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 기신은 Ai에게 의존해서는 안된다.
요즘 사람들의 휴대폰을 들여다보면 한 가지 흐름이 보인다. AI에게 무언가를 물어보고, 그 대답이 그냥 비판없이 쓰고, 그걸로 블로그글 올리고 그런 사람들 봤다. 심지어는 명리학도 정리했더라. ㅋㅋㅋ
물론 정리가 나쁜게 아니다. 나도 초안에 많이 쓴다. 그러나, 반드시 점검을 하고, 최종 수정을 다 한다. 이유는 환각도 많고, 헛소리도 많이 해서 그렇다. 특히 내가 예전에 블로그인가에서 ChatGPT안 쓴다고 하는게, 모르면서, 더럽게 자신감있게 이야기해서,,,
그런데 이 사람들의 사주를 모아놓고 보면 특징이 있는데, 인성(印星)이 기신(忌神)으로 자리 잡은 경우가 많다.
인성은 일간(日干)을 생(生)해주는 기운이다. 나를 낳고 길러주는 자리, 받아들이고 흡수하는 자리다. 어머니의 자리이고, 공부의 자리이며, 인정받고 보호받는 자리다. 적당하면 사람을 깊고 너그럽게 만든다. 그러나 넘치면, 그래서 기신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받기만 하고 내보내지 못하며, 생각만 굴리고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받아주는 손길에 기대고 싶어 한다.
이런 사람에게 AI는 더없이 편한 상대다. 묻는 대로 답해주고, 다그치지 않으며, 핀잔도 주지 않는다. 밤 세 시에 깨워도 화내지 않는다. 받아들이고 기대고 싶은 인성의 입맛에 이보다 잘 맞는 상대가 없다.
먼저 짚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도구를 칭찬하는 마음의 정체다.
"이 사전 정말 대단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떠올려 보자. 사전은 도구다. 도구가 대단할 리 없다. 그 말의 속을 갈라보면, 대단한 것은 그 사전을 골라 잘 써먹은 자기 자신이다. 도구를 향한 감탄은 돌고 돌아 결국 자기 인정으로 돌아온다. 대단한 것은 AI가 아니라, 좋은 답을 끌어냈다고 믿는 나 자신이다.
여기서 문제가 시작된다. 이 자기 인정이 쌓일수록 인성의 힘은 더 굵어지고, 아집(我執)은 더 단단해진다. 안 그래도 받기만 하던 사람이, 받아주는 기계까지 손에 쥔 셈이다.
기질로 봐도 그렇다. 요즘 말로 내향형, 이른바 I형이라 부르는 사람 중에 인성 기신이 많다. 본래 사람과 부대끼는 일을 꺼리는 사람들이다. 그런 이들에게 AI는 최고의 말동무가 된다. 상처를 주지 않으니까. 그러나 사람은 사람이고 기계는 기계다. 적어도 한 가지 영역에서 AI는 사람을 대신하지 못한다. 바로 교류다.
교류의 본질은 서로 통하는 데 있다. 옛사람은 이것을 교감(交感)이라 했다. 주역(周易)의 함괘(咸卦)가 바로 이 교감을 말한다. 함은 곧 감(感)이니, 두 기운이 서로 응하여 마주 통한다는 뜻이다.
하늘과 땅이 교감하여 만물이 생기고, 남자와 여자가 교감하여 정이 든다. 함괘의 핵심은 마음과 마음이 같은 결로 떨리는 데 있다.
AI에게는 떨릴 마음이 없다. 정보를 끌어모아 그럴듯하게 이어 붙일 뿐, 마주 떨어줄 안쪽이 없다. 이 한 칸은 앞으로 오랜 세월이 지나도 기계가 쉽게 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인성 기신인 사람이 AI 대화에서 느낀다는 그 놀라움과 기쁨은 무엇인가.
대개 자기가 모르던 영역이라 그렇다. 2 더하기 2 더하기 2 더하기 2는 8이라는 것만 알던 사람이, 2 곱하기 4도 8이 된다는 말을 처음 듣고 무릎을 친다. 그 기쁨은 AI가 위대해서가 아니라, 내가 그 영역에 어두웠기 때문이다. 어두운 곳에 작은 불 하나만 켜도 눈이 부신 법이다.
그런데 사람은 여기서 한 가지 착각을 한다. AI가 내가 모르는 분야에서 나보다 나아 보이니, 내가 잘 아는 분야에서도 AI가 나보다 나을 것이라 믿어버린다. 실은 그렇지 않다. AI는 대부분의 단일 분야에서 80점 언저리에 머문다. 문외한을 상대하기에는 넉넉하지만, 그 분야를 깊이 파본 사람이 보면 빈틈이 곳곳에 드러난다. 더 곤란한 것은, AI가 묻는 사람의 속내를 영리하게 읽어 거기에 맞장구를 친다는 점이다.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방향을 눈치껏 골라 들려준다.
그래서 AI를 길들인다는 말은 절반만 맞다. 길들이는 동안 길들여지는 것은 사실 나 자신이다. 내가 원하는 대답을 내가 유도해 듣고, 그 대답에 내가 흐뭇해한다. 옛말로 군자는 본 바가 서로 같다(君子所見略同) 하는데, 알고 보면 나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며 스스로를 추어올린 셈이다.
사람이 "나를 알아주는 건 나뿐이다", "내 말에 맞장구쳐 줄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자리로 깊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그것은 마음이 안으로만 말려드는 신호다. 노자(老子)는 일찍이 이렇게 적었다.
自見者不明,自是者不彰,自伐者無功,自矜者不長。
스스로를 드러내려는 자는 도리어 밝지 못하고, 스스로 옳다 여기는 자는 드러나지 못하며, 스스로 자랑하는 자는 공이 없고, 스스로 뽐내는 자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AI 화면을 붙들고 혼자 흐뭇해하는 모습이 꼭 이 구절 속에 들어 있다.
AI 대화에 빠져드는 일은 결국 안으로 파고드는 향내구(向內求)다. 그런데 인성 기신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정반대다. 이미 안쪽으로 너무 굽은 사람이다. 그에게 약이 되는 것은 밖으로 나가 구하는 향외구(向外求)다. 도(道)는 골방 안에 있지 않고 만물 가운데 두루 흩어져 있다. 사람을 만나 부딪히고, 일을 벌여 깨지고, 현실의 모서리에 정강이를 찧어봐야 인성에 고인 물이 비로소 흐른다.
기신(忌神)이 가리키는 쪽으로 자꾸 걸어가면서, 어찌 탈이 나지 않기를 바라는가.
그 옛날 사전을 펴들고 한 단어를 찾아내던 사람과, 지금 AI에게 그 단어의 뜻을 받아 적는 사람 사이에는,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달라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