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 무서운 게 아니라, 가난이 그 사람의 흠 중에 제일 작다는 게 무섭다
돈이 있으면 고민의 대부분이 사라질 거라고들 한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돈은 없던 성질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이미 있던 걸 키운다. 확대경 같은 물건이다.
흔히 남자는 돈이 생기면 변한다고 한다. 정확히 말하면 변한 게 아니다. 원래 그랬는데 예산이 없었을 뿐이다. 예산이 잡히자 하고 싶던 걸 실행에 옮긴 것이다.
돈이 없다는 건 상태다. 통장에 찍힌 숫자가 잠깐 볼품없다는 뜻이지 그 이상은 아니다.
진짜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얄팍한 지갑 뒤에 딸려 오는 사고방식이 있고, 그게 지갑보다 훨씬 오래간다는 것이다.
남이 더 갖는 꼴을 못 보는 마음
경제학 실험 중에 최후통첩 게임이라는 게 있다.
낯선 사람과 만 원을 나눈다. 나누는 방식은 상대가 정한다. 내가 받아들이면 그 비율대로 둘 다 챙기고, 내가 거절하면 만 원은 그 자리에서 사라진다. 둘 다 빈손이다.
계산기를 두드리면 답은 뻔하다. 상대가 구천 원 갖고 나한테 천 원 주겠다고 해도 받는 게 이득이다. 천 원이 영 원보다 크니까.
그런데 사람은 계산기가 아니다.
실제로 해보면 이천 원, 삼천 원짜리 제안이 줄줄이 거절된다. 내 몫이 늘어나는 것보다 상대가 나보다 많이 챙기는 꼴을 못 보는 것이다.
자기가 빈손이 되더라도 남의 접시를 엎겠다는 마음. 이게 제로섬 사고다.
옛말로 하면 적은 것을 걱정하지 않고 고르지 못한 것을 걱정한다는 이야기다.
먹을 게 줄어들면 사람의 세계관도 같이 줄어든다. 눈앞의 떡이 딱 저만큼이라고 믿게 되고, 남이 한 입 먹으면 내 몫이 한 입 준다고 믿게 된다.
그래서 힘을 어디에 쓰냐면, 자기 그릇 지키는 데 다 쓴다. 남 잘되는 꼴을 못 본다.
게 잡는 사람들 사이에 도는 이야기가 있다. 통에 게 한 마리를 넣으면 기어 나온다. 여러 마리를 넣으면 아무도 못 나온다. 한 놈이 올라가려 하면 나머지가 집게로 잡아당겨 도로 끌어내린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 게 전문가에게 물어본 적은 없다. 다만 사람 사는 통에서는 매일 확인된다.
여기서 명리학 이야기를 한 스푼 담아보자.
이 심리는 명리학으로 보면 비겁(比劫)의 자리에서 나온다.
비겁은 나와 같은 편, 나와 같은 몫을 주장하는 별이다. 재(財)를 두고 나와 겨루는 힘이다.
비겁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비겁이 없으면 자기 몫을 지킬 배짱도 없고, 경쟁판에서 버틸 근육도 없다.
문제는 비겁이 어디로 흐르느냐다.
비겁이 곧장 재로 달려들면 남의 그릇을 노려보게 된다. 파이는 고정되어 있고 나눠 갖는 일만 남았다고 믿는 자리다.
비겁이 식상(食傷)을 거쳐 재로 가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식상은 만들어내는 별이다. 없던 걸 세상에 내놓는 힘이다.
같은 기운이 만드는 쪽으로 한 번 굽어져 나가면 파이 자체가 커진다. 그 굽어짐 하나가 뺏는 사람과 만드는 사람을 가른다.
사주 전체를 못 보더라도 이건 알아둘 만하다. 자기가 남 잘되는 소식에 속이 쓰린 쪽이라면, 그 기운을 만드는 데로 돌릴 통로가 뚫려 있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잃을까 봐 얼어붙는다
카너먼과 트버스키가 정리한 전망이론이라는 게 있다.
핵심은 단순하다. 백만 원을 잃는 아픔이 백만 원을 버는 기쁨보다 대략 두 배쯤 크다는 것이다.
이 계산이 몸에 박혀 있는 상태에서 주머니에 백만 원밖에 없다고 해보자.
모든 결정이 생사가 걸린 일처럼 무거워진다. 그러니 안 움직인다. 안 움직이는 게 가장 안전해 보인다.
케냐 서부 농가를 두고 진행한 유명한 연구가 있다. 뒤플로와 크레머, 로빈슨이 했다.
비료를 쓰면 수확이 눈에 띄게 늘어난다. 계산상 남는 장사다. 그런데 농민들이 사지 않았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연구진이 찾아낸 건 시점의 문제였다.
수확 직후, 손에 현금이 있을 때 소액 할인과 무료 배달을 붙여주자 구매가 늘었다. 나중에 같은 조건을 제시하면 효과가 확 떨어졌다.
돈이 있을 때는 나중에 사겠다고 미루고, 미루다 보면 정작 살 때가 되었을 땐 손에 돈이 없거나 마음이 급해져 있는 것이다.
가난은 지갑만 조이는 게 아니다. 판단하는 머릿속 자리도 같이 조인다.
그러면 사람의 시야가 짧아진다. 십 년을 보던 눈이 열흘을 본다.
책 읽어봐야 돈이 언제 되냐며 자기 머리에 투자하기를 그만둔다. 앞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매달 통장에 찍히는 숫자 때문에 그 자리를 붙들고 있는다.
손에 쥔 가장 비싼 자산인 시간을 내주고, 가장 싸구려인 안심을 사 오는 셈이다.
인간관계를 즉석에서 정산하는 사람
손실을 무서워하는 마음이 굳으면 사람 사귀는 방식까지 바뀐다.
모든 만남이 그 자리에서 계산이 끝나야 하는 거래가 된다.
내가 오늘 커피를 샀으니 너는 내일 나를 도와야 한다. 답이 빨리 안 오면 손해 봤다고 생각한다.
이 방식은 값어치 있는 사람들을 정확하게 몰아낸다.
그러면서, 왜 나는 귀인이 없지? 그런다.
멀리 보는 사람들은 계산서를 그 자리에서 끊지 않는다. 도와줄 만하면 도와주고, 좋은 걸 알면 나눠준다. 언젠가 다른 모양으로 돌아온다는 걸 여러 번 겪어봤기 때문이다.
푼돈과 인정을 뼛속까지 계산하고 있으면, 본인만 모르고 온 세상에 방송되는 게 하나 있다. 내가 지금 몹시 쪼들리고 있으며 시야가 짧다는 사실이다.
말은 안 해도 다들 안다. 그리고 조용히 멀어진다.
그럼 어떻게 하냐
첫째, 판을 키우는 쪽에 붙는다.
내가 뭘 잃을까를 먼저 세지 말고 이걸 어떻게 같이 벌지를 먼저 묻는다. 같이 일할 때 작은 이익은 넘겨준다. 상대가 남았다고 느끼게 둔다.
착한 사람 노릇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신뢰는 이 세상에서 거래 비용을 가장 크게 깎아주는 도구다. 작은 데서 손해를 감수한 상대가 몇 년 뒤에 무슨 문을 열어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둘째, 의지력을 믿지 않는다.
의지력은 소모품이다. 아침에 가득 차 있다가 저녁이면 바닥난다. 그걸로 저축하고 공부하겠다는 건 촛불로 겨울을 나겠다는 소리다.
대신 자동으로 돌아가는 장치를 만든다. 월급 들어오는 날 바로 빠져나가게 걸어둔다. 읽는 시간을 정해서 고정한다. 머리를 안 쓰고도 몸이 알아서 하는 일로 만들어둔다.
머릿속 자리를 그렇게 비워야 정작 중요한 걸 생각할 여유가 생긴다.
셋째, 흔들리는 상태를 견디는 근육을 기른다.
작게 여러 번 틀려본다. 새로 벌인 일이 안 됐으면 그건 손실이 아니라 자료다. 시장에 수업료를 내고 안 되는 방법 하나를 지운 것이다.
젊을 때 밑천이 적은 게 오히려 다행일 때가 있다. 적은 돈으로 많이 틀려볼 수 있으니까. 밑천이 두둑해진 다음에 처음 틀리면 그때는 수업료가 감당이 안 된다.
마지막으로
가난은 출발점이지 판결문이 아니다.
다만 가난이 오래되면 사람 안에 몇 가지가 자란다. 남을 의심하는 눈, 짧아진 시야, 남의 접시를 세는 습관, 잃을까 봐 얼어붙는 발.
이건 지갑이 채워진다고 알아서 빠지지 않는다.
명리에서도 대운(大運)이 바뀌면 판이 바뀐다고 하지만, 판이 바뀌었을 때 그 판을 쓸 사람이 되어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좋은 운에 들어가고도 그대로 사는 사람이 드물지 않다.
주머니가 잠깐 비는 건 계절 같은 것이다.
그게 성격으로 굳어버리면 그때부터는 계절이 아니라 기후가 된다.
기후를 바꾸는 일은 우산 하나로는 안 된다는 게, 이 이야기의 조금 성가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