활 방식을 알아볼 수도 있다.

그런데 뒤를 조금 더 들어보면 다를 수도 있다.

항공권과 숙소는 미리 잡되, 낮에 어디를 걸을지만 정하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다.

같은 “계획 없이”인데 범위가 다르다.

사람을 빨리 파악한 것인지, 적은 정보로 나머지를 빨리 만들어낸 것인지는 구분해야 한다.

생각이 빠르면 좋은 점이 많다.

앞뒤가 안 맞는 말을 알아차린다.
무례한 행동을 그냥 넘기지 않는다.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에게 쉽게 끌려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추측도 빠를 수 있다.

상대가 한 문장을 말하면, 그 사람의 다음 십 년이 자동으로 작성된다.

문제는 그 자동 완성이 꼭 정확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휴대폰 자동 완성도 가끔 이상한 말 넣는다.
그래서 보내기 전에 읽어보지 않나.

사람에 대한 판단도 가끔은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다.

특히 머릿속에 이상형이 아주 자세하게 들어 있는 사람이라면.

기준이 있다는 것은 나쁘지 않다.

약속을 지키는 사람.
거절을 존중하는 사람.
화가 났다고 함부로 대하지 않는 사람.

이런 것은 함께 지내는 데 중요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다른 조건도 같은 자리에 들어온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좋아해야 한다.
음악 취향도 비슷하면 좋다.
메시지 길이도 적당해야 한다.
맞춤법은 좀 지켜줬으면 좋겠다.

“오늘 만나서 즐거웠어요. 다음에 또 뵈요.”

아.

뵈어요.
봬요.

즐거웠다는 마음은 뒤로 밀리고, ‘뵈요’가 눈앞에 남는다.
그게 신경이 쓰인다.
나중엔 그것만 생각나고, 다른것은 다 까먹는다.

물론 거슬릴 수 있다.
평생 교정해주면서 살고 싶지는 않겠지.

다만 그 사람이 약속 시간에 맞춰 왔고, 내 이야기를 잘 들었고, 내가 불편해하는 것을 기억했다면 그것도 같이 봐야 한다.

띄어쓰기는 완벽한데 매번 약속을 띄엄띄엄 지키는 사람도 있으니까.

관계에서 중요한 기준과, 내가 익숙해서 좋아하는 형식은 다를 수 있다.

이 구분이 안 되면 사소한 차이가 전부 탈락 사유가 된다.

그러다 신기한 일이 생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좋아한다.
별로 안 유명한 노래도 안다.
내 농담에 정확한 순간 웃는다.

갑자기 마음이 열린다.

이런 사람은 처음이다.

그런데 약속을 두 번 미뤘다.
연락이 며칠씩 끊긴다.
자기 이야기할 때만 대화가 길어진다.

평소라면 바로 알아봤을 텐데 이번에는 사정이 있을 것 같다.

바쁜가 보지.
원래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가 보지.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라 그런가 보지.

남의 허점에는 빠르던 눈이, 마음에 드는 사람 앞에서는 해설을 붙이느라 바쁘다.

내 기준에 꼭 맞는 말을 하는 사람과, 실제로 나를 잘 대하는 사람은 같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연애에서는 말이 통하는 느낌도 좋지만, 조금은 시간을 두고 볼 필요가 있다.

함께 취향을 이야기할 때 말고.
예약이 잘못됐을 때.
내가 싫다고 했을 때.
자기 기대와 다르게 하루가 흘러갈 때.

그때도 나를 한 사람으로 대하는가.

식당에서는 다들 다정할 수 있다.

그런데 음식이 늦게 나온다고 직원에게 하는 말을 듣고 나면, 디저트까지 먹고 싶었던 마음이 사라질 수도 있다.

반대로 처음에는 조금 심심했던 사람이 다른 모습으로 남을 수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은 모른다.

추천해줬더니 제목을 다시 물어본다.
그 가수 이름도 처음 듣는단다.

이걸 모르는구나 싶었는데, 다음에 만났을 때 말한다.

“출근할 때 들어봤는데, 두 번째 곡이 좋더라.”

꼭 처음부터 같은 세계에 살아야만 대화가 통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있는 쪽으로 조금 걸어와 보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나도 그 사람 쪽으로 가볼 수 있어야 한다.

내 이야기를 알아들어 주는 사람을 원하면서, 상대가 좋아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면 그건 조금 이상하다.

나는 이해받고 싶다.
상대는 내 이야기를 잘 이해하는 역할이면 된다.

그렇게 되면 연인을 찾는 것인지, 반응 좋은 청중을 찾는 것인지 한번 볼 일이다.

상관의 표현력을 관계에서 좋게 쓴다면, 차이를 발견할 때마다 날카롭게 지적하는 데만 쓸 필요는 없다.

“나는 이럴 때 좀 불편해.”
“그 말은 이런 뜻으로 한 거야?”
“나는 이렇게 하고 싶은데, 너는 어때?”

내 생각을 정확히 말하고, 상대의 말도 다시 확인하는 데 쓸 수 있다.

솔직하다는 이유로 모든 감상을 실시간 중계할 필요는 없다.

상대가 고른 셔츠가 마음에 안 들었다.

그렇다고 만나자마자 왜 그 색이 얼굴에 안 받는지 설명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나.

그 사람은 오늘 나를 만나려고 그 셔츠를 골랐을 수도 있다.

패션 조언을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반가웠다는 말이 먼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내 기준을 전부 버리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머릿속에 완성된 사람을 현실에서 찾아내는 일만도 아니다.

사람을 만나면서 내가 정말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더 정확히 알게 되기도 한다.

취향이 같으면 즐겁다.
생각이 통하면 설렌다.

그런데 함께 지내다 보면, 처음에는 질문 목록에 없었던 것이 오래 남을 때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아는지보다.
내 말을 얼마나 멋지게 받아치는지보다.

내가 싫다고 말했을 때 얼굴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내가 아팠던 다음 날 먼저 안부를 물었는지.

그런 것들.

그러니 조금 늦게 만난다고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다만 기다리는 동안 이상형의 조건만 계속 업데이트하지는 말자.
업데이트는 가끔하는게 좋은데, 업데이트가 "목록 추가"만 되어서는 안된다. 때론 쓸모없는건 삭제하는 것도 업데이트다.

휴대폰도 업데이트를 너무 많이 하면 오래된 기종은 못 따라온다.
현실의 인간들도 사양이 그렇게 높지는 않다.
당신은 늙어가면서, 늘 최신 사양만 쓰겠다? 좋은 것 누가 모르냐?

어느 날 집에 가는 버스에서 메시지가 온다.

“아까 말한 노래 제목이 뭐였지?”

취향이 같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데 집에 가면서도 내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그날은 제목을 한 번 더 알려주는 일이, 생각보다 귀찮지 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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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제, 내 사주로

글로 익힌 원리를 본인 명판에 직접 적용한 정밀 진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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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答 5
  • 퓨어뮤즈·

    본인도 맞춤법 잘 못 하면서 ㅋㅋㅋ 맞춤법 보이는 난 상관녀가 맞음….

    • sean·

      보이는 걸 어쩌겠어요.,,, 눈을 감아야

  • 염화소녀_(구)남궁현자·

    와... 왜케 공감이...🤣🤣 남자: "이것이 훨씬 낳아" 여자: 애낳냐...응??

  • 키네시스·

    감사합니다 ㅎ

  • 랩·

    거슬리는것과 좋은것에 꽂힘..으로 읽히는데 이걸 넘어서는법은 넓게보는것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