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음대격이 무엇인가 — 난대묘선(蘭臺妙選) 이야기
명리를 어느 정도 공부하다 보면 어느 순간 벽을 하나 만난다. 일간(日干)을 중심에 놓고 십신(十神)과 격국(格局)을 따지는 자평(子平)의 방식에 익숙해질 무렵, 옛 책을 들춰 보면 전혀 다른 언어로 쓰인 글들이 튀어나온다. 푸른 용이 바다를 건너고, 붉은 새가 하늘로 솟구치고, 검은 거북이 권세를 쥔다는 식의 표현이다. 처음 보면 명리책인지 신화집인지 헷갈린다. 이 낯선 세계의 한가운데에 난대묘선(蘭臺妙選)이 있다.
난대묘선은 납음오행(納音五行)으로 사람의 명을 논하는 글을 모아 놓은 책이다. 성서(成書 책으로 완성된) 시기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린다. 남송(南宋) 중기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쪽이 있고, 명대(明代)에 간행되며 서창노인(西窓老人)의 이름으로 전해진다는 기록도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납음을 본격적으로 운용한 부문(賦文) 가운데 지금까지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전하는 거의 유일한 글이 바로 이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후대의 성평회해(星平會海)나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 같은 큰 책들이 이 글을 받아 실었다.
그렇다면 먼저 납음(納音)이 무엇인지부터 짚어야 한다.
납음은 육십갑자(六十甲子) 하나하나에 오행을 다시 입혀 놓은 체계다. 우리가 흔히 아는 천간(天干)의 오행, 지지(地支)의 오행과는 별개로, 갑자(甲子)와 을축(乙丑)을 묶어 바다 속 금(海中金), 병인(丙寅)과 정묘(丁卯)를 묶어 화로 속 불(爐中火) 하는 식으로 예순 칸을 서른 가지 형상으로 나눈 것이다. 글자만 보면 천간지지의 오행과 어긋나는 경우가 많아 처음에는 당황스럽다. 갑자가 분명 물의 자리인데 왜 금이 되느냐는 의문이 자연스럽다. 이 어긋남 자체가 납음의 특징이고, 동시에 후대에 가장 많은 논쟁을 불러온 지점이기도 하다.
대격(大格)은 이 납음을 토대로 세운 귀격(貴格), 즉 크게 귀하게 보는 격의 묶음을 가리킨다. 자평이 일간과 월지(月支)의 관계에서 격을 잡는다면, 난대묘선의 대격은 사주 네 기둥의 간지와 그 납음이 어떤 그림을 이루느냐를 본다. 그래서 이름부터가 회화적이다.
몇 가지 실제로 책에 실린 격을 들어 본다.
창룡가해(蒼龍駕海)는 갑진(甲辰)과 무진(戊辰)을 푸른 용으로 삼고, 임술(壬戌)과 계해(癸亥)를 바다로 삼는다. 용이 바다를 타고 오른다는 형상이다.
주작등공(朱雀騰空)은 병정(丙丁)의 화(火)를 남방의 주작(朱雀)으로 본다. 병정 일간이 사오미(巳午未)의 자리를 얻어 붉은 새가 허공으로 솟구치는 모습을 이루면 귀하게 본다.
현무당권(玄武當權)은 임계(壬癸)를 북방의 신으로 두고, 자(子)·축(丑)·사(巳)를 만났을 때를 말한다. 자는 정북(正北)이요, 사 가운데는 뱀이 있고, 축 가운데는 거북이 있어, 검은 거북이 권세를 잡았다고 풀이한다.
삼원집왕(三元集旺)은 천원(天元)·지원(地元)·인원(人元), 다시 말해 천간과 지지와 납음 이 셋이 한곳에 왕성하게 모이는 것을 귀하게 보는 격이다.
이름의 결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난대묘선의 세계는 사령(四靈), 곧 청룡·주작·백호·현무를 축으로 삼아 별과 방위와 짐승을 끌어들인다. 자평이 글자와 글자 사이의 생극(生剋)을 따지는 냉정한 회계라면, 납음대격은 하늘의 그림을 읽어 내려는 점성(占星)에 가깝다. 같은 명리라는 이름 아래 두 개의 다른 결이 흐르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납음과 납음대격은 지금 주류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다. 자평명리가 송대 이후 명리의 큰 흐름을 잡으면서, 오행의 정리(正理)를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납음의 운용은 점차 밀려났다. 난대묘선 역시 오행의 바른 이치를 버리고 형상에만 기댄다는 비판을 후대로부터 적지 않게 받았다. 그래서 오늘날 사주를 보는 자리에서 창룡이니 주작이니 하는 말을 듣는 일은 드물다.
그렇다고 이 글이 박물관의 유물로만 남았느냐 하면, 또 그렇지는 않다. 난대묘선이 보여 주는 것은 옛사람들이 명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았는가 하는 시선 그 자체다. 글자를 쪼개 셈하기 이전에, 한 사람의 사주를 하늘에 펼쳐진 한 폭의 그림으로 읽으려 했던 사고방식이 여기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사실 자평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다. 그렇기에 가치가 있는 것.
푸른 용이 바다를 건너는 격을 두고, 그것이 허황된 옛 비유인지 아니면 글자 너머의 무언가를 가리키는 손가락인지는, 결국 읽는 사람의 몫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