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다섯 중 임종을 지킨 건 하나
아들을 다섯 낳았는데, 마지막 가는 길을 지킨 자식은 하나뿐이었다.
명리(命理)에는 이런 자리가 실제로 있다. 자식이 많은 것과 곁에 남는 것은, 애초에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사연은 이렇다.
지난 세기 육칠십 년대, 사천(四川)의 어느 산골 마을에 떠돌이 술사(術士) 하나가 흘러들었다.
그는 마을 공용 방앗간 한켠에 자리를 잡고 앉아 사람들의 사주를 봐 주었다.
그런데 그 시절 사람들은 하나같이 가난해서, 사주값을 낼 여유가 있는 이가 없었다. 그저 할 일 없는 사내 몇이 곁에 앉아 말동무나 해 줄 뿐이었다.
그중에 마흔 남짓 된 사내가 하나 있었다. 밥 먹고 딱히 할 일이 없어 어슬렁거리다가, 집이 방앗간 바로 옆이라 슬그머니 끼어 앉은 참이었다.
그런데 술사가 먼저 말을 걸었다. 당신 사주가 좀 유별나다는 것이다.
무엇이 유별나냐고 물으니, 술사가 이렇게 답했다. 당신은 아들을 다섯 두는데, 늙어서 임종을 지키는 자식은 하나뿐이다.
사내는 당연히 믿지 않았다. 이제 겨우 마흔인 사람에게 다섯 아들 중 넷을 앞세운다니, 흘려들을 소리였다.
어째서 하나만 남느냐고 되물으니, 술사가 손가락을 하나씩 꼽으며 일러 주었다.
맏이는 절벽에서 떨어져 가고, 둘째는 어려서 잃고, 셋째는 스스로 목숨을 놓고, 넷째는 병으로 간다. 남는 것은 다섯째뿐이다.
사내는 한 글자도 믿지 않았다. 그저 아무 말이나 늘어놓는다고 여기고 자리를 떴다.
그런데 이후 이삼십 년 사이에, 그 말이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되었다.
맏아들은 십 대 시절, 절벽에 붙어 새 둥지를 뒤지다가 손끝에 뱀이 닿았다. 화들짝 놀라 손을 놓치는 바람에 그대로 굴러떨어져 세상을 떠났다.
둘째는 네댓 살에 병을 앓다가 일찍 갔다.
셋째는 자라서 양곡 창고의 회계 일을 맡았는데, 공금을 빼돌렸다는 누명을 썼다. 결백을 밝힐 길이 없자, 억울함을 안은 채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넷째는 군에 갔다가 제대해 운전하는 일자리를 얻었다. 어느 해 어머니가 전염병에 걸렸는데, 그 시절엔 차가 귀했다. 넷째가 손수 차를 몰아 어머니를 병원에 모셨고, 어머니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지만 정작 넷째가 그 병을 옮아 떠나고 말았다.
그리고 다섯째만 남았다.
술사의 말 그대로였다. 아들 다섯을 두었으되, 마지막을 지킨 것은 하나였다.
자미두수(紫微斗數)에서 천동(天同)이 자녀궁(子女宮)에 든 사람은 대개 자식이 많다. 그런데 그 자리에 살성(煞星)이 여럿 끼어들면, 끝에 가서 곁에 남는 자식은 하나로 줄어든다.
여기서 한 가지를 짚어 두어야 한다.
임종을 지키는 자식이 하나라는 말이, 나머지가 모두 일찍 죽는다는 뜻은 아니다. 그 하나만 남는 까닭은 사주의 짜임에 따라 여러 갈래로 나뉜다.
자식이 크게 되어 바다 건너 멀리 자리를 잡는 바람에, 정작 부모의 마지막에는 닿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자식이 몸이 성치 못해, 부모를 건사하기는커녕 제 한 몸 추스르기도 벅찬 경우가 있다.
부모와 자식 사이가 틀어져, 한집 식구였다는 사실이 무색하게 남남처럼 지내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같은 자리라도, 아들이 아니라 딸이면 이야기가 사뭇 달라진다.
옛 관념으로 딸은 시집가면 남의 집 사람이 된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부모의 임종을 지킬 의무 자체가 딸에게는 없었다.
의무가 없으니 마음이 도리어 가볍고, 마음이 가벼우니 부모와 더 가까워진다. 그렇게 늙은 부모의 곁을 지키고 마지막을 배웅하는 것이, 정작 아무 의무도 없던 딸인 경우가 많다.
사주로 옮겨 놓으면 이렇다.
남자 사주에서 아들은 칠살(七殺), 딸은 정관(正官)이다. 칠살은 나를 거세게 치고 드는 기운이고, 정관은 나를 반듯하게 붙들어 세워 주는 기운이다.
이름만 놓고 봐도, 늙어 병든 부모 곁을 지키는 쪽이 어느 편일지는 어렴풋이 짐작이 간다.
그 술사가 사내에게 건넨 말은, 아들이 다섯이나 되니 든든하겠다는 덕담이 아니었다. 다섯을 낳고도 끝에 남는 건 하나라는,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다.
옛말에, 아들 낳는 것이 꼭 복은 아니라 했다. 낳아 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일이다.
만약 그 사내에게 아들 다섯이 아니라 딸 다섯이 있었다면, 이 이야기는 또 어떻게 흘러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