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 이야기, 신혼집을 수리했다가 새 신부가 목숨을 잃다
집을 고치는 데에도 때가 있다. 옛사람들은 이것을 목숨이 걸린 문제로 여겼다. 송나라 때 강서 요주, 지금의 파양현에서 벌어진 일이 그 이유를 보여준다.
파양현에 덕화교라는 다리가 있다. 지금도 남아 있는 다리다. 남송 시절 이 다리 옆에 장림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도자기를 팔아 제법 크게 장사를 하던 사람이었다.
장림에게는 딸이 셋 있었다. 둘째 딸이 소금 장수 정대랑 집안의 셋째 아들에게 시집을 갔다.
정대랑 집안은 사정이 좀 복잡했다. 큰아들은 양자였고, 둘째와 셋째가 친아들이었다. 둘째는 백정 유씨네 딸과 혼인했는데, 집이 좁다고 북쪽 거리에 따로 세를 얻어 나가 살고 있었다.
그러다 셋째가 장씨네 딸과 혼인하면서 혼수를 두둑하게 받았다. 집안에서는 생각했다. 돈이 생겼으니 이참에 집을 헐어 새로 짓고, 나가 살던 둘째네도 다시 불러들이자.
그런데 정씨 집안과 가깝게 지내던 무당이 이렇게 말렸다.
올해는 구량성(九良星)이 문에 들어 있으니 문호를 바꾸면 안 됩니다. 크게 꺼리는 기간이 백이십 일, 작게 꺼리는 기간이 육십 일인데, 둘 다 넘기기 어려운 고비입니다. 이것을 범하면 명(命)이 약한 사람이 화를 입게 됩니다.
구량성은 옛 택일법에서 말하는 흉살(凶煞)의 하나다. 해마다 자리를 옮겨 다니는데, 이 살이 머무는 방위나 문에 손을 대면 그 집 식구 가운데 기운이 가장 약한 사람이 그 화를 받는다고 보았다. 집수리, 문 옮기기, 이사 같은 일을 앞두고 반드시 피해야 할 것으로 꼽혔다.
정씨네 노부인은 웃어넘겼다.
그게 뭐가 무서운가. 재앙이 있다면 이 늙은이가 다 짊어지겠네.
그렇게 집을 수리했고, 이월 이십일일 을축일 날이 밝을 무렵 둘째네 식구를 다시 들였다.
바로 그날 저녁이었다. 셋째 며느리, 그러니까 장씨네 딸이 가슴을 움켜쥐고 가슴과 배가 아프다며 쓰러졌다. 급히 친정에 사람을 보냈는데 하필 아버지 장림은 남쪽으로 장사를 떠나 집에 없었고, 어머니만 달려와 딸을 간호했다.
의원을 서너 명이나 바꿔가며 불렀지만 약만 넘기면 토해냈다. 아무 효험이 없었다.
그렇게 사월까지 끌었다. 친척인 심삼이라는 사람이 문병을 왔을 때, 장씨 딸이 잠깐 정신이 돌아와 힘겹게 몸을 일으키더니 이렇게 말했다.
고모부, 아세요? 저는 아홉째가 무서워요.
심삼이 말했다. 우리 친척 중에 아홉째로 불리는 사람은 없는데, 네가 병 때문에 정신이 흐려진 게 아니냐.
장씨 딸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말할 수 없어요. 말하면 죽어요.
아홉째. 구량성의 구(九)다. 병자 본인은 자기를 붙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입 밖에 내는 순간 끝난다는 것도 알고 있었던 셈이다.
다음 날 황상이라는 의원이 와서 맥을 짚더니 놀라며 말했다.
이것은 살기(煞氣)를 범한 것이오. 목숨이 경각에 달렸소.
그러고는 그대로 하직하고 떠났다. 과연 황상이 문을 나서자마자 장씨 딸은 숨을 거두었다. 그날이 사월 이십일일 을축일. 병이 난 날로부터 꼭 육십 일째였다. 무당이 말한 작은 기한, 육십 일이 그대로 들어맞은 것이다.
여기서 짚어볼 대목이 몇 가지 있다.
첫째, 화를 받은 사람이 왜 노부인이 아니라 새 며느리였는가. 시어머니는 자기가 다 짊어지겠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살은 말로 받는 것이 아니다. 집수리 비용의 뿌리는 장씨 딸이 가져온 혼수였다. 그 집을 고치는 데 들어간 재물의 주인이 그 여인이었으니, 그 일로 생긴 화의 임자도 그 여인이 된 것이다. 풍수에서 동토(動土)의 화는 그 공사와 인연이 깊은 사람, 그리고 그해 명운(命運)이 약한 사람에게 먼저 간다고 본다. 장씨 딸은 두 조건에 모두 걸렸다. 시집온 지 얼마 안 된 새 식구라 그 집 터의 기운에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한 상태였다는 점도 겹친다.
둘째, 날짜의 맞물림이다. 이사한 날이 을축일, 죽은 날도 을축일. 육십갑자가 한 바퀴 돌아 같은 날에 매듭이 지어졌다. 옛 택일법에서 흉살의 기한을 육십 일, 백이십 일로 끊어 말하는 것은 이 육십갑자의 순환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살이 든 날의 기운이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오는 날이 고비가 된다.
셋째, 무당의 경고 구조다. 무당은 수리를 무조건 하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니다. 올해는 구량성이 문에 들었으니 올해만 피하라고 했다. 흉살은 해마다 옮겨 다니니, 한 해만 기다리면 아무 탈 없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 한 해를 못 기다린 대가가 사람 목숨이었다.
이 이야기는 황상이라는 의원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맥을 짚고 살기라는 것을 알아본 사람도, 그것을 기록으로 남긴 사람도 당대의 지식인들이었다.
집을 고치고 문을 옮기고 이사를 하는 일은 지금도 누구나 겪는 일이다. 돈이 생겼으니 바로 한다, 이것이 요즘의 방식이다. 옛사람들은 그 사이에 하나를 더 두었다. 돈이 생겼다, 그런데 지금이 그 일을 해도 되는 때인가. 이 물음 하나의 무게를 파양현의 정씨 집안은 사람으로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