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미두수와 사주팔자, 뭐가 더 잘 맞을까
명리를 조금 파고들다 보면 반드시 마주치는 질문이 하나 있다.
자미두수(紫微斗數)와 사주팔자(四柱八字), 둘 중에 뭐가 더 잘 맞느냐는 것이다.
이 질문에 시원하게 답을 주는 사람은 드물다. 대개는 "둘 다 좋다"거나 "손에 익은 게 최고"라는 식으로 얼버무린다. 틀린 말은 아닌데, 듣고 나면 뭔가 손해 본 기분이 든다.
그래서 오늘은 이 둘을 조금 진지하게 나란히 놓아보려 한다.
먼저 결론부터 말하면, 두 방법은 가는 길이 다를 뿐 닿는 곳은 같다.
사주팔자는 태어난 연월일시를 여덟 글자로 바꿔서, 그 여덟 글자만 가지고 사람의 한평생을 읽는다. 자미두수는 같은 생년월일시를 가지고 별을 하늘의 열두 자리에 흩뿌려 놓고 읽는다.
재료는 똑같다. 태어난 시각. 그걸 어떤 말로 옮기느냐가 다를 뿐이다.
목적이 같으니 효과도 같다. 정확히는, 같을 수 있다.
여기서 묘한 뒤집기가 하나 나온다.
사주팔자는 글자가 여덟 개뿐이다. 그래서 처음 배우기가 쉽다. 만세력 하나 펴놓고 천간(天干) 지지(地支) 뽑는 건 며칠이면 익힌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여덟 글자로 한 사람의 팔십 평생을, 부모 형제와 배우자와 자식을, 돈과 벼슬과 병과 죽음까지 다 읽어내야 한다. 재료는 여덟 개인데 설명해야 할 인생은 끝이 없다.
그러다 보니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처음 배울 때는 오히려 길흉을 척척 말하던 사람이, 공부를 깊이 할수록 점점 헷갈려 한다. 사주는 공부할수록 어려워지고, 고수가 되는 것은 극히 어렵다.
특히 용신(用神) 잡는 대목에서 그렇다.
조금 복잡한 사주 하나를 앞에 놓으면, 갑이라는 사람은 이 글자를 용신이라 하고, 을이라는 사람은 저 글자를 용신이라 한다. 병과 정은 또 다른 이야기를 한다.
네 사람이 같은 사주를 보고 네 개의 답을 내놓는다. 그런데 넷 다 나름의 논리가 있다.
이쯤 되면 배우는 사람은 속으로 생각한다. 이거 그냥 아무렇게나 찍어도 되는 거 아닌가.
명리가 어렵다는 소리는 대개 이 자리에서 나온다. 오행(五行)이 서로 살리고 누르는 이치, 글자의 무겁고 가벼움, 신살이 서로 얽히는 모양. 배울 때는 다 아는 것 같은데, 실전에 갖다 대면 안개 속이다. 그래서 공부했는데, 풀라고 하면 못풀겠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사주팔자는 오래도록 대접을 받았다.
이유는 뜻밖에도 철학에 있다.
사주가 다루는 음양(陰陽)과 오행의 생극제화(生剋制化)는 주역(周易)과 홍범(洪範), 하도낙서(河圖洛書)와 맞아떨어진다. 나아가 유가(儒家)의 사상 체계와도 이어진다.
그러니 글깨나 읽는 선비들이 이걸 그냥 두지 않았다. 붙잡고 늘어지고, 살을 붙이고, 이론을 세웠다. 그렇게 사주는 어느새 잔재주에서 하나의 학문으로 올라섰다.
한마디로, 이치 자체가 당시 기본 체계와 딱 맞아 떨어졌다. 그러니까, 천재들이 연구하고 보완하고를 계속하면서, 시스템으로 가다듬어 졌고, 그게 민간으로 계속 내려가서, 방대한 시스템이 된 것.
사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또 하나의 큰 흐름이 오성(五星)이다.
오성은 사람의 운명을 따지던 가장 오래된 방법이다. 오대(五代) 무렵 서역에서 건너온 별점과 뒤섞이면서, 훗날 금당파(琴堂派)라는 갈래가 생겨났다.
오성은 사주처럼 철학의 옷을 갖춰 입지는 못했다. 잔재주에 가까웠다. 그런데도 뿌리가 워낙 깊고 오래되어서, 대대로 무시할 수 없는 대접을 받았다.
자, 그러면 자미두수는 어디에 있었나.
딱한 자리에 있었다.
사주와 견주면 자미두수는 철학이 아니라 잔재주였다. 오성과 견주면 그만큼 오래되지도 않았다.
게다가 별을 다루는 사람들에게는 묘한 버릇이 하나 있었다. 좋은 비결 하나를 손에 넣으면 꽁꽁 감추고 혼자 흐뭇해하는 것이다.
품에 보물을 안고 숨긴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이러니 옛 학자들 눈에 자미두수가 곱게 보였을 리 없다. 이론을 세워 세상에 내놓아야 학문이 되는데, 다들 감추기 바빴으니 말이다.
여기서 잠깐 이야기를 팔괘(八卦)로 돌려보자.
이 이야기가 사주와 자미두수의 진짜 차이를 보여준다.
팔괘는 부호가 여덟 개뿐이다. 건(乾) 태(兌) 리(離) 진(震) 손(巽) 감(坎) 간(艮) 곤(坤). 이게 전부다.
그런데 이 여덟 개가 우주 전체를 담는다.
건(乾) 하나만 놓고 보자.
건은 오행으로 금(金)이다. 동시에 하늘이고, 얼음이고, 우박이다. 방위로는 서북쪽이고, 큰 도읍이고, 높은 땅이다. 사람으로 치면 어른이고 아버지고 이름난 인물이다. 몸으로는 머리이고 폐이고 뼈다. 짐승으로는 말이고 고니고 사자고 코끼리다. 물건으로는 금붙이와 구슬이다. 성질로는 과단성과 굳셈과 용맹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적자면 끝이 없다.
수천 년 전에 만들어진 부호 하나가, 오늘날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의 팔분의 일을 혼자 짊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팔괘를 공부하는 사람이 건(乾) 하나를 뽑아 들었을 때, 이 많은 뜻 가운데 지금 이 자리에 맞는 하나를 골라내는 일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사주는 팔괘보다는 복잡하다. 글자가 여덟이고 그 짜임이 다양하니까.
그런데도 여전히 너무 단순하다. 사람의 일과 세상의 온갖 사정을 담아내는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닌데, 한개의 글자가 수백, 수천, 수만개를 의미하기에, 사건이 발생후 그것을 명리학적으로 설명하는것은 100%가능하지만, 발생하기전 정확하게 예측? 그것은 쉽지 않다.
그럼 뒤집어 물어보자. 자미두수는 그런 어려움이 없는가.
간단히 답하면, 똑같이 어렵다.
다만 착수하기가 조금 수월하다.
이유는 단순하다.
자미두수는 별들이 열두 자리를 날아다니며 어느 궁에 앉느냐로 길흉을 본다. 자주 쓰는 별만 해도 수십 개다.
별이 많으니 처음에는 눈이 핑핑 돈다. 사주가 여덟 글자로 사람을 지치게 한다면, 자미두수는 수십 개의 별로 사람을 어지럽게 한다.
그런데 이 별들에는 한 가지 편한 구석이 있다.
좋은 별인지 나쁜 별인지, 제 자리에서 힘을 얻었는지 잃었는지가 비교적 또렷하다. 좋은 별이 좋은 자리에 앉으면 좋게 보고, 나쁜 별이 나쁜 자리에 앉으면 나쁘게 본다.
물론 이것도 결국은 보는 사람의 학식과 경험에 달렸다. 하지만 갈피를 잡기가 사주보다는 낫다.
사주가 여덟 글자의 침묵을 읽어야 한다면, 자미두수는 수십 개의 별이 그나마 자기 성질을 먼저 말해준다.
여기까지 오면 결론은 하나로 모인다.
태어난 연월일시만 정확하면, 자미두수든 사주팔자든 그 안에 한 사람의 일생이 통째로 들어 있다. 담긴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것은 그걸 꺼내 읽는 사람이다.
사주는 문턱이 낮아 들어서기는 쉬운데, 현묘한 이치에 기대는 탓에 안방까지 들어가기가 어렵다. 자미두수는 별이 많아 처음이 번거로운데, 한번 손에 익으면 제법 빠르게 효험을 본다.
결국 어느 쪽이든 마지막에 남는 건 도구가 아니라 그 도구를 쥔 사람의 그릇이다.
같은 만세력, 같은 별자리를 앞에 두고도 누구는 사람을 읽고 누구는 글자만 읽는다.
그러니 어느 법이 더 잘 맞느냐는 물음에는, 이렇게 되묻는 편이 정직하다.
그래서, 당신은 그걸 읽어낼 눈을 가졌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