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롤스로이스에 빨간 글씨를 쓴 여자
길을 가다가 흰색 롤스로이스 한 대가 서 있었다.
서른다섯 살 여자가 걸음을 멈췄다. 차를 봤다. 흰색 차체, 깨끗한 도장,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멎는 값. 그녀의 머릿속에서 톱니바퀴가 돌기 시작했다.
이 차를 모는 사람은 큰 부자일 것이다.
큰 부자는 아마 남자일 것이다.
그런 남자와 결혼하면 인생이 바뀔 것이다.
여기까지 삼 초.
그다음이 문제였다.
그녀는 바로 근처 가게에서 빨간색 라커를 사 왔다. 그리고 그 흰색 롤스로이스 위에, 온통, 사랑한다고 썼다.
차 주인이 누군지 모른다. 만난 적도 없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고, 나이도 모른다.
다만 차가 비쌌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녀는 자기가 굉장히 로맨틱하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로 용감한 여자는 없을 것이다. 차 주인은 분명 감동할 것이다. 이렇게 대담하고 열정적인 여자를 어떻게 마다하겠는가.
사진을 찍었다. 영상도 찍었다. 인터넷에 올렸다.
그 안에는 이런 계산도 들어 있었다.
만약 차 주인이 배상을 요구하면? 돈이 없으니 몸으로 대신하겠다고 하면 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고, 만나면 결혼까지 갈 수 있다.
차 주인은 절대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까지가 그녀의 머릿속이었다.
현실은 이랬다.
차 주인은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인터넷에 올린 사진과 영상 덕분에 금방 찾았다. 스스로 증거를 남긴 셈이다.
경찰서에서 차 주인과 만나게 됐을 때, 이 여자는 오히려 행복해했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 것이다. 차 주인이 자기의 용기를 칭찬해 주기를 기다렸다.
차 주인은 칭찬 대신 배상금 70만 위안을 요구했다. 한국 돈으로 약 1억 4천만 원이다.
그녀는 계획대로 말했다.
"그렇게 많은 돈은 없어요. 어쩔 수 없죠. 몸으로 갚을게요. 당신과 결혼하겠습니다."
차 주인의 얼굴이 어떠했을지는 굳이 묘사하지 않겠다.
당연히 먹히지 않았다. 법정으로 갔다.
이 여자의 이력을 보면 한 가지 줄기가 있다.
늘 빠른 길을 찾는다. 직장에서도 과정을 뛰어넘으려 하고, 일상에서도 지름길만 골라 다닌다. 힘들게 쌓아 올리는 것을 못 견딘다. 한 번에, 크게, 빨리. 그게 그녀의 방식이다.
이번 일도 같은 줄기 위에 있다. 길을 가다가 비싼 차를 봤고, 비싼 차에서 부자를 상상했고, 부자에서 결혼을 상상했고, 결혼에서 인생역전을 상상했다. 그리고 그 상상이 너무 좋아서 거기에 빠져 버렸다.
빠지고 나면 행동이 된다. 그것도 아주 과감한 행동이.
명리(命理)로 보면, 이런 유형은 비겁(比劫)이 재성(財星)을 직접 먹으려는 구조에서 자주 나타난다. 물론 그 여자 사주는 모르지만,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너무 명확하다.
비겁은 나와 같은 오행이다. 내 힘, 내 의지, 내 자신감. 비겁이 강하면 일단 기가 세다. 내가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거침이 없다.
재성은 돈이고, 여자에게는 아버지이기도 하고, 넓게 보면 내가 지배하고 싶은 세상이다.
비겁이 재성을 먹는다는 것은, 내 힘으로 직접 돈을 움켜쥐겠다는 뜻이다. 중간 과정이 없다. 식상(食傷)이라는 다리를 놓아서 재주로 돈을 버는 게 아니라, 그냥 손을 뻗어서 잡는다. 뺏는 것에 가깝다.
이것이 군비탈재(群比奪財)의 기본 구조다.
여기에 편인(偏印)이 얹히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편인은 생각의 별이다. 머리가 빠르고, 직관이 강하고, 남들이 안 보는 것을 본다. 잘 쓰면 통찰이고, 못 쓰면 망상이다.
편인이 비겁의 보호를 받는 구조, 그러니까 비겁이 편인의 뿌리 역할을 하거나(지장간속에 비겁이 있단 이야기임, 예를 들면, 병화일간인데, 갑인월이라면 인목속 병화) 혹은, 편인이 비겁을 낳는 흐름이 되면, 자기 생각에 힘이 실린다. 자기가 떠올린 아이디어에 자기 힘이 보태지니까, 생각이 곧 확신이 되고, 확신이 곧 행동이 된다.
보통 사람은 생각과 행동 사이에 틈이 있다. 그 틈에서 "이게 맞나?" 하고 한 번 돌아본다. 그 돌아보는 힘이 관살(官殺)이다. 규칙, 체면, 사회의 눈, 법. 그런 것들이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그 브레이크가 약하거나 없으면, 생각에서 행동까지 직선이다.
그녀의 머릿속 경로를 다시 따라가 보자.
비싼 차를 봤다. 편인이 작동한다. "이 차 주인은 부자다." 직관이다. 근거는 없지만 확신한다.
비겁이 받쳐 준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매력 있다. 나는 이런 남자를 잡을 자격이 있다."
식상이 빠져 있다. 식상이 있으면 재주를 부려서 돈을 벌거나, 매력을 가꾸거나, 시간을 들여 관계를 쌓는다. 그 과정이 없다.
관살이 빠져 있다. 관살이 있으면 "남의 차에 페인트칠을 하면 기물파손이고 형사사건이다"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 판단이 없다.
남은 것은 편인의 아이디어와 비겁의 추진력뿐이다. 그 둘이 손을 잡으면, 라커를 사러 가는 발걸음은 가볍고 행복하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구조의 사람은 자기가 틀렸다는 것을 잘 모른다는 점이다.
경찰서에서 차 주인을 만났을 때 그녀가 행복해한 것을 보라. 보통 사람이라면 두렵거나 부끄럽거나 둘 중 하나일 장면에서, 그녀는 기뻐했다. 드디어 만나게 됐다고.
비겁이 강한 사람은 자기 기준이 곧 세상의 기준이다. 내가 감동했으니 상대도 감동할 것이다. 내가 용감하다고 느꼈으니 상대도 용감하다고 느낄 것이다. 내가 로맨틱하다고 생각했으니 상대도 로맨틱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상대의 눈으로 자기를 보는 능력, 그것이 재성(財星)의 또 다른 얼굴이다. 재성은 내가 지배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내가 읽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세상을, 사람을, 상황을 읽는 힘이다.
비겁이 재성을 먹어 버리면 그 읽는 힘이 사라진다. 자기만 보인다.
사실 이 여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주식을 하면서 한 종목에 전 재산을 몰아넣는 사람. 사업을 하면서 시장조사 없이 느낌으로 뛰어드는 사람. 연애를 하면서 상대의 마음은 확인하지 않고 자기 감정만으로 밀어붙이는 사람.
전부 같은 구조다.
과정이 없다. 중간이 없다. 느낌에서 행동까지, 직선.
편인이 만드는 환상은 정밀하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그리고 이런 사람은 자신의 환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냥 "부자랑 결혼하고 싶다"가 아니다. 시나리오가 있다. 라커로 고백한다, 차 주인이 감동한다, 배상금을 요구하면 몸으로 갚겠다고 한다, 그러면 차 주인이 거절 못 한다, 결혼한다. 기승전결이 다 있다.
문제는 그 기승전결이 전부 자기 머릿속에서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상대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등장하는 것은 자기가 상상한 상대의 반응뿐이다.
편인의 직관이 외부의 점검이 없이 달리면 이렇게 된다. 정교한 허공의 성.
돌이켜 보면, 그녀에게 부족했던 것은 돈이 아니다.
돌아가는 길을 걸을 줄 아는 힘이다.
빠른 길은 대부분 길이 아니다. 그냥 풀밭을 가로지르는 것이다. 풀밭은 처음에는 빠르다. 그런데 얼마 안 가서 구덩이가 나온다. 구덩이를 피하느라 더 먼 길을 가게 되거나, 구덩이에 빠진다.
길이 느린 이유는 구덩이를 피해서 놓았기 때문이다.
식상(食傷)이 하는 일이 그것이다. 내 힘을 재주로 바꾸고, 재주를 돈으로 바꾸는 과정. 느리다. 번거롭다. 그런데 그 느린 과정이 결국 구덩이를 피하는 길이다.
비겁으로 재성을 직접 잡으려는 사람은 그 느린 과정을 참지 못한다.
그래서 라커를 든다.
이 사건 뒤에 중국 인터넷에서 많은 말이 오갔다.
"저런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냐."
비겁에서 나온다.
"저런 발상은 대체 어떻게 하는 거냐."
편인에서 나온다.
"왜 한 번도 멈추지 않았냐."
관살(官殺)이 없어서다.
그녀는 지금도 자기가 로맨틱했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법정에서 판사의 말을 들으면서 처음으로 관살(官殺)을 만난 것일까.
그건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빨간 라커 값보다 흰 롤스로이스 도장 값이 훨씬 비쌌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