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문둔갑 질문법 — 시기와 방위를 묻거든 기문에게 물어라
기문둔갑(奇門遁甲)은 전쟁에서 태어난 술수다.
제갈량이 동남풍을 빌렸다는 이야기, 유백온이 명나라 건국의 판을 짰다는 이야기.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기문둔갑에 이런 전설이 붙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 술수의 본질이 전략이기 때문이다.
육효가 "되느냐 안 되느냐"를 묻는 도구라면, 기문둔갑은 "언제 움직여야 하고,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가"를 묻는 도구다. 판의 성패가 아니라, 판 위에서의 최적 수(手)를 찾는 데 특화되어 있다.
그래서 옛날에는 삼식(三式) 중에서 기문둔갑이 천시(天時)와 지리(地利)를 맡는다고 했다. 삼식이란 기문둔갑, 대육임(大六壬), 태을신수(太乙神數)를 말하는데, 기문둔갑이 시기와 방위를, 대육임이 사람 사이의 일을, 태을이 천하 대세를 관장한다는 분류다.
사이트가 국(局)을 세워 주니까, 배우는 사람이 둔갑 포국법을 외울 필요는 없다. 다만, 기문둔갑이 뭘 보는 도구인지, 그리고 어떻게 물어야 하는지는 알아야 한다.
작동 원리, 가볍게만
기문둔갑은 아홉 칸짜리 판 위에 네 겹의 정보가 쌓인 구조다.
가장 아래에 지반(地盤)이 있다. 아홉 궁(宮)에 천간(天干)이 깔린다. 이게 땅의 기운이다.
그 위에 천반(天盤)이 돌아간다. 구성(九星)이라는 아홉 개의 별이 각 궁에 앉는다. 이게 하늘의 기운이다.
그 사이에 인반(人盤)이 있다. 팔문(八門)이라는 여덟 개의 문이 각 궁에 앉는다. 이게 사람의 일이다.
그리고 맨 위에 신반(神盤)이 있다. 팔신(八神)이 각 궁에 앉는다. 이게 보이지 않는 힘이다.
천(天), 지(地), 인(人), 신(神). 네 겹의 판이 질문한 시각에 맞춰 돌아가면서 특정한 배치를 만든다. 이 배치가 곧 국(局)이다.
여기에 삼기육의(三奇六儀)라는 열 개의 천간이 천반과 지반에 배치된다. 을(乙), 병(丙), 정(丁)을 삼기(三奇)라 하고,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를 육의(六儀)라 한다. 삼기는 귀한 기운이고, 육의 중 경(庚)은 가장 꺼리는 기운이다.
복잡해 보이지만, 질문하는 사람이 기억할 건 하나다.
기문둔갑은 아홉 칸짜리 판 위에서 별, 문, 신, 천간이 만드는 조합을 읽는다. 그 조합이 좋으면 길하고, 나쁘면 흉하다. 그리고 그 조합이 어느 궁에 있느냐로 방위와 시기가 나온다.
전쟁터의 지형도와 같다. 어느 고지에 누가 있고, 어디에 함정이 있고, 어느 길이 열려 있는지. 기문둔갑이 펼쳐 보여주는 건 그런 그림이다.
팔문, 사람 일의 여덟 갈래
기문둔갑에서 질문의 초점을 잡을 때 가장 먼저 보는 게 팔문(八門)이다.
여덟 개의 문이 각각 사람 일의 한 영역을 맡는다.
개문(開門)은 열린 문이다. 관직, 사업, 개업. 무언가를 새로 여는 일이면 개문을 본다.
휴문(休門)은 쉬는 문이다. 휴식, 귀인의 도움, 안정. 편안한 일이면 휴문을 본다.
생문(生門)은 살리는 문이다. 재물, 수익, 부동산, 생산. 돈이 살아나는 일이면 생문을 본다.
이 셋이 길문(吉門)이다.
상문(傷門)은 다치는 문이다. 다툼, 사고, 충돌. 거칠고 부딪치는 일이면 상문을 본다.
사문(死門)은 닫힌 문이다. 막힘, 정지, 장례. 움직이지 않는 일이면 사문을 본다.
경문(驚門)은 놀라는 문이다. 소송, 구설, 관재. 법과 말이 오가는 일이면 경문을 본다.
이 셋이 흉문(凶門)이다.
두문(杜門)은 막힌 문이다. 숨기, 방어, 보안. 드러나지 않아야 하는 일이면 두문을 본다.
경문(景門)은 밝은 문이다. 문서, 시험, 명예. 글과 이름이 오가는 일이면 경문을 본다.
이 둘은 상황에 따라 길흉이 갈린다.
팔문의 위치와 상태를 보면, 질문한 일이 열려 있는지 닫혀 있는지, 순탄한지 험한지가 드러난다.
사안별 질문법
기문둔갑에서 질문의 종류에 따라 보는 초점이 달라진다. 팔문, 구성(九星), 삼기육의, 팔신이 각각 다른 사안을 맡기 때문이다.
돈, 투자, 사업 수익 → 무(戊) + 생문(生門)
기문둔갑에서 재물은 무(戊)가 맡는다. 무는 육의 중 첫 번째이면서 토(土)의 기운이다. 토는 만물을 받아들이고 저장하는 성질이 있다. 그래서 재물의 상징이 되었다.
생문(生門)도 함께 본다. 생문은 살리는 문이니까, 돈이 살아서 들어오는가를 본다.
무가 좋은 궁에 있고, 생문이 일간(日干)과 좋은 관계면 돈이 들어온다. 무가 공망(空亡)에 빠져 있거나 경(庚)과 부딪치면 재물이 막힌다.
질문 예시: "이번 분기 안에 신규 사업 투자로 수익을 볼 수 있는가?"
직장, 승진, 개업 → 개문(開門) + 값부(值符)
관직과 사업은 개문(開門)이 맡는다. 문이 열려야 자리가 열린다. 개문이 일간의 궁을 생(生)하면 승진이나 취업이 된다.
값부(值符)는 기문둔갑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존재다. 최고 책임자, 지도자를 뜻한다. 승진이나 인사 문제에서는 값부의 상태도 함께 본다. 값부가 일간을 향하면 윗사람의 도움이 있다.
질문 예시: "이번 하반기 인사에서 팀장 승진이 가능한가?"
시험, 학업, 자격증 → 천보성(天輔星) + 경문(景門)
시험은 천보성(天輔星)을 본다. 천보성은 구성 중에서 문창(文昌)의 별이다. 학문과 지식을 관장한다. 천보성이 왕(旺)하고 좋은 궁에 있으면 합격 가능성이 높다.
경문(景門)도 함께 본다. 경문은 밝은 문이고, 문서와 명예를 뜻한다. 시험은 문서이고, 합격은 명예다.
질문 예시: "올해 하반기 시험에서 합격할 수 있는가?"
연애, 결혼, 배우자 → 을(乙)과 경(庚) + 육합(六合)
기문둔갑에서 남녀 문제는 을(乙)과 경(庚)으로 본다. 을이 여자이고, 경이 남자다.
천간의 합(合)에서 을경합(乙庚合)이 남녀의 합이다. 을과 경이 같은 궁에 있거나, 서로 합하는 위치에 있으면 인연이 맺어진다. 을과 경이 충(沖)하거나 경이 을을 극(剋)하면 관계가 거칠어진다.
육합(六合)은 팔신 중에서 화합과 매개를 뜻한다. 중매, 만남, 합의. 육합이 좋은 궁에 있으면 만남이 성사된다.
질문 예시: "현재 만나는 사람과 내년 안에 결혼이 성사되는가?"
건강, 질병 → 천예성(天芮星) + 천심성(天心星)
질병은 천예성(天芮星)이 맡는다. 구성 중에서 병의 별이다. 천예성이 일간의 궁을 극하면 병이 심하다.
반대로 천심성(天心星)은 의사이고 약이다. 천심성이 천예성을 극하면 병이 치료된다. 천심성이 일간을 생하면 의사의 도움이 있다.
누구의 건강인지를 반드시 밝혀야 한다. 본인이면 일간(日干), 부모면 년간(年干), 배우자면 을(乙) 또는 경(庚), 자녀면 시간(時干)을 본다.
질문 예시: "어머니의 현재 병세가 이번 달 안에 호전되는가?"
소송, 분쟁, 법적 다툼 → 경문(驚門) + 개문(開門)
소송과 관재는 경문(驚門)이 맡는다. 경문은 놀라는 문이고, 관송(官訟)의 문이다. 경문이 상대방 쪽에 있으면 상대가 불리하고, 내 쪽에 있으면 내가 불리하다.
개문(開門)은 관(官)의 문이기도 하다. 법원, 관청, 판결. 개문이 일간을 생하면 판결이 유리하다.
그리고 기문둔갑에서 소송을 볼 때 빠지지 않는 게 경(庚)이다. 경은 기문둔갑에서 가장 거친 기운이다. 장애, 방해, 적. 경이 어디에 앉아 있느냐로 방해가 어디에서 오는지를 본다.
질문 예시: "현재 진행 중인 민사소송에서 유리한 결과를 받을 수 있는가?"
출행, 여행, 이사 → 개문(開門) + 방위
이동에 관한 일은 기문둔갑이 가장 잘 받는 질문 중 하나다. 기문둔갑 자체가 방위의 술수이기 때문이다.
문이 열려야 나갈 수 있다. 개문(開門)이 가는 방위의 궁에 있으면 길하다. 사문(死門)이나 상문(傷門)이 가는 방위에 있으면 조심해야 한다.
삼기(三奇)가 가는 방위에 있으면 더 좋다. 을(乙), 병(丙), 정(丁) 중 하나라도 도착지 궁에 앉아 있으면 그 방향으로 가는 게 유리하다.
질문 예시: "다음 주 해외 출장이 무사히 마무리되는가?"
여기서 한 가지 더. "동쪽으로 가는 게 나은가, 서쪽으로 가는 게 나은가?"처럼 방위를 고르는 질문은 기문둔갑만이 받을 수 있는 형태다. 다른 술수에서는 방향을 비교하기가 어렵다.
분실물 → 현무(玄武) + 신(辛)
도둑과 분실은 현무(玄武)가 맡는다. 이건 대육임과 같다. 현무가 어느 궁에 있느냐로 물건이 간 방향을 본다.
육의 중 신(辛)도 분실물과 관련이 있다. 신은 잘못, 허물, 손실을 뜻한다. 신이 어느 궁에 있는지를 보면 물건의 소재를 가늠할 수 있다.
질문 예시: "지난주 잃어버린 서류 가방을 찾을 수 있는가?"
사업 개업, 점포 → 생문(生門) + 개문(開門)
가게를 열거나 사업을 시작하는 일은 생문(生門)과 개문(開門)을 함께 본다. 생문은 수익이고, 개문은 개업이다. 이 두 문이 좋은 궁에 있으면 사업이 잘 풀린다.
여기에 무(戊)가 왕하면 자금이 넉넉하고, 경(庚)이 일간을 극하면 경쟁자나 방해가 심하다.
질문 예시: "올해 안에 계획 중인 매장을 열어도 되는가?"
기문둔갑만이 받을 수 있는 질문
다른 술수와 비교할 때, 기문둔갑이 유독 강한 영역이 있다.
첫째, 방위 선택이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 "사무실을 동쪽에 잡아야 하나 서쪽에 잡아야 하나." 아홉 궁이 각각 방위를 가지고 있으니까, 방위별로 길흉을 비교할 수 있다. 이건 육효나 매화역수로는 하기 어려운 판단이다.
둘째, 시기 선택이다. "이번 주에 움직여야 하나, 다음 달까지 기다려야 하나." 기문둔갑은 시간에 따라 국이 바뀌기 때문에, 다른 시점의 국을 비교해서 최적 시기를 고를 수 있다.
셋째, 전략적 선택이다. "A안으로 갈까, B안으로 갈까." 기문둔갑은 선택지의 방향과 시기를 동시에 비교할 수 있는 구조다.
한마디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주는 술수다. 다른 술수가 "되느냐 안 되느냐"에 답한다면, 기문둔갑은 거기에 "어떻게 하면 되느냐"를 덧붙인다.
그래서 옛날에 군사(軍師)들이 기문둔갑을 썼다. 전쟁은 되고 안 되고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 어떻게 치느냐의 문제니까.
기문둔갑이 못 받는 질문
기문둔갑은 전략과 선택에 강하다. 반대로, 사람의 속마음을 읽는 데는 약하다.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대육임에게 물어야 한다.
"올해 운이 어떤가?"도 기문둔갑의 질문이 아니다. 그건 사주(四柱)에게 물어야 한다. 기문둔갑은 큰 흐름이 아니라, 지금 이 시점에 어떤 방향으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가에 답하는 도구다.
"이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가?" 같은 질문도 기문둔갑보다는 대육임이 낫다. 기문둔갑은 사람의 마음보다 상황의 구조를 읽는 쪽에 가깝다.
질문을 만드는 기술
기문둔갑의 질문도 기본 네 가지를 담아야 한다. 이건 다른 술수와 같다.
누가 묻는가.
무슨 일인가.
뭘 알고 싶은가.
언제까지의 이야기인가.
여기에 기문둔갑만의 한 가지가 더 있다.
선택지가 있는가.
기문둔갑은 비교가 되는 질문을 가장 잘 받는다. "이 일이 되느냐"보다 "이 일을 이번 달에 하는 게 나은가, 다음 달에 하는 게 나은가"가 기문둔갑에 더 맞는 질문이다. "취업이 되느냐"보다 "A 회사와 B 회사 중 어디가 나한테 더 맞는가"가 기문둔갑이 더 잘 받는 형태다.
물론 단순히 "되느냐 안 되느냐"를 물어도 답은 나온다. 그런데 기문둔갑의 진가는 "어떻게 하면 더 유리한가"를 물을 때 나온다.
같은 질문으로 다시 국을 세우면 안 된다
이건 모든 술수에 공통이다. 결과가 마음에 안 든다고 다시 세우면 안 된다.
기문둔갑은 질문한 그 시각의 국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시각이 바뀌면 국도 바뀐다. 그런데 그건 "다른 시각의 답"이지 "더 나은 답"이 아니다.
다시 물어도 되는 경우는 딱 하나. 현실에서 상황이 바뀌었을 때다. 새로운 조건이 생겼거나, 선택지가 달라졌거나, 상대방이 움직였을 때. 그때는 새 국을 세워도 된다.
기문둔갑은 작전 참모다
기문둔갑 앞에서 질문을 만들 때,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이 일에 선택이 있는가.
시기의 선택이든, 방향의 선택이든, 방법의 선택이든. 선택지가 있는 상황에서 기문둔갑은 가장 선명한 답을 준다. 아홉 궁 위에 별과 문과 신이 배치되면서, 어느 쪽이 열려 있고 어느 쪽이 막혀 있는지를 한눈에 보여준다.
작전 참모에게 "이기겠습니까?"라고만 물으면, 참모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이 고지를 치려는데, 새벽에 가는 게 낫습니까 해질녘에 가는 게 낫습니까?"
그렇게 물어야 참모의 진가가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