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운명은 다 맞혔는데 제 딸은 못 지킨
역술가는 자기 운명을 볼 수 있을까. 중국 쪽에서 오래 도는 이야기 하나가 이 물음에 답 비슷한 것을 내놓는다. 잘 맞히는 일과 잘 사는 일은 처음부터 다른 종목이라는 답이다.
믿거나 말거나에 가까운 이야기다. 다만 이런 이야기가 수십 년을 돌아다니는 데에는 대개 까닭이 있다.
장 씨 성을 가진 여인이 있었다. 역학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름이 높았다.
어려서부터 제대로 된 전승을 받았고 타고난 감각도 있었다. 사람을 봐주고, 괘를 뽑고, 괘를 푸는 일에 손이 빨랐다.
나중에는 도구도 필요 없어졌다. 찾아온 사람 얼굴을 한 번 보거나, 멀리서 보내온 사진 한 장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그 사람 사정의 대부분을 짚어냈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통령이 되는 경우가 많다. 본인은 모르지만, 이건 공부 수준과는 관계가 없는 경우가 많다]
한번은 동종업자 몇 사람과 무덤가를 지나게 되었다. 그가 봉분의 흙을 한 줌 집어 코에 가져다 대더니 곧바로 말했다.
여기 묻힌 사람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어느 해에 태어나 어느 날 죽었는지, 무엇 때문에 죽었는지, 집안에서 어떤 자리였는지, 자식이 있었는지, 그 자식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같이 있던 사람들이 감탄했다. 공부가 익을 대로 익었다고들 했다.
이름이 높으니 값도 높았다. 찾아오는 쪽은 대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들이라 값을 깎지 않았다.
장 씨도 받은 만큼은 했다. 성의껏 봐주었고 실제로 급한 불을 꺼준 경우도 많았다.
몇 해 지나지 않아 살림이 크게 일었다. 대부분이 넉넉하지 못하던 시절에 성도에 양옥 다섯 채를 사들였고, 몇몇 회사에 지분을 넣었다.
바깥출입을 할 때는 귀에, 목에, 손목에, 손가락에 금붙이가 빠짐없이 걸렸다. 옷도 그때그때 가장 유행하는 것으로 골라 입었다.
동종업계에 형편이 비슷한 사람이 몇 더 있기는 했다. 다만 장 씨만큼 내보이지는 않았다.
하루는 그중 왕 씨가 사람들을 불러 절 구경을 가자고 했다.
역학을 하는 이들은 대다수 인과나 응보를 믿게 된다. 당연히 장 씨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날 마침 주지가 자리에 있어 차를 내주었고, 이야기가 길어졌다.
끝머리에 누군가 절 사정을 꺼냈다. 건물이 오래되어 손볼 곳이 많고, 종루도 새로 세워야 하는데 돈이 모자란다는 이야기였다.
앉아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움직였다. 현금을 꺼내는 사람, 수표를 쓰는 사람, 몸에 걸친 장신구를 그 자리에서 풀어놓는 사람이 있었다.
장 씨는 마지막까지 앉아 있다가, 열 손가락에 낀 금반지 중에서 가장 작고 가장 가벼운 것 하나를 골라 빼서 앞에 놓았다. 그러고는 잠깐 자리를 비우겠다며 나갔다.
다들 봤다. 다들 알았다. 아무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그 자리에서 가장 형편이 좋은 사람이 장 씨였다. 주지는 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짧게 한마디 했다고 한다.
아깝다, 아깝다.
무슨 뜻인지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절에 다녀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 씨는 지분을 넣어둔 의류공장을 둘러보다가 기계에 팔이 감겼다.
팔 하나를 잃었다.
그 일을 겪고 나서야 절에서 들은 그 두 마디가 무슨 소리였는지 알아들었다. 알아듣기에는 늦은 시점이었다.
이후로 장 씨는 재물을 쥐는 손아귀에 힘을 뺐다. 그 절에 큰돈을 보내 공사비에 보태게 했다.
몸이 그리 되고부터는 사람 앞에 나서서 봐주는 일도 거의 하지 않았다. 다만 공부를 그만두지는 않았다.
동시에 조용히, 그러나 부지런히 남을 도왔다. 인연이 닿는 사람이면 가리지 않았다.
이유가 있었다.
딸이 스물한 살 되는 해, 몇 월 며칠 몇 시에 크게 다치는 사고를 당해 어미와 갈라선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음덕을 쌓아 그 고비를 넘기게 해보려는 생각이었다.
積善之家,必有餘慶;積不善之家,必有餘殃
착한 일이 쌓인 집에는 남는 경사가 있고, 그렇지 못한 집에는 남는 재앙이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무게는 쌓을 적(積) 한 글자에 실린다. 한 번의 큰 결심이 아니라 오래 쌓인 방향이 결과를 만든다는 뜻이다.
문제는 딸이었다.
어려서부터 떠받들려 자라 성미가 뻣뻣했고, 하고 싶은 대로 했고, 남의 사정을 헤아리는 습관이 없었다.
그래도 자기 자식이라 장 씨 눈에는 이쁘기만 했고, 그 결과 금이야 옥이야 하는 아끼는 방식의 사랑이, 딸로 하여금 잘못된 쪽으로만 발전하게 했다.
팔을 잃은 해부터 딸이 스물한 살이 되기까지 두 해가 채 남지 않았다.
장 씨는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다. 선행을 쌓았고, 그날 그 시각에는 절대로 문밖에 나가지 말라고 딸에게 몇 번이고 일렀다.
딸의 방에도, 집 안 눈에 띄는 자리마다 그 날짜를 적은 쪽지를 붙여두었다.
그날이 왔다.
딸은 말을 들었다. 밤 열두 시 가까이 될 때까지 집에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 하루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래층으로 내려가 길 건너 편의점에 콜라를 사러 나갔다.
길을 건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검은 승용차에 치였다. 그 자리에서 숨이 끊어졌다.
장 씨는 그날 저녁까지 딸 곁에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 회사 사람들이 급한 일이라며 찾아 자리를 비웠다.
열한 시쯤 차를 돌려 집으로 향하면서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일이 다 끝난 뒤에 딸의 휴대폰을 열어보고 알았다.
그 휴대폰의 시계가 실제 시각보다 정확히 세 시간 빨랐다. (이 시대의 휴대폰은 자동으로 맞춰주는 시기가 아니었음)
禍福無門,惟人自召
화와 복에는 따로 드나드는 문이 없고, 오직 사람이 스스로 불러들인다는 뜻이다. 도교 경전인 태상감응편(太上感應篇)의 첫 문장이다.
이 문장을 두고 보면 이야기의 무게중심이 조금 옮겨간다.
장 씨는 날짜를 알았다. 시각도 알았다. 벽에 붙여두기까지 했다.
그런데 딸의 손에 들린 시계 하나를 보지 않았다.
무덤의 흙을 집어 냄새를 맡고 그 안에 누운 사람의 사연을 읽어내던 사람이, 제 집 안에 있는 숫자 하나를 확인하지 않았다.
아는 것과 사는 것 사이의 거리가 그 정도다.
그리고 반지 이야기가 남는다.
열 개 중에서 가장 작고 가벼운 것을 골라내는 계산은 정확했다. 그 판단에 오차는 없었다.
다만 계산이 정확한 것과 셈이 맞는 것은 다른 문제다. 주지가 한숨을 쉰 것은 셈을 못 해서가 아니었을 것이다.
같은 자리에서 어떤 이는 목에 걸린 것을 풀었고, 어떤 이는 수표를 썼다. 그들이 계산에 어두워서 그랬다고 보기는 어렵다.
荀子는 이런 말을 남겼다.
善為易者不占
역(易)에 정말 밝은 사람은 점을 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재주가 모자라서가 아니다. 방향을 알면 굳이 매번 물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하면, 물어야 할 것이 계속 늘어나는 사람은 아직 방향을 못 잡은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장 씨는 남의 방향을 수천 번 짚어주고 값을 받았다. 자기 방향을 어디에 두었는지는 그 반지 한 개가 대신 말해준다.
이야기의 끝은 이렇다.
딸을 보내고 나서 장 씨는 집에 있던 책과 도구를 전부 남에게 주었다.
잘 맞혀서 무엇 하느냐고, 남의 운명을 알아서 무엇 하느냐고, 그런 것으로는 가장 가까운 사람을 잃은 자리를 조금도 메울 수 없더라고 했다.
그 뒤로는 다른 공부를 시작했다고 전한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대개 두 갈래로 갈린다.
명(命)은 결국 못 피한다는 쪽과, 피할 수 있었는데 놓친 것뿐이라는 쪽이다.
두 갈래 모두 답이 되지는 않는다. 앞쪽은 반지 이야기를 설명하지 못하고, 뒤쪽은 시계 이야기를 설명하지 못한다.
반지 열 개 중에 가장 작은 것을 골라 빼는 정도의 계산은 누구나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한다.
문제는 그것을 셈이라고 부른다는 데 있다.
지금 당신이 셈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어느 쪽에 가까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