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미두수 문파 및 역사 정리, 중주파와 근현대 명가들
자미두수(紫微斗數)를 조금 파다 보면 이상한 벽에 부딪힌다. 같은 명반(命盤)을 놓고도 사람마다 보는 법이 다르다. 어떤 이는 삼방사정(三方四正)을 훑고, 어떤 이는 사화(四化)가 어디로 날아가는지부터 본다. 별을 세는 사람도 있고, 별은 거들떠도 안 보고 궁(宮)만 따지는 사람도 있다.
처음 배우는 사람이 "그래서 뭐가 맞는 거요"라고 물으면, 스승 열 명이 열 가지 답을 준다. 이게 바로 문파(門派)의 세계다. 자미두수는 팔자(八字)보다 유파의 색이 훨씬 진하다. 그러니 어느 계보의 책을 집어 드느냐에 따라, 당신의 자미두수 인생 전체가 갈린다.
오늘은 이 복잡한 지도를 한 장으로 펼쳐 본다.
큰 물줄기는 둘이다, 삼합파와 비성파
자미두수의 수많은 갈래를 아주 거칠게 쪼개면 두 덩어리로 나뉜다. 삼합파(三合派)와 비성파(飛星派)다.
삼합파는 별을 중심에 둔다. 명궁(命宮)을 기준으로 삼방사정, 그러니까 삼합(三合) 방위와 마주 보는 대궁(對宮)까지 끌어와 별들의 조합을 읽는다. 자미(紫微)가 어디 앉았고, 천부(天府)가 어떤 별과 만났으며, 살성(煞星)이 몇 개나 끼어들었는지를 본다. 별의 성정(星情)과 격국(格局)이 주인공이다. 대만 자미두수의 큰 흐름이 여기 속한다.
비성파는 방향을 튼다. 별의 배치보다 사화의 움직임을 본다. 화록(化祿), 화권(化權), 화과(化科), 화기(化忌). 이 네 개의 기운이 어느 궁에서 출발해 어느 궁으로 날아가 꽂히는지, 그 궤적으로 사건을 읽는다. 별은 지도 위의 지명이고, 사화는 그 위를 달리는 자동차인 셈이다. 하락파(河洛派), 흠천문(欽天門) 계열이 이쪽 색채가 짙다.
말싸움은 늘 여기서 난다. 삼합파는 "사화만 쫓다 보면 별의 본성을 놓친다"고 하고, 비성파는 "별만 나열해서는 사건이 언제 터지는지 못 잡는다"고 한다. 둘 다 일리가 있다는 게 함정이다. 그래서 요즘 고수들은 슬그머니 양쪽을 다 챙긴다. 대놓고 말은 안 한다.
이 둘 사이에 앉은 중주파
여기서 중주파(中州派) 이야기를 해야 한다. 한국에서 자미두수를 배운 사람이라면 이 이름을 안 들어봤을 수가 없다. 그만큼 체계가 반듯하고 배우기 좋게 정리되어 있다. 나도 제일 처음 산 책이 중주파의 왕정지 책이었다.
중주파의 뿌리는 스스로 낙양(洛陽)에서 나왔다고 말한다. 조사(祖師)로 백옥섬(白玉蟬)과 오경란(吳景鸞)을 든다. 다만 이 계보는 문헌으로 촘촘히 증명되는 종류는 아니고, 구전(口傳)으로 내려온 것이다. 이 대목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게 마음이 편하다.
중주파가 세상에 이름을 알린 건 홍콩의 한 인물 덕분이다. 왕정지(王亭之)다. 본명은 담석영(談錫永). 1935년 광저우에서 태어났고, 홍콩에서 신문 칼럼니스트로, 또 티베트 밀교(密敎) 연구자로 이름난 사람이다. 원래 자미두수는 문파마다 비전(祕傳)이라며 꽁꽁 감춰두던 물건이었는데, 왕정지가 1980년대 초 신문에 연재를 시작하고 1985년 왕정지담두수(王亭之談斗數)를 내면서 판이 바뀌었다. 감춰둔 걸 공개해 버린 것이다. "중주파"라는 이름도 이때 정식으로 붙었다.
재미있는 건 그다음이다. 홍콩에서 정리된 이 체계가 대만으로 건너가 대만 자미두수 대중화의 불씨가 됐고, 정작 왕정지 본인은 훗날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낙양에서 시작했다는 학문이 광저우를 거쳐 홍콩에서 책이 되고, 대만에서 꽃피운 뒤, 스승은 밴쿠버에서 여생을 보낸 셈이다. 명반 하나가 지구 반 바퀴를 돈 것이다.
중주파의 특징은 별의 성정을 대단히 세밀하게 정리해 두었다는 점이다. 성계(星系), 그러니까 별들의 조합을 유형별로 나눠 놓아서, 초보자가 "이 조합은 대략 이런 그림"이라고 잡기가 수월하다. 사화도 쓰지만 별의 본성을 놓치지 않는, 말하자면 삼합과 비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은 학교다. 입문서로 중주파를 권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길을 잃기 어렵게 만들어 놨다.
아래 여러 책들 제목을 써놨으니, 관심있는 사람들은 중국어니까 못읽으려나?
대만 쪽 명가들
자미두수의 진짜 근거지는 대만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대만의 메인은 사주가 아니라 자미두수에 가깝다.
사실 대만에는 도교의 씨앗이 많이 남아 있어서, 각종 술법들도 상당히 발달 되어 있고, 한국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지상파에서 영적인 이야기, 사주, 자미두수 그런게 미신 형태가 아니라, 그냥 일상생활처럼 이야기되고는 했다.
1960년대부터 논명(論命)의 기록이 또렷하게 남기 시작했고, 이후 수십 년간 명가가 줄줄이 나왔다.
혜심재주(慧心齋主)를 먼저 꼽는다. 1970년대 대만에서 자미두수를 대중의 책상 위로 끌어올린 인물이다. 그전까지 술사들의 은밀한 밥벌이였던 것을, 일반 독자가 읽을 수 있는 책으로 풀어냈다. 자미두수 대중화의 첫 단추였다.
그다음이 자운(紫雲)이다. 이 사람은 삼십 년을 파고들어 아예 한 파를 세웠다. 삼대론(三代論)과 태세입괘(太歲入卦) 같은 독자적 이론을 내놨고, 1987년 두수여인생(斗數與人生)을 통해 변반(變盤) 기법을 공개했다. 원래 명반의 열네 개 주성(主星)을 다시 배치해 특정 사안을 깊이 파고드는 방법인데, 이게 당시로선 꽤 파격이었다. 두수여인생은 지금도 진지하게 공부하는 사람들의 필독서로 남아 있다.
자운의 문하에서 나와 독립한 사람이 요오거사(了無居士)다. 이쪽은 새 이론을 세우기보다 고적(古籍) 평주(評註)에 힘을 쏟았다. 옛 책을 꼼꼼히 따지고 주석을 다는 학자형이다. 화려한 예언보다 문헌 고증에 진심인 사람이 있어야 학문이 흔들리지 않는데, 그 역할을 했다.
이 밖에도 진악기(陳岳琦) 같은 초기 인물, 자미두수정본청원(紫微斗數正本清源)을 쓴 허요곤(許耀焜), 기륭(基隆) 지역의 태두로 불린 조상정(趙祥廷) 등이 대만 계보의 굵직한 이름들이다. 대만이라는 좁은 섬에 이렇게 많은 유파가 밀집해 서로 경쟁했으니, 자연히 이론이 빠르게 정교해졌다.
홍콩 쪽 명가들
홍콩은 대만과는 색이 다르다. 대만이 유파의 백가쟁명이라면, 홍콩은 몇몇 굵은 기둥이 버티는 모양새다.
앞서 말한 왕정지가 홍콩의 얼굴이다. 중주파를 세상에 내놓은 그 사람이다.
또 한 명 빼놓을 수 없는 이가 육빈조(陸斌兆)다. 육빈조자미두수강의(紫微斗數講義)로 알려진 인물로, 홍콩 자미두수의 초석을 놓은 사람 중 하나다. 왕정지가 대중적 파급력으로 판을 넓혔다면, 육빈조는 강의 체계로 학습의 뼈대를 세웠다.
여기서 흥미로운 인물이 하나 더 있다. 장요문(張耀文)이다. 이 사람은 일본으로 건너가 투파(透派) 계열과 연결되며 자미두수를 동아시아 여러 지역으로 퍼뜨리는 통로가 됐다. 홍콩과 일본, 대만을 잇는 다리 같은 존재였다.
정리하면 이렇다. 대만은 삼합파의 색이 짙은 여러 문파가 경쟁하며 이론을 갈고닦았고, 홍콩은 중주파를 중심으로 체계를 다듬어 세계로 내보냈다. 이 둘이 서로를 흘끔거리며 자극한 것이 오늘날 자미두수의 두 엔진이다.
그래서 어느 문파를 택할 것인가
처음 배우는 사람이라면 여기서 또 벽에 부딪힌다. 삼합으로 갈까, 비성으로 갈까. 중주파 책부터 볼까, 자운을 볼까.
한 가지는 말해 둘 수 있다. 유파가 다른 건 정답이 여럿이라는 뜻이 아니라, 같은 산을 오르는 등산로가 여럿이라는 뜻에 가깝다. 남쪽 길로 오르든 북쪽 능선을 타든, 정상에서 보는 풍경은 결국 하나다. 문제는 길마다 초입의 험하고 순한 정도가 다르다는 것이고, 그건 오르는 사람의 발에 맞춰 고를 일이다.
낙양에서 시작해 홍콩에서 책이 되고 대만에서 꽃핀 이 학문이, 지금 당신의 책상 위에 어느 판본으로 놓여 있는지. 그리고 그 판본을 고른 사람이 누구였는지. 한번 들여다볼 만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