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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잘되게 하는 여자는 주문해서 받는 택배가 아니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런 글이 자주 보인다.
미안하다 내가 많이 썼다.
남편복 있는 여자 알아보는 법.
어떤 여자가 남편을 잘되게 하는가.
이런 여자랑 결혼하면 평생 편하다.
남편 잘되게 하는 여자의 일곱 가지 특징.
조회수도 잘 나온다. 댓글도 활발하다. 남자들이 꽤 진지하게 읽는다.
읽고 나면 다들 결심한다.
"그래, 이런 여자랑 결혼해야지."
마치 인터넷 쇼핑하듯이. 사양서 보고, 옵션 확인하고, 장바구니에 담는 기분으로.
그런데 명리학에서 보면, 이건 좀 곤란한 발상이다.
먼저 짚고 가자
여자 사주는 어떤 게 좋은가.
여기서 짚고 갈 게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여자도 남자처럼 중화(中和)된 사주가 좋다고 한다. 양쪽 다 균형 잡혀야 한다는 말이다.
사실 중화된 사주가 좋단 이야기는 그냥 평범하게 사는 인생이 좋다는 관점에서 좋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 평범을 좋다고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SNS가 없어서, 비교가 없는 세상에 살던 때가 아니라면, 요즘 세상에 평범은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명리학 고전을 두루 봐온 입장에서 말하면, 이건 여명도 중화가 좋다는 맞지 않는다.
여명(女命)은 약간 신약(身弱)한 것이 좋다. 왜?
옛 책들이 그렇게 말한 데는 이유가 있다. 여자가 너무 신왕(身旺)하면 자기 기운이 너무 세서 남편 자리에 있는 관성(官星)을 누르거나 거스른다. 부부 관계가 평온하기 어렵다.
반대로 약간 신약하면 어떻게 되는가. 부드럽고 순응성이 있다. 관성이 자연스럽게 자기 자리에서 작용한다. 남편을 받쳐줄 여유가 생긴다.
다만 "약간"이 중요하다. 너무 신약하면 자기 줏대가 없어 휘둘린다. 그것도 좋지 않다.
그러나 현대적 관점에서 보게 되면,
관살이나 재가 왕성하기에
신약해지는 경우가 많다.
관살이 왕성하면, 능력있는 남자, 혹은 좋은 직장을 얻는데 유리하잖아.
그러면
남자 관점에서 본 좋은 여명
남자 입장에서 좋은 짝이 되는 여명이 어떤지 보면 이렇다.
약간 신약하되 너무 약하지 않고, 격국이 청하며, 관성이나 칠살(七殺)이 청투(淸透)하고, 재성(財星)과 인성(印星)이 적절히 배합되며, 지지에 형충(刑沖)이나 육해(六害)가 없는 사주.
이런 여자는 어떤 사람인가.
성정이 안정되어 있어 변덕이 적다.
감정과 결혼 생활에 충실하다.
밖에 나가면 단정하고 안에 들어오면 살림이 야무지다.
외모도 단아하고 품위가 있다.
현명하면서도 책임감이 있다.
말과 행동이 알맞다.
기력이 좋고 자식 복도 있다.
부부 사이도 화목하다.
말 그대로 극품(極品) 여자 이다.
자, 그럼 이런 여자는 어디 있는가.
당신이 만날 수 있는가가 문제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
이런 여자는, 평범한 남자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만나려면 만나는 남자도 그만한 사람이어야 한다. 하늘의 총애를 받고, 인간 세상에서 복성(福星)에 해당하는 남자라야 이런 여자를 곁에 둘 수 있다.
이게 명리학이 말하는 짝의 원리다.
사주의 격이 비슷해야 만난다.
복의 크기가 비슷해야 짝이 된다.
운명의 무게가 어울려야 부부가 된다.
이걸 짝짝이로 맞추려고 하면, 잠깐은 만나도 결국 어긋난다. 잡히지도 않고, 잡혀도 떠난다.
남편복 있는 여자를 사고 싶다는 남자들에게
남자들이 그런 여자를 원하는 마음은 이해할 만하다. 누가 복을 마다하겠는가.
다만 순서가 잘못됐다.
남편복 있는 여자를 알아보는 법을 공부하기 전에, 자기가 어떤 남자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자기 사주가 어떤 그릇인지, 어느 정도의 복을 담을 수 있는지, 그게 먼저다.
옛 사람들은 이걸 지피지기(知彼知己)라고 했는데, 사실 순서로 보면 지기가 먼저고 지피가 나중이다.
자기를 모르고 상대만 분석해봐야 헛수고다.
자기 그릇이 작은데 큰 복을 담으려고 하면, 그릇이 깨진다. 깨지지 않으면 복이 새어 나간다.
이게 자연의 평형 법칙이고, 명리학이 오랫동안 관찰해온 이치다.
그럼 여자는 어떤가
여자도 똑같다.
좋은 남자, 부귀한 남자, 명문가의 남자.
이런 남자도 여자가 원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자기 사주에 그런 남자를 감당할 그릇이 있는지, 그런 인연을 끌어들일 복이 있는지가 먼저다.
복이 없는데 부귀남을 만나면 어떻게 되는가. 만나도 못 잡거나, 잡아도 떠나거나, 결혼해도 고생한다.
명리학에서 본 적 없는 사례가 아니다. 흔하다.
그러니까
남편복 있는 여자든 부귀한 남자든, 그 사람을 찾기 전에 자기를 봐야 한다.
거울을 보듯이.
사주를 통해서.
자기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운을 가졌는지.
그리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면 된다.
지금 내가 원하는 그 사람을, 내가 정말 가질 수 있는 사람인지.
좋은 옷이라고 다 자기 몸에 맞는 게 아니듯이, 좋은 사람이라고 다 자기 짝이 되는 게 아니다.
명리학은 그 어울림을 보는 학문이다.