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목
을목(乙木)을 두고 사람들이 하는 말은 대체로 비슷하다.
착하다. 말이 부드럽다. 싸우는 걸 못 본다. 남의 기분을 먼저 살핀다.
그런데 조금 더 가까워지면 표현이 바뀐다. 물러 터졌다. 거절을 못 한다. 호구다.
여기서부터가 문제다. 을목이 부드러운 건 맞다. 그런데 부드러운 것과 만만한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옛 책들은 을목을 약한 글자로 적어 두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하기 까다로운 글자로 적어 두었다.
적천수(滴天髓) 천간론의 을목 자락은 이렇게 시작한다.
乙木雖柔 刲羊解牛
을목은 비록 부드러우나 양을 가르고 소를 해체한다는 뜻이다.
이 문장을 두고 덩굴이 큰 나무를 졸라 죽인다는 식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은데, 본래 가리키는 바는 그게 아니다. 여기서 양과 소는 짐승이 아니라 지지의 글자다. 열두 지지에서 미(未)가 양이고 축(丑)이 소다. 축과 미는 모두 부드러운 토(土)이니, 을목이 그 위에 앉으면 자기 손으로 그 흙을 다룰 수 있다는 말이다.
풀이 흙을 뚫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풀뿌리가 흙을 자기 것으로 만든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을목은 아무거나 못 이기는 게 아니다. 자기가 이길 수 있는 상대를 정확히 알고, 딱 그것만 친다. 큰 바위는 애초에 건드리지 않는다. 대신 자기 발밑의 흙은 완전히 장악한다.
이게 을목식 싸움법이다. 이길 수 없는 판에는 아예 안 들어간다. 그래서 밖에서 보면 싸움을 못 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실은 지는 싸움을 안 하는 사람이다.
같은 책 경금(庚金) 자락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能勝甲兄 輸於乙妹
경금은 갑목(甲木) 형은 이기지만 을목 누이에게는 진다는 뜻이다.
도끼는 큰 나무를 벤다. 정면으로 붙으면 나무가 진다. 이건 상식이다.
그런데 그 도끼가 을목 앞에서는 이상하게 힘을 못 쓴다. 을경합(乙庚合) 때문이다. 을목이 도끼를 상대로 하는 일은 단 하나, 손을 잡아 버리는 것이다.
칼과 칼을 부딪치는 쪽과, 칼 든 사람의 손목을 잡는 쪽. 어느 쪽이 영리한가.
직장에서 갑목은 회의실에서 이 안은 안 됩니다, 하고 정면으로 부딪친다. 이기면 영웅이고 지면 찍힌다. 을목은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안 하다가 회의 끝나고 커피 한 잔 들고 가서 아까 그 부분 말인데요, 하고 시작한다. 결과적으로 안은 바뀌는데 아무도 상처를 안 입는다.
부드러움이 왜 무기인가. 상대의 힘을 자기 몸으로 받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 문장이 을목의 핵심이다.
懷丁抱丙 跨鳳乘猴
정화(丁火)를 품고 병화(丙火)를 안으면 봉황을 타고 원숭이를 탄다는 뜻이다.
여기서도 봉황과 원숭이는 짐승이 아니다. 유(酉)와 신(申)이다. 을목에게 신과 유는 자기를 치는 관살(官殺)이다. 나를 누르는 힘, 압박, 위에서 내려오는 통제다.
그런데 을목이 병화와 정화를 갖추고 있으면, 금(金)이 가장 왕성한 신월과 유월에 태어나도 그 압박이 무섭지 않다고 했다. 무서워하기는커녕 올라타고 다닌다고 적었다.
병화는 을목에게 상관(傷官)이고 정화는 식신(食神)이다. 표현하고, 만들고, 밖으로 꺼내 놓는 별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을목은 자기를 누르는 힘을 힘으로 막지 않는다. 대신 자기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놓는다. 말이든 글이든 솜씨든 결과물이든.
여기서 짚고 갈 게 하나 있다. 상관은 본래 얌전한 별이 아니다. 다스리지 못하면 사람을 삐딱하게 만들고, 윗사람과 부딪치게 하고, 하지 않아도 될 말을 기어이 하게 만든다. 흉으로 기우는 별이 맞다.
그런데 을목에게는 이 별이 거의 유일하게 확실한 출구다.
누르는 힘 앞에서 입을 다물고 참기만 하는 을목과, 그 앞에서 자기가 만든 걸 조용히 내미는 을목은 십 년 뒤에 전혀 다른 자리에 서 있다. 같은 온순함인데 하나는 쌓이고 하나는 소모된다.
그다음 문장.
藤蘿繫甲 可春可秋
등나무 덩굴이 갑목에 매이면 봄도 좋고 가을도 좋다는 뜻이다. 이것을 등라계갑(藤蘿繫甲)이라 한다.
갑목은 을목에게 겁재(劫財)다. 본래 내 몫을 나눠 가지는 별이라 반가운 자리가 아니다. 그런데 을목에게만은 이 겁재가 기둥이 된다.
덩굴은 혼자 서면 땅바닥을 긴다. 기둥을 만나면 그때부터 위로 올라간다. 같은 덩굴인데 높이가 달라진다.
여기서 을목의 진짜 성질이 나온다. 을목은 혼자 우뚝 서려고 할 때 가장 약해지고, 기둥을 잘 고를 때 가장 강해진다.
그래서 을목에게는 사람을 고르는 눈이 곧 실력이다. 어떤 조직에 들어가느냐, 누구 밑에서 배우느냐, 누구와 사느냐. 이 선택 하나가 능력치 전체를 결정한다.
문제는 기둥을 잘못 고르는 경우다. 덩굴은 자기가 감고 올라가는 것이 고목인지 썩은 말뚝인지 감을 때는 모른다. 한참 올라간 뒤에야 안다. 그리고 그때는 이미 몸이 다 감겨 있다.
을목이 인생에서 크게 무너지는 장면은 대개 여기다.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사람을 잘못 골라서다.
마지막 문장이 남았다.
虛濕之地 騎馬亦憂
비고 축축한 땅에서는 말을 타도 근심스럽다는 뜻이다.
말은 오(午)다. 수(水)가 넘치는 자월 같은 자리에 난 을목은 오화 한 점을 얻어도 살아나기 어렵다고 했다.
여기가 중요하다. 을목을 무너뜨리는 건 도끼가 아니다. 물이다.
수는 을목에게 인성(印星)이다. 받아들이고, 생각하고, 품고, 배우는 별이다. 나쁠 게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게 넘치면 어떻게 되는가.
생각만 많아진다. 계획은 완벽한데 첫 줄을 못 쓴다. 남의 말은 전부 이해하고 전부 받아 주는데, 정작 자기가 뭘 원하는지는 끝까지 말을 안 한다. 준비가 덜 됐다는 이유로 십 년을 미룬다.
호구가 되는 을목은 부드러워서 호구가 되는 게 아니다. 젖어서 호구가 된다.
뿌리가 물에 잠긴 풀은 부드러운 것이 아니라 물러진 것이다. 겉으로는 비슷하고 안에서는 완전히 다르다. 부드러운 풀은 밟으면 다시 일어서고, 물러진 풀은 밟으면 그대로 짓뭉개진다.
그리고 이 상태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더 배우는 게 아니다. 화(火)를 쓰는 것이다. 꺼내 놓는 것이다. 어설퍼도 밖으로 내보내는 쪽이 완벽하게 준비하는 쪽보다 낫다. 을목에게는 이게 치료다.
옛 책이 을목에게 붙여 준 조건을 한 줄로 줄이면 이렇게 된다.
이길 수 있는 상대를 알 것. 정면으로 부딪치는 대신 손을 잡을 것. 눌릴 때는 참지 말고 꺼내 놓을 것. 기둥을 고를 때 신중할 것. 물에 잠기지 말 것.
이 다섯이 갖춰진 을목은 부드럽다는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사람이 된다. 목소리는 여전히 낮은데 하는 말마다 자리를 잡고, 나서지 않는데 가져갈 건 다 가져간다.
이 다섯이 없는 을목은 그냥 착한 사람으로 끝난다. 착한 사람이라는 평판은 대체로 비싸지 않다.
같은 글자를 타고났는데 어느 쪽이 되느냐는 결국 본인이 정한다. 세상에 제일 상대하기 까다로운 사람은 강한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언제 이길 수 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다.
을목은 원래 그런 글자였다. 다들 착한 글자인 줄 알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