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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인이 돈을 떠먹여 줘도 못 받는 사람이 있다

바둑 한 판만 이기면 인생이 달라진다.

상대는 평소에도 내가 자주 이기던 사람이다.
돈을 주겠다는 사람도 사실 나를 도와주고 싶어 한다.

실력도 있고, 귀인도 있고, 돈도 준비되어 있다.

이 정도면 받아오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

그걸 못 받아온 사람이 있다.

남송 홍매의 《이견지》에 나오는 범단지(范端智)의 이야기다. 후대의 바둑 인물집인 《혁인전》에도 이 일화가 실려 있다.

범단지에게는 범단신(范端臣)이라는 형이 있었다. 자는 원경(元卿).

형은 학문으로 관직에도 나갔고, 바둑으로도 사대부 사이에 이름을 날렸다.

공부 잘하는 사람이 바둑도 잘한다니!

하나만 잘해도 주변에서 비교하는데, 두 개를 잘한다. 동생 입장에서는 집안 모임이 그리 즐겁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그래도 범단지는 바둑만큼은 형에게 뒤지지 않았다.

문제는 형과 달리 벼슬 없이 지내는 처지였다는 것이다. 바둑을 잘 두는 것과 살림이 넉넉한 것은 별개였다.

그는 양기중(楊沂中)의 집에 문객으로 머물렀다. 원문에서는 양태부(楊太傅)라고 부르는 인물이다.

양기중의 집에는 바둑을 잘 두는 첩들이 있었다.

양기중은 종종 범단지를 안채로 불러 이들과 바둑을 두게 했다. 그냥 두는 것은 아니고, 이긴 사람에게 상을 주었다.

한 판에 수천 전 정도.

범단지가 자주 이겼다.

덕분에 얼마씩 돈이 손에 들어왔다. 재미있는 바둑도 두고 생활비도 생기니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양기중이 보기에는 그 정도로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어느 날 범단지를 불러 이런 말을 한다.

“자네 집이 가난하다고 들었네. 조금씩 받아 가는 것으로는 살림에 큰 도움이 안 될 것이야. 내일 내 첩과 한 판 두게. 이번에는 삼천 민을 걸겠네. 이기면 살림이 좀 펴질 거야.”

삼천 민(三千緡).

평소의 수천 전과는 단위부터 달랐다. 여기서 민은 돈을 꿰어 세는 단위다. 현대 돈으로 얼마라고 딱 잘라 환산하기는 어렵지만, 이야기 속에서는 가난한 살림을 벗어날 만한 큰돈이었다.

이쯤 되면 바둑 대회를 여는 것인지, 생활 지원금을 바둑판을 통해 지급하는 것인지.

주는 사람의 의도도 상당히 분명하다.

자네 잘하는 것으로 한 번 이기고, 이 돈을 가져가게.

범단지는 기뻐하며 숙소로 돌아왔다.

그런데 잠이 안 온다.

내일 한 판만 이기면 된다.
평소에도 이기던 상대다.
크게 어려울 것도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삼천 민이다.

생각할수록 좋다. 좋을수록 잠이 안 온다.

돈은 아직 양기중에게 있는데, 마음은 벌써 그 돈을 받아놓은 상태였을 것이다.

우리도 이런 것은 잘하지 않나.

계약서에 도장도 안 찍었는데, 계약금 들어오면 어디에 쓸지부터 정한다. 상대는 아직 검토 중인데 나는 이미 지출 중이다.

그날 같은 숙소에 있던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범단지는 골상이 몹시 박한데, 저런 횡재를 할 수 있겠는가.”

골상심박(骨相甚薄)

골상이 매우 박하다는 뜻이다. 당시 사람들은 그의 생김새를 보고 큰 재물을 누릴 복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걸 굳이 뭐 관상이라고 이름을 안 붙여도 말이지.

당사자는 내일 받을 돈 때문에 잠이 안 오는데, 옆에서는 못 받을 상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참 응원도 가지가지다.

다음 날, 바둑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범단지에게 유리했다.

실력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평소처럼 이길 수 있는 판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평소와 달랐다.

한 수를 두려고 해도 생각이 많아진다.
이게 맞나.
더 확실한 수가 있지 않을까.
여기서 잘못 두면 안 되는데.

사행태과(思行太過)
생각하고 수를 운용하는 데 지나침이 있었다
쉽게 말하면, 생각을 과하게 한 것.
수를 멀리 보는것은 나쁜 게 아니지만,
과하게 많이 보는것은 나쁜 것이 된다.

잘 두려고 했다.
반드시 이기려고 했다.

그러다 한 수를 잘못 대응했다.

그 한 수로 형세가 뒤집혔다.

이기던 바둑이 지는 바둑이 되었고, 범단지는 결국 빈손으로 나왔다.

주는 사람은 돈을 준비했다.
받는 사람은 실력이 있었다.
실제로 이기고 있기도 했다.

그런데 마지막에 못 받았다.

귀인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귀인이 만들어준 자리에서 자기 실력을 끝까지 쓰지 못한 것이다.

이 이야기를 전한 홍매는 결말을 자기 분수가 아닌 재물은 함부로 누릴 수 없다는 쪽으로 읽었다.

옆 사람들은 골상을 보았고, 기록자는 복분을 이야기했다.

역학 사례로 읽을 때 흥미로운 지점도 여기다.

운이 없다고 하면 보통 기회가 아예 오지 않는 모습을 생각한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돈 될 일도 없고.
일을 벌여도 사람이 안 붙고.

그런데 이 사례는 반대다.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
돈 될 자리도 만들어준다.
상대도 해볼 만하다.

그런데 재물이 커지는 순간, 그 재물을 받는 사람의 상태가 달라진다.

몇천 전을 놓고 둘 때의 범단지와, 삼천 민을 놓고 둘 때의 범단지는 다른 사람이 아니다.

바둑 실력도 하룻밤 사이에 사라진 것이 아니다.

달라진 것은 그 한 판에 얹힌 무게다.

평소에는 바둑 한 판이었다.

이번에는 가난에서 벗어날 기회가 바둑판 위에 올라왔다.

돌 하나를 놓는데 자기 집 살림까지 같이 움직이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무겁지.
바둑돌은 원래 그 정도로 무거운 물건이 아닌데.

명리에서도 재성(財星)이 있다는 말과 그 재를 감당한다는 말은 구분한다.

재성은 일간이 극하는 오행이다. 내가 다루고 운용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뜻이 들어 있다.

그런데 다룰 것이 커졌다고, 다루는 힘까지 자동으로 커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재가 커지면, 자동으로 관살을 생한다.
관살은 스트레스와 압박감이다.

그 압박감을 정인으로 돌리면, 냉정을 회복하는 거고
편인으로 돌리면, 생각 과도가 된다.

물론 범단지의 생년월일시가 제시된 이야기는 아니다.
현상을 명리학 용어로 설명했을 뿐이다.

바둑 한 판 이야기를 보고 사주팔자를 여덟 글자 다 알아내면, 그쪽이 더 신기한 재주다.

다만 재물이 오는 것과, 온 재물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은 다르다

작은 돈을 다룰 때는 침착했던 사람이 큰돈 앞에서는 평소 판단을 못 한다.

작은 거래에서는 원칙을 지키던 사람이 큰 계약 앞에서는 안 될 조건까지 받아준다.

평소에는 잘하던 설명도 중요한 사람 앞에서는 꼬인다.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닌데, 그 능력을 가장 잘 써야 할 순간에 욕심과 두려움이 끼어든다.

범단지도 대충 두다가 진 것이 아니다.

너무 잘 두려고 하다가 졌다.

이 차이를 봐야 한다.

그렇다면 옆 사람들이 말한 골상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우선 원문에는 구체적으로 어느 뼈가 어떻다는 설명이 없다.

광대가 어떻고, 턱이 어떻고, 이마가 어떻다는 내용은 없다. 그러니 여기에 얼굴 부위별 해석을 덧붙이면 원문 해설이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가 된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당시 사람들이 그의 골상을 박하다고 평가했고, 이후 큰 상금을 놓쳤다는 전개다.

이 기록에서는 그 둘을 연결해 복의 문제로 읽은 것이다.

그렇다고 한 번 졌다는 이유로 평생 재복이 없었다고까지 단정할 수는 없다. 이 사례에서 남겨진 장면은 그 한 판이다.

오히려 자세히 볼 부분은, 돈을 놓치는 과정이 아주 구체적으로 적혀 있다는 점이다.

하늘에서 손이 내려와 돌을 옮긴 것이 아니다.
양기중이 갑자기 약속을 취소한 것도 아니다.

범단지가 생각을 너무 많이 했고, 한 수를 잘못 두었다.

이 일화에서 복의 문제는, 정작 사람이 판단하고 움직이는 순간을 통해 드러난다.

그래서 “내 것이 아니면 못 먹는다”는 결론만 외우면 이야기의 절반을 놓친다. 보통 약간 명리학 공부했다는 사람은 내것이면 계속 내것이고, 내것이 아니면, 결국은 없어진다. 그것만 기억하는데,

명리학을 그런 용도로 쓰면 20%도 못쓰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못 받았는가.
왜 평소에 하던 것을 그날은 못 했는가.

그 과정까지 봐야 사례를 읽은 의미가 있다.
왜냐면 이 사례는 누구나 경험하기 쉬운 일이다.

이게 단순 복이나 운일까?

늘 이야기하지만, 명리학으로는 유, 불리를 본다.
그러나 유리하다고 결과도 좋은 것은 아니다.

양기중은 돈을 준비해줄 수 있었다.
이길 만한 자리를 마련해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범단지 대신 마음을 가라앉혀줄 수는 없었다.
범단지 대신 마지막 한 수를 둘 수도 없었다.

귀인이 해줄 수 있는 일과, 결국 본인이 해야 하는 일이 나뉘는 자리다.

범단지는 바둑을 몰라서 빈손으로 나온 사람이 아니다.

너무 큰 것을 얻고 싶어진 순간, 자기가 잘하던 바둑을 제대로 두지 못한 사람이다.

내일 삼천 민을 받겠다는 생각에, 오늘 밤 잠부터 놓쳤다.

돈이 들어오기 전에 마음이 먼저 그 돈에 붙잡힌 셈이다.

그러니 큰 기회가 왔을 때는 가끔 확인해볼 일이다.

지금 눈앞의 한 수를 보고 있는가.

아니면 이기고 나서 쓸 돈을 보고 있는가.

바둑판은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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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答 3
  • 은율·

    감사합니다

  • 익명.·

    그러게요. 받을 수 있는 깜냥도 중요하네요

  • 키네시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