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본 사람들과 하늘을 그린 사람들 [동양의 점성술]
지금은 누구나 생년월일시를 말하면 사주부터 나온다. 년 월 일 시 여덟 글자를 뽑아 오행을 따지는 자평(子平) 명리가 워낙 흔해진 탓이다.
그런데 자평이 자리를 잡기 전, 그러니까 송나라 이전의 동양에서 운명을 본다는 것은 곧 하늘을 올려다본다는 뜻이었다. 글자를 뽑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태어나던 순간에 어떤 별이 어느 자리에 떠 있었는지를 따졌다.
오늘 다룰 세 가지는 그 별을 다루는 방식이다. 칠정사여(七政四餘), 그 칠정사여를 집대성한 책이자 학파인 과로성종(果老星宗), 그리고 조금 다른 길을 간 자미두수(紫微斗數). 셋 다 동양 점성술이라는 한 지붕 아래 있지만, 들여다보면 성격이 꽤 다르다.
먼저 칠정사여부터 보자
이름이 어렵게 생겼는데 뜯어보면 단순하다.
칠정(七政)은 일곱 개의 정사, 즉 일곱 별이다. 해와 달, 그리고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 맨눈으로 볼 수 있는 진짜 하늘의 천체다. 동양에서는 이 일곱을 두고 정치를 한다는 뜻으로 정(政) 자를 붙였다. 하늘의 일곱 관리가 사람 일을 주관한다는 발상이다.
사여(四餘)는 남은 넷이라는 뜻인데, 이쪽은 좀 사정이 다르다. 라후(羅睺) 계도(計都) 자기(紫氣) 월패(月孛), 이 넷은 하늘에 실제로 떠 있는 별이 아니다. 계산으로 만들어낸 가상의 점, 말하자면 천문학적으로 의미 있는 자리를 별처럼 취급한 것이다.
특히 라후와 계도가 재미있다. 이 둘은 본래 인도에서 건너온 개념이다. 산스크리트어로 나바그라하(Navagraha), 아홉 천체를 뜻하는 구요(九曜)의 일부였다. 당나라 때 인도 점성술이 불교와 함께 들어오면서 이 라후 계도가 동양 하늘에 편입됐다. 자기와 월패는 그보다 늦게, 당나라 말에서 오대(五代)에 걸쳐 동양의 술사들이 직접 더 붙인 것으로 본다. 일곱에 넷을 더해 열한 자리를 다루게 된 것이다.
정리하면 칠정사여는 수입품과 국산품이 섞인 합작이다. 뼈대는 동양 하늘이되, 핵심 부품 두 개는 인도제다.
그럼 과로성종은 칠정사여와 뭐가 다른가
여기서 많이 헷갈린다. 결론부터 말하면 둘은 거의 같은 것을 가리킨다.
칠정사여가 별을 다루는 방법 그 자체라면, 과로성종은 그 방법을 한 권으로 묶어 정리한 대표 경전이자 그 학파의 이름이다. 자평 명리로 치자면 칠정사여가 사주 보는 법이고, 과로성종은 그 법을 담은 자평진전 같은 책에 해당한다고 보면 얼추 맞다.
이름이 과로(果老)인 데에는 사연이 있다. 당나라 도사 장과로(張果老), 흔히 팔선(八仙) 가운데 거꾸로 나귀를 타고 다닌다는 그 노인이다. 이 술법을 그가 만들었다는 전설이 붙으면서 책 이름에 그 이름이 올랐다. 전설은 전설이고, 실제로 한 사람이 어느 날 뚝딱 만든 체계는 아니다. 여러 세대가 쌓아 올린 것이 명나라 무렵 한 권으로 정리되며 과로성종이라는 간판을 달았다.
그러니 누가 칠정사여를 공부한다고 하면 십중팔구 과로성종을 펴 든다. 둘을 굳이 갈라 외울 필요는 없고, 방법의 이름과 그 방법을 담은 책의 이름이라고 생각하면 깔끔하다.
자미두수는 길이 다르다
자미두수도 별을 다루지만, 출발점이 정반대다.
칠정사여가 진짜 하늘을 올려다보고 그 순간의 별자리를 계산했다면, 자미두수는 하늘을 보지 않는다. 생년월일시를 가지고 정해진 규칙대로 별을 종이 위에 배치한다. 여기서 다루는 별들, 자미성(紫微星) 천기성 태양성 무곡성으로 이어지는 열네 개의 주성(主星)은 하늘에 실제로 떠 있는 그 별이 아니다. 이름만 별이지, 운명을 풀기 위해 만들어낸 부호에 가깝다.
자미두수라는 이름부터가 그렇다. 자미는 북두칠성의 기준이 되는 자미성을 말하고, 두수(斗數)는 북두의 셈이라는 뜻이다. 이 자미성을 임금 자리에 앉히고, 나머지 별들을 신하처럼 열두 개의 방, 곧 십이궁(十二宮)에 나눠 배치한다. 형제는 형제궁, 부부는 부처궁, 재물은 재백궁 하는 식이다. 운명을 열두 칸짜리 관청 조직표로 그려 놓는다고 보면 된다.
만든 사람으로는 송나라 도사 진단(陳摶), 호로는 진희이(陳希夷)가 전해진다. 도교 쪽 이야기로는 871년에 나서 989년까지 백열아홉 해를 살았다고 하는데, 이쯤 되면 사람 수명이라기보다 신선 이력서에 가깝다. 진단이 정말 혼자 만들었는지는 칠정사여의 장과로 전설과 마찬가지로 확실치 않다. 다만 별을 직접 관측하던 점성술에서, 생일만으로 별판을 짜는 간편한 방식으로 넘어간 분기점에 이 자미두수가 서 있는 것은 분명하다.
세 가지를 한자리에 놓고 보면
가장 굵은 차이는 하나다. 진짜 별을 보느냐, 그린 별을 쓰느냐.
칠정사여와 과로성종은 진짜 하늘이다. 황도(黃道) 위를 도는 실제 행성과 해와 달의 위치를 계산하고, 거기에 이십팔수(二十八宿)와 열두 별자리를 깔아 본다. 그래서 정밀한 천문 계산, 곧 역법(曆法)이 받쳐 줘야 굴러간다. 별의 운행을 모르면 판 자체를 짤 수 없다.
자미두수는 그린 하늘이다. 망원경도 천문대도 필요 없다. 생년월일시와 정해진 공식만 있으면 누구나 같은 판을 뽑는다. 하늘 사정과 무관하게 종이 위에서 완결된다.
뿌리도 다르다. 칠정사여는 인도 점성술의 피가 절반쯤 흐르는 국제 합작이고, 자미두수는 그보다 동양 자생의 색이 짙다.
강점과 약점도 거기서 갈린다
칠정사여와 과로성종의 강점은 그 실측에 있다. 실제 천체의 자리를 따지니 서양 점성술이나 인도 점성술과 같은 언어로 비교가 가능하다. 황도 십이궁이라는 공통의 좌표를 쓰기 때문이다. 동양 술법 가운데 바깥 세계와 대화가 되는 거의 유일한 갈래다.
약점도 바로 그 실측이다. 무겁다. 천문 계산을 손에 익히는 것부터가 일이고, 별의 운행과 도수를 따지는 과정이 까다롭다. 자평 명리가 여덟 글자만 알면 시작되는 데 비해, 이쪽은 입구부터 문턱이 높다. 명나라에 들어 조정이 천문 지식의 민간 유출을 막는 금령을 내리면서 학맥이 끊긴 것도 이 무게와 무관치 않다. 당나라에 융성하고 원나라에 절정을 찍었던 이 술법이 지금은 아는 사람이 드문 데에는 이런 사연이 있다.
자미두수의 강점은 가벼움과 선명함이다. 천문 계산이 필요 없으니 익히기 쉽고, 운명을 열두 궁으로 나눠 한눈에 보여 주니 어디가 강하고 어디가 비었는지 직관적으로 읽힌다. 부부 자리, 재물 자리, 자식 자리가 칸칸이 나뉘어 있으니 질문에 답을 바로 짚어 주기에 편하다. 그래서 오늘날 동양 점성술이라 하면 자미두수가 가장 널리 쓰인다.
약점은 그 편의의 뒷면이다. 별판이 생일에서 기계적으로 나오다 보니, 같은 시각에 난 사람은 같은 판을 받는다. 그 안에서 사람마다 갈리는 차이를 어디까지 풀어낼 것인가는 결국 보는 이의 몫으로 남는다. 칸이 명확한 만큼, 칸과 칸 사이의 미묘한 흐름은 도리어 놓치기 쉽다.
하늘을 올려다보던 술법과, 하늘을 종이에 옮겨 그린 술법.
하나는 무겁고 정밀한 대신 멀어졌고, 하나는 가볍고 선명한 대신 흔해졌다. 그리고 그 둘이 서로 자리를 다투던 시기를 지나, 지금은 여덟 글자를 뽑는 자평이 안방을 차지하고 있다.
별을 직접 보던 시절과 별을 그려 두고 보는 시절, 그리고 별 대신 글자를 보는 시절. 같은 질문을 두고 사람들이 고른 도구가 시대마다 이렇게 달랐다는 것은, 한 번쯤 곱씹어 볼 만한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