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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친(六親) 다섯 번째 이야기, 사주에서 자식 보는 법
부모, 형제, 배우자를 봤으니 이번엔 자식 자리다.
명리학(命理學)에서 자식 자리는 부부 자리만큼 자주 본다.
다만 자식 자리는 더 까다롭다.
성별에 따라 글자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남자 사주에서 아들은 칠살(七殺), 딸은 정관(正官)이다.
여자 사주에서 딸은 식신(食神), 아들은 상관(傷官)이다.
같은 자식인데 보는 글자가 정반대다.
왜 그럴까.
남자는 자기를 극(克)하는 글자를 자식으로 본다.
씨앗을 받아서 자기 대를 잇는 존재라는 옛 사고방식이다.
여자는 자기가 낳는 글자, 즉 자기가 생(生)하는 글자를 자식으로 본다.
직접 낳는다는 의미를 글자에 그대로 새긴 것이다.
시대 감각과는 어긋나는 부분이 있지만, 명리학의 논리 자체는 일관된다.
자식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글자가 갈린다.
그리고 자식 자리는 시주(時柱)에서 본다.
연주(年柱)는 조상, 월주(月柱)는 부모, 일지(日支)는 배우자, 시주는 자식.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순서 그대로다.
시주에 무엇이 앉아 있는가, 시주의 천간(天干)과 지지(地支)가 어떤 관계인가.
이게 자식 자리의 핵심이다.
남자 사주부터 보자.
칠살이 사주에서 단정하게 자리 잡고, 양인(羊刃)이나 충형(沖刑)에 흔들리지 않으면 자식 자리가 안정된다.
여기에 식신이 칠살을 제어해주는 구조면 더 좋다.
식신제살(食神制殺).
칠살이 거칠어지지 않게 식신이 잡아주는 그림이다.
자식이 단정하고, 부모와 사이도 좋다.
옛 책에서는 이런 사주를 두고 자득력화순(子得力和順)이라고 적었다.
반대 경우도 있다.
칠살이 양인 위에 앉거나, 칠살이 도화(桃花)와 겹치거나, 충형을 잔뜩 맞으면 자식 자리가 흔들린다.
자식이 늦거나, 부모와 거리가 멀거나, 건강이 평탄하지 않다.
시상(時上)에 상관(傷官)이 있고 공망(空亡)까지 겹치면 자식 자리가 비어 있다고 본다.
시상상관(時上傷官) 봉공망(逢空亡).
옛 책에서 자주 언급하는 구조다.
여기서 한 가지 짚어두자.
옛 책 표현이 무겁다고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자식 자리가 약하다는 건 자식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자식과의 결이 평탄하지 않다는 뜻이다.
자식이 멀리 살거나, 자식이 늦거나, 자식의 길이 부모와 다르거나.
다양한 모양으로 풀린다.
이번엔 여자 사주를 보자.
여자 사주에서 아들은 식신이다.
식신이 사주에서 단정하게 자리 잡고, 인성(印星)에 눌리지 않으면 자식 복이 있다.
식신은 일간(日干)이 낳는 기운이다. 자식 자리 그 자체다.
문제는 인성이 식신을 칠 때다.
이걸 효신탈식(梟神奪食)이라고 한다.
효신이라는 표현이 무섭다.
원래 효(梟)는 어미를 잡아먹는 새라고 옛 사람들이 본 새다.
그 글자가 식신을 친다는 건, 자식 자리를 어머니의 기운이 짓누른다는 그림이다.
글자만 보면 살벌하지만, 실제로는 인성이 너무 강해서 식신이 펴지 못하는 구조라는 뜻이다.
자식이 늦거나, 자식과의 결이 어렵거나, 자식 키우는 과정이 평탄하지 않다.
여자 사주에서 인성이 너무 강한 사주는 자식 자리를 따로 봐야 한다.
인성이 어머니의 보호이긴 한데, 그게 다음 세대로 이어질 식신을 누르면 자식 자리가 좁아진다.
여기서 또 한 가지 구조가 있다.
상관이 너무 강한 여자 사주.
상관이 자기 자식 자리이긴 한데, 상관이 너무 강하면 정관, 즉 남편 자리를 친다.
상관견관(傷官見官)으로 부부 자리에 그림자가 지면서, 자식 자리도 같이 흔들리는 경우가 생긴다.
자식 자리는 부부 자리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부부 자리가 흔들리면 자식 자리도 같이 움직인다.
명리학은 늘 자리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본다.
자식 수를 보는 옛 방식도 있다.
옛 책에서는 양일양시(陽日陽時)면 남중견(男重見), 양일음시(陽日陰時)면 선남후녀(先男後女), 음일음시(陰日陰時)면 여중견(女重見), 음일양시(陰日陽時)면 선녀후남(先女後男)이라고 적었다.
쉽게 풀면, 일간과 시간(時干)의 음양 조합으로 아들과 딸의 비중과 순서를 본다는 뜻이다.
다만 이 방식은 옛 자료에 자주 나오는 참고용 정도로 보면 된다.
요즘은 자식 수가 시대 흐름에 따라 달라지므로, 글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옛 책에서 자식 자리를 볼 때 강조한 또 한 가지가 있다.
생왕배가(生旺倍加), 사절감반(死絶減半).
칠살이나 식신이 생왕(生旺) 자리에 있으면 자식 수와 자식 복이 두 배로 늘고, 사절(死絶) 자리에 있으면 절반으로 준다는 뜻이다.
여기에 태과불급(太過不及)이면 그 원칙도 적용하지 말라고 적었다.
너무 많거나 너무 적으면 다른 기준으로 보라는 말이다.
너무 많은 자식별은 오히려 자식과 부딪치는 인생을 만들고, 너무 적은 자식별은 자식 자리 자체가 좁다.
여기서도 명리학은 중화(中和)를 본다.
사주에 자식별이 아예 없는 경우도 있다.
남자 사주에 칠살도 정관도 보이지 않는 사주.
여자 사주에 식신도 상관도 보이지 않는 사주.
이런 사주는 시상(時上)이 핵심이다.
시상이 생왕하고, 자식별이 들어오는 대운(大運)을 만나면 자식이 생긴다.
대운이 지나면 자식 자리가 다시 좁아진다고 옛 책은 적었다.
이걸 풀어보면, 원국(原局)에 자식별이 없는 사주는 운(運)에서 자식 인연이 결정된다는 뜻이다.
명리학에서 운이라는 게 왜 중요한지, 자식 자리에서도 똑같이 드러난다.
길성이 자식 자리에 모이는 사주도 있다.
천을귀인(天乙貴人), 천덕(天德), 월덕(月德), 식신, 재성(財星), 관성(官星)이 시주에 단정하게 자리 잡으면 자식이 충효하고 현명하다고 옛 책은 적었다.
반대로 시주가 휴수사절(休囚死絶)에 빠지고, 파패(破敗)와 공망이 겹치면 자식 자리가 평탄하지 않다.
여기에 고신(孤神)이나 과숙(寡宿)까지 겹치면 자식과의 결이 멀어진다.
다만 한 가지 분명히 짚어두자.
자식 자리가 약하다고 자식 인생이 망가지는 게 아니다.
자식 자리가 약한 건, 부모와 자식의 결이 가까운지 먼지에 대한 이야기다.
자식의 인생은 자식의 사주가 결정한다.
부모 사주에서 자식 자리만 보고 자식의 미래를 단정하는 건 명리학을 반만 쓰는 일이다.
자식이 태어난 시점의 사주, 그 자식의 대운, 그게 자식 본인의 그림이다.
부모 사주의 자식 자리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거리감을 보여줄 뿐이다.
자식 자리의 마지막 한 가지.
명리학에서 자식별이 강한 시기가 따로 있다.
남자 사주에서 칠살이 들어오는 대운, 여자 사주에서 식신이 들어오는 대운.
이 시기에 자식 인연이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자식이 늦은 사주를 보면, 대부분 이 자식별의 운이 늦게 들어온다.
자식이 빠른 사주를 보면, 자식별의 운이 일찍 들어온다.
원국과 대운을 같이 봐야 자식 자리가 정확하게 그려진다.
이걸로 육친 자리를 한 바퀴 돌았다.
부모, 형제, 배우자, 자식.
사주 여덟 글자 안에 어떻게 사람이 들어 있는지 큰 그림을 그렸다.
다음 편부터는 한 단계 더 들어간다.
육친의 글자들이 운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즉 대운에 따라 가족 자리가 어떻게 흔들리고 어떻게 안정되는지를 본다.
육친은 사주 원국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운이 들어오면 자리가 다시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